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성장주의의 이단성
교회 성장주의의 이단성Ⅰ. 서론만약에 신학에도 수준 낮은 것과 수준 높은 것이 있다고 한다면 어떤 것이 수준이 낮으며 어떤 것이 수준 높은 것일까?수준 낮은 것은 인간이 어떻게 하면 구원 얻고 예수님은 누구이시냐를 밝히는 것들이고 이제 구원받은 성도가 어떤 식으로 살면 세상에서도 여유를 가지고 풍족가운데 살며 어떻게 행정할 것이며 어떤식으로 하면 부흥되느냐를 연구한 것이 수준이 높은 것일까?무신학적이고 비 신학적인 것이 항상 용감한 얼굴로 등장되는 일들은 이제 그만 일어났으면 좋겠다. 무신학과 비 신학적인 발언들이 사람들을 망하게 하는 데만 도움을 주어 왔지 결코 바람직한 일을 주지 못하고 있다. 물론 무지가 가져다 준 용감성은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고 있지만.본 글은 교회 성장학이 이단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쓰여진 글이다. 틀에 박힌 교리 몇 개에 이단의 정체가 드러나 질 않는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그들의 열매이다. 그들이 무엇을 추구하는가? 그들이 추구한 것은 인격이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그 인격을 대신 해 줄 사업체의 번창이었다. 교회라는 간판을 앞에다 걸고 노골적으로 시도하는 종교 사업체의 번창이다. 많은 교인들이 타의와 자의에 의해 함께 손잡고 그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의 인격을 대신해 줄 그곳에 그들은 몸부림치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기도도 하며 순교까지 각오한다. 이것은 이단의 본색이다.Ⅱ. 본론1. '복음 이용하기' 수법의 비 정당성교회 성장주의의 가장 큰 취약점은 성경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그들이 잘 쓰는 구호를 한 번 들어보자.하나님이 불러서 모이게 된 단체가 교회이다. 따라서 교회가 할 일은 이제 흩어져 복음을 전파하는 것뿐이다. 모여서는 예배하지만 끝나서는 흩어져 복음 전하자! 어떤 방식으로 전도를 막는 것은 마귀이다. 이 전도를 위해 교육받아야 하고 그 교육을 위해서는 또한 교회 내에서 봉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회의 할 일은 예배와 교육과 봉사와 전도(선교)인데 이 모든 일의 최종 목표는 오직 복음 전파에 있다. 이 전도가 바로 주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분부한 명령이다 는 것이다.과연 위의 주장이 성경 상으로 옳은 말인가?복음을 전한다고 했는데 그 전달되는 복음 자체가 위와 같은 주장을 포함하고 있다는 말인가? 아니다. 복음의 핵심은 교회 조직 그 자체의 팽창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조직원 한사람 한사람이 그리고 그 관계가 예수님의 모습을 가지는데 있다. 결코 예배한 그 조직 자체의 확장이 전도가 아니다.이렇게 이야기했을 때 성장주의자들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도 인격의 도야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주님의 형상을 닮는 것이 복음인 바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점을 무엇보다도 유념하면서 교육시켜 복음 전선에 보낸다' 고 이야기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성경에서는 바로 이런 주장이 마귀들이 주장하는 것이라고 이미 언급하고 있다. 목적인 복음 전파(교세 확장)의 수단으로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형상 회복 운운은 그 자체로서 이미 성경에 그래서는 아니된다고 하는 지시와 맞아떨어진다.성장주의자들은 두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즉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야 하고 또 나가서는 복음을 전파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그들은 교세 확장을 하나님의 나라확장과 동일한 모습인 줄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개인의 성전 됨과 교세 확장을 노리는 염원은 서로 배치되고 하나가 다른 하나를 추방하도록 되어 있지 동반적으로 공동의 목표로 자리 잡지 못하게 되어 있다.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처럼 둘 다를 목표로 삼을 수 있다는 발상 자체를 성경에서는 죄악으로 부정하고 있다.성경에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의미는 교회 성장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교세 확장의 의미가 아니다. 복음을 받는 입장에서 그들은 이미 새로운 우상들을 안고 있다. 그들은 복음을 받기 전에 갖고 있는 그 우상의 속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확장이나 번창 발전 이 자체를 목표로 삼고 그 어떤 종교적 품성도 그 목표에 부합되도록 적용시키는 교리를 만들고 있다. 곧 자기가 기획하고 자기가 참여한 일이 도중에 흐지부지 됨이 없이 큰 성공을 가져다주기를 염원하고 무슨 선하다고 간주되는 일을 여기다가 다 적용시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상태가 성경상에서 볼 때 메시야를 죽이는데 까지 몰아넣은 그 마귀의식이요 예수님이 다가와서 심판해야 되는 원인을 제공해 준다.성경은 전도나 선교가 교회의 목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교회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머리되시는 주님까지 자라는데 있다. 이 목표를 위해 복음 전하는 자나 목사나 교사를 주었는데 교육이나 전도가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되지를 못한다. 목사가 된 것 자체가 구원의 목표에 도달된 것이 아니다. 이제 그 과정에 투입된 것이다.교회가 머리되시는 그리스도까지 자라난다는 말은 결코 수의 증가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교회성장주의자들은 이러한 진리를 안다고 주장하지만 이 진리에다가 그들의 탐욕에서 나온 행정 기술을 더 보탬으로서 진리 됨을 스스로 무산시키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 복음은 진리가 부족함이 없다. 