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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3. 소제(素祭) (레 2:1-3)성경레위기

3. 소제(素祭) (레 2:1-3)

이름 : 우리교회(IP:122.47.57.66)

레위기 강해 3 이근호

3. 소제(素祭) (레2:1-3)
구득영 2002-05-08 09:15:19, 조회 : 155, 추천 : 0

3. 소제(素祭) (레 2:1-3)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기록된 정말 거룩한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한 말씀이 이 세상은 거룩하지 못하니까, 세상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아니고, 성경 말씀은 우리가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같이 느끼고 경험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하는 아픔과 슬픔과 기쁨과 즐거움이 모두 다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책이, 세상의 일반적인 책들과 인간이 만든 책과 다른 점은, 세상 책은 세상적인 것들을, 즉, 우리가 살아가는 이 모습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조금 잘못된 것은 고쳐서 바로 하면 다같이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책은 이러한 세상적인 것들을 일일이 열거하면서도,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하나씩, 하나씩 모든 것이 다 문제가 있음을, 틀렸음을 지적해 준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틀렸는가 하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우리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되겠습니까? 이 세상을 떠나라는 것이 아닙니다. 집단 자살을 하는 사이비 종교가 되어서는 안 되고, 같이 세상 사람들에게 섞여서 살면서도, 이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서, 또 이웃에게 이 사실을 전해 주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을 의지하지를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사랑과 자비를 의지하고, 그리고 믿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만을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성경책이 너무 세상적이라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만들어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세상적인 내용들이, 그 중에서도 도덕적으로 타락된 내용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노아가 술을 마시고 취해서 벌거벗고 잠을 잔 이야기라든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자 자기의 후손을 낳기 위해서 자기의 딸과 동침한 사건이라든지, 또 유다가 자기 며느리를 범한 사건이라든지, 어쨌던 이러한 반인륜적인 사건들이 어떻게 성경에 기록될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왜 이런 이야기들이 필요합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 어떠한 가를 제대로 가르쳐 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너희들의 모습이다. 이래도 큰 소리 칠 것인가?" 라고 하나님께서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이면 처음부터 대단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가 완전히 죽고 들어갑니다. 그래서 "아니, 어떻게 노아가 그런 일을 어떻게 유다의 며느리가 저런 일을? 아니 다윗이 여자를 범하고, 그 남편을 죽을 수가?" 라고 하면서, 도저히 이해를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서도 그런 것은 생각을 하지 않고, 덮어 버리고 그냥 지나갑니다. 그리고는 참 좋아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만을 기억하려 합니다. 그래서 시편 같은 것을 자주 읽습니다. 물론 그런 마음으로 시편을 읽으면, 이 시편도 오해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그러나 성경은 아름답고 거룩한 일들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추악하고 더럽고, 전혀 있을 수 없는 일들을 기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래야 이세상의 모습이 고발되고, 하나님의 심판이 그래서 이 세상에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에 기록된 그러한 끔찍한 사건들이, 또 사사기에 기록된, 같은 이스라엘끼리도 여자를 함부로 겁탈하고, 그것 때문에 서로를 죽이는 복수혈전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실 성경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인간의 죄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특히, 구약은 말입니다. 얼마나 더러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참담한 모습이, 오늘 이 세상에는 없습니까? 지금은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던가요? 다 밝혀지지 않아서 그렇지, 가면 갈수록 끔찍해 지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앞으로는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창녀촌에다 팔아먹는 것은 뉴스거리가 안 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이 일어나니까 말입니다. 뉴스에는 많이 일어나는 사건은 더 이상 다루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들의 가장 끔찍한 죄악은 어디서 발생했습니까?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여기서 인간은 완전히 자기의 모습을,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마귀임을 드러내놓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아니,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베드로는 그렇게 죽지 말아달라고 예수님께 부탁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러한 베드로를 보시고, 사탄이라고 책망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마저 죽일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을, 이 세상의 죄로 물든 모습을 성경이 분명히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세상이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이고, 우리가 바로 예수님을 죽였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에 전혀 태어나지도 아니했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성경을 안 믿습니다. 어떻게 믿습니까? 아니, 무슨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 믿든지 말든지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이야기는 처음부터 도무지 말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번 믿으려고 해보아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내용이 너무 황당무개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같이 이 세상을 살아갈지라도 이 세상이 어떠한 곳인지를 제대로 알고, 또 우리 자신도 얼마나 제일 인가를 깨닫고, 그러한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하면서, 생명을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은 "주, 예수"를 믿으라고 했지, 교회를 믿으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라는, 너무나도 확실한 말씀이 아닙니까?

