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비야의 설교 (역대하 13:1-12)
5. 아비야의 설교 (역대하 1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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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비야의 설교 (역대하 13:1-12)
여로보암 왕 제십팔년에 아비야가 유다 왕이 되고 예루살렘에서 삼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미가야라 기브아 사람 우리엘의 딸이더라 아비야가 여로보암으로 더불어 싸울새 아비야는 택한 바 싸움에 용맹한 군사 사십만으로 싸움을 예비하였고 여로보암은 택한바 큰 용사 팔십만으로 대진한지라 아비야가 에브라임 산중 스마라임 산 위에 서서 가로되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무리들아 다 들으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이 아니냐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신복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일어나 그 주를 배반하고 난봉과 비류가 모여 좇으므로 스스로 강하게 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대적하나 그 때에 르호보암이 어리고 마음이 연약하여 능히 막지 못하였었느니라 이제 너희가 또 다윗 자손의 손으로 다스리는 여호와의 나라를 대적하려 하는 도다 너희는 큰 무리요 또 여로보암이 너희를 위하여 신으로 만든 금송아지가 너희와 함께 있도다 너희가 아론 자손된 여호와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쫓아내고 이방 백성의 풍속을 좇아 제사장을 삼지 아니하였느냐 무론 누구든지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일곱을 끌고 와서 장립을 받고자 하는 자마다 허무한 신의 제사장이 될 수 있도다 우리에게는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이 되시니 그를 우리가 배반치 아니하였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있으니 아론의 자손이요 또 레위 사람이 수종을 들어 조석으로 여호와 앞에 번제를 드리며 분향하며 또 깨끗한 상에 진설병을 놓고 또 금등대가 있어 그 등에 저녁마다 불을 켜나니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나 너희는 그를 배반하였느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사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그 제사장들도 우리와 함께 하여 경고의 나팔을 불어 너희를 공격하느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치 못하리라 (역대하 13:1-12)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여 각가지 하나님 자신의 속마음을 나타냄을 감사합니다. 이 시간도 옛날 우리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서 어떤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는지 우리가 소상히 아는 시간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오늘 성경에는 남쪽과 북쪽이 싸움을 벌립니다. 그런데 남쪽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전쟁을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그들이 공격해 왔기 때문입니다. 저 북쪽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이 없어도 우리는 약속의 땅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고, 남쪽의 이 아비야라는 왕은 하나님의 언약이 없으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지 않는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설교는 남쪽 왕인 아비야가 북쪽 사람들을 향하여 전쟁하기 전에 먼저 설교를 하는 그러한 장면입니다. 그 설교내용이 상당히 중요한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전쟁이란 하나님이 벌리시는 전쟁이 어떤 내용을 가지고 무엇 때문에 전쟁을 하시는가를 우리가 알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개인적인 감정과 사적인 어떤 원한 관계 때문에 싸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위한 전쟁, 언약을 위한 전쟁이라 하는 것은 어떻게 진행되며 우리 자신이 먼저 이 전쟁의 어느 편에 속해 있는지를 이 본문을 통해서 자신을 한번 살펴봐야 되는 것입니다. 이 남쪽 왕 아비야가 내세우는 그 언약이라는 것은 소금 언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4절과 5절에 보면,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지었다고 나옵니다. 이 소금 언약이란 것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냐 하면 소금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전쟁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들은 소금 언약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마 소금은 많을 거예요. 그러나 소금언약이 없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금언약을 주셨는데 그 소금언약이 있는 쪽이 소금언약이 없는 쪽을 향하여 전쟁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라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내려주신 소금언약이 있는 쪽이 하나님이 내려주신 소금언약이 없는 쪽을 치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는 말이에요.
그러면 소금언약이라는 것은, 레위기 2장13절에 보면, 소금을 치게 되어있는데 소금이라는 것은 영원한 것이거든요. 변치 않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너희는 사람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변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주신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것입니다. 북쪽 너희들은 변하는 것을 믿지만 우리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을 믿고 있다는 거죠.
자 그렇다면, 이이야기를 우리 자신에게 적용시켜 봅시다. 여러분 속에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소금언약이 들어 있습니까? 영원히 변하지 않는 맹세 같은 것, 하나님의 약속, 소금같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여러분 속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이 여러분 속에 들어있는 그 순간부터 여러분은 하나님의 언약이 없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가운데서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여러분들은 대치되는 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전쟁상태에 놓여지게 된다는 거죠.
