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제사장 나라 (레 8:4-9)
레위기 강해 8 이근호http://222.231.1.74/~woorich/성경강해/레위기-1990/(08)영광(레9,22-10,2).MP38. 제사장 나라 (레 8:4-9) 구득영 2002-05-09 11:41:50, 조회 : 273, 추천 : 0
8. 제사장 나라 (레 8:4-9)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을 잠깐 요약해 보면, 보이지 않는 나라에 들어가려고 하면 보이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즉, 믿음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면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자로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항상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돈이라든지, 집,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도 말입니다. 우리가 계속 이런 것에 집착을 하면서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이런 것을 버리는 것이 바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것이요, 이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심판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말입니까? 십자가로서 말입니다. 이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이 죽임을 당한 무섭고도 끔찍한 사형 틀입니다. 성경은 자기의 아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불효 중에서 제일 큰 불효가 무엇입니까? 부모님을 잘 못 모셔서 힘들게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에게 도무지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눈을 감아도, 시간이 아무리 지나가도 더 생생히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 자식의 얼굴을 도무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자식이 부모는 잊어도 부모가 자식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러한 말씀을 드리는 것은, 여러분의 감정을 자극하려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아들을 희생시킨 하나님의 아픔을 알자는 것입니다. 자기 맏아들을 일부러 내어놓는, 그런 하나님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알고 거기에 동참해서 살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아픔으로 여기고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만, 내 주위에, 나에게서 일어나는 일들이 전부가 아니고, 비록 우리가 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죽임을 당한 그 십자가를 기억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바로 내 부모가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내 자식이 죽은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 죽었다고 하는 사실, 이것이 가장 크고 충격적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식의 죽음을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보다 더 크게 여기고 슬퍼하는 것이 인간인지라 할 수 없다고 할지 몰라도, 그러나 과연 그러한 마음으로 천국에서 살 수 있을지 한번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분이 있었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다가 그만 자식이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그래서 교회에 잘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 슬픈 마음이야 이해가 되지만, 그러한 일로 온 교회가 웅성웅성 거리고,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저렇게 신앙 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어떻게 자식이 저렇게 될 수가 있을까?" 라고 수군거리고, 결국 시험에 들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평소에 신앙 생활을 하면서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 일로 시험에 든 집사도 문제이고, 수군거리는 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식보다 하나님을, 예수님을 우선적으로 여기고, 자식을 위로는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한 자식으로 여기고 살았다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데리고 가셨으면, 그런 줄 알아야지 어떻게 하나님에게 항변을 할 수가 있습니까?
물론 저도 그러한 일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을지 몰라도,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것이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자식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대하면서, 먼저 나는 하나님보다 나를 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알고 시작해야 됩니다. 나도 뭔가 할 수 있다고, 자기 자신에게 기대를 걸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다 삐뚤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말씀을 봐도 희한하게 꼭 그런 것만 골라서 보고, 그래서 말씀을 오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설교 시간마다 강조를 합니다만, 눈에 보이는 것을 믿으면 망하고,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가 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오히려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고, 헛깨비, 즉, 신기루와 같은 것입니다. 세상의 참 모습은 정말 현실이 무엇인지를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성경 속에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만이 이 세상을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성경은 과연 어떤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잘못된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어떤 특별한 장치를 해 두셨는데, 그것이 바로 "제사장 나라" 라는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 라고 하니까, 어떻게 좀 이상합니까? "아니 목사님, 하나님 나라이면 하나님 나라이고, 예수님 나라이면 예수님의 나라이고, 그리고 하늘 나라이면 하늘 나라이지, 도대체 이 제사장 나라는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다.
"제사장 나라" 라고 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백성들 중에 한 사람을 뽑아서 제사장으로 세우고, 그 제사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나라가 바로 제사장 나라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아주 특별한 나라이지요.
