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세상 풍습 (레 20:22-24)
19. 세상 풍습 (레 20:22-24)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60)
레위기 강해 19 이근호
구득영 2002-05-09 11:49:55, 조회 : 235, 추천 : 0
19. 세상 풍습 (레 20:22-24)
사람에게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엄청나게도 싫어하는, 그런 모습이 있습니다. 사랑을 골고루 평등하게 베풀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어머니, 아버지를 다같이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대부분이 어머니를 좋아합니다. 너무너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싸움을 하면, 대부분 어머니 편을 들면서, "아버지, 미워"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할지라도 자기 어머니에게 욕을 하면 화를 내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던지 자기 엄마가 최고라는 것입니다. 얼굴이 예쁘든지 못났든지, 밥을 잘하든 못하든 상관이 없이 말입니다.
그러면 자식들이 왜 이렇게 어머니를 좋아합니까? 그것은 바로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시작을 해서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너무나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우리들 신앙의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머니의 사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을, 예수님을 좋아하고,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시키고, 안 시키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예수님을 자랑하지 아니하고서는 못 견디는, 전혀 분위기 파악도 하지 못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이 바로 신앙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요란하지도 않고, 열심히 큰일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은 어린아이가 자기 어머니를 자랑하는 것과 같이, 마냥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조용하고 평안합니다. 시끄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속에서 즐거워하듯이, 신앙인은 기뻐하고 마냥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냥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과는 상관없이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비록 힘들고 어렵게 살아도, 그런 것에 연연해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으로 인하여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같이 교회에 다니면서 이러한 질문을 할 수가 있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어도 당신처럼 그렇게 마음이 기쁘고 즐겁지 않는데, 도대체 당신은 어떤 신앙생활을 하기에 그렇게 싱글벙글합니까?" 라고 말입니다. 어떻게 궁금하지 아니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러한 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그런 사람에게 뭐라고 하는고 하니, "당신은 하나님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회개의 기도를 해 본적이 있습니까?" 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죄 때문에 괴로워하든 우리의 마음이, 하수가 뻥 뚫리는 것처럼, 편안해 진다는 것입니다.
그리 중요하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서, 안면 떨림이 없어진다든지, 위장병이 낫는다든지,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하고, 내 양심을 찌릿찌릿 찌르는 선인장과 같은 가시들이 내 속에서 몽땅 다 빠져나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죄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그 사랑에, 그야 말로 우리는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주택복권에 1등으로 걸려서 1억을 받는 것보다, 주님의 그 사랑이 너무 좋아서 싱글벙글 한다는 것입니다, 때로 바보처럼 보이기도 할 정도로 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를 받은 사람은, 그야 말로 새처럼 가뿐히 날아다니는 것이고,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그런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면, 주님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자랑하지 아니하고 견딜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무작정 당신이 좋아요!" 라는 노래도 있습니다만, 정말 주님의 사랑이 너무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도 죄 용서를 분명히 받았는데, 그런데 우리에게는 왜 그런 날아갈 듯한 기쁨이 없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직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나" 라고 하는 불순물이 끼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나 자신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주님의 온전한 사랑에 동참하고 있지를 못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기쁨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청군이면 청군이든지, 백군이면 백군이 되든지 해야 하는 데, 청군 편에 있으면서도 백군의 걱정을 모두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청군이 이겨도 백군을 걱정한다고 기쁨이 없고, 백군이 이겨도 청군 걱정으로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바꾸어서 말하면, 하나님 걱정도 하고 인간 걱정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과 이 세상이 둘 다 잘되면 몰라도,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걱정근심이 떠날 날이 없는 것입니다. 둘 다 잘 될 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물과 불과 같은데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말씀드리면, 교회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은혜를 받고 나왔는데, 그만 집에 오니까 자기 자식이 그만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무릎을 깬 것입니다. 그러니 그 소식을 듣고 하는 말이, "하나님이여, 내가 무엇을 잘 못했는데 이런 일이 생깁니까?"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를 한다면, 그렇다면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데, 또 집에 와서 자식 문제로 근심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지 몰라도,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면 하나님, 자식이면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하신 말씀처럼,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아서 토해버린다는 것입니다. 양다리를 걸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위해 살라는 것이지, 그러면서도 이 세상의 것도 걱정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일을 걱정한다는 것은, 그것은 아직도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자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자식과 남편과 아내를, 자기 자신까지도 하나님께 다 맡기고 살라는 것이지, 하나님을 통해서 그러한 이 세상의 염려를 해결하라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믿음이지, 맡기지 못한다면 그것은 믿는 자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나오다가, 자기 집 아이가 다친 것을 보고, "아이쿠, 내 자식", "하나님이여, 도대체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속해 있는 자의 모습이 아니라, 이 세상에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말입니다.
