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싸움
21 보호자 싸움(머리 싸움)두 증거 (광야 속에서의 두 길)이스라엘의 본 자손은 "약속을 믿어 줬잖아. 따라와 줬잖아. 그러니 거기에 대한 보상을 달라' 왜 광야에서 죽이느냐, 아 괜히 따라갔넹" 즉 믿음을 자기쪽에서 수행한 것으로 본겁니다. 믿어 줬으니 거기에 대한 댓가를 달라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으로인해 떠밀림을 받은 자는 물없는 곳으로 양식 없는 곳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의도를 알게 됩니다. 아 맞구나 나는 마땅히 죽어야할 죄인이구나. 상한 심령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생각의 차이가 극과 극으로 나타납니다. 긍휼을 안 베풀어서 망한게 아니라 긍휼을 거부해서 망했습니다.이스라엘 본 자손들은 다 탈락하고, 잡족이던 이방인인 갈렙만이 상한 심령이었습니다. 선택받은 민족이 이방인을 살리는게 아니라, 죽어 마땅한 이방인이 선택받은 민족을 살립니다.마치 10명의 문둥병자 중 9명의 유대인이 고침을 받아 복음이 전수 되는게 아니라, 개같은 이방인인 사마리아인이 예수님을 따름으로 복음의 증인으로 우리에게까지 증거되는 겁니다. 주님은 인간을 통해서 일하시는게 아니라, 죄인을 사용하십니다.믿음이 두 가지 현상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철저히 가려내셔서 가짜 믿음과 참 믿음을 들추어 냅니다. 한쪽의 믿음은 생존을 위해 등장합니다. 또 한쪽의 믿음은 생명을 위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원망한 것은 그들의 믿음을 생존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 겁니다. 육이 당연히 괴로운 자리에서의 몸부림이 결론적으로 "육의 생존" 이것만은 고수 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의 긍휼을 바라본 자는 믿음을 통해 생명과 만나는 결과로 갑니다. 내가 마땅히 죽어야 할 그 자리에 주님의 낮아짐을 보게 되는 겁니다.가나안 땅을 정복하고자 12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10명은 그야말로 본대로 그대로 사실적으로 조금도 거짓없이 진실되게 말합니다. 그러나 갈렙은 사실적으로 말하는게 아니라 믿음으로 말합니다. 누가 참 말을 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참 말은 10명이 한 말이 아닐까요?그런데 왜 갈렙은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까요? 누가 도대체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결과를 알기에 쉽게 당연히 누가 거짓말이다고 말하겠지만, 만약 내 자신이 그 자리에 있다면 누구를 거짓이라고 판단 했을까요? 아마 백이면 백 갈렙을 광신도로 거짓으로 몰았을껍니다.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지금 광야에서 악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악을 모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들 아무 소용없습니다. 죄를 모르고서는 절대 못들어 갑니다. 그런데 이미 죄를 악을 자기 기준에서 다들 알고 있습니다. 선악을 알기에 자기 소견대로 옳음과 그름을 다 판단 할줄 압니다. 그래서 선택의 기로에 있습니다. 누구 말이 옳고 누구 말이 그르냐 라는 기로에 있습니다. (민 13:27-33) 『그리고 그들은 모세에게 이렇게 보고하였다. `우리가 그 곳에 가 보니 정말 기름지고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이것이 거기서 가져온 과일입니다.』『그러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강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도시들은 아주 크고 성곽으로 둘러싸인 요새였습니다. 게다가 거기에는 거인 아낙 자손까지 살고 있었습니다.』『그리고 그 땅의 남쪽 지방인 네겝에는 아말렉족이 산간 지방에는 헷족과 여부스족과 아모리족이, 지중해 연안과 요단 강변에는 가나안족이 살고 있었습니다.'』『갈렙이 모세 앞에 있는 백성들을 안심시키며 `자, 올라가서 그 땅을 점령합시다. 우리는 충분히 그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자』『`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당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강합니다.' 하고 다른 정찰대원들이 반박하였다.』『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탐지한 땅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나쁜 소문을 퍼뜨리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 땅에는 힘 센 장사들이 수두룩하고 사람들의 키가 모두 컸으며』『게다가 우리는 네피림의 후손인 거인 아낙 자손들도 거기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도 우리 자신들이 메뚜기처럼 느껴졌는데 그들의 눈에도 우리가 그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현대인의 성경)10명의 정탐꾼은 이제 우리 죽게 되었다 이를 어쩌면 좋느냐 라고 절박한 심정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능청스럽게 오히려 그런 정탐 보고에 백성의 불안한 마음을 안심시킵니다. 뭘 믿고 태연스럽게 안심 시킵니까? 오히려 점령하자 넉넉히 이긴다? 이래 말합니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누가 참이요 누가 거짓입니까? 그 말이 진짜일까요? 당연히 그 말을 들은 자들은 갈렙을 선동자 선동꾼으로 몰고, 사실에 입각한 10명의 증거로 결속된 백성들을 이간질하는 자로 여겨서, 갈렙을 죽이려 듭니다. 갈렙을 거짓 증언자로써 이단시 했습니다.(민 14:1-11) 『그러자 모든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고』『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이집트에서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무엇 때문에 여호와가 우리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칼날에 죽게 하려는가? 