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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61201b 울산강의-창세기 3장 녹취자유게시판창세기

20061201b 울산강의-창세기 3장 녹취

이름 : 한윤범(IP:211.218.2.82)

20061201b 울산강의-창세기 3장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지난 간에 아담 위주로 성경을 보시면 안 된다 했어요. 그러면서도 아담 위주로 성경을 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두 개는 모순되는 게 아니고, 우리는 이미 범죄하고 난 뒤기 때문에 내 중심으로 보는 것도 보고, 또 믿음을 선물로 받으면 아, 그리스도 중심이구나. 라는 것을 알고.

제가 신신당부했습니다. 두 가지를 분명히 다 안다 했습니다. 분명히 두 가지 다 알아야 된다고 했는데 이렇게 성경 공부하다보면, 한쪽은 버립시다, 하는 쪽으로 나오시는 분들이 있어요. 두 가지 다 알아야 됩니다.

아담 같은 경우에 두 가지 다를 알게 돼요. 선악과 따먹고 자기가 흙으로 돌아간 것도 알고, 그 다음에 가죽옷 입고 자기 아내 이름이 하나의 한 여자에서 생명으로 바뀐다는 것도 알고, 아담은 죽어가고 있으면서도 생명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러한 사람으로 바뀌게 되지요. 그러니까 아담도 두 가지를 다 알게 되는 겁니다.

인간이 죄 짓는 것, 인간이 범죄한 것, 너무 서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 너무 그걸 애달파하지 마세요. 아아, 안 따먹었으면 안 죽을 건데. 그것만 자꾸 미련 갖지 마시고, 따먹어도 살리신다는 주님의 그 가죽옷 사랑을 왜 그걸 잊어버립니까? 그걸 왜 고마운 줄 몰라요. 새 옷 하나 사 입어야 압니까? 백화점에서. 가죽옷 치마 입은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데. 일부러 찾아와 주시고. 사람이 큰 사랑은 생각 안하고 자꾸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미련과 애착을 갖는지 참, 답답해요.

로마서 5장에 보면, 아담을 가지고 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라고 했습니다. 아담을 뭐라 했다고요, 누구의 표상이라고요? 예수의 표상이에요. 그러니까 아담은 구원이냐, 구원 아니냐가 아니라, 무엇이 죄며, 무엇이 사랑인가를 양면을 다 보여줘야 되지요. 누가요? 아담이.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의 표상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틀린 말 했습니까?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걸 보여주기 위해서 있는 거라니까요.

또 잊어버렸죠. 골로새서 1장 16절. 모든 만물은 누굴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님 보여주기 위해서 있는 겁니다. 예수님 보여주기 위해서 있기 때문에 무엇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이것이 죄다, 이것이 저주다, 그리고 이것이 축복이다, 생명이다 보여주었으면, 그것이 그대로 아담에게도 죄와 생명, 사랑 양쪽 다 아담의 일생을 통해서 양쪽 다 보여주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기분 나쁘냐 이 말이죠.

아, 아담, 당신만 안 따먹으면 우리는 살았는데. 왜 자꾸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준다는 생각은 안 하고 그때 자꾸 지나간 일에 후회만 됐다 하느냐 말이에요. 그때 그 실수 안 했으면 그때 주식을 집어넣는 게 아닌데, 이쪽에 해야 내가 이번에 되는데. 그거 해서 2억 꼬라박았네, 뭐. 진짜 신자 같으면 주식을 하던 뭘 하던 간에 이것조차도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죄가 무엇인가 보여주기 위한 하나님의 권세의 적용의 일환이었다. 권세가 적용되는 과정이다. 이렇게 그걸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 연사는 간절히 원합니다.

양쪽 다 보여준다는데 자꾸 사람은 사랑만 차지하고 죄는 감추려고 하고. 이러면 안 돼요. 사랑과 죄가 드러나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가 다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보니까 우리가 아담 보기가 별로 부담이 안 되지요.

아담이 결혼을 했다 할 때 아담이 둘이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독처하는 게 좋지 않아서 아내를 붙여주었거든요. 아내가 왜 붙어 있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해서 아내가 있는 겁니다. 이게 이해가 됩니까? 요 방금 이야기. 왜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느냐? 예수님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제가 전에 박사교회 있으면서 이 대목 설명하는데 몇 년 걸렸습니다. 부부는 부부 행복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해서 아내 곁에 남편 있고, 남편 곁에 아내 있습니다. 이거 설명하는데 참, 몇 년 걸렸습니다. 몇 년 걸리면 뭐 합니까? 돌아서면 다 잊어버리는데.

한 육체가 두 육체가 있어도 한 육체만 한 몸이 아니고, 두 육체가 있어도 한 몸이 되고 세 육체, 네, 다섯, 여섯이 돼도 한 몸이 된다는 말은 몸을 먼저 규정하고 난 뒤에 그 몸을 보여주는 육체들이라는 말입니다. 한 육체만 한 몸이 아니고, 두 육체가 한 몸이란 말은, 이것은 이미 몸이라는 것이 먼저 설정되어 있단 말이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사이에 무엇이 몸이냐를 장래에 한 몸이 어떤 몸이냐를 보여주기 위해서 미리 앞당겨서 아담에게는 아내가 있고 하와에게는 남편이 있는 겁니다.

육체가 두 육체인데 두 육체 같으면 우리의 상식으로는 두 몸이 되어야 되는 거예요. 두 육체가 두 몸이라는 개념은 언젯적 개념이냐 하면, 우리가 범죄하고 난 뒤에 자아가 자기 생각이 우선될 때 내 육체 중심, 내 몸 중심으로 사물을 하나의 대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이 말이죠.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땐 저 사람하고 나하고 같은 몸이 아니에요. 딴 몸이에요.

한 몸이라 하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같은 원리로 또는 같은 관계로 지배받는다는 뜻이에요. 이젠 이해하고 못하고 이제는 기대도 안한다. 내 알아서 해 버린다.

