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제거하는 신앙 (역대하 14: 1- 8)
7. 제거하는 신앙 (역대하 14: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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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거하는 신앙 (역대하 14:1-8)
(대하 14:1) 아비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다윗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 시대에 그 땅이 십 년을 평안하니라
(대하 14:2) 아사가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대하 14:3)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이하고 주상을 훼파하며 아세라상을 찍고
(대하 14:4) 유다 사람을 명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하며 그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대하 14:5)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이하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얻으니라
(대하 14:6)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해 싸움이 없은지라 저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
(대하 14:7) 아사가 일찌기 유다 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에게 사방의 평안을 주셨느니라 하고 이에 저희가 성읍을 형통하게 건축하였더라
(대하 14:8) 아사의 군대는 유다 중에서 큰 방패와 창을 잡는 자가 삼십만이요 베냐민 중에서 작은 방패를 잡으며 활을 당기는 자가 이십팔만이라 다 큰 용사더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일반에게 일반적으로 일하시는 것을 압니다. 말씀의 원리 원칙대로 지금도 역사 하시는 주님을 우리가 영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아사라는 왕이 새로운 왕으로 남쪽 유다 나라에 등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옛날에 다윗에게 이 이스라엘 유다 나라의 왕은 어디까지나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라는 언약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안보이잖아요. 모세 당시에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끔 하나님의 영광이 모세와 더불어 나타났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감히 하나님의 영광 가까이에 가지 못하고 모세만 그 무서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과 독대 했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고 대신 주의 종을 앞장 세워서 일을 하셨습니다.
모세 당시에 주의 종은 모세였습니다. 자기 나라를 사 십년 동안 인도했던 모세였고, 여호수아 당시에는 여호수아였습니다. 그러면 다윗 시대에는 누구였겠습니까? 다윗이었죠. 그러면 그 다윗이 죽고 난 다음에는 누구였습니까? 바로 다윗이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았던 왕이 하나님의 지시와 명령을 따라줘야 그 나라가 평안한 그러한 언약, 약속 속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셔서 예수님의 행하신 그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그 의로운 행위에 근거한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떨어져서 주님의 영생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한 고백을 하는 사람들, 옛날에는 모세였고, 다윗이었지만 지금은 남녀노소, 계층의 위, 아래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성경은 호칭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에 보면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백성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은 옛날에는 어떤 특정계층의 혈족에 속해서 특정 일을 하는 자가 제사장이었는데 신약에 와서는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이 사회에서 거룩한 제사장 역할을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것은 항상 믿는 자의 입장에서는 실상도 되고 증거도 되지만 안 믿는 자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허상이 되겠지요. 이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약속의 실상이라고 못 받아들이겠다는 사람들입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시지만 그 주체되신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안 계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을 때, 그게 바로 믿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한 유다 나라의 왕으로써 옛날 선대왕들이 이렇게 잘했을 때 이런 복을 받고, 실패했을 때에는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그 후대 왕들이 많이 교육받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그 왕직을 인수받아서 그 자리에 앉으니 왕의 눈에는 그 나라 경계선 철조망 주변에서 호시탐탐 유다 나라를 침범할려고 노리고 있는 아주 악마적인 인간들의 모습만 보일 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믿음이 없는 인간에게 실상의 하나님으로 수용되겠습니까?
