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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겨울수련회 강의 녹취 5번자유게시판고린도전서

겨울수련회 강의 녹취 5번

이름 : 한윤범(IP:61.73.49.79)

20070109e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강의:이근호 목사)

하나님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일단 다행스럽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율법이 공격하는 것은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성도를 못 살게 구는 게 아니고, 성도야, 네가 네 쪽에서 붙들지 않더라도 괜찮은 신분이 되었다는 겁니다. 기쁨이죠. 그래야 기쁜 소식이 되는 겁니다. 내가 뭔가 붙들거나 뭔가 실천하거나 뭔가 행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는 그러한 신분이 되었다. 라는 것에 대해서 그걸 반가이 기뻐하라 이 말입니다.

사도 바울 같은 경우에 사도 바울이 뭔가 주춤주춤하는 게 없어요. 사도 바울의 글들을 보면 뭐 조바심을 낸다든지 자기 구원의 겁을 낸다든지 이런 것이 없고 꽉꽉 자신 만만하게 쫙쫙 미는 게 있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정도냐? 비록 내가 약한다 할지라도 상관없는 이야기다. 내가 약할 지라도 나의 구원이 취소되거나 이렇게 포기되는 게 없고, 나는 지금 마음껏 내 할 일을 다 할 수 있는 형편에 놓여 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형편에 내가 놓여 있다 이렇게 합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 하는데. 우리가 로마서에서 이런 사도 바울의 이런 자유분방함을 우리가 같이 동참을 해야 됩니다.

다시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을 공격한다는 잊지 맙시다. 우리가 붙잡으려는 것을 공격하는 거예요. 만약에 우리가 돈을 붙잡으면 돈을 공격하고, 우리가 학력을 붙잡으면 학력을 공격하고, 우리가 세상을 붙들면 세상을 공격하는 겁니다.

우리가 미워서가 아니라 붙들 필요 없는 걸 붙들 필요조차도 없는 그런 신분인데 너가 그걸 괜히 붙들어서 그것에 다시 종노릇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이야기지요. 사람이 뭐 붙들게 되면 뭐가 쌓이느냐 하면, 업적이 쌓입니다. 세상적으로 이야기하면 성과급이 쌓이죠. 업적 성과급이 쌓이기 때문에 한번 쌓인 것은 소유화되기 때문에 이걸 다시 버리기가 참 힘들어요. 과거에 이렇게 잘나갔다 하는 것은 버리기가 참 힘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업적과 성과급을 계속 공격합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내가 붙들 수 있는 업적을 내가 의지하게 되면 이것이 나에게 불행의 소산이 되기 때문에 그렇죠.

고린도전서 3장을 잠시 한번 봅시다. 같은 사도 바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참고할 게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21절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앞뒤가 잘 여러분 원활하게 소통이 됩니까? 앞뒤가 잘 맞습니까?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이게 여러분 앞뒤가 확확 뚫립니까? 잘 안 뚫리지요.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이게 앞뒤가 잘 안 맞지요. 우리가 이렇게 하고 싶죠. 만물이 다 나의 것이라는 걸 자랑하고 싶잖아요. 그렇잖아요. 다 내꺼야. 자랑하고 싶은데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앞뒤가 뉘앙스가 잘 안 맞는데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예수님이, 우리가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만물이 다 우리 소유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만물이 다 너희 것이니까 세상에 대해서 구태여 자랑할 필요가 없다는 이 말은 만물을 쥐고 있는 너희 또한 그리스도가 너희를 쥐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 뒤에 나오죠.

‘만물이 다 너희 것이다. 너희는 다 그리스도의 것이다.’ 이 말에서 너희가 만물된 입장을 생각해 보자. 자, 만물은 다 내 것이라 할 때 만물이 기분 좋게 생각한다 말이에요. 왜? 만물은 나는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사람의 것이 되었다는 것이 기쁜 것처럼 너희들도 만물이 다 내 것이란 말은 만물이 다 내 것이다. 이 말이 아니라, 다른 말은 뭐냐?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음을 내가 만물 입장에서 같이 기뻐해야 된다 이 말이에요. 설명한 게 더 어렵네.