몸이 하나라는 말은 세 명이든, 네 명이든 성도가 천 명이라도 관계없어요. 동일한 원리가 똑같이 적용이 될 때 그때는 두 몸이라도, 세 몸이라도 한 몸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형제여, 자매여, 하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이 내 형제여 안합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입니다. 이것은 우리 몸, 육체 어디 붙어서 그런 게 아니라 같은 한 몸에서 예수님의 몸 되게 하는 원리가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에 있었던 언약이죠. 그 몸 된 원리가 동일하게 적용되면 비록 서울 있고 전라도 있더라도 한 몸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아이디어는 우리가 성령 받고 난 뒤의 아이디어고,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에 범죄하기 전의 아이디어였지, 일단 범죄하고 난 뒤의 원리는 내 몸 위주 내 한 몸 위주로써 뽑아내기 때문에 아무리 가까운 남편, 아내라도 어디까지나 내가 나한테 적용되는 원리 가지고 상대방을 적용하다보니까 이용하려고 하지, 내 한 몸이라고 하질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한 형제는 좋을 때 같이 웃고, 슬플 때 같이 울라고 하거든요. 이게 부부 사이 이야기입니까, 안 그러면 그리스도 몸에 대한 이야기입니까? 그리스도 몸에 관한 이야기지, 한 교회 교인들 간의 이야기지, 어디 가정 집식구를 이야기하는 것 아니거든요.

개척 교회할 때, 개척교회 시작했습니까? 개척교회 할 때 제일 목사들이 화딱지 나는 것이 교인들이 자기 집 구석 밖에 모른다는 거예요. 성경에서는 교회는 우리 형제요, 자매요 해놓고, 돈 문제 등장하면 어디까지나 교회는 친목단체에 불과하고, 역시 돈 쓸 곳은 내 새끼, 내 자식, 내 남편 챙기고, 내 아내 챙기고. 다시 휙 하니 칼바람 쌩 찬바람 불면서 자기 집안 식구부터 챙기고,

그 다음에 뭐, 생색낼 때 있으면 우리 같은 교우들 이렇게 챙기지요. 그러나 어디까지나 약간 배부르다 여유 있다 싶을 때 하지요. 지금 자기 발등에 불 떨어졌는데 어디까지 남의 교인까지 챙길 수 없지요. 멀리까지 와서 가슴 찔리는 소리를 또 하고 내 눈치코치도 없이 말이야. 그러나 눈치코치 살필 형편이 못 되지요.

육체가 내 몸 하나라도 한 몸이 된다고 여길 때 이미 그게 잘못된 겁니다. 이 몸이 몸 되기 위해서는 나 말고 다른 육체, 육체들이 있어야 돼요. 그걸 우리는 범죄하기 이전이 아니라 이후기 때문에 그걸 이해를 못해요. 집중이 안돼요. 그게 이해가 안 돼요.

메를로 퐁티라는 유명한 철학자나 유명한 사람들 19세기 말부터 시작해서 연구한 게 뭐냐? 몸의 철학입니다. 몸의 철학은 뭐냐? 어째서 인간은 자기 밖에 모르느냐 말이죠. 이게 옛날에도 있었지만 요새는 뭐냐? 어떻게 해서 인간은 자기 육체의 컨디션에 따라서 인간이 달라지느냐? 그걸 연구해요. 자기 몸의 컨디션에 따라서. 결국 인간 자아라 하는 것은 그런 건 없고, 내 몸의 컨디션이 좋으면 괜찮은 자아 되고, 컨디션이 나쁘면 아주 나쁜 자아가 나오는 거예요.

평소에 젊을 때 갓 시집온 며느리 예뻐하고, 갓 사위 온 사위한테 닭 한 마리 잡아주던 그 어질고 어진 그 시부모, 시아버지 나중에 육칠십 세 되어서 치매 현상 몸 아파 보세요. 완전히 어린애 다 되어서 어리광부리고 이젠 누가 부모인지 누가 자식인지 구분도 안 돼. 일곱 살 애들보다 더 못해. 땡강 부리고 짜증내고 집안 분위기 다 흐려놓고. 집안 식구 다섯 명 가운데 아픈 사람 한 사람 있으면 네 명 다 지옥 같은 생활해야 돼.

그렇게 어지시고 뭔가 퍼주려고 하고, 김치 없나? 뭐 해주려고 하고, 뭐 해주고 손자까지 다 봐주고 했건만, 심지어 아까운 유산까지 다 남겨줬건만 나중에 시부모 아프다하니까 돌아볼 자식 하나도 없어. 며느리 하나도 없어.

왜? 인간은 아무리 사랑해줘도 누구 중심이다? 내 중심이다에서 더 나아가서 내 육체 중심이다. 내 육체 중심이에요. 뭐, 내 중심만이라면, 내가 만약에 컨디션 좋으면 교회 청소 다 하고 교회 봉사도 많이 해요. 몸 아프면, 목사님한테 전화 오면 목사한테 화낸다니까. 목사님, 전화하지 말라 했는데 왜 전화 했습니까? 내 몸 아프면 만사가 다 적이고 원수에요. 남편도 싫고, 자식도 싫고, 다 싫어요.

사람이 좀 자랑거리 있으면 동네방네 선전하고 자랑하고 난리 납니다. 교회에서 헌금하면서 평소에 그냥 헌금하다가 이번에 내 아들, 사법고시 수석합격 해서 써가지고 헌금해요. 전부다 하고 싶어요. 그런데 만약에 뭔가 이혼했다. 그러면 교회 안 나옵니다.

젊은 청년들 교회 오면 참, 목사들 입장에서는 둘이 젊은 청년들 남녀가 열심히 봉사하고 성가대 앉고 봉사하면 보기 좋아요. 그런데 아슬아슬하거든요. 둘이 마음 맞아서 결혼에 골인하면 그거야 빵빠방~ 좋은데, 둘이 했다가 새로 어제 등록한 제 삼의 인물 등장해서 삼자, 삼각관계 형성되어 중간에 찢어지면 교회 안 나옵니다. 복음이고 뭐고 연애하러 왔지, 교회에.