그런데 요즘은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보다는 교회를 믿습니다. 그러면 혹 여러분 중에, "주님의 몸 교회이니까, 주님을 믿는 것이나 교회를 믿는 것이나 같은 말이 아닙니까?" 라고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주님의 몸인 교회를 믿고 의지하는 것은 좋습니다. 이것을 교제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서 서로 서로 의지하고 나누고 섬기면서 살아가는 것이 교회의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 시간 분명히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아니라, 조직화되고 제도화된 교회, 하늘나라에 속한 영원한 예루살렘을 향하는 교회가 아니고, 이 세상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그래서 권력화 되고, 그래서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에 속한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혼동해서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교회와 이 세상에서 말하는 교회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달라도 너무나 다르고, 아니 사실 세상의 교회는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십자가를 걸어 놓는다고 해서,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다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간판만 십자가이고, 예수를 믿는다고 말만하지, 그 속에 들어가 보면 예수님이 아니라, 사람을 믿고서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아니라 인간들의 노력과 행위와 자기 자랑이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 교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거기에 무엇을 보태려고 합니다. 좋은 건물, 많은 교인 수, 넓은 주차장 등등, 왜 이런 것들에 왜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모든 헌금을 다 쏟아 부을 만큼 필요합니까? 정말로 주님의 몸이라면,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적인 교회에는 온갖 인간들의 아이디어들이 다 등장합니다. 제자훈련, 100일 기도회, 총동원주일, 한끼 금식하기 운동 등등, 이 세상적인 방법들이 다 동원되어 교회를 키워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주님의 몸이고, 그래서 완전하고 충만하다고 생각하면, 이런 방법들이 동원되지 않습니다. 이런 방법들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 자기 회사를 한번 크게 키워보려고 하는, 이 세상적인 사고 방식이지, 교회의 모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무슨 회사입니까? 왜, 예수라고 하는 상품을 다단계 판매방식으로 팔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소위 서울에서 크다고, 잘 나간다고 소문난 교회들, 거기의 목사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대부분이 사업을 하다가 그만두고서 목회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신학을 해도 사고방식이 세상적인 사람은 할 수가 없습니다만. 세상과 교회를 구별하지 못하고, 교회가 무슨 기업체라도 되는 줄 알고 정신을 못 차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 보니까, 반응이 좋습니다. 사람들이 자꾸 모이고, 성장이 되고, 주위서도 능력 있는 목회자라고 칭찬도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유혹거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귀의 시험을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방법은 교묘합니다.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를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시험을 하지 않았습니까?

교인수가 늘어나면, 하나님의 은혜로 알면 되는데, 겉으로 말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은 하지만, 그러나 속으로는 자기가 능력이 있으니까, 제자훈련을 시키고, 전도훈련을 시키니까 되더라는, 그런 무서운 교만함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인 율법적인 사고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율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어야 하는데, 또 다시 과거의 옛 남편인 율법으로 돌아가서, 유대인들과 꼭 같은 모습으로, 자기의 행위를 자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교회니까 이런 말을 합니다만, 밖에 나가서 이런 소리를 하면, 자기가 있는 교회가 부흥이 안 되니까,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서 한다고 말밖에 듣지를 않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용기가 없어서 밖에서는 제대로 하지도 못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는 아니라, 하나의 가능성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입니다. 너무나 분명한 것입니다. 이런 교회는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인간의 욕심이 자리잡고 있는,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인간의 영광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말입니다.

