요한계시록 12장 1- 4절 제목: 여자와 아이와 용22.231.1.74/~woorich1/
계 12: 1- 4 (여자와 아이와 용)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60)
본문: 요한계시록 12장 1- 4절
제목: 여자와 아이와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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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7-03-04 13:21
여자와 아이와 용
2007년 3월 4일 본문 말씀: 요한계시록 12:1-4
(계 12: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계 12: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계 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계 12:4)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우리는 서로서로 납득이 되는 세계 안에서 살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보면, 어떤 여인이 나타나는데 태양을 입고서, 머리에는 12별을 지고서, 발 밑에서 달을 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아이를 분만했는데 곧 해산하려고 합니다.
그 해산하는 아이를 노리고서 붉은 용이 그 여자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광경을 현실로서 받아들이라고 했을 때, 과연 어느 인간이 납득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형성되어 있는 상황은 우리 인간 쪽에서 그 어떤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확정된 체계로서 닥쳐져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이런 광경은 말씀 속에서만 있지 비현실적이라고 외면하기 일 수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외면하지 않고 수용하는 현실이란 기껏 우리 인간의 능력과 지식이 개입되는 세상일 뿐입니다. 즉 우리가 손대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거기에 비해 성경에 나오는 세계는 우리가 전환시킬 틈이 보이지 않는 운명적인 세계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향하여 ‘할 수 있다!’고 외치겠지만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이미 확정된 인생길을 가게 되어 있어!’입니다. 이로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 우리가 관여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정욕과 탐욕과 죄에 대해서 우리 힘으로 절제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다음과 같이 고백할 뿐입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즉 우리가 그 어떤 죄를 발산할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항상 우리를 버리지 않고 눈발 내리듯이 덮쳐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왜 이러한 기이한 현상이 우리에게 덮쳐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한 아이를 둘러싸고 벌어진 그 어떤 일로 인하여 우리가 평생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의 혜택을 입고 사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인의 신분은 이 지상의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것입니다. 하늘의 태양과 별과 달까지 그 여인의 신분을 말해주는데 동원됩니다. 따라서 자동적으로 그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는 자신의 어머니로 인하여 같이 고귀한 신분자가 됩니다. 하늘에 속한 자식이 됩니다.
여인의 머리에 면류관을 썼다는 말은, 이미 그 여인은 이 지상 세력에 대해서 본인이 승리자임을 드러내는 알리는 식으로 나서게 된다는 겁니다. 앞으로 처신을 잘한다는 조건으로 나중에 승리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승리자가 된 입장에서 세상과 관여하는 여인입니다. 그렇다면 이 어미로 인하여 자식도 당연히 이 세상 안에서 승리자로서 출생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여인이 낳은 자식은 아빠가 없는 자식입니다. 엄마만 있고 아빠가 없습니다. 그것은 새롭게 만들 나라의 백성은 기존의 아빠 있는 상태에서 낳은 자식들은 거부하는 양상으로 모집됨이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기존의 아빠 세계에 대한 부정입니다. 거절입니다. 지상에서 아빠를 가진 자는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는 말입니다.
갈라디아서 4:26에 보면,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몇 자 되지도 않는 문장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인간상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의 특징은 자기를 자기답게 존재케 한 어머니를 지상에서는 없음을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여인이 낳은 아이의 특징은, 지상에서 살면서 악마의 호출하는 기능자로서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악마는 이 아이에 관해서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꼬깃꼬깃 감추어놓은 자신의 정체를 여지없이 노출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가 가는 곳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악마는 세상에서는 실존적 존재로서 인정받지 못하기에 항상 은밀하게 배후적 세력 안으로 숨어있는 방식으로 있다가 아이가 등장하면 여지없이 자신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이로서 악마를 제대로 알려면 아이의 복음을 전파하면 됩니다. 어느새 악마는 자신의 본 성격을 드러내면서 핍박을 감행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아이는 하나님이 벌리시는 새창조작업의 흔적으로 등장된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이 아이의 본질을 어디서 비롯된 것입니까?
이 아이를 낳은 어머니의 머리에는 12별로 된 면류관이 씌어져 있습니다. 별이라는 것은 땅에 있는 인간들이 자기 뜻대로 관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하나 둘 만들어주셔야 비로소 하늘에 박히게 되어 있는 것이 별입니다. 그런데 12개의 별만이 어머니의 머리에 안착될 수 있습니다.
12개의 별이란 친히 하나님께서 뽑아놓으셨다는 선택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나라들은 사람의 존재가 우선입니다. 백성이 먼저 있고 그 백성들이 자기네들을 위한 왕에 후에 세우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백성이 우선이지 왕이 우선이 아닙니다. 왕이란 백성의 안위의 번영을 위해서 요청된 직분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오직 왕 한 분 밖에 없었고, 그 왕께서 일일이 정확하게 자기 백성을 뽑으셔서 집어넣어서 생긴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12지파에서는 자신을 뽑은 놓은 하나님의 백성이 자력으로 뽑히기 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신세입니다.
그러면 이 백성들이 할 일은 무엇인가요? 그들은 평생을 살면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평생 자신을 떠나지 않았음’을 증언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7장, 예수님의 기도 내용에 들어있는 바가 같이 세상에 속하지도 않는 자기 백성을 당장 하늘로 데려가지 않고 세상에 남겨둠은 그들로 하여금 악이 무엇인지 알게 하고 그 악에 빠질 수 없는 신분임을 확인해서 예수님이 하신 일에 영광과 찬탄과 공로를 들리기 위함입니다.
성도가 가는 곳에 악마도 주목하고 접근합니다. 그리고 나서 주장합니다. ‘스스로 너의 힘으로 스스로를 구원시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성도는 증거합니다. ‘나는 이미 구원된 입장에서 너희들 속에 섞여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선하심도 인자하심이 얼마나 큰 위력으로 동행하시는지 우리네 인생의 골목골목과 굽이굽이와 높낮이를 통해서 실감케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로 인하여 우리가 이미 뽑혔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