선배 왕들이 모두 넘어가고 실족한 것은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소년 다윗은 키가 3미터나 되는 골리앗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소년 다윗은 여태 벌벌 떠는 사람들과는 뭔가 다른 게 있었습니다. 물론 만군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사울 왕 쪽도 알고 있었고, 소년 다윗도 그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 쪽과 소년 다윗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아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상으로 수용한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나온다고 하루 두끼만 먹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밥 안 먹어도 사는 게 아니잖아요. 교회 나오든, 안나오든 하루 세끼 먹어야 되고, 옷 입어야 되고, 돈 없이는 못 살고, 집 없이는 못살잖아요. 그런데 불신자와 신자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바로 소년 다윗과 그리고 옆에 있는 사울 왕과의 차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그 지시와 명령과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그 계획이, 현실로, 장래에 실제 일어날 말씀의 능력으로 곧이곧대로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이건 서울대학교 나온 천재라고 해서 쉽게 받아드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초등학교도 못 나왔다고 해서 못 받아 드리는 것도 아니에요. 몸이 아프다고 해서 못 받아드리는 것도 아니고 건강하다고 해서 잘 받아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성경에서는 성령의 은사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도 모르게 그냥 주어졌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이러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굉장히 사랑스런 사람이지만, 세상에 나와서는 상당히 서러움과 곡해와 오해와 박해를 받는 서글픈 인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본문에서 이 아사라는 왕이 하나님을 제대로 믿었는데, 아사 왕은 자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나는 하나의 집배원이고 남들 눈에 안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시하고 계시다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서 훌륭하다는 말을 듣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 이것이 자기에게 가장 중 차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런 마음이었기에 선배 왕들이 감히 못했던 일을 했습니다. 그것은 제거하고 없애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2절에 보니까 아사 왕이 이방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훼파하며 아세라상을 찍고, 태양상을 없이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편한 생각에는 나라도 왕만 시켜준다면 얼마든지 없애겠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정치를 해보면 자기 편들어 주는 사람이 하나라도 아쉬운 마당에 무엇인가 있는 것도 없앤다는 것은 모험을 하는 행위입니다. 있었던 것은 다 이유와 백성들의 요구가 있어서 있었던 게 아니겠습니까. 글쎄요. 아예 정치인생을 끝장내려면 몰라도 백성들이 지금 선호하고 있는 바를 정치하는 자가 일부로 나서서 없앤다는 것은 무모한 짓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상을 누가 섬깁니까? 우상이 우상을 섬깁니까? 백성들이 우상을 원하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까?
우상을 친다는 것은 자기 백성을 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자기백성을 친다는 것은 지금 자기가 왕으로써 힘이 될 수 있는 자기편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친다는 것입니다. 자기 옹호해 줄 사람이 하나라도 아쉬운 이때에 가만히 있어서 여기 저기 표를 끌어 모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그것을 친다는 것은 백성들 보기에 아사라는 사람이 분명 자기 나라 왕인 줄로 알고 있는데 아사 왕은 백성들의 견해와는 달리 이 나라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주님이고 하나님이시지, 이 아사라는 왕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겨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인간이 교회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까? 그 누가, 그 어떤 인간이 십자가 졌습니까? 인간이 성령을 줄 수 있습니까? 어느 인간이 교회의 주인이 될 수 있느냐 말입니다. 어떤 인간이 유다 나라의 임금님이 될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 임금님이 되시지요. 그런 소리하면 백성들이 "아이고 임금님 그런 소리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보여야지요" 그렇게 이야기하겠지요.
그런데 여기 우상을 제거한다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이유는, 출애굽기32장8절에 보면 나오는데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갔을 때에 산 아래에 있던 백성들이 하는 행위가 나옵니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만들고 그것을 숭배하고, 여기 우상이라는 것은 반드시 앞에"자기를 위하여"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알려 줄 때,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하시면서 두 번째 바로 나오는 것이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냥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너를 위하여"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너 자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씀드리면, 너 자신을 부인하고 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너 자신을 부인하지 않은 채 여호와를 믿는 것은 여호와를 믿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찾는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을 우상처럼 나 좋아라고 찾지 않습니까? 나 좋아라고 하나님 찾잖아요. 그런데 하나님 찾으면서 자신 생각 하지말고 하나님만 생각하면서 하나님 찾는 것을 하나님은 요구하신다는 말입니다. 이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제가 집에서 책을 읽으면서, 종교와 하나님의 복음, 즉 언약이 어떻게 다른가를 정리해 놓은 게 있습니다. 첫 번째 종교라는 것은 하늘의 시민권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이고, 복음 즉, 하나님의 언약이란 하늘의 시민권이 그냥 공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 종교인이란 대가성 있는 행위에 눈독들이는 사람이고, 언약 안에 있는 사람이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숨쉬는 것, 발자국 한 걸음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아는 것이며, 고린도전서 15장10절에 나오죠. 나의 나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종교인이란 나는 꼭 천당가야 된다는 구원 욕심에 꽉 차 있는 사람이고, 언약 속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불쌍히 여기심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 종교인이라는 것은 인간이 자기가 해야할 몫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언약 속에 있는 사람은 오늘도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시키실까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이 담겨있는 사람입니다. 시키시는 일은 능력으로 하게 되어있죠. 그러니까 한쪽은 행함이고 한쪽은 자유죠.
