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28: 23-29 (하나님의 묘략)
사 28: 23-29 (하나님의 묘략)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2)
본문 : 이사야 28장 23-29절
제목 : 하나님의 묘략
일시 : 2007년 1월 31일
http://222.231.1.74/~woorich1/성경강해/이사야-2005/073강-사28장,23-29,(하나님의,묘략)-isa070131.hwp
이근호
07-01-31 21:06
하나님의 묘략
2007년 1월 31일 본문 말씀 : 이사야 28:23-29
(사 28:23)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사 28:24)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끊이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그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사 28:25)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소맥을 줄줄이 심으며 대맥을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않겠느냐』
(사 28:26)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으로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사 28:27)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 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사 28:28)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 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사 28:29)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 것이라 그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요즈음 같이 인간들이 부지런히 일하는 세상에서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다 인간의 일함의 결과처럼 이해되곤 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사실은 늘 뒷전으로 밀리기 일 수입니다. 하나님은 그저 하늘 저 높은 곳에서 멀찍이 이 땅의 형편이나 살피고 마지막 때에 심판이나 신나게 치러버리는 분으로 오해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 세상에 개입하시되 그것은 기묘와 광대한 지혜를 가지고 개입하신다고 합니다. 이 기묘한 지혜를 선지자는 농부의 농사법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하고 계심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농사란, 반드시 결실물을 얻지 아니하면 애초에 시작도 안 할 일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친히 농부가 되셔서 세상 일에 개입하셨다는 말은, 마지막 결실물 뿐만 아니라 그 과정까지 일일이 관여하고 계시다는 겁니다. 농부는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파게 됩니다. 하지만 계속 땅만 깊이 파는 일만 일관되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판 흙을 뒤집기도 하고 하고 평평하게 고르기도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온갖 민족들의 운명에 관여할 때에, 마냥 때려 부수기만 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다 적절하고 적당하게 하나님께서 미리 생각하신 바의 정도에 따라 일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이런 원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는 미처 모르기에 항상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자신의 상황이 태평스러울 때는 당연히 그런 혜택을 입을 만하다고 여기다가 막상 역경이 들이닥치게 되면 자신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라고 여겨서 비정상적인 사태인 것처럼 이해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흔히 운이 없다는 소리는 하는데, 처음부터 우리 인간은 운이라는 것을 고대해서는 안될 존재들입니다.
사람들이 나름대로 세상을 대처하고 적응해보겠다고 해서 성경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인정하고 자기 ‘행함’을 동원하는데, 이렇게 되면 성경 전체는 인간이 ‘〜 해야 하는’ 그런 말씀들로 이해될 뿐입니다. 즉 소위 복이라는 것과 저주라는 구분을 인간이 행했느냐 아니 행했느냐로 결정난다고 보는 겁니다.
이것은 잘못입니다. 성경 전체는 주님께서 열심히 일하시는 그 내용에 대해서 소개한 책입니다. 인간의 일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인간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이러 이러하게 일하신다는 것이 말씀의 기초입니다. 인간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환경을 따로 염두에 두고서는 그 복이라고 간주되는 유리한 환경을 위하여 자신이 어떻게 행하며 되느냐를 계산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농부가 따로 있는 마당에서 곡물들인 자기네들이 생각할 사항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소회향, 대회향, 소맥과 대맥과 귀리 등 다섯 가지 종류의 곡물이 나옵니다. 이 곡물을 어디에다 심고 어떻게 경작해야만이 소기의 목적에 달성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농부가 결정하고 사전에 미리 생각할 사항입니다.
농부는 다 생각한 바가 있어서 하나의 작물을 똑같이 모든 장소에 심지 않습니다. 각기 심는 장소가 다 달라야 원하는 작물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도 이와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 편한 것만 생각하고 자기 욕심에 준해서 자기 인생을 평가하게 마련입니다. 저주받은 실패한 인생이라느니, 복받은 성공한 인생이라느니 합니다.
과연 진정 성공한 인생이 무엇이며 실패한 인생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마지막 추수 날을 통해서 밝혀질 것입니다. 성도는 다른 성도의 인생을 모방하거나 뒤따라가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정한 축복이란 각자 성도가 내놓을 수 있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사랑의 증거물입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 피입니다.
어떤 이는 목사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의 피로만 마감되었음을 알게 하고, 어떤 이는 목사가 아닌 다른 인생길을 통해서 십자가의 피만이 제대로 된 사랑의 전부임을 알게 됩니다. 간증 설교의 위험성은 인간들이 남의 인생길을 흉내내도록 유도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행함의 가치를 제공하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셨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간증 설교는 인간의 행함에 강조점을 두게 됩니다. 즉 ‘〜했더니만 〜복을 손에 넣게 되었다’라는 가능성을 선전하는 것이 간증 설교입니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행함대로 흉내를 내게 만듭니다. 그리고서는 어쨌든 결실이 있어야 체면이 서기에 임의대로 하나님의 기도 응답거리도 또 스스로 조작해 냅니다.
엉터리 축복과 간증거리가 유행을 하고 범람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 성취가 되는 십자가 사랑은 한없이 작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참 사랑이 들어오게 되면 인간들의 축복이라고 여기는 모든 것은 다 껍데기요 환각에 불과합니다. 소위 인간들이 자기 힘으로 말씀을 성취했다는 모든 행위들은 참 사랑이신 십자가 피 앞에서 몽땅 ‘자기 의로움’이라는 껍데기로 발각당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농사도 이와마찬가지입니다. 심어놓은 곡물들은 껍데기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는 알곡을 건지기 위함입니다. 알곡과 껍데기를 분리시키는 신약 시대의 최후의 방도는 십자가 복음 밖에 없습니다. 물론 모든 인간에게 비웃음거리 밖에 안되는 기준일 것입니다. 하지만 십자가만 구원을 주는 감추어진 비밀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만약 사람이 자신이 성경 말씀대로 바르게 살아서 복을 얻게 되었다는 간증거리를 품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최종 건지고자 하는 그 알곡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랑이신 십자가 피가 인간의 모든 행함을 죄악된 것으로 폭로시키는 작업을 추수 작업으로 실시하시기 때문입니다.
추수 작업이란 곧 때리는 작업입니다. 그렇게해서 껍데기와 알곡을 분리시키는 작업입니다. 사람마다 십자가가 똑같이 형식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소회향은 탈곡기로 추수하거 도리깨로 추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막대기로 탁탁 터는 방식으로 추수합니다. 대회향은 또 다른 방식으로 추수합니다.
이 모든 것이 아예 알곡조차 박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진정한 알곡을 알곡답게 남게 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바로 이런 데서 인간의 뜻과 다른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가 개입되는 겁니다.
우리는 추수 작업을 통해 십자가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관여되어야 합니다. 모든 인생 실패와 성공을 다 환상으로 드러내게 하는 것은 오직 십자가 피 밖에 없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늘 십자가로서 도리깨질 당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