그러니 목사님 입장에서는 그 점을 미리 내다보니까 아슬아슬한 거예요. 차라리 마음에 드는 아가씨 없었더라면 교회 잘 다녔을 건데. 마음에 드는 아가씨 있어서 교회 나오지 말래도 둘이 붙어살아. 봉사 막 해. 그러니까 봉사가, 봉사가 아니었던 겁니다. 보고 싶어서 온 거예요. 둘이 얼굴 보고 싶어서. 잘 되면 애까지 주일학교 보내지. 나중에 애 낳아서. 못 되면. 아, 이거 참.

인간이 자기 육체 중심이기 때문에 이 육체 중심이 그냥 육체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을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은 아시죠. 네가 현재 육체중심으로 너 중심으로 선악과 누가 따먹었어? 저 사람이요. 너는 누가 따먹었어? 뱀이요. 이미 몸의 개념이 깨져버리고, 내 육체, 한 몸 중심의 내 몸만 내 몸이라고 할 때는 거기에는 반드시 배후에 누가 있다? 배후에 인간의 육체로 이길 수없는 악함이 그 인간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배후를 들추어내는 그것에 하나님께서는 개입하십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사람이 내 몸뚱이 중심 같으면 여기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나름대로의 사랑이 나오고, 의가 나오고, 여기에 정의로움이 나오고, 여기 인정이 나오고, 여기 동정하는 자 했으니까 동정이 나오고, 자비를 베풀죠.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사랑, 의로움, 의리, 정의, 동정 이 모든 것이 어디에 조종 받고 있다? 악마의 조종을 받는 그러한 사랑이고, 의리고, 동정이고 자비다 이 말이죠.

이 목사, 당신 그렇게 주장하는 증거 대봐라. 증거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다시 어디로 원위치해요? 내 몸의 컨디션으로 원위치하죠.

아프리카에 선교하겠다고 서원하고 사진까지 보내고 저는 아프리카에 선교합니다, 아니 필리핀에 선교합니다. 교회에서 그렇게 주의 사랑하는 사람이, 마침 그 신학교 후배가 와서 저는 필리핀 정도가 아니고, 아예 아프리카 오지입니다. 거기서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성질이 나는 거예요. 왜 건방지게 나보다 더 깊은 오지에 가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동정심을 유발해. 이렇게 되는 거예요.

어떤 며느리가 교회에서 칭찬을 받습니다. 세상에 시어머니한테 그렇게 잘해주고 봉양을. 전부다 칭찬하는데, 지난주 새로 등록한 며느리는 이건 밑반찬 천 가지에다 시어머니를 수레에 끌고 교회까지 오니, 조금 전까지 인기 얻었던 그 며느리 수레 확 뒤집어버려요.

이 성질이 왜 납니까? 이걸 갈라디아서에서 육체의 소욕이라 해요. 육체의 소욕이, 시기, 질투가 왜 납니까? 이것은 바로 악마가 사랑과 의리 할 때는 악마의 지배 안 받는 것처럼 이렇게 했지만 막상 어떤 계기가 주어지니까 그 모든 것이 마귀에 의해서 마귀의 사랑과 의리, 정의, 동정. 믿음, 소망, 사랑 전부다 마귀에서 다 나와요. 이것을 우리는 아까 제가 이런 이야기하면,

목사님, 그건 예수 믿기 전이고 예수 믿으면 잊읍시다. 하는데 제가 아까 했지요. 이걸 잊으면 안 돼요. 평생가요. 이거는 이걸 잊어버리면 가짜입니다. 가짜 신앙이에요. 이것을 충분하게 평생 느끼고 느껴야 돼요. 이걸 느끼는데 자라가야 됩니다.

뭘 느끼는데? 왜 주님께선 한 몸이냐 말이죠. 주님께서는 두 육체가 왜 한 몸 되는가? 몸은 한 몸 될 때까지 자라나거든요. 자라나면서 우리는 뭐냐? 전부다 딴 몸이었고 딴 자기 육체로 놀아나고 있구나. 신나게 놀고 있구나. 라는 것을 철저하게 깨우치면서 몸은 몸대로 자라나는 겁니다.

누구의 권세로? 주님의 권세로. 성경의 자라난다는 말이 이 말이에요. 한 몸으로 자라난다는 말이 이 말입니다. 개인적인 성화라는 게 있을 수 없어요. 몸의 성화에요. 개인의 성화가 아니고.

몸이라는 것은 뭐냐? 두 육체가 만나도 이것이 한 몸일 수 있어야 그게 한 몸인데, 우리가 범죄하고 난 뒤에는 그걸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어떻게 그게 두 몸이지 어떻게 한 몸입니까? 세 사람 같으면 세 몸이 되지, 어떻게 한 몸입니까? 세 육체는 세 몸이고, 네 육체는 네 몸이고, 다섯 육체는 다섯 몸이고. 그게 정상이지, 어떻게 다섯 육체가 교인 다섯 명이 어떻게 한 몸이 됩니까? 머리 되는 예수 그리스도 떼어서 어떻게 한 몸이 됩니까? 모르겠지?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게 정상이라.

왜냐하면 한 몸 되는 원리. 예수님과 아버지는 뭐라고 했습니까? 예수님과 나는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죠. 그 하나의 원리를 사람들은 몰라요. 그런데 성령이 오게 되면, 예수님과 내가 내 안에 하나님이 전부다 하나가 돼요. 하나가 된다고 하니까 또 이걸 이해하는데 어떻게 개떡 같이 이해하느냐 하면, 내 몸이 남을 이렇게 하나 되듯이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게 이해하자는 게 아니고, 예수님과 아버지 사이에 있던 하나가 하나의 권세를 통해서 관계를 통해서 우리한테 집어넣어 오게 되면 우리는 두 가지 다 알게 됩니다.