성경에서 교회가 아니라면, 그것은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뿐입니다. 간판에 '예수'라는 글자를 써 붙이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예수님의 마음을 담고, 오직 그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야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담은 사람들이, 즉,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모여서 교회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물이 아니고 주님의 몸이고, 그 몸만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라는 것입니다. 너무 분명하지 않습니까?

지난 금요일에 장로님 댁에서 구역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는 어디가 교회입니까? 바로, 모인 그 장소가 교회입니다. 교회는 모여야 교회이지,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은 교회가 아닙니다. 알맹이가 중요한 것이지, 껍데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모여도 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오는데, 누구의 집으로 옵니까? 자기 집입니다. 왜 자기 집으로 옵니까? 그 집이 백 평 짜리 빌라라서, 아니면 좋은 장난감이 있어서, 아닌 것입니다. 그 집에는 자기 부모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허름하고, 한 평 짜리 집이라도, 단칸방이라도 오는 것입니다. 집이 자기 집 되는 것은, 바로 자기 부모가,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합니까? 좋은 건물, 아늑한 실내 공간, 넓은 주차장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정신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 사람들이, 마치 그 아이가 자기 엄마, 아빠 때문에 집으로 오듯이 그렇게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의 마음을 간직하는 것, 그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건물이, 주차장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중요한 가를 알고, 건물을 짓든지, 주차장을 넓히자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멋있는 건물과 넓은 주차장으로 교인들을 유혹하려는 정말 교회 같지도 않은 교회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교인 쟁탈전을 벌이는 것이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곳에 골라서 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고 말입니다. 헌금에 부담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성장하는 교회들이 주로, 새로 신도시를 만드는데 집중되어 있는데, 한국 교회 전체 교인 수는 그대로인데, 그런데 그러한 교회들이 성장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교인들이 교회를 옮긴 것에 불과한 것이지, 그것이 무슨 부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편에서 보면, 오른 쪽 호주머니에 있던 것을 왼쪽 호주머니로 옮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진 것은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오직 그분만이 생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그 누구도 우리에게 영생을 주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교회라는 말만 나오면, 사람들이 하도 교회에 대해서 많은 오해를 하니까, 저도 모르게 흥분을 합니다.

오늘 본문 레위기를 보면, 이러한 예수님을 만나는 모습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번제" 라고 하는 제사에 대해서 설교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 일단 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죽지 아니하고서는 하나님께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짐승에 안수해서 나와 한 몸을 만들고, 그리고 짐승을 죽여서 또 조각, 조각을 내어서, 하나님께 태워 드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하나님!" 하기 앞서서, 하나님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어떠함을, 즉, 우리가 그 앞에서 죽을 수밖에 없고, 불에 태워질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러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푸셔서 살려 주셔야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기에 앞서, 그 사랑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무서움을, 심판을 우리는 먼저 기억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바라고 또 바라고, 그래서 그 베풀어 주님에, 은혜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범사에 감사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여러가지 제사 중에서 두 번째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소제" 입니다. 이 소제는 청소한다는 그런 의미의 소제가 아니고, 여기서 소제는 곡식의 낱말들을 의미하는 이삭이라는 의미의 "소(素)" 자입니다. 물론 제사의 "제(際)" 자입니다.

그러므로 소제라고 하는 것은 동물이 아니라,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즉, 식물성(?) 제사입니다. 제사에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이렇게 다섯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 이 소제가 유일하게 식물로, 곡식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제사의 종류가 다른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제사들 중에서 오늘은 소제라는 제사를 살펴보고자 하는데, 이 소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것도 아주 재빨리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슬로비디오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확실히 보라는 것입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말입니다.