아, 내가 만물이 다 나한테 속했으니까 만물이 얼마나 기뻐하겠느냐? 마찬가지로 만물을 갖고 있는 내가 또 그리스도께 소속돼 있으니까 나는 기쁩니다. 하는 고백을 내놔라 이 말이죠. 그런 게 그리스도께 소속된 게 없으면 만물은 다 내꺼야. 그러니까 만물을 자랑하고 싶어. 이렇게 반대로 나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의 기쁨이라 하는 것은 모든 것이 내 것인 동시에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해서 감사한다는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그 감사가 계속 반복되듯이.

다시 로마서 돌아오면, 로마서에서 하나님이 공격하는 것은 우리보고 공격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강의하고 보면 인상이 찌그러지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요.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닌데. 혹시 이렇게 어떤 강의하면 인상이 막 찌그러지는, 특히 목사들 가운데 그런 게 좀 많은데. 그렇게 강의하면 교인들한테 교인들이 몇 명 오고, 목회 어떻게 되겠느냐 이렇게 하는데, 마치 내가 그 사람을 공격하는 것처럼 오해하는 거예요.

나는 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붙잡고 있는 것이 주께서 붙잡으라 하는 것을 안 붙잡고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사람이 붙잡는 걸 공격하니까 마치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것처럼 그렇게 오해하시는 분들이 더러더러 많으신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 사랑해서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을 자꾸 손을 떼려고 하는 겁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그 말이 불신자한테는 참 엄청나게 실망스러울 거예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말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일체 안 주겠다는 거예요. 그 대신 목자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느냐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목자가 있는데 네가 왜 쓸데없이 걱정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느냐?

그 이야기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이렇게 되는데. 든든한 목자 있어서 내 원하는 건 다 채워준다. 이렇게 해석하시면 정말 곤란한 이야기입니다. 그거는. 참 곤란한 이야기에요. 목자하나 세파트 같은 목자 있어서 내가 뭐, 알라딘 램프처럼 빌기만 하면 그 소원 다 이루어지더라. 이래서 목자 같으면 그건 목자가 아니고, 나의 애완견, 종이죠. 나의 시다바리죠. 그건 나의 종에 불과한 겁니다. 그건 목자가 아니고.

우리는 누가 양이고, 누가 목자입니까? 구분 잘 합시다. 구분 잘 해야 돼요. 든든한 목자 있기 때문에 내가 구태여 인생 고민할 필요 없다 그런 뜻으로 생각해야 될 텐데, 든든한 목자 있기 때문에 내 고민거리는 그분이 해결하더라. 이렇게 해석하면 안 된다 이 말입니다.

제 말이 빠르기 때문에 두 번 다 들으면 다 같은 이야기인 줄 알고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 아닙니다. 목자 한분이 알아서 하실 것이니까 내가 구태여 내 문제 걱정한다는 것은 마치 목자 없는 양처럼 그렇게 취급하기 때문에 그렇지 마라. 그래서 목자가 인도하는데 인도하는 마지막 지점까지 이야기해 줘요. 그게 뭐냐? 내게 하나님의 밥상이 넘치게 일어난다. 하나님의 진수성찬이 주어진다.

이러한 목적은 우리 목적이 아니고, 목자가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최종 목적이다 말이죠. 니 잔이 넘치나이다. 너 잔이 넘치게 해주겠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러니까 중간 과정이 고생스럽더라도 생략하고 앞과 뒤를 보자. 다 끝난 이야기 아니냐 이 말이죠. 다 이루었다 아니냐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자기 욕망 때문에 고민할 필요는 없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이 율법 가지고 공격하는데 우리가 쥐고 있는 것을 공격합니다. 그것이 죄라는 건데, 로마서 2장 25절 봅시다.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이게 이방인한테는 무슨 난해한 이야기가 됩니다.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라는 이 이야기를 이방민족한테 번역해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네가 양심대로 행해서 예수 믿는 기독교를 가졌으나 만일 네 양심에 불충성하면 네가 선택한 그 기독교라는 것도 너한테 구원되지 못한다.’ 이런 뜻입니다. 번역이 더 어렵나? 번역이 어려운 것 같아.