내 몸의 중심에서 하나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설프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우릴 하나 되게 하셨다는 것, 그것까지 두 개 다를 알게 되지요. 그래서 창세기 2장에 한 몸이 되는 거예요. 한 몸 되고 난 뒤에 창세기 들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서로 남 탓 돌리는 그게 있지요.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창세기 3장 보니까 창세기 3장이 조급하지도 않고 느긋하지요. 그래, 잘했다. 범죄 잘했다. 이런 생각까지 들지 않습니까? 아이고, 그때 범죄 안 했으면,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니고, 그래, 깨질 건 깨져야지, 잘 깨졌다. 이런 생각 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뱀이 있는 것, 다시 말해서 마귀가 있는 것이 그렇게 우리한테 슬픈 소식이 아니에요. 마귀가 있는 게 어떻게 슬픈 소식입니까?

여기 마귀, 창세기 3장에서 여자와 너 사이에서 뱀의 후손이라 했지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뱀이 한 동물 같으면 후손이라는 게 의미가 없어요. 뱀의 후손이 의미가 있겠습니까? 여기에 독사가 있다.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 독사가 있다 말이죠. 이 독사 새끼가 여자하고 무슨 관계있습니까? 여자 정지 칼, 다른 말로 부엌칼 들고 쳐버리면 되지.

여기 뱀의 후손은 단순히 뱀의 암수가, 뱀의 암수가 있습니까? 있지요. 알에서 깨어난 뱀 새끼가 아니듯이 여자의 후손도 여자가 낳은 새끼, 새끼라고 하면 안 되지만 하여튼 여자에서 나온 새끼하고 다른 의미란 말이죠. 여자의 후손은 아담이 낳은 가인, 아벨이 아니에요. 뱀의 후손이 작은 뱀 새끼가 아니듯이, 여자의 후손의 작은 새끼가 아니에요. 작은 자식새끼가 아니라니까, 그게.

허어, 참, 이거. 그러면 아니면 뭡니까? 자, 한번 봅시다. 이런 걸 한번 하려면, 앙꼬가 왜 이리 어려운지. 앙꼬라는 게 엑스기가 돼서 어려워요. 눌려져서.

여러분 잊어져 다시 이야기합니다. 아담이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먹음직도, 보암직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따먹지 마라해도 아담, 하와는 선악인지 뭔지도 몰라요. 죽음이라 했지만 죽음이 뭔지도 몰라요. 그냥 그들은 도저히 억제할 수가 없어요. 왜? 너무 먹음직, 보암직, 탐스럽기 때문에.

남자가 자기하고 결혼한 아내하고 있지만 자기하고 결혼한 아내보다 연애할 때 더 마음에 들었고 더 사랑했던 여인이 있으면 비록 아무리 강제로 현재 아내와 살고 결혼식도 화려하게 거창하게 하고 목사님 성경책 얹어 아무리 해도 마음속에는 그 여인을 잊을 수가 없어요. 이거 소서노 아닙니까? 잊을 수가 없어요. 도저히 잊지를 못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미 보암직하고 탐스럽기도 하면 이런 것 자체가 인간에게는 그 자체가 지금 만약 유혹 안 당했으면 나중에라도 또 당할 수밖에 없어요. 뭐가 있는 이상? 선악과 있는 이상은 계속해서 한번 유혹 이겼다고 그 다음부터 유혹 끝난 게 아니에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한 번 유혹을 이겼다고 마귀를 이겼다고요? 마귀가 뒤통수 쳐버립니다. 어제 이긴 유혹이 오늘까지 유효하지 않습니다.

백화점에 원피스가 있는데 그 성화를 추구하는 사람은 백화점에 원피스 있지만, 하나님이여, 기도합니다. 속으로 하나님이여, 저 원피스 마음에 들지만, 주여, 사탄아 물러가라. 내가 돌아보면 물러갔다고 해서 그 다음날 그 앞에 또 갔을 때 이제는 마음 편하게 본다? 천만의 말씀, 더 당깁니다. 주여, 벌써 열두 번째 이겼는데 이번에 사더라도 열두 번, 이긴 것 봐서 입 다물어 주세요. 이게 인간입니다. 이게 인간이에요.

그러면 목사님, 백화점 불나면? 백화점 불나도 못 잊어요. 백화점이 아까운 게 아니고, 그 원피스 아까워서 그거 완전히 진작 사는 건데 불나서 못 샀다고. 그거 죽을 때까지 갑니다. 죽을 때까지 가요.

이게 인간의 육체입니다. 인간은 이미 선악의 지배를 받는 이상은 예수를 어떻게 믿든지 간에 이런 자기의 육체의 능력을 자기 힘으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빼도 박도 못하지요. 그냥 주께서 쓰시는 대로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냥 흰 도화지에요. 무슨 그림을 그리시든지, 도화지가 크레용 빼어서 자기 그림 그리지 마시고, 그냥 그려지는 대로 그리세요. 그러면 두 가지 그림이 나옵니다. 신자한테는. 하나는 우리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게 한 것을 우리가 이기지 못하는 것, 또 한 가지는 그러나 이것을 이기지 못한 것까지 용서하시는 생명나무, 이걸 이기지 못했기에 따먹을 수 없었던 그 생명나무가 역시 우리한테 주께서 임의로 와서 먹이셔서 나의 떡과 나의 피와 살을 먹으면 이것이 곧 너에게 생명이라. 이런 그림까지 함께 도화지에 그려져 있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그 외에는 성도가 아니에요.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일단 그렇게 돼버리면, 이제부터 아담과 하와는 뭐가 되느냐? 뱀의 후손이 되던 여자의 후손이 되던 그것은 우리 인간을 가지고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같이 투입시켜서 대결하는 대결장, 모텔이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대결을 하게 되는 장소로써 주께서 사용하게 돼요. 대결장입니다. 이게 인류의 역사입니다. 뱀의 후손이 뭔지 몰라요. 하여튼 하나님 말씀만 해버리지요.

