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희년(喜年) (레 25:8-12)
24. 희년(喜年) (레 25:8-12)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60)
레위기 강해 24 이근호
구득영 2002-05-09 11:54:07, 조회 : 255, 추천 : 0
24. 희년(喜年) (레 25:8-12)
지난 주일에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부모의 역할이란, 자기의 자식을 어떻게 잘 키우는가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가문을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를 만들기 위해서 동원된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딸을 낳았다고 섭섭해할 필요가 없고, 아들을 낳았다고 좋아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다 똑같다는 것입니다. 자기 혈통을 있는 것이 자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들이냐, 딸이냐가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녀로 다시금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는 사람의 자식이었다고 하더라도, 죽을 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정말 부모님에게 고마워하는, 그런 부모가 되어야 하고, 자식이 되어야 한다고 지난 시간에 강조를 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라는 소리를 옷이나 사주고 용돈을 줄 때 하는 것이 아니고, 정말 하나님의 자녀 됨을 부모에게 감사하는 그런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집에서 매일 돈 문제로 싸움이나 하고, T.V만 보고 세상 이야기만을 한다면, 자녀는 부모를 통해서 그런 것만 배운다면 아무리 부모가 자식에게 원하는 것을 다 해 준다고 하더라도, 부모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부모가 알고 있는 하나님을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고, 증거해야지 정말 부모의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부모에게 자녀도 순종을 해야 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아마 여러분들 가운데서, "자식을 돌보기는커녕 나 자신조차도 믿음으로 제대로 살지를 못하는데!" 라고 걱정을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 목사님, 이 세상 살아가는 것만 해도 정신이 하나도 없고, 그것만 해도 벅찬데, 이렇게 신앙 생활도 제대로 하려고 하니 너무나 힘이 들고 어렵습니다" 라는 것입니다. 소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또 밖으로 드러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 오니 목사님은 범사에 감사해야 하고, 항상 기뻐해야 한다고 강조를 하니까 말입니다. 염려하는 것은 신자의 모습이 아니라고 하니까 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교회 밖에서나 안에서나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고, 화도 마음대로 못내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답답한 것입니다.
마치 커다란 바위 덩어리에 눌려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커다란 바위 덩어리를 치워만 주면, 내가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한 번 제대로 해 볼텐데, 그러한 바람이 우리 모두에게 다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바로 유혹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믿는 자의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뭔가 막혀 있는 듯한 답답한 것을 해소하기 위해 교회에 와서는 안 됩니다. 그럴 때에는 병원에 가야 합니다. 그런 것을 해결하기 위해 신앙 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자기를 위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신앙 생활이라고 하지를 아니하고, 종교 생활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 생활은 자기를 위해서 하고, 신앙 생활은 자기말고 다른 누구를 위해서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은 누구를 믿어도 먼저 자기를 위해서 믿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제대로 믿으려고 하는데, 내 앞에 지금 뭔가 가로막혀 있으니, 그것을 좀 제거하고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려고 하는 것이 뭐가 잘못입니까?"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죽느냐, 사느냐를 다루는 영생에 관한 것인데, 아니 지금 자기가 좀 힘들고 어렵다고 그러한 것에 연연해하고 불안해한다면, 그것은 신앙 생활이 아니고 종교 생활, 혹은 취미 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취미생활이라는 것은 목숨을 거는 그런 절박한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야구나 축구 구경을 하는 것처럼, 이기면 기분이 좋지만, 져도 할 수 없는, 그런 수준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물론 스포츠에 미친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고서 죽느니, 사느니 하면서 설쳐 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스트레스를 푸는 것으로, 취미생활로 여기는 사람들은 주로 뜨거운 것을 좋아합니다. 화끈해야 하는 것입니다. 찬송을 불러도 목이 터지라고 열정적으로 불러야 하고, 박수를 쳐도 손바닥이 터지라고 치는 것입니다. 듣는 분의 입장은 전혀 생각도 아니하고 말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이러한 교회 분위기를 잘 아실 줄 압니다. 이런 분들은 찬송을 불러도 얌전하게 부르고, 기도를 해도 아주 조용하게 하는 교회에 오면, 그러한 교회는 신앙이 식었다고 말해 버립니다. 자기는 뜨거운 믿음이고, 그렇지 못하면 식어버린 믿음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뜨겁고 열정적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을 무조건 비판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마음가짐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신앙 생활을 그렇게 자기의 감정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신앙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를 푼다든지,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그러한 문제들을 풀어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자기 중심적인 신앙 생활이라는, 아니 종교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신앙 생활을 어떻게 하는고 하니, 나름대로 법칙을 세웁니다.
