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교만과 겸손 (역대하 12: 1- 8)
4. 교만과 겸손 (역대하 12:1-8) 르호보암이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하매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 저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르호보암왕 오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오니 저에게 병거가 일천 이백승이요 마병이 육만이며 애굽에서 좇아 나온 무리 곧 훕과 숩과 구스 사람이 불가승수라 시삭이 유다의 견고한 성읍을 취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니때에 유다 방백들이 시삭을 인하여 예루살렘에 모였는지라 선지자 스마야가 르호보암과 방백들에게 나아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붙였노라 하셨다 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방백들과 왕이 스스로 겸비하여 가로되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하매 여호와께서 저희의 스스로 겸비함을 보신지라 여호와의 말씀이 스마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저희가 스스로 겸비하였으니 내가 멸하지 아니하고 대강 구원하여 나의 노를 시삭의 손으로 예루살렘에 쏟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저희가 시삭의 종이 되어 나를 섬기는 것과 열국을 섬기는 것이 어떠한지 알게 되리라 하셨더라 (역대하 12:1-8)
『하나님께서 옛날에 일어났던 일이지만 지금도 똑같은 법칙과 원리로 우리에게 적용시키시는 말씀을 대하게 됩니다. 이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 가를 알 수 있도록 저희들의 눈이 열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오늘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은 사람만 있고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그러한 사상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도 이러한 사상에 동감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현실이 그러니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하나님 없이 인간들만 우글거리는 그런 세상으로 생각하고 교인들도 제 멋대로 살아 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걸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오늘 8절에 보면 "시삭의 종이 되어"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 시삭은 그 당시 권력자입니다. 어떤 사람보다 힘으로써 더 남을 지배하는 사람입니다. 곧, 사람입니다. 쉽게 말해,서 네가 사람의 종이 되는 것과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 어느 것이 힘이 드는지 내가 본때를 보이겠다 라는 것이 오늘 12장 8절의 결말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으레 사람의 종으로만 한평생 살 것을 맹세하겠지요. 그런데 여러분 만약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들이 사람의 종 되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사람의 종이 되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의 종이 되기 위해서 이 땅에 인생을 출발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두려워하고 사람의 종이 되겠습니까? 세상이 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가 인정하지만 그러나 세상의 지옥 갈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사람의 종이 된다고 해서 덩달아 하나님 믿는다 하는 우리들이 하나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종이 되기는커녕 자진해서 사람 종이 될 필요는 뭐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소위 교회라는 이름으로 교인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사람의 종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종이 뭔지 또는 하나님의 종이 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한번이라도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종이다"라는 그런 느낌과 감정이 있었더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그 고마움과 안도감과 당당함을 쉽게 버리지 않을 거예요. 하나님의 종 되는 것이 사람의 종 되는 것보다 얼마나 좋고 영광스러우며 우리를 강하게 하는지 그 좋은 것만 생각하더라도 우리는 쉽게 사람의 종으로 전락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가 그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또는 종으로써 자신의 임무와 사명을 기쁘고 고맙게 감당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세상에 나가 어떤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기죽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와 많은 사도들이 갔던 길이 그들의 생활환경이 좋았던 건 아닙니다만, 그들은 거기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을 즐겁고 고맙게 여기면서 받아 들였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숨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위의 은혜다"라고 자랑스럽게 말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니 이것은 하나님의 복이다" 이렇게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명은 맡아놓고 무엇 때문인지 그만 엉뚱하게 사람의 종, 옛날 빠져 나왔던 애굽나라의 시삭이라는 권력가의 종이 되었는지, 어떻게 그런 실수와 그런 잘못을 저지르는지 그 이유를 본문을 통해서 알아봐야 되겠습니다. 그 이유는 1절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거든요. "르호보암이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하매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아! 이상하지요 나라가 강하고 견고한 것이 누구 덕분입니까? 여호와 덕분입니다. 세력이 강한 것이 모두 하나님 덕이잖아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강하게 만들어주고 힘있게 만들어주면 우리의 상식으로는 어떻습니까? 오히려 하나님을 더 우대할 것 같지요? 