좀 더 들어보세요. 선악과 따먹지 마라. 그러면 죽으리라. 무슨 뜻을 알고 했습니까? 무슨 뜻인지 몰라요. 따먹고 보니까 그 뜻을 알아요. 그렇다면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이 싸우리라. 무슨 뜻인지 압니까, 알아요? 몰라요. 그냥 주께서는 알아서 지키라는 게 아니라 니가 알든 모르든 이 말씀대로 너한테 적용하게 될 것이다 이 말입니다.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라. 무슨 뜻인지 압니까? 몰라요. 나중에 겪고 보니까 아, 이게 범사에 감사하고, 이게 항상 기뻐하는 거구나.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이다. 무슨 뜻인지 압니까? 몰라요. 그냥 겪고 보니까 아, 돈을 사랑하지 않을 때도 있었구나. 하나님의 말씀은 주께서 우리를 도화지로 사용해서 그냥 말씀이 들어오게 되어 있어요. 말씀은 우리 속에서 역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알아서 지키면 그거는 이미 거짓입니다. 내가 납득해서 지켜버리면 거짓이에요.

남의 눈의 티를 보지 말고, 내 눈의 들보를 빼고 난 뒤에 남의 눈의 티를 빼라. 이것이 무슨 뜻인지 몰라요. 그런데 인간은 범죄하고 난 뒤에 얼마나 건방진지, 그게 무슨 뜻인지 안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남에게 조심할 땐 남을 상대할 땐 조심해서 합니다. 그게 들보 뺀 겁니까? 뺀 게 그 정도에요. 아니잖아요. 그거는 지 핑계 아닙니까? 김건모의 핑계 아닙니까? 그건 뺀 것도 아니에요.

하루 세 끼 꼬박꼬박 다 챙겨 먹으면서 먹는 것, 입는 것 족한 줄 알았다는 거예요. 하루 세 끼, 간식까지 다 챙겨 먹으면서. 마지막 커피까지 셀프까지 다 뽑아 먹으면서. 세상에. 먹는 거 입는 거 족한 줄 알라는 것은, 하루 네 끼 먹어도 족하면 그게 먹는 게 족한 거예요. 그것이 성령을 통해서 겪고 보면 아는데 그걸 자기가 지레짐작 안다고 설치니까 그게 자기 의로 축적이 되고,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람이 된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전에 있던 크로스빌리지에서 토론에 보면, 어떤 사람이 지적해요. 그 방종하지 마라는 사람, 한번 물어봅시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방종 안 했습니까?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나는 반복해서 죄 안 짓는다 했어요. 그러면 묻습니다. 당신은 반복해서 지은 죄는 절대로 지은 적이 없습니까? 이렇게 물었어요.

요한일서에 보면, 하나님께 난 사람은 절대로 죄를 짓지 않는다, 되어 있거든요. 그 절대로 짓지 않는 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는 죄는 안 짓는다. 이런 이야기다. 그렇게 주장하더란 말이죠. 그러면 당신은 반복해서 두 번 다시 죄를 안 짓는다 말입니까? 아무 소리 못하는 거예요. 사기 아니에요, 사기. 무슨 그런 사기가 다 있어요.

주께서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사람은 죄를 짓게 되고, 속한 사람은 죄를 안 짓는다. 이 말을 두 개 다 우리 속에 있어야 돼요. 성도 속에. 다 들어와야 돼요. 다 들어온 그것이 죄 안 짓는 거예요. 왜? 하나님께 마음대로 쓰시라고 내맡겼으니까 그게 죄 아닌 게 돼요. 소속의 문제입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갖고 놀던, 아까 로마서 9장 봤지요. 주님께서 어떻게 사용하든 주께서 저주해서 주님께 끊어질지라도 사용하시면 사용하세요. 라는 것이 성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게 뭐냐? 죄 안 짓는 거예요.

선악과를 따먹다 보니까 선과 악의 지식이 있다 보니까 이것은 선과 악의 지식이 있다는 말은, 창세기 3장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창세기 3장 22절에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우리'라는 말은 누구를 말합니까? 하나님이란 말이죠. 우리라는 쪽은 하나님 쪽이에요.

제가 아까 그림 그렸지요. 하나님과 예수님과 아버지 사이에 있었던 영원한 언약은 인간이 개입하지 못하는데 인간이 뭐 했어요? 이제 선악과를 따먹었잖아요. 그러니까 이제는 선악과를 따먹어서 선악을 알게 되었으니까 이미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일 수 없지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써 들어가야 새로운 피조물 되는데, 그 선악을 모르는 관계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은 이제는 완전히 죽음으로 내 몰 수밖에 없어요. 죽음의 세계가 뭐냐? 에덴 바깥은 죽음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흙이 될 수밖에 없어요. 죽지요. 죽음의 세계로 내몰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현재 죽잖아요. 예수 믿던 여기에 오던 합기도도장에 오던 안 오던 간에 검도, 합기도 하든 말든 하여튼 바깥은 다 죽잖아요.

다 죽는 이유가 뭐냐? 하나님께서 일을 권세로써 하시기 때문에 죽는 겁니다. 예수 믿어도 죽고, 안 믿어도 죽어요. 죽는데 예수 믿는 사람의 특징은 죽는 이유를 아는 사람이고, 안 믿는 사람은 죽는 이유도 모르고 지 잘났다하면서 계속 죽어가고 있는 거예요.