그들이 믿는 것은 세상적이지만, 만약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언약이 있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최종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 그래서 이 소금언약에 의한 전쟁이란 영원한 것과 순간 순간 변하는 인간적인 것과의 싸움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 소금은 어디에 치느냐하는 것이 중요한데, 민수기 18장 19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영한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 라고 되어 있고요, 제사장이 먹는 음식에다가 소금을 뿌리는데 그것이 제물도 되고 음식도 되는데 그것이 소금을 뿌렸기 때문에 소금언약 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금을 뿌리면 맛이 오래 간다든지, 음식이 안 상한다든지 그래야 되는데 그게 어떻게 언약이냐? 의문이 가죠.
20절에는,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의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라고 합니다. 소금을 뿌린 하나님의 제물을 먹으라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 대신 네가 이 땅에서의 땅의 기업은 하나도 없느니라. 이 땅에서 네가 땀흘려서 네 손으로 얻을 수 있는 그런 근거는 전혀 내가 너에게 주지 않느니라. 이것이 바로 소금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먹고삽니까? 이렇게 나올 것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나 하나님 자체가 너희의 영원한 기업이니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 하나님의 소금 언약을 먹는, 하나님의 제물을 먹는 레위지파에게만은 이 하나님 자체가 영원한 너희들의 유산이고 상속이요 재산이다. 이제 만족하느냐?' 라고 되는 겁니다.
그러면 제사장들이 드리는 소금을 친 제물은 모두 제사장 음식이 되고 양식이 된다고 할 때에 다른 사람들은 "야! 제사장은 좋겠다. 신나겠다. 남이 바치는 것 먹고 " 이렇게 좋은 것 만 생각하다가, 제사장 레위지파는 이 땅에 자기 소유의 땅 한 평도 없다라고 해버리니깐 그만 "아이구~ 불쌍하다 제사장 가엾다 레위지파 아이고~ 무슨 낙으로 살까 세상에! 자기 재산 하나도 없는데 불안해서 어떻게 견딜까 뭐라도 있어야지 하나님이 주신다고 약속은 했지만 안 주시면 어떡하나 안 주시면 자기만 굶는데 아이구 안 됐다 제사장 "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변할게 아니겠습니까?
왜 이 소금 언약이 제사장에게만 해당이 되느냐 하면, 그들은 믿는 백성들을 대표해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이처럼 하나님만이 너의 영원한 재산이다. 너의 재산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가 재산이다 라고 하는 말씀이 나올 때면 사람들은 슬금슬금 꼬리를 뺍니다. 교회 나오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비겁한 구석이 발동합니다. 성경 가운데서 자기가 이해되는 것만 골라 믿고 이해 안 되는 것은 어물쩍 치워버리는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기도하라는 말에는 '야 그건 내가 믿어진다 기도하면 될 거 아니냐' 라고 하는데, 요한복음 1장 12절을 한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 잘 이해가 됩니까? 이런 말씀은 이해가 잘 안되니까 어물쩍 치워버리는 거예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너는 이미 이 땅에서 죽었고 너의 생명은 하늘에 있다 땅의 일을 생각지 마라고 하면 또 어물쩍 치워버리면서, 전도해라 그러면 아 그건 잘하지 외판 경력이 얼만데 그걸 못할까봐 말입니다.
성경말씀 가운데서 자기가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뻐하며 반기다가, 이미 너는 죽었고 라는 말이 나오면, '이게 무슨 말입니까?' 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 못 박혔나니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입니까?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거죠. 그러다가 무엇을 하라 하면 "아! 그건 나 잘 하니까, 신자 맞지" 이렇게 나온다는 말입니다.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레위지파가 소금을 쳐서 소금 친 제물은 먹으라. 야! 그거 쉽다. 주는 걸 안 먹어 누구나 먹겠다. 그러다가 너는 너의 땅덩어리는 하나도 없고 네 재산은 오직 하나님 자체가 너의 재산이다라고 하면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됩니다. 재산이 없다니, 하나님이 재산이라니, 하나님이 보여야 재산이지 하나님이 돈을 대 주시려는가?
하나님 이름으로 된 부동산이 있는가? 하나님이 재산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쉽게 말해서 죽으라는 말입니다. 죽어서 하나님과 함께 살라는 말입니다. 살아 있어도 죽은 자로써 살라는 말입니다. 이미 죽어버린 자로써 말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살라는 뜻이거든요. 그런데 그 뜻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뭐 하라고 하면 잘하는데, 정작 중요한 복음의 핵심에 대해서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말이죠.