유대인들이 할례를 행하는 것은, 유대인 한번 봅시다. 자칭 선택 받은 자. 이거 마이크를 안 썼구나. 분위기가 이래서 그랬구나. 아아- 됐습니다.

유대인들이 앞에 뭐가 있느냐 하면, 십계명이라든지 율법이 있습니다. 이 율법에 창세기 17장 같은 경우에 보면, 율법 모세도 나오는데 할례를 행하라 했다 말이죠. 하나님께서 할례를 행하라 할 때는 이 할례 행하라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모든 율법이 그 안에 다 담겨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사자의 코털을 뽑을 때 결코 사자의 코털과 사자의 몸체가 분리가 안 됩니다. 그런데 옛날 우리나라 고전 유머에 지금 현재 애들 들으면 전혀 유머가 아닌데, 옛날 고전 유머에 이런 게 있어요. 너가 왜 소를 훔쳐오느냐 하니까 저는 소를 훔친 적이 없고 소가 묶여있는 노끈만 훔쳤습니다. 이렇게 된 거죠. 지금 현재 전부다 안 웃잖아요.

노끈이 있어서 노끈을 하니까 뭔가 덤으로 따라오는데 덤으로 따라오면서 신경 안 쓰고 자기는 노끈만 필요해서 보니까 거기에 소가 달려 있더라 말이죠. 노끈과 소가 분리가 안 되는 거예요. 이게 지금 5,60년대 유머가 되어서 지금은 유머도 아니죠. 분리가 안 되는 겁니다. 사자의 코털하고 사자의 몸체하고 분리가 안 되는데 자기는 사자의 코털만 건드렸는데 왜 니 사자가 나에게 달려드느냐? 이런 말도 안 되는 시비가 일어나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이 할례 안에 이 전부가 들어있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가 오기 전까지는 몰랐지요. 심지어 사도 바울도 사도가 되기 전에 몰랐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율법에 완벽한 자기다 했어요. 자기가. 율법에 흠이 없다 했어요. 빌립보서 3장 6절에 보면 나오죠. 나는 율법에 대해서 흠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되기 전의 사울 못지않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 어떤 부자 청년인데, 그 사람은 어릴 때부터 십계명을 다 지켰나이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자기 인간들이 지킨다는 것은 뭐냐 하면, 사자 몸체를 보지 않고 사자 털 하나 뽑고, 사자 꼬리 하나 건드리고, 사자한테 밥 한번 먹여주고, 이렇게 들어가면 처음에 10% 지키고, 20% 지키고, 30% 지키면 언젠가는 90%, 80% 해서 100%지키지 않겠느냐. 이렇게 율법을 지키는 줄 알고 있습니다. 이거는 유대인들뿐만 아니고, 오늘날 교인들도 마찬가지에요.

신약성경 이렇게 있으니까 여기에 사도들의 명령과 권면, 권고라는 게 있으니까 지시, 권면 같은 게 있으니까 하루아침에 어떻게 다 지키겠는가? 교회 일년 차의 목표는 이 중에서 몇 개 지키기, 이년 차, 교회 한 이년 다니면 그중에서 약간 더 범위를 넓히기. 교회 한 십년 차, 그래서 나중에 직분 맡으면 약간 더 지키기. 이런 식으로 자기가 스스로 율법을 지킨다고 하는 거예요. 사도의 권면과 명령들을 지킨다고 하는 겁니다. 유대인들 지키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이것은 인간들의 본성으로써 이런 겁니다. 학교 성적표를 가져왔는데 성적표가 썩 좋지 않아요. 애가 머리를 쓰지요. 성적표는 나중에 들이밀고, 그전에 부모님 오시기 전에 설거지를 해놓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깨끗이 해 놓습니다. 그거 왜 그렇게 했느냐 하면, 평소에 성적이 나빴을 때 부모님이 하신 대로 공부는 못하는 게 설거지도 안 해 놓나? 이런 잔소리를 평소에 한 게 있기 때문에, 자기가 못하는 성적표는 일단 못한 것은 못한 거고, 그 대신 자기가 잘한 것을 해서 부모로 하여금 잔소리가 반으로 줄어들도록 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겁니다.