여러분, 사람 편에 있으면, 이 세상에 속해 있으면, 나오는 것이 한숨뿐이고 걱정거리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기쁨은 사라지는 안개와도 같습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고,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웃었다, 울었다 라고 하면서 한 평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쓸쓸하고 불쌍한 인생입니까? 돈이 많고 적고 하는 것은, 가정이 화목하고 안 하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주 유복한 가정에서 한 평생을 아무리 행복하게 지냈다고 하더라도, 예수님과 상관이 없으면 그 사람은 지옥으로 갈 수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말씀은 이렇게 드립니다만, 이 세상의 편에서 생각을 하면, 이 땅에서 행복하게 잘 살면 그것이 최고의 복이지, 천국에서 제 아무리 행복하게 잘 산다고 할지라도, 이 땅에서 죽도록 고생을 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인간을 사랑하는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합니다. 뱁새가 황새를 쫓아 갈 수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그분의 깊은 뜻을 알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놀랍게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들 스스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으니, 성령으로 깨닫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읽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문자가 아무 것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셔야 성경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발견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글자를 몰라서 성경을 못 읽는 것이 아니고, 성령을 받지 않아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이 세상에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고, 전쟁으로 피 흘리는 사람들이 있고, 심지어 부모에게 맞아서 죽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까? 왜 그런 어린 생명들이 불에 타 죽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기준해서, 인간의 편이 되어서 생각을 하니까, 모든 것이 걱정이 되고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도무지 이러한 사건들을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편이 되어서 생각을 한 번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한 번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렇게 내버려두시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죄로 물든 이 세상을 어떻게 고쳐서 천국으로 만들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눈에 보이니까 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포기하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못쓰게 된 헌차를 버리게 하고 새차를 새로 바꾸어 주시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자꾸만 헌차를 고집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왜 이 세상 사람들이 술에 온 몸을 다 맡기고, 폭력을 휘두르고, 남의 아내를 탐내고, 자기 아내를 못 살게 구는 것입니까? 그것은 자기 마음대로 안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니, 어찌 일이 해결되겠습니까? 이 세상은 이렇게 자기 고집에 사로잡힌 인간들의 고함소리와 폭력과 방탕함으로 인해 망해 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 배후에는 악마가 자리잡고 있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세상에서 새처럼 가볍게 날아다닐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인간 편에서 바라보지 아니하고, 하나님 편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하게 모든 일을 자기의 약속대로 이루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22절입니다.
(레 20:22)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여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거하게 하는 땅이 너희를 토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지금 뭔가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주고자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새로운 규례와 법도를 받기 위해서는 기존의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모든 세상적인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돈이 최고다!" 라는 것 아닙니까? 돈만 있으면 다 되니까, 세금을 포탈하든지, 남을 속이든지 돈만 열심히 벌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돈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래서 돈을 믿는 것이 아니고 말씀에 순종해서 사는 것이 유일하게 사는 길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말고 다른 길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떡으로 살려고 하지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실 이것이 얼마나 황당무개한 소리입니까? 지금 배가 고파서 굶어 쓰러져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중요한 것은 떡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옛날 우리나라에 자기는 양반이라고 가족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어도 일할 생각은커녕, 책만 읽고 앉아 있는 그런 속 터지는 선비 소리 같지는 않습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이 이런 말을 들으면, 그야 말로 시대에 맞지 않는, 굶어 죽기 좋을만한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3절 말씀입니다.
(레 20:23)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좇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노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세상의 풍속을 쫓지 말라고 하십니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조금도 아깝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천국 가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오히려 걸거적 거린다는 것입니다.
마치 상한 음식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고 먹음직스러워 보여도, 상하고 세균에 감염된 음식을 먹으면 난리가 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깝다고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마, 여름철에 이 음식으로 벌써 고생한 분들이 제법 있을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세상의 것을 조금도 아깝게 여기지를 말고, 과감하게 가차없이 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도 못할 새로운 것을 준비해 놓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다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가지고 접근을 하셔서, 우리에게 던져 주시는데, 그러면 우리가 고맙게 받으면 되는데, 문제는 우리가 빈손이 아니라, 나름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들을 가득 두 손에 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버려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을 수가 있는데, 도무지 놓지를 않으니, 놓으면 죽는 줄로만 아니까, 이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그러한 자기의 것을 손에 끝까지 쥐고 있다가 지옥에 가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택한 자에게는 성령을 통해서, 그러한 우리의 두 손을 '탁, 탁' 때리셔서 억지로라도 손에 든 것을 놓게 만들고, 하나님의 준비한 것을 우리에게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버려라", "못 버립니다" 라는 싸움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도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고집이 얼마나 센지 정말 황소고집입니다. 끝까지 자기 힘으로, 자기 것으로 뭔가를 한 번 만들어 보겠다는 것입니다. 천국도 이 땅에서 한 번 이루어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의 문명이고, 그래서 문명은 죄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문명은 선하고 악한 것이 없습니다. 문명은 그 자체가 악한 것입니다. 인간 고집의 결과이고, 죄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 문명은 항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24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레 20:24) 내가 전에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내가 그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너희에게 주어 유업을 삼게 하리라 하였노라 나는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하나님은 이 세상 문명과는 전혀 다른,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새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새 하늘과 새 땅에 누가 들어갑니까? 새로운 사람만이, 새 사람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헌 땅에 속한 사람에게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새로운 사람입니까? 우리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할 만한 아무런 것도 가지고 있지도 않지 않습니까? 우리는 전혀 새 사람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새 사람입니까? 오직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만이 새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누구를 선택했는지를 어떻게 압니까? 그것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사람은 날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오직 예수님만을 자랑하며, 자기는 죄인임을 고백하는 회개의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회개해서 새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새 사람으로 택하셨기에 그러한 삶을 감사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풍습에는 이러한 하나님께 회개하는 삶이 없습니다. 자기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그런 모습이 세상 풍습에는 없는 것입니다. 세상 풍습은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신도 자기에게 잘해 주어야 믿고 섬기는 것이지, 잘해주지 않고 간섭을 하면 가차없이 갖다 버리는 것입니다. 종교를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세상 종교가 바로 그러합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레위기 20장 2절을 보면 몰렉이라는 이방신이 나옵니다. 이 몰렉신을 섬기는 것이 세상 풍습의 하나인데, 이 몰렉신은 인간들이 열심히 섬기고 잘 대해주면, 무조건 복을 주는 그러한 신입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세상 신을 믿고 있는, 다시 말씀드려서 도무지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그러한 세상 풍습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이런 일은 도무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가증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당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속한 새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새 사람된 자로서, 날마다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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