에베소서 2장 1, 2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악한 신에 의해서 지배를 받았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 말에 내가 언제 악한 신에 지배를 받았어 성경도 참 웃기는 이야기하네. 내가 언제 날 때부터 남한테 지배를 받은 적이 없는데, 왜 악마의 지시를 받아.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이해가. 성경에서 이해 안 되는 것은 다 집어치우고 교회에서 심방을 하라는 그런 것은 이해가 잘 되니까 그런 것은 잘하지요. 그런 것 잘하면 신자 되는 줄 알고 말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도저히 불신자들이 흉내도 못 내고 믿고 싶어도 못 믿는 것이 믿어질 때 그것이 신자이며 확정된 것이지, 세상에, 세계 종교 단체들이 다 하는 것. 예배시간에 인간들의 몸 때움으로 다 할 수 있는 것. 그런 것 해 낸다고 신자 되는 것 아닙니다.
좀 전에 말씀드렸지만, 네가 육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혈통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네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났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우리가 그러면 천사란 말입니까? 천사보다 더하니라. 네가 교회 문제 있거든 세상 법정에 가져가지 마라. 천사를 심판하는 권리가 있다. 이게 무슨 뚱단지 같은 이야기입니까? 천사를 심판하는 권리가 있다니 우리가 말입니다.
그것보다 더 이상한 이야기는, 요한복음 6장 53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에게 생명이 없느니라 그러니깐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어떻게 사람의 피를 먹고 살을 뜯어먹나 이 말이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런 소리 하지말고 기도 열심히 해. 금식하란 말이야. 그런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 좀 하시지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에게 생명이 없느니라 하니깐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화목제물이 너희의 의가 된다니까 화목제물이 어떻게 의가 되나 내가 어떻게든 의로운 일을 해야지. 그래서 목사가 되면 교인들에게 의로운 일 시킨다고 난리예요. 자기 눈으로 교인이 의인인지 아닌지를 행동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성경의 말씀에 의해서만 의인됨이 믿기지 않고 또한 자기 의가 없어 얼마나 허전했으면 내 나름대로 나의 의를 채우기 위해서 의 될 만한 것을 찾아서 하겠습니까. 그것도 남에게 강요하면서요. 본인이 믿음으로 의롭다는 것을 못 받아드리기 때문에 따로 믿을 만한 의로운 것을 주특기로 가지고 있으려고 하는 겁니다.
얼마나 믿음이 없었으면, 철이 없었으면, 아니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들어 있지 않는, 화목제물을 믿으면 의인이 되리라 이 말을 믿지 않기 때문에 말입니다. 내가 기도를 좀 해서 기도로써 의인이 되었다는 이런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잖아요.
바로 이번 전쟁의 결과로 80만 중에서 50만이 죽습니다. 결과적으로 봐서 남쪽 소금언약이 이기고 언약이 없는 쪽은 졌습니다. 우리는 결과만 보면 아! 하나님 편에서는 모든 것이 이기는구나 이렇게 쉽게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아비야가 얼마나 큰 믿음을 가지고 제대로 된 믿음으로 싸웠는지 한번 상상해 보세요. 왜냐하면 소금언약 이라는 것은 결국 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이 무슨 전쟁을 합니까? 아무 것도 없는 쪽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 쪽을 승리했다는 말은 정말 대단한 믿음이 있다는 거죠.
거기에 비해서 북쪽은 어떻게 했습니까? 소금언약이 없습니다. 언약이 없다는 말은 있는데서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종교 방식이죠. 8절에 보면, 이제 너희가 또 다윗 자손의 손으로 다스리는 여호와의 나라를 대적하려 하는도다 너희는 큰 무리요 또 여로보암이 너희를 위하여 신으로 만든 금송아지가 너희와 함께 있도다. 9절에 보면, 너희가 아론 자손된 여호와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쫓아내고 이방 백성의 풍속을 좇아 제사장을 삼지 아니하였느냐 무론 누구든지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일곱을 끌고 와서 장립을 받고자 하는 자마다 허무한 신의 제사장이 될 수 있도다.