한 사람이 잘되면, 다른 사람들도, 아니 온 나라가 덩달아 다같이 잘되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는 방법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사장 나라의 백성들은 오직 한 가지만을 생각하면 됩니다. 즉, 바로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염두에 둘 필요도 없고, 오직 제사장만을 바라보고, "나도 저 제사장을 본 받아 살아가야 되겠다" 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해마다 대학 입시가 다가오고, 취직 시험이 다가오면 부모들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이여, 이번 시험에 합격하게 해주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참으로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간혹 어떤 목사들은 이러한 것을 두고 책망을 합니다. "왜, 하늘의 것에 소망을 두고 기도하지 않고, 그런 이 세상적인 문제를 가지고 기도를 하느냐" 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교인들은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아니 목사님, 우리는 믿음이 적어서, 그래도 자식을 위해서 그런 기도를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칭찬은 못해줄 망정, 그렇게 야단을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라고 마음속으로 항변을 합니다. 예, 마음속으로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 나라에 속한 자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제사장 나라의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세상 나라가 아니고 제사장 나라의 원리에 맞게 살아가야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기도를 할 때도, 무조건 합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한다면, "붙을 때도 제사장처럼, 떨어질 때도 제사장처럼 떨어지게만 하옵소서!" 라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시험에 걸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사장의 모습을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제사장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렇게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어떤 다른 것들을 집어넣지를 마시기 바랍니다. 불순물들입니다. 온전히 주님의 것만 가지고 있어야 되지, 우리의 것이 그 속에 들어가면 불량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직 예수님의 마음만, 그 마음만을 품어야만 우리가 구원을 받지, 다른 마음은 결코 하나님께서 용납하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만이 하나님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라고 하니까, 제사장만 혼자서 일을 다하고 그 백성들은 먹고 노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이 뭔가를 하면 백성들이 그 일을 보고서 본 받아 그렇게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즉, 제사장의 마음가짐을 내 마음가짐으로 받아 드리고, 그 분의 삶을 나의 삶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사장, 그 한 사람이 제대로 함으로 말미암아서, 그분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자들도 덩달아 함께 잘 되는, 구원받는 나라가 바로 제사장 나라이고, 이것이 기독교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서 우리도 모두가 잘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 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제사장 나라는 세상 나라와는 완전히 구별되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나라에는 이렇게 본받을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정말 제대로 된 분, 한 분 필요한데 그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본 받고 배울만한 사람이 없다고 슬퍼하지를 마시기 바랍니다. 원래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죄인입니다. 세상을 오래 살면 살수록 죄만 더 짓지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에게 믿는 자로서 믿음의 본을 보일 수 있는 모습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처음부터 사람에게 기대를 걸고 살아서는 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고, 사실 무너질 수밖에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 전서 2장 9절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전 2:9上)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바로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제사장인줄 알았는데,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완전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제사장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목사를 두고 제사장이라고 하는데, 물론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목사든, 집사든, 평신도든, 모두 제사장이기에 말입니다. 그러나 목사를 제사장이라고 하는 그 정신은 틀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사가 교인과 하나님을 연결해 주는 그런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기에 말입니다. 그것은 목사가 아니고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하고, 성찬식을 거행하고, 세례를 준다고, 목사가 제사장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말씀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목사가 그런 일을 하기에 제사장이 아니고, 말씀에 순종한다면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온전한 제사장이신 예수님, 그리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가는 집사님, 장로님, 주일학생, 오직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가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택한 자가 말씀에 순종하는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지 아니하면 말씀에 어떻게 순종하며 살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이 되는 "제사장 임직식"이 나옵니다. 아론과 아들들이 최초의 제사장이 되는데,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들을 제사장으로 택하셔서 어떻게 하십니까?
6절 이하에 보면, 이들을 깨끗하게 물로 목욕을 시키고, 옷을 입히는데 어떤 옷인고 하니 다음과 같습니다. 7, 8, 9절입니다.
(레 8:7) 아론에게 속옷을 입히며 띠를 띠우고 겉옷을 입히며 에봇을 더하고 에봇의 기묘하게 짠 띠를 띠워서 에봇을 몸에 매고(레 8:8) 흉패를 붙이고 흉패에 우림과 둠밈을 넣고(레 8:9)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관 위 전면에 금패를 붙이니 곧 거룩한 관이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더라
다시 말해서, 최고로 좋은 옷을 입히는 것입니다. 온 옷에 금을 붙여 가지고 도저히 이 세상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옷을 입히게 하는 것입니다. 또 머리에는 금패를 붙인 관을, 즉, 모자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좋은 옷을 입고, 금이 붙은 모자를 쓰고 제사장이 어떤 일을 합니까? 제일 좋은 일을 합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하는 일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백성들이 짐승을 잡아오면 제단이 피를 뿌려야 되지요, 그 짐승을 제단불을 피워서, 거기서 태워야 하지요. 또 목숨걸고 지성소에 가서 일을 해야 되지요. 그리고 재산은 한 푼도 없이 빈 털털이로 한 평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코 좋은 일을, 멋있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하기를 싫어하는,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그리고 전혀 돈이 안 되는 일을 제사장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생각에는 더럽고 지저분한 일을 하면 거기에 맞는 옷을 입고, 멋있는 일을 하면 거기에 맞게 좋은 옷을 입어야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과는 정 반대로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일이 좋아서 그렇게 비싸고 멋있는 옷을 입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일은 너무나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하기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남의 죄에 관여해서, 그것을 재판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죄로 여기고 끙끙거리면서 제사를 준비하고 드려야 하는 이 제사장의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이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사장은 "대신하는 아픔"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잘못을 자기가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러나 남의 잘못을 자기 것으로 여기고서 감당을 하는, 즉, 제사 드리는 그 아픔을 제사장이 간직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한 평생을 말입니다.
아마 우리보고 그렇게 살라고 하면, 우리는 억울하다고, 나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고 변명하고 난리를 피울지도 모릅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도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오리발을 내미는 것이 세상이고, 우리의 모습인데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누가 제사장입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우리가 그 제사장 일을 할만한 능력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제사장으로, 나의 죄 뿐만 아니라, 남의 잘못도 나의 것으로 여기고, 제사 드리며, 회개하며 살아갈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성령으로 그렇게 인도하십니다. 그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들은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은 순종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안에서,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