여자의 후손, 모릅니다, 지금. 뱀의 후손, 몰라요. 다만 단지 아는 것은 주님께서 죽어가는 우리 인간에다가 이 두 개의 정보를 여기에다가 이 위에다가 복사를 해버리겠다는 거예요. 네가 죽든 말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게 뭐가 어떤 족적이 남겨지는가? 어떤 흔적이 남아지는가? 그것만이 이 하나님께 의미가 있고, 네가 죽는 것, 그것은 동원되는 하나의 그릇에 불과한 겁니다. 이게 진노의 그릇이 따로 있고, 긍휼의 그릇이 따로 있습니다.

그러면 여자의 후손은 뭐며, 뱀의 후손은 무엇이냐? 이것은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나타나요. 요한계시록 12장. 아주 멀찍이 나타나요. 요한계시록 12장 보니까 이 여자의 후손이 누구냐 하면, 갈라디아서 3장에 보면 여자의 후손은 누구냐 하면, 한 분 밖에 없어요. 여기도 요한계시록 12장에 여자의 후손은 누구냐 하면, 예수님입니다. 에게, 한 분으로 되느냐 하는데, 한 분으로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한분 된 몸의 원리가, 그 몸의 원리라 하는 것은 두 사람, 세 사람 필요 없거든요. 한 몸 돼도 퍼져버리면, 아까 제가 세 육체, 네 육체, 천 육체, 만 육체, 십사만사천이라도 그 한 몸 바깥으로 벗어나지 않으면 한 몸이 되는 겁니다.

한 몸이 된다는 말은 어떤 지체더라도 동일한 혜택을 입는다는 겁니다. 저 발가락이라도 저 귀라도 손가락이라도 머리에서 멀리 있다고 너무 낙심하지 마시고, 똑같은 혜택을 입어요. 여자나 남자나 종이나 자유자나 목사나 평신도나 관계없이 동일하게 그리스도로 영생 받게 돼있습니다.

그게 한 몸 된 원리에요. 그래서 여자의 후손은 한 사람 밖에 없습니다. 한 사람에서 여러 육체가 거기서 지체로서 이제는 다 모아지는데, 결국은 한 몸이다 밖에 없어요. 몇 명이 되던 한 몸 밖에 없어요. 몸이 믿음도 하나요, 주도 하나요, 몸도 하나요.

'몸도 하나요.'란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더 이상 내 몸 중심으로 내 몸 찾지 말라 이 말입니다. 하나님, 주님은 좋습니다만 지금 내 몸이 배가 고픕니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란 말이죠. 배가 고프든 그건 니 몸, 니가 알아서 하고, 하나님 관심은 한 몸에 있지, 니 몸에 있는 게 아니란 말이죠.

선악을 알게 한다는 말, 지금 했잖아요. 한번 적어 보겠습니다. 사람이 죽습니다. 죽는 이유가 뭐 때문에 죽습니까? 선과 악을 아는 이유 때문에 죽지요. 제 말 틀리지 않고 맞잖아요. 선과 악을 안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가계부가 있다는 거죠. 무슨? 선, 악, 차변, 대변, 당기순이익 따지는 거예요. 여기는 자산, 여기는 부채, 합쳐서 당기순이익.

우리는 맨 날 선과 악을 하죠. 그러면 나름대로의 선과 나름대로의 악을 규정할 것 아닙니까? 그러면 선한 것 속에는 뭐가 포함되느냐? 믿음도 포함되고, 소망도 포함되고, 사랑도 포함되지요. 그런데 믿음, 소망, 사랑, 이것은 선이고. 그 다음에 뭡니까? 불신, 그 다음에 미움, 질투 이런 것은 악에 속하지요. 이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뭐라고요? 전체가 이게 바로 죽어야 될 죄다 말이죠. 이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그러면 죄 없애야 안 됩니까? 허어, 없애지 말라니까요. 죄가 이게 있어야 된다니까. 이걸 어떻게 없앱니까? 지금 강의 도중에도 오늘도 강의 안 온 사람 있네. 나는 강의 왔다. 이미 우리 속에 강의 들었다는 착한 일. 집에 설거지 이만큼 싸놓고 왔는데 얼마나 착한 일. 착한 일 가계부 있는데 내일 복 받지 싶어. 착한 일 했기 때문에.

그런데 그렇게 열 번 참석해도 만약에 그 다음날 열한 번째 못 오면, 뭐가 생겨요? 열 번 참석했는데 열한 번째 못했구나. 초조와 불안과 근심과 걱정이 발생되었지요. 그러면 그건 무엇을 잊어버린 것이다? 도표 1번. 아까 기억나십니까? 첫 번째. 1번 도표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근심과 걱정과 불안이 또 생기는 겁니다. 1번 도표를. 지금 여기 이런 거예요.

만약에 제 말이 틀렸다면 창세기 3장에서 이야기가 끝나야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창세기 4장 들어가지요, 5장 들어가지요, 6장 들어간다고요. 4장, 5장, 6장, 계속 나오는 게 뭐냐 하면, 심판이야기 아닙니까? 심판은 뭐냐 하면, 분리시킴, 분리함. 어떻게 분리시키느냐 하면,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으로 분리시키는 거잖아요.

분리시킬 때 여기에 구원받기로 분리된 사람이 선악적인 것, 자기가 활용해서 구원받았습니까? 놀라운 사실은 그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니까. 자기가 갖고 있는 선악을 발휘시켜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조작하죠. 어떻게 조작하느냐 하면, 아벨의 예물을 하나님이 받음으로 말미암아 가인으로 하여금 아벨을 적으로 삼는 게 아니고, 여기 잘 들어야 돼요. 중요한 대목.