더 섬겨야 되는 것이 정상이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율법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린다는 것이 여러분 너무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을 버린다는 것은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지도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거들떠보지 않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버렸다 고 하늘나라에서는 판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고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는 그 마음에 관심이 없고 하나님의 보내신 그 편지를 뜯어 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버린 것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계시를 버린 것은 곧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버린 거예요. 그런데 왜 이 르호보암이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했는데 하나님을 버립니까? 그 이유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뭐냐하면 이 나라는 내 것이라는 거예요 내 것 말입니다. 우리가 소위 평소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언제 하나님과 멀어지던가요?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백발백중 맞는 이야기는 이겁니다. 뭐 하나 생기면 그것이 내 것 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멀리하게 됩니다. 목사가 목사 되고 난 뒤에 이 교회는 내 것이다. 목사직은 내가 딴 것이다 이럴 때, 그 목사는 하나님을 포기하는 것이 되는 겁니다. 이게 내 것이라는 말이죠. 여러분들의 가정에서 또는 사업장에서 일하시면서 저건 꼭 내 꺼야.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저걸 빼앗기게 되면 하나님을 싫어 할거야. 이런 생각이 감히 들 때,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것이고 하나님을 버린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이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면 누구의 것입니까? 우리의 모든 것은 주의 것이고 고린도전서 6장에 보니까, 산 우리 몸 자체도 값 주고 팔려간, 주님 앞에 팔려서 주님의 종이 된 신세인데, 어떻게 내가 내 것이 되는 겁니까? 내 것도 내 것이 아니고 주님 것인데 어떻게 내 것이 따로 장만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보면 '아! 내 것이 하나도 없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말씀에 우리는 몽땅 하나님 것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우리가 미리 본 적이 있고 들은 적이 있기에, 우리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의도적으로 성경을 안 보잖아요. 에이 봐 봤자 뭐, 또 그 소리야? "너는 내 거야" 라고 그럴 꺼 뭐. 기가 푹 죽어 가지고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라는 생각이 든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늘 우리가 듣던 잔소리가 되니까 우리가 안 들으려고 하잖아요. 안 듣고 다른 현실을 계획하잖아요. 그저 '이 가정과 이 모든 것은 내 꺼' 라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목사가 되고 난 뒤에 가장 큰 시험이 뭐냐하면, '목사직이 내 꺼 라는 것, 나는 목사' 라는 그 사실, 이것이 하나님과 멀어지기에 가장 큰 원인이 됩니다. 목사가 돈이 되거든요. 돈이 되는 직업이거든요. 교회가 내 꺼다. 이것도 마찬가지고요. 또 성경에 보면 "살든지 죽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너는 너를 구원해 낸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살라" 했습니다. 이게 신약 로마서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구약에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출애굽기에도 나오는 이야기예요. "이스라엘아 너는 내 자녀다, 이스라엘아 너는 내 땅에서 나의 품꾼이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 말입니다. 주인은 나다. 나에게 십일조를 바쳐라 그렇게 되는 겁니다. 십일조의 관계는 그런 거예요. 구약에서는 내 주인은 따로 있다고 해서 바치는 것이 십일조예요. 신약에는 몽땅 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설교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오늘날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이유는 교회 바깥에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이 없다는 거예요. 또 있은 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는 식의 풍조가 만연해 있는 것입니다. 마치 늙은 할아버지 모양 하나님을 연상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존재한 들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하는 식입니다. 그래서 젊은 우리가 모든 일을 처리해야지, 늙은 할아버지 같은 사람한테 기대어서 언제 일이 성사가 될 것이냐는 말이죠. 우리는 교회에 있는 시간보다 교회 밖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그러한 사상과 그러한 현실이 우리의 온 몸으로 스며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고개 끄덕이면서 그런가? 그럴 수 있겠네 하면서, 탁류에 휩쓸리듯이 같이 휩쓸려 그들의 말에 동의 한 적이 많지 않습니까 자주 반복되지 않습니까? 이제 뭔가 나라가 조금 강해지니깐 "야! 나 봐라 세지. 야! 이거 얼마나 기분 좋으냐, 나는 내 나라만 잘되면 하나님만 생각하면 나는 시큰둥해져. 모든 일이 만사형통 한데 하나님 뭐 하러 찾으려고."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때의 왕이나. 오늘날 우리나 어떻게 이렇게 똑 같은지, 자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 쪽에서 이일을 해결을 해야 될텐데,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한번 봅시다. 2절에 보면, 저희가 여호와께 범죄 하였으므로 르호보암 왕 오년에 애굽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오니, 3절에, 저희에게 병거가 일천이백 승이요 마병이 육만이며 애굽에서 쫓아나온 무리 곧 훕과 숩과 구스 사람이 불가승수라 셀 수도 없을 만큼 많다. 거기다가 5절 끝에 보면, 선지자 스마야가 르호보암과 방백들에게 나아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붙였노라. 자, 이 시삭이라는 사람은 제가 좀 전에 이야기했죠. 애굽의 왕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옛날 애굽에서 구원받아 나왔던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도로 이 이스라엘을 애굽사람 손에 이렇게 다시 묶이도록 조치를 하신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가 어디 있느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것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니깐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자녀니까 우리의 마음가짐이나 행동 하나 하나가 모두 하나님 앞에 합당하겠지 착각을 하는데 하나님의 원수가 여러분 별 겁니까? 