바로 나를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어떤 접촉점으로 출발해서 시도하려는 이 모든 것이 우상이라는 점을 아사 왕은 분명히 하기 위해서 백성들이 그토록 붙들고 있는 그것을 가차없이 부셔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깐 백성들이 "아이고 왕이시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우리가 안 믿는 것이 아니고, 믿기는 믿는데 어떤 수단과 방법이 있어야 하늘나라 올라 갈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반발이나 도전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나마 이렇게 복을 비니까 적들이 쳐들어오지 않았잖아요 이러한 반대의견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분명히 다 부숴 버렸는데 이상스럽게도 적들은 꿀 먹은 벙어리모양 쳐들어올 생각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겁니다. 참 신기하죠. 이걸 봐서 이 유다 나라, 이스라엘 약속의 땅은 사람들이 자기노력 여하에 따라서 지켜지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께서 친히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친히 인도해 주시는 그런 정말 놀라운 세계가 이 약속의 땅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여기 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싸움이 없었습니다. 자 그러면, 아사 왕이 산당을 없이하고 우상을 때려부술 때에 "하나님 제가 저 우상을 때려부수면 복을 주실 겁니까?"라는 마음이었겠습니까 아니면 처음 때려부수기 전부터 마음이 평안하기 때문에 평안한 마음으로 때려부쉈겠습니까. 여러분 이 차이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아사 왕은 평안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우상을 겁없이 당당하고 대담하게 부순 것입니다.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하면 우리교회는 그런 교인이 없어 다행인데 도시교회에는 이런 교인들이 있습니다. 마음의 정서가 안정이 안되어서 불안해 가지고 철야하면서 광신도처럼 매달리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여러분 믿음이라는 것은 성령이 주신 기쁨이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도 빼앗기는 기쁨이 아닙니다. 환경이 뺏아가는 기쁨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깐 무엇이든지 평안한 마음으로, 천사의 말을 해도, 순교를 해도, 구제를 해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나와도, 기도를, 헌금, 구제, 봉사, 전도를 해도 사랑하는 마음, 평안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사의 마음이지,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모든 것은 결국 나를 위한 하나님, 불신앙인 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뭔가 우상을 제거한다는 것,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세상적인 부귀영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엄청난 것을 바라보기 때문에 자연발생적으로 그걸 무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하늘나라 시민이 되었기 때문에 세상에서의 부귀영화, 마귀의 유혹, 거기엔 별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안정된 정서, 평안한 마음. 정돈된 마음상태, 이것이 바로 성령이 주신 온유와 화평과 자비와 양선입니다. 아사는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든든하게 믿었습니다. 우리가 보통 시험을 칠 때 엄마가 애한테 뭐라고 합니까 "얘야 밥 든든하게 먹고 가라"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든든하게 입으시고 하나님의 생명을 많이 먹고 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험악한 세상을 살면서도 평안한 마음으로 오직 주 앞에 봉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사람들은 무엇이 그리 불안하고 초조한지, 살려고 바둥대며 애를 씁니다. 그리고 그 죽음의 그림자가 올 때 그들은 발악을 합니다. 주여 저희들은 발악하지 않게 하옵소서. 초조하지 않게 하옵소서, 겁내며 떨지 않게 하옵소서. 든든하게 주님의 값없이 주시는 생명수, 긍휼 하심을 가슴속에 든든하게 채우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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