누구든지 나는 하나님만 있으면 족합니다 라는 마음은 그만 두고라도, 제사장만 되면 월급이 얼마지? 연봉은 얼마 될까? 사람들에게 존경받지? 이것을 얼른 연상하기 쉽습니다. 소금언약의 진정한 의의. 다시 말해서 하나님만 재산이면 전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라는 이런 믿음이 없더라도 북쪽은 누구든지 제사장으로 장립을 다 시켜줬다 이 말입니다.
'있는데서 있음을 믿는 제사장을 세웠고 저쪽 남쪽은 하나님만 있으면 족합니다' 라고 제사장이 그렇게 말하면 어느 쪽이 어느 쪽을 이겼다는 말입니까? 없는 쪽이 있는 쪽을 이겼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깐 이게 요한복음 1장12절하고 같은 차원 아닙니까?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입니다. 믿습니까?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무슨 증거가 있어야지 그걸 어떻게 믿어요. 하지만 그것이 그냥 믿어질 때, 바로 여호와 전쟁의 승리가 아니겠습니까? 그게 복음의 승리이거든요.
모세는 율법을 가지고 왔지만 "하나님의 독생자는 은혜 위의 은혜러라" 믿느냐? 은혜 위의 은혜러라를 어떻게 믿습니까? 눈에 무엇이 보여야지. 아니야 그냥 용서해주신 은혜야. 아니 용서하시는 것을 어떻게 믿나? 교회를 부흥시켜준다든지 무슨 증거를 보여 줘야지. 그러니깐 믿음이 없는 거죠. 그러니깐. 그러니깐 구원을 받지 못하죠.
♬돈으로도 못가요 하늘나라. 얼굴 잘생겨도 못 가요 하늘나라. 열심으로도 못 가요 하늘나라♬
무엇으로 간다고 했습니까? 하늘나라는 믿음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그 믿음이 돈이라는 증거도 아니고 세상적인 요소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냥 소금언약이다 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살아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언약이 살아있는 겁니다. "목사님! 글쎄 목사님 이야기는 납득은 되는데 그걸 아무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믿는다는 말입니까 그래도 뭐가 있어야지 오물 조물 뭐가 나올게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주님을 따라 다니다가 결국 다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깐 요한복음 10장에서 중대한 선포를 하십니다. 모두다 떠나라 그렇지만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를 알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양은 목자 음성만 들으면 족한 거예요.
더 이상 그 무엇이 필요 없는 거예요. 양에게는 목자만 있으면 전부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받는다는 것은 전부를 모두 받은 겁니다. 주님 주실 것을 다 받은 것이 십자가를 받는 거예요. 십자가 안에 주님의 영생이 있고 생명이 있고 십자가를 받는 것은 십자가 말고 다른 것을 받아야 되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와 더불어서 모든 것을 받은 거예요.
인간들이 주님을 사랑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주님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알고 계십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얼마나 귀하게 보시는지 우리도 똑같은 마음으로서 우리 예수님을 귀하게 볼 줄 아는 눈이 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주님 빙자해서 자기 챙길 거만 챙기고 있다 이 말입니다. 내가 예수 믿고 무엇을 얻었지? 계산 한번 해보자고 하면서 자기 챙긴 것 가지고 기쁨을 얻으려고 하고 있으니 이걸 어떻게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귀한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 내어 주었으면 자기 아들 내어준 아픈 심정을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죽일 때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겠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갖다 바치라고 하신 말씀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아들 그 독생자를 바칠 때에 그 심정을 헤아려 보라는 말이죠. 그게 믿음이잖아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 버릴 때의 그 심정과 같은 맥락의 심정을 가질 때 우리는 아들의 중요함, 대신 희생물의 중요함, 소금언약의 중요함, 이 땅에 아무 것도 없이 그저 주러 오신 예수님의 희생의 음식, 영생의 살과 영생의 피가 얼마나 귀한 줄 알게 되잖아요.
그게 바로 믿음이고 그걸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것은 혈육으로 난 것도 아니고 육으로 난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로만 난 자 만이 여호와 전쟁에서 복음으로 승리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소금언약 안에서 승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마지막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주님께서 의미 심장한 말씀을 남기시고 이 땅을 떠나셨습니다. 정말 믿음이라는 것이 내 챙길 것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버리시고 사랑하신 그 사랑에 우리가 뛰어 드는 것이 곧 잠기는 것이고 그 사랑 속에 사는 것 인줄 압니다. 나를 사랑하지 말고 주님 사랑에 정신없도록 저희들을 주님 앞에 늘 매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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