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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 백성들의 배반 (역대하 10:16-19)성경역대하

1. 백성들의 배반 (역대하 10:16-19)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60)

1. 백성들의 배반 (역대하 10:16-19)
2000년 9월 6일, 수요일, 이근호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 이새의 아들에게서 업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너희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온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르호보암이 그 왕이 되었더라 르호보암 왕이 역군의 감독 하도람을 보내었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저를 돌로 쳐 죽인지라 르호보암 왕이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더라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역대하 10:16-19)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축복과 저주의 기준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임의로 결정지은 기준이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이 결정 내린 기준에 대해서 우리가 반감을 갖는다든지 불만을 터뜨린다든지 그것을 저주한다든지 외면해 버릴 때, 그때 그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는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일을 진행시키십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우리 예수님의 제자 12명 가운데서 가롯유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걸로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9절에 봐도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까지 이르니라.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가롯유다 입장에서 봅시다. 가롯유다 입장이 되어 보면 결코 예수님을 배신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도리어 가롯유다 본인에 대해서 배신한 게 되는 겁니다.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따를 때부터 자기 기준을 자기가 확정해 놓았습니다. 자기의 마음이 곧 자기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의인이냐, 내가 악인이냐, 내가 하늘의 복을 받겠느냐, 저주를 받겠느냐, 라는 모든 기준은 자기 마음에 이미 확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롯유다 입장에서 볼 때에 내가 생각했던, 내가 꿈꾸던 그 예수님. 그 예수님의 나라 천국이 실지로 예수님이 이야기한 것하고 맞지를 않았습니다. 처음에 예수님이 약속한 것을 추려보면 가롯유다가 은근히 예수님이 주시는 거기에 대해서 기대를 했습니다. 기대를 잔뜩 했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예수님이 아무 맥도 없이 초라하게 그냥 홀로 로마 군인들에게 잡히고 마니까 그 동안 친척과 집을 버리고 3년 동안 충성을 다하여 예수님을 따랐던 가롯유다 입장에는 무엇을 건지겠습니까? 건질게 뭐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 달릴 때 가롯유다 혼자만 버린 게 아니라 12제자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가롯유다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고 베드로부터 12제자 모두가 예수님에 대해서 나중에 가서는 납득을 할 수 없었고 예수님과 조용히 헤어지기로 다같이 마음을 먹은 겁니다. 심지어 베드로 같은 분은 예수님 잡힐 때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면서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 부인 할 때의 베드로의 심정과 가롯유다와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고기를 잡으러 갔을 때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3년 동안 따라 다녔는데 그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뭐가 있었습니까? 권력을 가졌습니까? 아니면 재산을 모았습니까? 사회적인 명예를 얻었습니까? 인기를 누렸습니까? 좋은 취직 자리를 허락 받았습니까? 예수 따라 다니고 얻은 것이 뭐가 있었습니까? 정말 아무 것도 얻은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예수를 따른다고 하니까 걱정이 됩니다. 무엇이 얻을 것이 있어서 교회에 나오는지...

예수님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목숨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좁은 길로 가는 것 그것뿐입니다. 주님 가신 그 길이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기쁨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내가 있는 곳에 너도 있게 하리라." 이 축복 외에 다른 축복은 기대하지 맙시다.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이 안 갈려고 발버둥치는 우리를 끌고 가시는 겁니다. 그것도 가롯유다가 아니라 11제자에겐 특별히 선택해.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워서" 그들이 가기 싫어하는 좁은 길. 그들이 무서워하는 죽음의 길. 그들이 황당해 하는 막다른 골목. 그 막다른 골목도 주께서는 이게 생명의 길이라고 인도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라가 둘로 쪼개지는데 이 다윗 집안의 중심으로 세워지는 나라가 유다라고 합니다. 다윗의 지파 이름을 따서 유다라고 합니다. 그 외 나머지 11지파가 뭉쳐서 된 북쪽 나라를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라 하면 야곱 아닙니까? 이스라엘이라 하면 12지파가 한나라를 만든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오고 유다 지파라면 유다 한 지파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라는 느낌이 들지요. 만약에 우리가 예를 들어 유다지파가 아니고 르우벤 지파나 또는 시므온 지파라고 생각해 봅시다. 그때 유다지파가 우리만이 축복의 계통이다.