가인으로 하여금 아벨을 적으로 삼는 게 아니라, 아벨의 예물을 받았던 하나님까지 몽땅 아벨의 원수로 만들게 한 작업을 누가 일부러 그렇게 하시는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해줘야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이 뚜렷하게 윤곽이 드러나거든요. 형이 동생 보고 너는 내 적이야. 라고 해버리면, 형은 뱀의 후손이 아니고, 그냥 형일 뿐이고, 동생은 여자의 후손 쪽이 아니고, 그냥 동생일 뿐입니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하나님께서는 형의 제사를 받지 아니하고 의도적으로 동생의 제사를 받아 차별화시킴으로 말미암아 이 가인으로 하여금 배후에 악마가 있으며 그리고 아벨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있음을 보여줘서 이 싸움이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 아니라 악마와 주님과의 싸움인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창세기 4장부터 시작됩니다. 그게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그럼 우리는 뭐냐? 들러리죠. 신랑, 신부 따로 있는데 뒤에 치마나 들고 가는 들러리죠. 꽃이나 들고 가고. 그걸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라 하고, 저쪽에는 악마의 증인이죠. 악마의 일꾼들, 우리는 주님의 일꾼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저쪽은 다른 예수, 다른 복음만 알고, 우리는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이 무엇인 줄 알고, 그렇게 하신 것도 주님인 줄 알고.

그렇게 패가 두 패로 나눠집니다. 나눠져서 이쪽은 천국으로, 이쪽은 지옥으로 감으로 말미암아 왜 지옥이 있어야 되며, 왜 천국이 있어야 되느냐? 나중에 지옥, 천국 갔을 때 결국 하는 이야기가 중간과정 생략 다해 버리고 어떻게 천국 왔느냐? 창세전부터 주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창세전하고 나중에 천국하고 연결시켜 버리고, 너는 왜 지옥 왔나? 창세전부터 미워했잖아요. 창세전부터 미움 받는 것 하고 지옥하고 연결시켜버려요. 중간과정을 없어져 버리죠.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었다. 모든 것이 주의 뜻대로 됐다. 나라는 것은 도대체 흔적도 없이 사라져요. 이렇게 창세기 4장을 보셔야 됩니다.

이제 밤도 으슥하고 여러분의 인지도의 한계도 이제는 바닥이 났고, 아무리 좋은 소리라도 오래하면 앞의 것 잊어버리고 까먹어버리니까 창세기 3장, 4장을 4장까지는 아니지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게 미지의 인물이에요. 아직까지 미지의 인물이고, 아담과 여자는 아직 하와 되기 여자는 예수님을 보여주는 그냥 모형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이야기했고, 사도 바울을 주님한테 그렇게 계시를 받았어요.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모형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상당히 이해하는데 복잡한 것은 아담과 하와, 본인은 예수님을 이야기 안 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너무 억측이 아니냐하는 그런 오해를 받지요. 사도 바울이 아무리 그렇게 해도 막상 창세기 3장 들여다보면 거기 예수님이 안 계시잖아요.

하지만 오실 예수님을 아담과 하와 속에 남겨두신 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여자에서 이름이 바뀌어요. 뭐로 바뀌느냐 하면, 하와, 생명으로 바뀝니다. 그런데 아담은 이름이 바뀌지요. 아담은 맨 아담이지만 이게 뭐로? 이게 흙으로 바뀌지요. 흙이라는 말은 뭐냐? 이게 죽음의 자리 아닙니까? 하와는 생명이고, 아담은 죽음의 자리고.

아담 개인적으로 보면 섭섭하고, 여자 개인적으로 보면 신나는 거지만 신날 것도 없어요. 왜냐하면 이렇게 사용한다는 자체, 생명과 죽음으로 사용한다는 자체가 주님께서 버리고자함이 아니고, 사용하고자 함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 가죽치마 옷을 입혀요. 가죽치마를 입혀서 그들로 하여금 여전히 사용할 뭔가 건덕지가 있다는 것을 남기지요. 가죽옷을 입음으로 말미암아.

가죽옷을 입힌다는 뜻은 구원받았다는 뜻이 아니고, 예수님을 증거 한다는 뜻입니다. 이미 이 시기에도 예수님이 관여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관여한 거예요. 물론 아직까지 예수님은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흔적은 입히는데, 뭐로 입히느냐? 가죽치마를 입히는데, 이 가죽치마를 입히게 되는 동기가 뭐냐? 그게 창세기 3장 15절에 나오는 뭡니까? 약속이다 말이죠. 그 약속을 다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창세기 3장 15절, 시작.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나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거 아담이 도끼 들고 설치란 말입니까? 아담이 하란 말입니까? 아담이 하란 말이 아니고, 누가 해내신다? 바로 하나님 본인이 해내지 어떤 누구도 해내지 못해요. 우리는 그냥 쓰임 받을 뿐이지, 가만있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증언할 뿐이지. 우리가 쫄랑대면 까불면서 설치지 마세요, 제발. 교회에서 제발 설치지 말아요.

주의 일이라는 것은 우리가 백날 설쳐봐야 우리 일이지, 주의 일 없습니다. 주의 일 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내가 일을 하지 않고 십자가 지신 주의 능력입니다. 라는 고백을 통해서 결과로 나타날 뿐이지, 주의 일이라는 것은, 우리가 개입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의 일에 협조도 안 돼요. 주께서 우리를 사용하신다고 해서 주의 일을 했다고 하면 안 됩니다.

제가 비타500을 이렇게 뜯는다고 해서 마신다고 해서 비타500 저한테 공로 있는 게 아니에요. 내가 마시면 마시는 거예요. 마시면 마시는 거지, 아이고, 귀엽게도 내 손에 잡혔구나. 이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무익한 종이라고 했잖아요. 무익한 종이 계속 무익해야 되지, 무익한 종이 쓰임 받는다고 무익한 종이 유익한 종으로 바뀌면, 유익종입니까? 무익한 종은 계속 무익해야 돼요. 왜 갑자기 무익이 유익이 돼버립니까? 나 무익한 종이니까 유익하다. 이게 무슨 귀사대기 맞을 짓이에요. 이게.

