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206b 부산강의-질의응답 녹취
20070206b 부산강의-질의응답 녹취
이름 : 한윤범(IP:211.218.2.253)
20070206b 부산강의-질의응답
방금 한 질문을 제가 요약해서 질문을 다시하면 이렇습니다. 제자들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땅 끝까지 가는 게 제자들의 본래 자기의 목적도 아니고 의도 아닙니다. 자기는 어디 이방인에게 가. 그거는 하나님 언약에 어긋나고. 이방인들은 개인데, 택한 백성만 건지러 왔는데, 왜 우리가 가야 돼. 라고 했는데 주님께서 그걸 가게 하시죠. 가게하시는 신학적인 논리가 어떻게 되느냐? 그 문제 아닙니까?
제자들은 아직 공간이라는 범주를 생각해서 이 범주 경계를 만드는 거예요. 이것 바깥에, 이것 안에. 라는 경계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경계가 뭐냐 하면, 예수님의 경계는 예수 안과 밖이라는 그런 경계에요. 예수 안과 밖이라는 경계는 인간들이 생각하는 공간적 경계하고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범주에요. 다른 차원에 속하는 범주란 말이죠. 아까 범주 했죠. 테니스공, 오렌지하는 것처럼.
같은 종류를 묶는데 제자들이 생각하는 언약이라든지, 이방인이라는 개념이라든지, 육이라는 개념, 언약 개념, 이 개념은 예수님이 생각하는 예수님의 안과 밖의 개념하고 전혀 상관없는 인간의 죄성에서 나온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아이고, 죄성에서 나왔구나. 저리 가라. 이게 아니라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에 현재 니가 놓여있는 천국이 얼마나 넓은지를 모르기 때문에 주께서는 남들 전도하는 것도 목적이지만 제자들 전도하기 위해서도 끝까지 그들로 하여금 본인이 갖고 있는 경계를 넘게 만들어버려요. 넘게 만들어서 나중에는 경계 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심지어 내 죽는 것마저도 주의 안에서는 죽는 것이 아니라 그게 쉬는 것이고 안식이고 잠자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하죠.
나 어디 가야 됩니까? 관심사 있던 사람이, 이제는 죽어도 괜찮군요. 하는 쪽으로 바뀐다니까. 어디 가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몇 년 목회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디 있어도 그리스도 안에 있고, 정죄함이 없는 거. 그래서 사도 바울이 큰 소리 칠만 하죠. 열두 제자한테 큰 소리 칠만 해요. 너희들이 예수의 안을 아느냐? 노는 가락이 달라요.
베드로가 어, 이방인이다. 같이 밥 먹으면 안돼. 라고 도망치는 그걸 대번 면박 주잖아요. 아, 당신은 어떻게 복음도 모르느냐? 복음을 아는 사람이 그런 경솔한 행동을 할 수 있느냐 말이죠. 이방인에게 성령 왔다는 말이 뭐예요? 범주 파괴에요. 기존의 범주 파괴를 깨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랬잖아요. 기존의 한국교회가 교회를 망친다고. 선입관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이래야 되고, 성전은 이래야 되고, 예배는 이렇게 드린다는 그 선입관이, 예수 안이라는 성령 안에서의 놀라운 깊은 그것을 자꾸 훼방해요. 그걸 흠집을 낸다고.
굉장히 중요한 질문을 하셨어요.
그게 뭐냐? 남은 자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서 남은 자 취급 받았잖아요. 그러면 제자들도 남은 자 취급받는데 그 남은 자는 뭐냐? 예수 안이 얼마나 좋은가를 보여주는 증거하는 남은 자 돼야 되죠.
-그 예루살렘에서 결정된 사항을 사도 바울도 다들 본 받으라 전한다고 그렇게 이야기 했잖습니까? 그 부분에서도 사실 그것이 복음이 아니잖습니까? 그것 자체가.
복음이 아니라고 할 수 없지요.
-그렇습니까?
복음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아서 믿는 게 아니고, 뭔가 외부에서 쳐들어온 것에 감당이 안 될 때 그게 복음 아닙니까? 가만있는데 이층 주저앉았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니가 때렸지. 이렇게 하거든요. 지붕이 내려앉아서 내 머릴 쳤는데 니가 잘 때 내 때렸지. 이렇게 하거든요. 우리 때리지 마. 이러거든요. 나중에 보니까 지붕이 내려앉았어요.
예수 믿는 것은 우리가 믿는 게 아니고, 성령이 오게 되면 예수를 믿게 했는데, 믿게 해놓고서는 옛날 버릇이 남아서 자, 믿고 난 뒤에 이제 뭘 해야 돼? 이렇게 하는 거예요. 나중에 보니까 아이고, 참. 그게 철딱서니 없는. 주의 능력으로 구원받았는데 우리가 우리 능력으로 그걸 유지하고 간수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들을 하고 있잖아요.
그런 와중 속에서 사도 바울이나 사도회의가 있어서 뭐, 이방인들의 목 베인 것과 이러한 것은 주의하게 하자. 그 결정한 거예요. 그 결정 오래 안 갑니다. 왜냐? 그때는 그 상황에 맞도록 뭔가 이쪽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면, 새로운 시대가 되면 이쪽 시대는 아니고, 이것도 허용된다는 새로운 원리가 또 나오기 때문에 한시적이죠. 한시적일 수밖에 없어요.
복음을 능력을 몽땅 알아서 구원받는 건 아니고, 알게 하시죠. 어디까지? 지가 팔십 살면 팔십까지만, 구십이면 구십 살까지만. 그러나 확실한 것은 주께서 새 언약으로 피로 구원한다는 이 사실은 여전히 우리 속에서 어떤 형태로든 작동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을 보면, 면류관을 받는다 말이죠. 어디서 어떻게 살았든 간에 상관없이,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 은혜입니다. 공통성을 나타내죠. 공통점.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고민한다는 것이 수상해요. 고민할 필요 없는데, 한다면 굉장히 수상합니다, 그거. 마음이 음흉하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