"하루에 성경 3장, 주일에 5장을 읽어서 일년에 한 번을 다 읽고,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 낮 예배는 꼭 나가지만, 수요일에는 시간이 있을 때에만 나가고, 십일조는 월급을 받으면 제일 먼저 떼고, 그러나 감사헌금은 이런 경우에만 한다" 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여러분, 과연 어떻습니까? 제가 말씀드린 이런 경우가 믿음이 좋아 보입니까? 정말 제대로 신앙 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까? 일년에 성경책 한 번 제대로 못 보는 나 자신보다 훨씬 좋아 보입니까?
그러나 그것은 신앙 생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름대로의 이런 식의 신앙 생활이 왜 무서운고 하니, 이런 식으로 신앙 생활을 하면, 한 5, 6년쯤 신앙 생활을 하고 나면, 나중에는 무엇만 남는고 하니, 신앙 생활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자기가 나름대로 정한 법칙만 남는다는 것입니다.
알맹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의 기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냥 다람쥐 체 바퀴 돌 듯 의미 없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이 없고 즐거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주일이 되면 아침에 밥을 먹고, 11시에 시간을 맞추어 교회에 가고, 수요일이나 금요일이 되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하면서, 예배시간에 맞추기가 바쁘다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이 기다려진다든지, 말씀이 그리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한 시간과 법칙을 누가 정한 것입니까? 성경에 그런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매일 매일 그냥 모여서, 모이지 말라고 해도 서로 보고 싶고 말씀이 그리우니까 모여서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물론 요즘처럼 복잡하고 바쁜 세상에서 과거 초대교회처럼 예배를 드릴 수는 없지만, 그러나 우리가 너무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것에 얽매여서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틀에 꽉 맞추어져서 하는 것이 아니고, 자유로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린, 뜨거워야 한다든지, 어떤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 이런 두 가지의 경우가 왜 문제가 됩니까? 그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신앙 생활을 하게 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처음에 만드신 처음의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하는, 순종하는 인간을 만드시는 것이 그 목적인데, 정작 신앙 생활을 하는 자들은 그러한데 관심이 없으니까, 어떻게 그것을 올바른 신앙이라고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 시간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고, 다음 주에도 살아 있으면(?) 또 이런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올 때는 본래의 인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래의 인간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처음 만든 인간,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는 인간, 바로 그러한 모습을 간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나의 창조주시고, 나는 당신의 피조물입니다. 저는 이제 하나님께서 시키는 데로 살려고 합니다.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라는 것 말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제대로 된 신앙 생활을 하는 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새 나라에 적합한 새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러한 마음으로 본문의 말씀을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희년에 관한 것인데, 9, 10절을 보겠습니다.
(레 25:9)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며
(레 25:10) 제 오십 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이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을 하면, "나팔을 불어라"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팔을 아십니까? '빵빠라!' 라는 나팔 말입니다. 그러면 왜 나팔을 붑니까? 그것은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무지무지하게 기쁘다는 것입니다.
큰 일이 났다고 119에서 울리는, 그러한 사이렌이 아니고, 이것은 좋지 아니한 큰일이 아니고, 너무 너무 기쁘기에 나팔을 불어라는 것입니다. 잔치를 할 때 동네에서 북을 치고, 장구 치고, 꽹과리를 울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그렇게도 기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10억 짜리 복권이라도 당첨이 되었습니까? '왜 이렇게 기쁘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없는 사람에게 복이 굴러오는 때가 바로 이 때라는 것입니다. '희년' 이라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돈이 없는 사람들이 한몫잡는 때가 바로 이 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년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기쁠 "희(喜)"자를 써서, '기쁨의 해' 라고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을 드리면, 이 세상에서도 희년이라고 하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고희를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이 때에는 어떤 '희' 자를 쓰는고 하니, 기쁠 '희' 자가 아니고, 드물 "희(稀)"를 사용합니다. 70세까지 사는 것이 참 드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치를 여는 것입니다. 그것이 고희(古稀)인 것입니다.
희년이 이렇게 기쁜 것은, 무슨 뜻인고 하니, 이 세상에서 살다가 보면 능력이 있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벌고 없는 사람은 적게 버는 것 아닙니까? 세상 원래 그런 것입니다. 요즘 같은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돈 많은 사람은 많게 살고, 돈이 없는 사람은 없이 사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희년이 되면, 돈이 많고, 집이 여러 채 있고, 땅이 많은 사람들은 좀 내어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없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라는 것입니다. 많이 가진 사람들은 종들을 풀어주고, 땅을 다 토해 내어서 종들에게 땅 주고, 집 주고 해서 해방을 시켜 주어라는 것입니다.