이렇게 이야기했을 때 우리가 얼마나 성질 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할 때는 12지파가 의논하고 협력해서 마음 맞춰 좋은 나라 만들려고 했는데, 뭐 다윗이 왕이라고 해서 유다 나라만 하나님의 택한 나라고 나머지는 아니라고? 우리가 언제 유다 가문하고 볼일 볼일이 있나 우리끼리 나라 만들면 될 거 아니야. 우리도 이스라엘 다같 은 자손이다 하고 삐쳐서 따로 나라 만든다고 할 때, 누구나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걸 가지고 오늘 본문에는 배반했다는 용어를 썼습니다. 듣는 이스라엘은 기분이 나쁘겠지요. 이렇게 성경에 나온 것은 누구 입장에서 봐서 그러냐 하면 유다 입장 다윗집안 입장에서 볼 때에 자기 유다 중심으로 뭉치지 않고 따로 떨어져 나간 게 배반으로 보이지 않지만, 유다 입장에서 볼 때는 배반이라는 말입니다.

또 우리가 본문을 보면서 다시 한번 우리가 뭘 생각해야 하면, 구원받는 사람과 구원받지 않는 사람의 어떤 기능의 외면적 차이는 별로 없습니다. 같이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헌금하고, 전도도 같이 하는데,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도 열심히 예배드리고, 거룩하게 안식일을 지키고, 안식일에는 노동도 하지 않고, 주님 앞에 헌신하고 금식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외부적으로 기도를 열심히 한다든지, 사랑의 교제를 한다든지, 그런 것은 별 차이가 없는데 무엇이 문제냐 하며는 그 당시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의 마음이 예수님 마음과 일치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기도하니까 같은 성도가 아닌가? 하면 안됩니다. 당신의 마음이 지금 어디 가 있습니까? 를 묻고 있습니다.

자, 우리가 바리새인의 입장에서 봅시다. 바리새인은 누구보다 철저히 율법을 준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계명과 율례를 지키려고 애를 썼던 사람들입니다. 오죽했으면 마태복음 5장에서 "너희의 의가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같으면 인간이 해 낼 수 있는 최고 수준에 도달된 사람이 바리새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바리새인 보다 더 낫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하지요. 왜냐하면 하나님 하면 껌뻑 죽던 사람들, 여호와라면 그 앞에 엎드리고 경외하는, 그들이 바리새인들입니다. 종교적인 것에는 최고의 도사들입니다. 그 어느 누가 바리새인보다 더 법도와 율례를 지킬 사람이 있겠습니까? 심지어 바리새인 법에 이런 법이 있습니다. 남이 싫어하는 짓을 네가 남에게 하지 마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 했습니다. 그리고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라. 이것이 하나님 뜻이다. 라는 것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오셔도 눈 깜짝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야 당신 필요 없어. 우리 봐라 우리처럼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그러니까 예수님 하신 말씀이 다음입니다. "네가 오른손이 범죄 하거든 오른손을 찍어 버려라. 마음으로 음란을 품는 것도 음란죄다. 형제보고 마음속으로 욕하는 것도 살인죄다. 사람들 앞에서 외식하며 기도하는 것도 엉터리다. 금식할 때 찡그리면서 하는 것도 엉터리다. 구제할 때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예수님께서 이렇게 나오니까 인간의 능력을 총동원해서 지킨다고 자부했던 인간들이 오른손이 하는 일에 왼손이 모르게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같은 몸에 붙은 팔, 다리인데,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남의 눈에 티보다 너의 눈에 들보부터 빼라고 하신 말씀. 인간이 자기의 들보를 뺄 수 있습니까? 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들보인지를 모릅니다. 어떤 분이 전화 오기를 "목사님 저는 기복 신앙에서 벗어나 초월했습니다" 라고 하는데, 세상에 죽을 때까지 기복신앙에서 벗어날 사람이 없습니다. 기복 신앙이 인간에게 얼마나 수시로 생겨나는데, 없애고 나면 또 생겨나고. 죽을 때까지 생겨 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 설교를 마치시고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문둥병 환자를 만났습니다. 그 문둥병 환자는 어떻게 해서 깨끗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까? 산상 수훈 다 지켰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문둥병 낮게 하고 그 다음에는 중풍병자를 자신의 죄 사하는 자신의 능력으로 죄를 사하고 걸어서 나가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 인간의 힘으로 어느 성경말씀 하나 지킬 장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배반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뭐냐 하면 나의 죄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가를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이건 우리가 한평생 두고 살면서 성경 말씀을 대조 해 보면서 내 죄가 이것이었구나 라고 생각해야 될 문제를 가지고 기껏 종교적으로 자기의 행위를 가지고 죄 짓지 않았다고 나서니까 하나님의 의가 의로 보이겠습니까?