이것이 애가 부모한테 하던 짓 그대로 배워요. 인간이 신을 향하여 그렇게 하는 겁니다. 제가 첫째 시간에 이야기했죠. 인간은 신을 대상으로 뭔가 관계를 맺을 때 자기 입장만 생각해서 신과 관계를 맺습니다. 이게 유대인도 예외는 아니에요.

할례를 어떻게 지키느냐? 정답을 이야기할게요. 할례를 지키는 방법. 우리 목사님들은 아십니다. 골로새서 2장에 나옵니다. 예수님이 할례를 지키는 방법이 뭐였습니까? 한국말로 세 자로 뭐였습니까? 골로새서 2장에서. ‘십자가’에요. 십자가에 피 흘리는 겁니다. 그 외에 할례 지키는 방법이 없어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할례 지키라 하니까 고추 끝을 잘라내면 할례 지키는 줄 알고 있어요. 그건 남성의 생식기 끝을 자르는 걸 할례인 줄 알고 있습니다.

또 묻습니다. 예수님이 십일조 지키는 방법? 역시 석 자입니다. 뭡니까? 십자가. 그뿐입니다. 또 한 가지 더 물을게요. 예수님이 안식일 지키는 방법? 이건 아시겠지요. 마태복음 12장에 나오니까. 밀밭 이야기 나오니까. 맥주 이야기 아닙니다. 밀밭 이야기 나오면서 예수님이 안식일 지키는 방법 뭐였습니까? 역시 십자가뿐이지요. 그런데 고신 측에서는 어떻게 지킵니까? 고신 측에선 어떻게 해요? 주일날 아침부터 해서 스케줄 짜서 지키잖아요. 안식일, 주일 지킨다 안 합니까? 이게 말이 됩니까? 말이 돼요?

사람들이 안식일 지키는 방법은 토요일 다음날이고, 안식일 교회 지키는 방법은 금요일 다음날 지키기, 지키기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 안식일 지키는 방법은 뭐예요? 흠 없는 자기 몸을 십자가에 매다는 방식이잖아요. 목사님, 장담합니까? 장담합니다. 증거 대 보세요. 골로새서 2장에 보면, 십자가 짐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안식일 가지고 누구한테 비난 받지 않도록 하라.

이 말은 마치 도배하는 굵은 붓처럼 되어서 십자가 피를 푹 적혀서 획을 그어버려요. 성경책, 창세기부터 펴놓고 십자가 피로 도배를 해버립니다. 2장 더, 3장 됐어. 4장 됐어. 온통 십자가로 그걸 도배하십니다. 따라서 오, 가만 있어봐. 십계명에 안식일 지키라 했는데 그것도 지우나? 그것도 십자가 피로 확 지워버려요.

누구든지 십자가 진 이상은 이런 십계명 가지고, 안식일 가지고, 십일조 가지고 누가 너희들을 비난하지 못하게 하라. 그런 것은 다 그림자요 진짜 실체는 십자가 피다 이 말이죠. 그게 골로새서에 나옵니다. 갈라디아서 4장에 나옵니다.

심지어 얼마나 사도 바울이 화가 났으면, 만약에 그리스도 앞에서 또 안식일을 또 뭐 십일조, 율법 이야기하면 내가 전한 복음을 헛되이 한 줄로 내가 아노라. 그리고 내가 전한 복음 말고 다른 복음 전하면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심지어 천사라 하더라도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했습니다.

사자 코털 뽑듯이, 소 묶인 노끈 가져오듯이 자기가 지금 지켰다고 우기는 그 말씀, 율법 안에 다른 모든 율법이 다 들어있다는 것은 그 덩치가 다 들어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채, 자기가 일방적으로 율법을 절단해서 재단해서 딱딱 잘라서 이거는 일 년차 지키고, 이거는 교회 한 오 년 지키면 그 다음 지킬 몫이고, 한 십 년 다니면 이거 지켜야지.