레위기 2장 1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레 2:1)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 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여기에 곡식이 나오는데, 어떤 곡식인고 하니까, 그냥 타작도 아니한 곡식을 그대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방앗간에 가지고 가서 찧어서 고운 가루로 만들어 바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밀가루같이 완전한 가루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짐승을 드리는 제사와 같이, 여기서 곡식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아닙니까? 번제를 드릴 때에 짐승을 잡고 나누어 깨끗하게 씻고 하듯이, 이 곡식도 찧고, 찧고 또 찧어서 가루로 만들어 라는 것입니다. 즉, 자기 자신을 부수고, 부수고 또 부수어서 가루로 만들어 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루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물을 드리는 사람은 이 부수어지는, 가루가 되는 곡식을 보면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운 가루"로 만들어서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고운 가루만 바치느냐 하면, 물론 그렇게 바쳐도 됩니다만, 또 이 가루를 불에 구워서 무교병으로 만들어 바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무교병이 무엇이지 확실히 아십니까? 저는 이 레위기에 나오는 '무교병' 이 무슨 말인지 신학교에 가서야 알았습니다. 무척 어렵잖아요. '무교병'이라는 단어 자체가 말입니다.

이 무교병이라고 하는 것은, 잘 들어보세요. '무' 자는 없을 '무(無)' 자이고, 그리고 '교' 자는 '효' 로도 발음을 할 수 있는 것인데, '효모' 할 때의 그 '효'자로서, '교' 라고도 발음을 합니다. 즉, 효모, 누룩, 이스트라는 의미의 '교(酵)' 자이고, 병은 떡 '병(餠)' 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누룩이 들어있지 않은 떡' 이라는 의미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이스트가 없는 빵' 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밀가루로 만든 것은 떡이 아니라 빵이기에 말입니다.

그러면 누룩이 없는 떡이 어떠하다는 것입니까? 한 마디로 맛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평소에는 누룩을 넣어서 맛있는 떡을 먹지만, 제사를 드릴 때는 맛없는 떡을 만들어 바치라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이 맛있는 것을 드셔야지, 왜 이렇게 맛이 없는 떡을 바치라고 할까?" 라고 의문이 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스트가 들지 않은, 딱딱한, 이빨이 부르질 듯한 떡을 드셔보셨습니까? 아마, 못 드셔보셨을 것입니다.

이런 떡은, 빵은 요즘 안 만듭니다. 이 떡은 우리의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맛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떡을, 맛없는 무교병을 다른 말로, "고난의 떡" 이라고도 합니다. 왜냐하면, "아, 인생이란 이런 것이구나, 고난이구나, 재미있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대 없는 인생은 앙코 없는 찐빵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이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누룩 없는 빵" 이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죽도록 광야에서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제대로 알아 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천국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이렇게 예배를 드릴 때는 어떤 모습이 있어야 합니까? 이 세상에서 재미있기 살다가, 즐기다가, "참, 오늘이 주일이지, 교회에 가야 되겠지" 라는 것이 아니라, "이 더러운 세상, 남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제대로 살 수 없는, 떡 같은, 누룩 없는 떡 같은 세상, 이것 좀 빨리 안 지나가나. 그래야 빨리 천국에 갈 건데" 라는 마음가짐으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하나님이여, 저는 이 세상에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빨리 데려가 주이소!" 라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네가 할 일이 있다. 너무 조급하게 굴지 말고 내가 부를 때 오너라. 그리고 내가 보내준 성령님이 있지 않느냐. 그 성령님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서, 괴로운 세상이지만 때가 되어서 올라오너라" 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뭐라고 하면 됩니까? 그것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바로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한 말이 너무 지나치고 극단적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훨씬 더 극단적이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세상, 여기에서 우리가 무슨 행복을 누리겠다는 것입니까?

결코 이 세상은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제공해 줄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그런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마귀의 유혹이라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에게 접근해서 한 유혹처럼 말입니다.

오직 이 시간, 우리는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주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날마다 소제의 제사를, 자기 자신을 마치 밀가루로 만들어 드리는, 그런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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