우리 아내와 자식들이 다 잡혀갈 바에야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그리고 그들은 `자, 지도자를 뽑아 세우고 이집트로 돌아가자!' 하고 서로 외쳐댔다.』『그러자 모세와 아론이 모든 백성 앞에서 땅에 엎드렸다.』『그때 땅을 탐지하러 갔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옷을 찢으며』『모든 백성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탐지한 땅은 아주 좋은 땅입니다.』『여호와께서 우리를 좋게 여기신다면 우리를 그 곳으로 인도하여 기름지고 비옥한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여러분, 여호와를 거역하지 마십시오. 그 땅 사람들은 우리 밥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보호자는 떠났고 여호와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니 조금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그러나 군중들은 그들을 돌로 쳐 죽이려고 위협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여호와의 영광의 광채가 성막 위에 나타났다.』『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언제까지 이 사람들이 나를 멸시할 작정이냐? 내가 그들 가운데 그렇게 많은 기적을 행했는데도 언제까지 그들이 나를 믿지 않을 작정이냐?』(현대인의 성경)지금 갈렙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천국)을 바라본게 아닙니다. 믿음은 긍정적인 눈이 아닙니다. 긍정적인(적극적인) 사고방식 또한 자기 생존을 위한 비신앙입니다. 갈렙은 지금 약속이 얼마나 정확한가를 보고, 철두철미하게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기뻐하는 영의 말을, 믿음의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참말이냐 거짓이냐 그런 시시비비를 가리는 중요한 마당에 엉뚱한 믿음의 말을 합니다. 약속 맞잖아. 민 14:7-8 지금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이 너무 정확해서 감격에 겨워 외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틀림이 없다는 약속을 바라본 증거입니다. 같이 보고도 서로 다른 증거가 나옵니다. 이 싸움은 육신의 싸움이 아니라 영의 싸움으로 보기에 10명과 달랐습니다.(민 14: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개역한글)이 싸움이 인간의 싸움이 아니라, 보호자 싸움이라는 겁니다. 육의 싸움이 아닌 영들의 신들의 싸움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함께 하시는 여호와를 거부하거나 멸시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갈렙을 돌로 쳐 죽일려고 합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와 함께 하느냐를 통해 우리 생각을 고쳐야 합니다. 갈렙을 죽일려는게 아닙니다. 지도자 모세를 바꿀려고 하는게 아닙니다. 우리의 불신앙은 결국 하나님(예수님)을 죽이게끔 되어 있다는 겁니다. 약속하신 하나님(머리되신 에수님)을 바꿀려고 합니다. 머리를 .... 함께 하지 않아서요? 아닙니다. 함께 했으나 늘 무시의 대상입니다. 하나님도 나의 생존을 위한 도구라는 겁니다. 이것이 인간세계에 퍼져있는 믿음입니다.(이게 악의 정체입니다)신을 믿어 복 받자.십자가란 반드시 죽음의 자리로 인도합니다. 거기서 참 믿음과 가짜 믿음이 나누어집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은 어린양. 나와 함께 죽는 어린양. 어린양을 위해 죽는 나. 우리는 광야에서 주와 함께 희생에 참여했노라 외치지만. 주를 위해 희생을 못합니다. 조그만 고생을 생색내기 바뿝니다. 주를 위해 죽을 때 자기 생명을 미워하고 버릴 때 참 생명이신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마 10:39/ 20:28)(눅 14:26)(마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반드시 이런 충돌, 갈렙이 처한 상황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게 늘 닥치는 실제 상황입니다. 피할수 없는 충돌입니다. 갈렙이 옷을 찟는 그 상한 심령을 우리는 얼마나 무시했나요?. 옷을 찢는 것은 저는 죽어 마땅합니다. 긍휼을 베푸소서. 용서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회개입니다. 아니 누가 지금 회개를 해야할 입장입니까? 그런데 갈렙이 상한 심령이 되는 겁니다. 누가 십자가의 저주(신 21:23/갈 3:13)를 받아야 합니까? 우리 아닙니까? 그런데 정작 누가 달리십니까? 여호와의 이름 앞에 그는 상한 심령입니다. 바로 이 간구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살림을 받습니다.갈렙의 증거는 생명의 길로 10명의 정탐꾼의 증거는 생존의 길로 서로 다른 반대의 길로 나누어졌습니다. 광야 속에 있는 우리 곧 교회는 생명의 길로 가느냐, 생존의 길로 가느냐 반드시 이 충돌이 교회 속에서 일어나고, 그 길(생명)은 인간의 믿음을 통해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상한심령으로 인한 주의 공로로 가기에 우리는 늘 주님 앞에서 그저 몸둘바를 모르는 빚진자로써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 긍휼에 거부감을 나타내고 끝까지 자기 생존을 고수 고집하는 자는 반드시 탈락 시키십니다. 그래서 제사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입니다.(호 6:6)(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주님 상한 심령을 무시한 저희들 용서해 주소서. 그 낮아지심을 이해 못하고 늘 높아지려는 우리의 교만한 목을 부러뜨려 주소서. 우리를 낮추시는 주님을 날마다 기쁘게 영접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