완전히 교만과 자만과 자기의 오만으로 똘똘 뭉쳐 자기 죄를 감추는 방향으로 나서는 겁니다. 의인으로서 말입니다. 의인되고 안되고의 기준은 하나님의 용서받은 자와 용서받지 못한 자의 기준이 되는 것이지, 자기의 선행의 근거에 의해서 의인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이 써먹었던 것입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거부 할 수밖에 없고, 배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기 속에 여전히 불타고 있고 들끓고 있는 이 죄 라는 것에 대해서 너무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간통과 살인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시편51편에 하는 말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죄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원하는 것은 상한심령을 원하시니까 상한심령을 바칩니다. 주의 꺾으신 피로 말미암아 이 상한 심령을 은혜로 덮어서 주여 구원하소서. 이것이 주께서 원하는 참된 제사이옵니다."라고 말입니다.

우리 교인 중에 간통죄를 짓고도 교회 나올 사람 있습니까? 부끄러워서 교회 안 나올 겁니다. 그것이 바로 뭔가 나의 행위로 내세울 만 할 때 교회 나온다는 자체가 뭐냐 하면 그 마음속에 예수님의 용서가 들어 있어야 할 자리에 아직도 바리새인 같은 자기 잘남과 자기 훌륭함과 선할 수 있는 가능성. 그것 들고 주님 앞에 자랑삼아 나왔던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배반이라는 말을 사용 할 때 열 지파 기분 나쁠 겁니다. 우리가 뭐가 잘못 되었기에 유다지파, 다윗지파만 쳐다보며 살아야 되느냐 하고 말입니다. 유다지파는 하나님이 다윗과 약속하기를 모든 죄는 다윗으로 통해서 용서가 전달된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는 기준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선한 양심이 나의 의인됨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예요. 내가 의인되는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가 따로 존재합니다. 우리가 누구를 앞장 세워야 되겠습니까? 누구를 자랑해야 됩니까? 결국 우리가 예수님을 거부하고 앞장세우지 않으면 예수를 배반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성경에는 천국과 지옥을 가름하는 기준이 나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6:22에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그 기준으로써 출발 해봅시다. 그러면 이 세상에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 크게 목회 하는 사람 얼마나 많습니까? 서로 사랑으로 교제하는 교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그것 붙들고 구원되는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은혜 받았다고 하고 사랑으로 교제한다 해도 그것 붙들고 구원되는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교회,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구원의 기준이 되지 말고, "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이미 끝나버린 사항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직 주, 예수님 만이냐 하면 주님 사랑보다는 우리가 속해 있는 그것을 사랑하는 그 순간, 우리는 주님을 배반한 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뭘 건져야 되지 않습니까? 주님 제자들은 뭘 건졌습니까? 사도바울이 예수 믿고 뭘 얻었습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믿고 재벌이 되었습니까?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야고보는 옥에 갇혀 죽었습니다. 그리고 사도요한은 밧모섬에 귀향 가서 죽었습니다. 그들이 과연 예수님을 믿고 무엇을 얻었습니까? 아름다운 교회를 얻었습니까? 그들이 얻은 것은 예수님 자신! 그걸 얻었습니다. 예수님만이 길이지, 교회가 길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영생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면, 교회란 주님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자가 교회요 형제입니다. 우리는 바리새인이 아니라 문둥병 환자요 중풍병자입니다. 교회고 형제라면 그리스도만 증거하고 그리스도만을 증거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바리새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우리 스스로가 주님을 배반하는 그런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다고 욕할게 아니라, 유다의 입장이 되어서 볼 때 충분히 납득이 되고 이해가 되는 내용인 줄 압니다. 예수 믿고 난 뒤에 무엇을 얻었으며 예수 믿고 난 뒤에 오히려 낭패 당한 가롯유다. 그러나 주님이 사랑했기에 11제자는 영생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이 온 성도에게 있기를 원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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