자기가 두부 자르듯이 지 마음대로 지켜놓고 나는 이 정도 지켰습니다. 어릴 때부터 십계명 다 지켰습니다. 이래 나오니 주님께서 부자 청년을 향하여 그러면 내가 새로운 계명 부여할게. 십계명 이야기 안 하고 다 할게. 뭐냐? 니 모든 걸 팔아서 가난한 다 주고 날 따라오너라. 하니까 그 사람은 집으로 근심하면서 돌아갔습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가 근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백부장은 주님 앞에서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오라 하면 오고, 가라하면 가겠나이다. 이렇게 했습니다. 그걸 넉 자로 이야기하면 까라면 까. 까라면 까는데 우리가 까라면 까는 게 아니고, 까라면 까는 쪽으로 우리를 몰아넣어요. 우리가 새삼스럽게 까라면 까겠습니다. 다짐하고 각오할 필요 없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까라면 까는 쪽으로 이렇게 진척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 목사 안 하고 싶은데 까라면 까라 해서 목사 돼서 교회 쫓겨나오고. 이게 까라면 까는 쪽으로 진척되고 그렇게 된 거예요.

우리가 원해서 뭐. 까라면 까라는 내용에 있어서 우리가 재단해서 따로 내용을 뽑아낼 필요 없이, 뭘 까야 됩니까? 그건 기다려 봐. 내가 알아서 내가 앞으로 인도할 거야. 그렇게 되는 겁니다. 쉬워요. 다만 우리는 까라면 까는 주님만 붙들어야지, 자꾸 주님 말고 세상 붙들고 돈 붙들고 권력 붙들고 주님의 율법이 그걸 향하여 우리를 향하여 치는 게 아니고, 우리가 붙들고 있는 걸 향하여 치니까 우리는 우리 붙드는 것 쳤다고 우리가 얼마나 주님한테 평소에 욕 합니까?

기도회하는 것이 수상하기 짝이 없어. 기도회 한다는 것 자체가 항의 시위하는 거예요. 이거 파업하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주여, 우리의 철야기도를 응답 안하십니까? 이런 식으로 데모하는 모임을 갖는 것밖에 더 됩니까? 범사에 감사하려고 모이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 일이 진척이 안 되니까 한번 탄원서 내보겠다고 모이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 합세해 탄원서에. 심지어 금식까지 했는데 이 정성을 모를까.

금식하면 뭐 합니까? 그 다음 금식 끝나고 나면 두 끼 먹을 게 뻔한데. 제가 아는 분이 주일 아침에 금식을 하는데 관찰했어요. 점심 때 어떻게 잡수는가 보니까 아침에 안 잡순 것 합쳐서 이만큼 잡수어요. 칼로리 계산해 보면 초과에요.

결국은 뭐냐 하면, 율법에 대해서 어떤 인간도 다 못 지키는 정도가 아니고, 그 율법의 터럭 하나라도 지키는 사람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요. 율법의 한 구석 하나 없어요. 율법 하나에 전체가 다 포함되어 있으니까. 부분이 전체보다 작은 것이 아니고, 부분 안에 전체가 다 포함되어 있어요. 이게 요새 집합론에 보면 그것을 증명해내고 있습니다.

이게 불교의 화엄경에도 비슷한 게 있어요. 거울이 쨍하고 깨졌는데 파편 된 거울조각 하나하나에 하나의 거울이 담고 있던 풍광이 풍경이 쪼가리 거울 안에도 역시 다 포함되어 있더라. 그것이 인간이 머리 써서 머리 깎고 그거 하나 연구한 거예요.