하나님말씀 버리면 원수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스라엘백성이 지금 착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 저 원수하고 우리는 다르지요.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하나님을 버려놓고, 말씀을 버려놓고 하는 말이 "맨 날 우리는 저 애굽사람하고 다르지, 우리는 자녀고 저쪽은 마귀의 종인데" 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정작 하나님의 자녀 됨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라고 천 번을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어디서부터 구원받았는가를 마음속에 늘 품고 다니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 덕으로 자녀 되었으며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되기 전에는 어떠한 존재였던가를 늘 마음속에 깨닫고 있는 사람. 하나님의 원수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예요.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이 저희는 "하나님 편입니다"하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는 엉뚱하게 시삭을 들어 하나님의 종으로 사용하여 도리어 "시삭이 지금은 하나님 편에서 일하는 일꾼이다"고 하고 우리를 되레 공격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때 하나님의 진짜 자녀 된 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본문에 보면, 겸손하게 "하나님 우리는 진짜 죄가 많고 진짜 하나님의 모든 행동하심은 의롭습니다. 나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만 의롭고 나는 하나님 앞에 죄인에 불과하군요"라고 깨닫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다시 하나님의 자녀 됨을 확인시켜 주는 겁니다. 다시 자녀 만들어 주는 게 아니고.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써 그래 그것이 내가 원했던 마음가짐이었잖아. 내가 이스라엘에게 찾고자 했던 그 마음가짐이 바로 "나는 죄인이며 의로운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주의 의로 말미암아 저를 구원하십니다"라는 이런 겸비한 마음을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겸비한 마음을 조성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환경들을 동원시켜 주십니다. 오늘 본문 5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붙였노라 이렇게 이야기하니깐 7절에서 저희가 스스로 겸비하였으니 내가 멸하지 아니하고 대강 구원하였노라. 그러니깐 여러분 한번 구원받았다고 하나님 필요 없는 게 아닙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셔야되고, 내일도 하나님께서는 어제처럼 구원해 주셔야 되는 겁니다. "아이고 하나님! 저 이제 잘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 필요 없습니다"가 아닙니다 여러분, "아이고 하나님 재산이 한 150억 되어서 이제 교회 안 나가도 통장에 있는 이 돈만으로도 충분히 삽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그것도 여러분 것이 아니고 하나님 것입니다. 항상 겸비한 마음을 유지해야 됩니다. 돈 있는 사람은 있는 돈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시련을 당하고, 돈 없는 사람은 없는 돈 때문에 또 남한테 시련을 당하는 거예요.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것 하나밖에 없습니다. 나에게 어떤 변화가 온다 할지라도 주님의 십자가는 벌써 일어났다는 것. 이것 밖에 없습니다. 나에게 어떤 변화. 내가 돈 천억을 얻는 변화라든지, 아니면 내가 굶어 죽는 변화가 온다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 자녀 되는 것은 내가 돈 가지고 있고 없고 상관없이 주님의 터져 버린 십자가 사건! 그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러한 겸비한 마음을 유지해 달라는 말입니다. "목사님 그 참 어려운 말씀입니다"라고 하겠지요.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어렵고 저도 어려운 줄 알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가 교만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를 확 꺾어 놓으시는 예상치도 못한 고민거리를 가져다 주시네요. 예상치도 못한 환경으로 말입니다. 우리가 느긋하게 하나님도 안 믿고 하나님 필요 없이 "내 힘으로 살 거야"라고 휘파람 부는 그 순간에 하나님은 또 다른 환경을 주셔서 "아! 내 것 이라는 것은 없구나. 잘되든, 못되든 모두가 하나님 것이구나"라고 다시 한번 우리의 마음을 낮추게 하시고 더 낮추게 하시는 이것은 바로 하나님 자녀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입니다. 끝으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러면 매일 기가 푹 죽어 살아야 되느냐, 그걸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이토록 하나님의 특별 관리조치의 대상이 되어 하나님께서 자녀라고 인정해 주시고 특별히 마음 낮추게 해 주신다는 이 자체가 조금전 기도할 때 내용처럼 시드니에서 금메달 10개를 따는 것과도 비교가 안됩니다. 금메달 10개를 딴다고 해서 하나님 아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매를 맞든 안 맞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런 식으로라도 남이 모르는 하나님을 알았다는 이 자체를 우리가 남에게 자랑스럽게 증거하면서, 그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몽땅 씻었기 때문에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주님만 자랑한다. 이렇게 된 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되었다는 것, 이것을 우리는 고맙게 여기고 진짜 남에게 자랑할 만한 거리가 안되겠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다는 것을 이젠 우리가 알았습니다. 이 사명보다도 우리는 내 욕심 챙기기에 분주하다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명 감당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시련과 어려운 환경을 주신 줄로 압니다. 형편이 어떻게 되었든 하나님을 알았다는 그 사실 자체가 축복이고 남이 모르는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우리는 남에게 알릴 수 있는 사명자가 되었다는 것을 감사히 여길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