"가진 자는 내어놓고, 없는 사람은 공짜로 모두 받아라!" 이것이 바로 "희년" 이라는 것입니다. 참 희한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당연합니까? 그렇게 해서 온 나라가 잔치를 벌이라는 것입니다. 나팔을 불면서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상상이나 됩니까? 실감이 나느냐는 것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너무 너무 기뻐서 춤을 덩실덩실 출 것이고, 아마도 돈이 아주 많은 사람은 망했다고 땅을 치면서 통곡을 할 것입니다. 그냥 공짜로 나누어주려고 하니까 얼마나 아깝겠습니까? 아마 이래서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편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꼭 그렇지도 않은 것입니다. 성경을 그냥 껍데기만 보니 그런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는고 하니, 천국이라고 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를 이 땅에서나마 희미하게 보여주고,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맛만을 보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야 이렇게 없는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어도, 또 시간이 지나면 돈은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모이지 않겠습니까? 없는 사람은 또 없어서 힘이 들고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희년은 자주 오는 것이 아닙니다. 몇 년마다 옵니까? 50년마다 돌아오는 것입니다. 7년을 7번해서, 7x7=49, 그렇게 해서 49년 다음인 50년이 되는 해가 "희년" 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8절에 나와 있습니다.
(레 25:8)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년이 일곱번인즉 안식년 일곱번 동안 곧 사십 구년이라
50년이 주기가 되니, 보통 한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한 번 정도 제대로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한 번은 어릴 때나 나이가 많아서 맞이하니 그 의미를 잘 모르고, 혜택을 받지 못하고 말입니다.
50년마다 이렇게 희년을 맞이하는 것은, "네가 재산 많나? 나 좀 나눠도!" 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천국이 어떤 나라인지 보여주고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습니까? 얼마나 자상한지 모릅니다. 얼마나 신경을 많이 쓰시는지 모릅니다. 물론 잔소리도 많이 하십니다만,
하늘나라를 사람들이 너무나 모르니까, 가르쳐 주시고 또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고 난 다음부터는 천국이라고 하면 자꾸만 반대로 생각을 하니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아니고 인간의 나라로 오해를 해서 말입니다.
인간들이 마음대로 먹고사는, 인간 천국으로 오해를 하니까, 그것이 아니라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가르쳐 주고 또 가르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시는, 하나님이 주인 되는, 하나님께서 왕이 되셔서 다스리는 나라라고 말입니다.
희년이 보여주는 천국의 모습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나라가 아니라, 공평하다는 것입니다. 능력이 많다 해서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고, 못 배웠다고 해서 월급도 적고 배고프게 사는 것이 아니고, 자기 먹을 만큼 공평하게 가지는 나라가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런 성경의 천국을 공산주의적 유토피아로 착각을 해서, 성경을 통해서 공산주의자들이 된 사람들도 많습니다. 북한의 저런 엉터리 공산주의말고 말입니다. 사실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도 아닙니다. 사람이 왕이 되고 신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하는, 일인 독재의 전제주의 국가에 불과합니다. 물론 따지고 보면 결국은 세상 나라가 다 그러합니다만.
평소에 인간들이 생각하는 천국은, 자기들이 마음대로 하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가질 수가 있는 나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한 나라를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바로 지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희년을 통해서 천국이 평소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러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욕심을 버리는 나라가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나라, 아무 것도 없으면서도 자기의 것인 것처럼 떳떳하게 받아먹을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가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레 25:11) 그 오십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50년 째 되는 그 해의 땅은 농사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땅을 그대로 쉬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아무 손도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년 동안 무작정 놀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그 전에 미리 다 채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걱정하지를 말고 희년에 땅도 쉬게 하고, 종들도 풀어 주고, 모두가 다 푹 쉬게 하라는 것입니다.
원래 안식년이라고 땅을 놀게 하는 것은 7년에 한 번씩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안식년을 7번이나 더하고, 49년째가 되고 난 다음에는 이러한 모든 안식년을 총정리(?)하는 것으로, 정말로 완전히 안식하라는 것입니다. 물건도 다 골고루 나누어 갖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다리미로 다리듯이, 짝 펴서 다 똑같이 만들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습니까? 생각만 해도 짜릿하지 않습니까? 다같이 가진 자도 없고, 못 가진 자도 없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동안 많이 가지고 있던 부자들도 불평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그 동안 잘 살았으니 고맙게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러한 설교는 그룹 회장들이나 사장들이 많이 나오는 그런 돈 많은 교회에서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55절의 말씀을 보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레 25:55) 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품군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나의 품군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고, 우리는 품군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천국은 바로 그런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책임져 주시는 나라, 하나님께서 시키는 데로 그 분만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나라가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이러한 천국이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잠시 그러한 "희년" 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보여준 것이지, 이 땅에 그런 나라를 이루시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희년을 지키지도 않고, 사실 지킬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이 되셔서 다스리는 하늘나라, 바로 그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천국백성의 살아가는 모습인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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