무익한 종은 왜 무익할 수밖에 없는 종이냐? 이런 일들을 하면서 왜 무익할 수밖에 없느냐? 그걸 증거하기 위해서 무익한 종이 되는 겁니다. 무익한 종이기 때문에 구원받는 거예요. 만약에 무익에서 유익으로 바뀌면 그거는 버림받은 인간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천국 가는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천국 가는 사람이 예수님보고 하는 말이, 니가 옥에 갇혔을 때 돌아보았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고, 헐벗을 때 옷을 입었다 하니까, 천국 가는 사람이 말하기를 제가 언제 목마를 때 마실 걸 주었습니까? 오늘 비타500 주신 것, 이거 주의 일입니까? 여러분의 일입니다. 마시는 것, 주의 일이에요? 나의 일이에요. 언제 목마를 때 마실 걸 주었고, 벗을 때 돌아보았습니까? 본인도 몰라요. 본인도 못 했다고요.

이게 무슨 뜻이냐? 이런 뜻입니다. 아이참, 예를 들어야 되는데. 제가 이런 예 드는 것은 녹음 듣는 사람은 잘 안 보이겠지만 제가 알기 쉽게 설명하면, 지금 휴지가 이렇게 있습니다. 휴지가 주인한테 집어달라고 아양을 다 떨어요. 휴지를 집으면서 뒷발로 여기 가방을 쳤다 이 말이죠. 친 거예요. 휴지는 내가 이렇게 아양을 떠니까 집었다고 좋아하는데 이건 주의 일도 아니고 엉터리고, 휴지 줍다가 가만있다가 차인 가방은 주님의 종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르는 거예요. 우리는.

제가 언제 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고, 마실 것을 주었습니까? 몰라요. 주께서 하시는데 우리 모르게 해요. 일을. 왜 모르게 하느냐? 그래야 주께 홀로 일한다는 것이 증거되기 위해서. 우리가 예상치도 않은 모르는 일을 해요.

그 예상치도 모르는 일이 뭐냐? 술 먹고 항상 잠자고 백수로 사는데 나중에 구원 되더라 말이죠. 너는 나를 위해서 열심히 했다. 저는 백수였습니다. 너는 충실히 하루 일당 중공업에서 일하고? 저는 직업도 없었는데요. 너는 늘 열심히 일하고? 저는 아무것도 한 것도 없는데요. 봐라. 그러니까 천국갈만 하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는 놀고 있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냥 하나님이 사용하는 도화지입니다. 이제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은 우리 속에 등장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그 두 개를 다 알게 돼요. 그리고 우리는 뱀의 후손일 수밖에 없고, 여자의 후손은 내 육체도 아니고 내 몸도 아니고, 오직 한 분 그리스도 밖에 없는 걸 압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리스도의 한 몸이 그게 확장되어서 우리를 사용했다는 것도 알게 되지요. 그러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자기의 어떤 공로 그런 것을 인하여 자신이 자랑하지 않고 부인하게 되겠지요.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주의 은혜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 말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이 은혜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내일 또 살려주세요. 라고 할 필요는 없다 이 말입니다. 내일 살고 죽고 하는 것은 참새도 내일 떨어질지 모레 떨어질지 모르듯이 우리의 발걸음도 다 아시고 다 세시니까 언젠가 주께서 떨어지게 하시면 우리를 품 안에 제대시켜서 품에 안으실 겁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성질 급해서 자살하지 마시고.

알아서 보내시는데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하고 주의 마음대로 하셨다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번을 생각하지 마시고, 1번.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 도표를 그리고 오늘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또 다음에 한 달이 걸리잖아요. 한 달이 아니다. 한 달 더 걸리네. 다음에 못 할 거잖아요.

자, 이 그림을 다시 그립니다. 예수님 계시고 아버지가 하나님이 계시는데, 두 분 이야기는 창세전의 이야기지, 우리가 없기 전의 이야기기 때문에 우리가 개입이 안 돼요. 우리는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 우리가 뭐, 야곱, 에서 개입할 문제가 아니고, 이미 확정된 사실이고.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피조물들을 해놓고, 그 예수님과 아버지 사이에서 있었던 확정된 두 언약대로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또는 육체에 속한 자와 약속에 속한 자, 그냥 적용시킬 뿐이에요.

우리 피조물들이 예수님의 모형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범죄할 수밖에 없었고, 왜? 먹음직, 보암직, 탐스럽기도 해서 한 번, 두 번 유혹 받았지만 아담이 태어나자마자 따먹자. 이러진 않았을 것 아닙니까? 얼마나 자기 나름대로 참았을 거예요. 주여, 참습니다. 말씀 생각해서 참습니다. 에이, 못 참겠다. 이렇게 되거든요.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따먹음으로 말미암아 선악 위주로 가계부를 써요. 착한 일, 나쁜 일. 그중 예수 믿는 것은 착한 일, 예수 안 믿는 건 나쁜 일. 선악과를 해서 하는데 이것이 점점 더 초조와 불안과 세상을 내 중심으로 보게 된다 말이죠. 그러니까 여기서 다른 예수가 나오고, 가짜 복음이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마저 이것이 가짜고 죄인 줄 깨닫기 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우리에게 집어넣는 겁니다.

넣으면 십자가의 원수가 내가 십자가의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마저 용서하시는 그것마저 용서하는 사랑을 느낄 때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담겨 있는 나는 무익한 종이다. 나는 죄인 중의 괴수다.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면류관은 주님께서 받으셔야 된다. 라는 요한계시록의 고백이 거기서 나온다 이 말이죠. 이럴 때 이 사람은 뭐냐? 예수님의 증인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 이게 끊어져 버리면 기껏 예수 믿어도 누구 증인입니까? 나 잘났다는 나의 증인 밖에 더 되겠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창세전에 있었던 일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보니 모든 것이 주로부터 시작해서 주로 말미암아 주께로 돌아감을 저희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주께서 마음 놓고 저희들을 사용해 주시고 우리가 우리 힘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의 찾아오심으로 그 피로 말미암아 구원이 되었음을 이미 구원되었음을 미리 구원 다 되었음을 주 앞에 자랑하고 세상에 증거할 수 있는 저희들 삼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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