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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계 11: 4- 9 (두 증인)우리교회요한계시록

계 11: 4- 9 (두 증인)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2)

본문 : 요한계시록11장4-9절
제목 : 두 증인
일시 : 2007년 1월 28일

http://222.231.1.74/~woorich1/성경강해/요한계시록-2006/047강-계11장,4-9,(두,증인)-rev070128.hwp

이근호

07-01-28 13:14

두 증인
2007년 1월 28일 본문 말씀: 요한계시록 11:4-9

(계 11:4)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계 11:5)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계 11:6)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계 11: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계 11:8)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계 11: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성경을 보면서도 하나님에게 우선적으로 관심을 두고 봐야 합니다. 정작 중요한 관심사는 돈 버는데 두면서도 차후에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겠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돈벌게 해주는 기계로 간주하는게 됩니다. 원래 인간은 마음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보면서도 거기서 우상적인 하나님으로 조립해 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점까지 다 아시기에 하나님에게 마음이 우선적으로 쏠려 있지 않는 사람들의 눈을 흐리게 만드는 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성경을 봐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게 되는 겁니다.

성경을 알려면 하나님을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마저 이겨버리는 권세를 받아야 합니다. 이 권세를 받지 않고서는 성경의 모든 말씀에 곡해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 예를 들면, 베드로후서 3:8-9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천년= 하루라면 그러면 500년은 며칠이 되는 겁니까? 반 하루? 12시간? 이렇게 계산하는 법이 아닙니다.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는 말은, 인간들이 늘 세상을 파악하는데 기존 전제가 되는 그 시간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이해하는데는 무용지물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시간관을 준수하지 않습니다. 인간들은 단선적인 시간관을 갖고 있습니다. 마치 한 줄로 쭉 서서 차례차례로 이어지는 시간관만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되면 과거란 일단 현재가 되어버리면 없어지고 사라져 버린 일이 됩니다. 그리고 미래는 비현실적인 것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약속 안에서는 이런 관점을 거부합니다. 인정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사건도 미래 안에 살아있고 미래의 사건과 현재 이미 살아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관계에서 단선적인 시간관으로 이해한다면, 일단 부활이 되고 난 뒤에 십자가 죽으심은 더 이상 쓸모없는 사건으로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선악과 따먹은 사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 안에서는 이런 인간의 시간관을 책망합니다. 그것이 바로 ‘묵시’의 세계입니다. 비록 예수님이 부활되었다 할지라도 십자가 사건은 지금도 여전히 적용되고 일어나고 있는 사건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육을 죽이십니다. 이것은 묵시 세계의 권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인간의 능력에서 나온 고백이 압니다. 사람의 육으로 나온 능력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권세가 임해야만 비로소 나올 수 있는 고백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을 특이한 사람, 혹은 거룩한 사람,. 더 줄여서 성도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이 묵시 세계가 역사 세계를 송두리째 파괴함을 알려주십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통째로 환상과 허상과 가상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마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모세와 엘리야과 더불어 서 있습니다. 그것을 보았던 베드로는 그 누가 뭐래도 그 실제성을 부인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권세라는 겁니다.

이러한 묵시의 실제성은 물질로 되어 있는 성전을 점차 인물들의 집합체로 만들어냅니다. 그 흔적이 바로 두 초대요, 두 감람나무로서의 두 증인입니다. 성전이란 원래 과연 거룩한 하나님께서 속된 인간들 속에 함께 기거가 가능하겠느냐를 보여주는 차원에서 등장한 건물입니다. 따라서 철저하게 거룩의 정도에 따라 뜰과 정원치 차등적으로 공간 구획이 마련됩니다.

성전 안에서 제일 바깥 뜰이, 이방인의 뜰이요, 그 다음이 여인의 뜰이요, 그 다음이 남성들의 뜰이요, 그 사람이 레위지파들의 뜰이요, 그 다음이 제사장들의 뜰이요, 마지막 하나님과 독대하는 공간인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거룩과 속함의 차이를 확연하게 드러내고자 등장한 것인 바로 성전입니다.

그런데 원해 성전 안에는 초대가 하나 뿐인에 신약에서 촛대가 둘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성전의 인격화 작업에서 초대에 담겨 있는 언약 방식의 차이성을 두 가지 다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즉 변화산에서 예수님 앞에는 두 명의 증인이 등장하여 베드로로 대표되는 제자들의 대표단 앞에서 성전의 인격화가 가동되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한 사람이 바로 모세요 다른 사람이 엘리야입니다. 이 두 사람은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과 무려 1400년과 900년이란 시간적 격차를 두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똑똑히 봤습니다. 묵시 안에서는, 다른 말로 말해서 약속 안에서 그런 시간적 격차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권세받은 두 증인의 권세로 행사로 나타나는 특이한 자연변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언을 하는 동안에 하늘이 닫혀서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은 엘리야 때 일이고, 강물이 피가 된 것은 모세 때의 권세 사용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권세 사용이란 인간들에게 역사적 안목으로 세상을 보지 말고 묵시적 안목으로 세상을 보며 살아야 한다는 점을 말씀하기 위함입니다. 예를 들면 막상 비가 오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농사 걱정할 것이고, 농사가 안되면 돈이 안 들어오게 될 것이고, 돈이 안 들어오면 자신들이 사망에 이르게 되겠지요.

하지만 바로 그런 식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자기만의 스케줄, 자기만의 역사, 자기만의 계획이 전혀 하나님에게는 안 통한다는 것입니다. 묵시는 역사를 부수기 위해서 침투했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이 함께 이스라엘에서 나올 때, 하나님의 뜻이 만나라는 형식으로 제공된 그 환경이란 바로 인간의 노동 가치가 완전히 차단된 환경이었습니다.

이것은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먼저 하나님만을 생각해 주기를 바라서입니다. 모세 때의 구원방식은 친히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손목을 끌고 애굽에서 구원하던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 애들의 손목을 붙잡고 나와보면 알지만 애들이 엄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기 생각만 하면서 이것 사다고 저것 사다고 졸라대기 일 수입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새 시대, 새 언약의 시대에서는 하나님의 법이 아예 우리들 마음 안에 새겨버리는 방식으로 구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권세이고, 그 권세가 있는 곳에만 하나님이 계시고, 이런 식으로 하나님과 함께 있는 자가 바로 성도요 성전이요 교회입니다. 로마서 11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을 참 감람나무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이방인으로 접붙여서 생긴 이스라엘을 ‘온 이스라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안에는 권세가 담겨 있습니다. 시간을 초월하고 세상을 허상의 세계로 제대로 볼 줄 아는 자들의 집합이 바로 두 감람나무요 두 초대요 교회입니다. 묵시 안으로 들어오게 된 입구 역할을 하고 마감구 역할을 하는 겁니다. 이로서 성전은 오직 하나님만이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나의 세계라는 것이 따로 존재 할 이유조차 없음을 명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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