더 보태거나 뺀다는 것 그 자체가 복음을 다치게 만든다. 다치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이 비 복음화되고 구원과도 상관없고 주님의 명령과도 상관없는 사이비 이단으로 전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는 복음을 교회 성장의 수단으로 사용했지 목표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면 복음의 핵심이 무엇이기에 교회성장 이론을 배타하는가?2. 복음의 내용복음의 내용은 한 마디로 말해서 '약속'이다. 그래서 이 '약속'과 어긋난 것은 복음이 아니다.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약속' 하기를 '교회는 커야 된다.'든지 아니면 '교회는 많아야 구원받는다' 같은 것이 들어 있으면 교회 성장주의자들의 주장은 무조건 맞는 주장이다. 그러나 실제 '약속'은 그렇지 않다. 무엇이라고 되어 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것이 약속을 종합한 말이 아닌가? 여기 어디에 교회를 키우라고 했는가? 약속이 아닌 것을 마치 약속인 것처럼 호도하여 민중들을 가르치는 것은 예수님의 머리됨을 거부한 교회이다. 곧 교회 되기를 포기한 이단들이다. 교회라고 할 수 없다.그러면 성경에 언급되는 전도나 선교의 의미는 무엇인가?3. 성경에서 말하는 전도성경에서 말하는 전도는 교회 성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모든 진리는 '약속'에서 야기되어야 마땅하다. '약속'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약속이 아닌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도 그 '약속'의 성취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전도를 사랑하기에 하는 것이고 또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도가 목적이 아니라 전도할 만큼 사랑하는 인간들의 모임이 되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그러나 성장주의자들은 사랑에 목표점을 두지 않는다. 사랑도 교회를 키우지 못할 경우에는 취소하거나 내버려두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웃을 사랑하면서 전도하라고 외친다. 그러나 그들은 은근히 그런 식으로 해서 자기가 속한 교회가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사랑 행위 그 자체가 기쁨이요 평안이요 행복이 되지 못하고 자기네들의 땀의 대가가 눈에 분명히 드러날 때 웃음을 보인다. 그것이 성장이라는 우상 덩어리인 줄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 우상으로 해서 진정 사랑을 외치는 주의 지체들이 소외되고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안중에 없다.그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간다. 사랑과 희생 없이도 쉽게 교회가 성장되는 방도를 찾아다닌다. 드디어 이단의 본색이 폭로되는 순간이다.복음은 거추장스럽다. 복음의 고발과 심판과 비판의 기능은 뒤로 돌려 제거해 버린다. 교회라는 새로운 우상에 거침이 되기 때문이다. 일반 판촉 사업에서 등장되는 모든 술수와 판매술이 거침없이 환영받으면서 교회로 흘려 들어온다. 아! 과연 이런 장사치를 주께서 진정한 교회의 감독자로 세웠다고 볼 수 있을까? 영혼을 매매하는 이런 장사치를 후려치는 주님의 회초리가 언제쯤 떨어질까?Ⅲ. 결론이상의 말을 보고 교회 성장주의 이단들은 한결같이 말하기를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를 무엇 때문에 주장하느냐고 할 것이다.그들은 주장하기를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지만 복음의 전달방법은 일반 계시적으로 우리들이 융통성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이왕이면 이와 같은 좋은 복음을 보다 많이 전하는 것이 어찌해서 주님의 명령에 어긋나는 것이냐고 반문하기 바쁘다.그들의 무지 됨은 복음이 무엇이냐 뿐만 아니라 복음이 전달될 때는 어떤 점을 조심해야하며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성경이 안 가르쳐 주었다는 사고방식이다. 뿐만아니라 설사 성경에서 복음이 전달되는 방법조차 가르쳐 주었다 할지라도 거부할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 방법대로한다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복음 전했다는 공로의 대가를 지금 이 지상에서 얻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명백히 이러한 비 희생정신을 정죄하니 성경에서 알려주는 방법을 취할 리가 없다. 자기만 손해볼 수 없다는 취지에서 하나님께 양해를 구해보는 것이 바로 일반 계시적인 세상적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이다. 즉 사업식으로.놀라운 사실은 주님은 이점까지 이미 간파하시고 있었다.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는 그 자체가 어떤 본인에게 가치도 없다는 것이다.(마태복음 7:2223) 가롯유다도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추방했었다. 교회성장주의자들이 과연 복음을 안다고 할 수 있는가? 안다면 그런 주장이 서슴없이 입에서 흘러나올 수 있는가?이단들이 교회 내에서 어른 행세하고 세력을 확장해 나갈 때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일반 대중이다. 그들은 교회인 것을 교회 아니라고 추방하러 들기 때문이요 교회 아닌 것을 가지고 정통 교회라고 우기기 때문이다.영혼 매매에 눈이 멀어서 활동하는 그런 무리들의 집단을 과연 성경에서 소개하는 교회인가? 주님께서 요한계시록 7교회를 향한 충고에서 이런 집단을 교회라고 봐주고 있는가? 만약 이런 이단 집단들이 비록 한국교회의 대부분이라는 이유만으로 과연 우리들도 그들을 교회라고 인정해 주어야 하는가?오히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충고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