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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마 9:14-17 (새 술과 새 부대)우리교회마태복음

Re..마 9:14-17 (새 술과 새 부대)

이름 : 이근호(IP:)

새 술과 새 부대
2003년 7월 6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9:14-17

9: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9:15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9: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예수님은 지금 하늘에 엄연히 계십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점은, 신자는 예수님의 살아계심은 대단히 중대한 일로 본다는데 있습니다. 불신자는 예수님을 한낱 지나간 전 시대의 인물로 취급합니다.

신자에게 있어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그냥 계신 것이 아니라 이에 이 인간 세상을 예수님 자신의 세상으로 뒤바꾸는 작업을 감행하고 있음을 즐겁게 대환영하고 있다는 겁니다. 앞으로 이 세상은 온통 예수님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곧 우리가 흔히 심각하다고 여기는 모든 일상적인 일은 사실 전혀 심각하지도 않는 일일 뿐이라는 겁니다. 중요하지도 않고 별 볼일도 없는 이 세상 일에 우리들의 마음은 너무나도 혹사당하고 있습니다.

교회란 우리 마음의 아픔을 치유하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원을 만족하는 곳이 교회가 아닙니다. 그런 목적으로 교회 나오시면 안됩니다. 교회란 어떤 곳입니까? 제가 한 예를 들겠습니다.

유명한 가수 조용필이라는 가수가 있다고 칩시다. 이 가수를 환대하는 '조용필 팬클럽'이 있다고 칩시다. 하루는 이 팬클럽에서 '조용필'을 초청하는 행사를 벌렸습니다. 물론 수 만명의 팬들이 모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행사의 주인공이 조용필이라는 그 한 사람이 빠지만 그 모임의 의의가 없습니다. 수 만명 군중이나 구경하려고 그들이 모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란, 교회 자체를 운영하거나 경영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여서는 아니됩니다.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움집했으며 그들이 무슨 옷을 입고 어떻게 사는 지를 구경하기 위해서 모여서도 아니됩니다. 오직 예수님만 있다면, 설사 혼자 만나더라도 쓸쓸할 게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신나지요.

바로 이러한 기분을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신랑이 나타난 혼인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신랑만 있으면 그 혼인집.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혼인집에서는 신랑이 관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쁨은 마치 새 술를 새 부대에 담길 때만 가능합니다.

사람은 어려서부터 주위로부터 기대감을 한껏 받고 성장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체면과 위신은 주위 식구들의 기대에 얼마나 부응하느냐에 달리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유대 가족 같으면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동시에 그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자식이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잔뜩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유대인들이 열심히 금식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인간 세상을 자기 세상으로 완전히 뒤바꾸고자 일을 벌리시는 예수님의 생각은 다르십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생각을 '옛 부대'에 속하는 것을 보십니다. 새 술은 절대로 옛 부대에 담겨서는 아니되는 겁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겨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모든 일에는 반드시 '옛 부대 삭제 기능'을 작동하시게 됩니다. 과거에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까? 이것도 예수님에게는 삭제입니다. 과거에 유교적인 인식 속에서 살아오셨습니까? 이것도 예수님 보시기에 삭제 대상입니다. 마치 컴퓨터 워드 작업에서 글자 삭제 하듯이 예수님도 기억치 않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신 것입니다. 새 부대를 생산하시려는 겁니다. 고난이라는 이유가 있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듯이 긍휼하심과 사랑도 무슨 이유가 있어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긍휼하심으로 긍휼이 우리에게 도착되는 법입니다.

이 긍휼을 내리시는 작업과 반드시 동반되는 것이 우리의 모든 것을 삭제하시는 기능입니다. 이것이 '새 부대' 만들기 작전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점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유대인들은 금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금식에 대해서는 이미 구약 성경에 곳곳에 그 가치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사무엘상 7:6에 나오는 미스바의 금식입니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금식의 효과에 대해서 사무엘상 7:10에 보면,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는 식으로 잘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뭔가 일이 꼬이고 자신의 죄로 인해 일이 막혔다고 여길 때는 금식으로서 기도의 응답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시편 35;13에 보면, "나는 저희가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니엘 선지자도 위기 때에 금식했고 특히 요엘 2:12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기도 응답의 멋진 원리를 그 당시 유대인들은 놓칠 리가 없습니다.

금식이란 곧 스스로 자기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자복과 더불어 마음을 괴롭게 하면 인간의 기도를 받드시 응답해 주신다고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만약에 금식까지 해가면서 죄를 자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 응답이 안되면 그 때는 어쩐 일이겠습니까?

이사야 58:3에 보면,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 응답이 안될까요? 예레미야 14:12에 보면, "그들이 금식할찌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 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찌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의 죄도 제대로 모르면서 그냥 금식한 것입니다. 이사야 58:6에 보면,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인간이란 금식의 흉내는 낼 줄 알았지 정작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는 실천해 옮길 수가 없는 그런 입장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한 가지의 방안을 제시하셨습니다.

스가랴 7:5-6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의 먹으며 마심이 전혀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유대 백성에게 금식을 지시해놓고서는 곧장 그 온전치 못한 금식 행태에 대해서 책망에 들어가십니다. 그런데 스가랴 8:19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찌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변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유대 백성에게 금식을 지시할 때는 그만한 기쁨과 의로움과 진리와 거룩을 얻고자해서 지시했는데,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의 요구에 부응해 주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스가랴 8:19에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 백성들에게는 큰 기쁨의 분위기가 주어졌습니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환경이 이처럼 확 바뀐 것일까요? 스가랴 8:3에 보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여호와 주님께서 직접 자기 백성에게 찾아들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금식을 제대로해야 얻을 수 있는 구원의 기쁨을 이 메시야로 더불어 찾아온다는 겁니다. 자.. 이러한 스가랴의 말씀을 배경으로해서 오늘 본문을 다시 봅시다.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이 와야 제대로 해석이 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아직 예수님의 영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그들 나름대로 구약의 금식의 효과에 기대를 잔뜩 걸고 열심히 금식합니다. 혹시나 자기 죄를 자복하면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이라도 있을까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순전히 자기 위주로 성경을 잘못해석한 경우입니다.

메시야 되시는 예수님이 하시는 금식, 이사야 58:6의 말씀처럼,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라는 원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금식은 오직 예수님만이 성취해 낼 수 있는 겁니다.

누가복음 4:18-19에 나오는 그 일, 즉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이라는 일은 예수님의 고유 권한입니다.

이 일이 되어야 제대로 금식이 성공리에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일을 하려 오신 겁니다. 이것이 바로 새 술을 새로 빚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기서 두 가지의 예를 들어주십니다. 하나는 혼인 잔치이고 다른 하는 '새 술'에 관한 겁니다. 둘 다 기쁨의 극치를 표현해 줍니다. 그러나 혼인 잔치의 비유는, 기쁨의 극치와 슬픔의 극치가 오직 한 요건으로서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예화입니다.

신랑이 있음으로해서 기쁨의 극치가 되고 그런데 그 기쁨의 주인공이 잃게 되면, 너무나 기뻤기에 너무나 슬퍼할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런 혼인잔치의 비유는 이미 성도된 자를 겨냥한 이야기입니다. 신랑이란, 새 신부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처리해 주시는 분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새신부입니다. 새 술이 담기는 새 부대입니다. 이런 신부의 입장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의 샘은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신랑되시는 예수님은 지금 새로운 일을 시작했습니다. 신부인 우리들도 같이 합세 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신부로 생각해 주시는 신랑되시는 예수님의 생각에 같이 동조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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