성경에도 모든 율법이 다 들어있는 것은 뭐냐 하면, 율법 속에는 뭐가 포함되어 있느냐? 율법은 내가 지킨다. 너희들은 못 지킨다는 내용이 포함된 채 율법이 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겠다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당사자를 모독하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10장에 보면 나오지요. 율법을 지키는 전문가를 보내는 것은 못 지키는 거예요. 004 보내고, 005 보내고, 006 보내고 아무리해도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늘나라의 007을 보내는 거예요.

이것은 006, 004는 뭐냐 하면, 안 되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안 되는 거예요. 007이 왔는데 되도 않는 008이, 목사가 나는 008이다. 007 앞에서 어디 008이 의미가 있습니까? 그러면 008이라는 말은 007이라는 십자가의 모든 피를 모독하는 게 되는 거예요. 그게 소용없다는 소리가 돼버려요.

이슬람교가 뭡니까? 구약 인정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예수로서 미흡했다는 겁니다. 마호메트가 최종적이라는 거예요. 문선명이 들으면 웃기죠. 마호메트, 이게 어디 문 선생이 최고지.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율법은 그 안에 뭐가 내장되어 있느냐 하면, 율법을 지키는 전문가가 포함된 채 율법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이거는 뭐냐 하면, 율법은 약 올리기라고 하는데.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을 지키는 분을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내용을 품고 주니까 인간들은 따로 존재한 그분은 생각 안 나고 야, 율법이다. 주께서 쉐마, 이렇게 말씀하셨구나. 그러면 우리가 들어야지, 순종해야지. 라는 쪽으로 나오는데,

그게 너무나 율법 지키는 분이 율법 지키는 방식과 우리 인간들이 자기 양심을 가지고 율법 지키는 방식이 결국 그걸 통해서 우리는 죄에 갇혀 있다. 죄가 우리를 지배한다는 것이 들통 나버리고, 율법을 진짜 지키는 분은 오직 의에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이 들통 나서, 그 들통 남이 바로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확연해졌습니다.

사도 바울이 십자가를 볼 때 자기는 율법을 완전히 지켰다고 여기는 사람인데 그 율법을 완전히 지키는 사람에게 주님이 나타날 때 사도 바울은 주여, 누구십니까? 하고 봉사되고, 자기는 그 앞에서 참으로 무가치한 존재인 것을 드러내고 이제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임을 알았고, 내가 나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는 고백을 쏟아내게 되는 겁니다.

거기서부터 적용되는 것은 뭐냐? 그럼 나는 율법을 받게 되었느냐? 그것은 내가 육인 것을 내가 몰랐다. 육은 영에서 건너갈 수가 없고, 육은 육으로써 마감되는 겁니다. 영이 되는 것은 뭔가 외부에서 와야 영이 되지, 육에서 영을 건너가는 그런 다리는 없습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부처의 영이 있으면 되는 게 아니고, 석가모니 영도 아니고, 공자의 영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의 영도 안 돼요. 하나님의 영도 안 됩니다. 누구의 영입니까? 그리스도의 영이 와야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를 빼고 영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그리스도를 빙자해서 가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알아서 가는 게 아니고, 그리스도가 나를 대신할 수 있어야 들어간다 이 말입니다. 그리스도와 잠시 악수하고 싸인 받는다고 들어가는 게 아니고, 그리스도가 안에 품어져야 그리스도가 나를 완전히 덮쳐야 그리스도 이름으로만 그 나라에 들어가는 나라가 그 아들의 나라다 이 말이죠.

그리스도, 감사합니다. 한 수 배웠습니다. 알아서 제가 가겠습니다. 이런 것은 여전히 육으로 남아요. 그런 영의 나라는 없습니다. 그건 자아가 계속 살아있기 때문에.

그런 정지작업을 하기 위해서 사전에 율법을 먼저 받은 유대에 대한 신랄한 공격이 주어집니다. 2장 끝에 보면 이렇습니다. 다시 로마서 2장 끝에 보면, 그러니까 다시 한번 공부하면서 염려되는 것은, 왜 목사님은 우리를 치느냐 하는데 전부터 제가 안 친다고 세 번, 네 번 다짐합니다.

여러분을 치는 게 아니고, 여러분이 붙잡고 있는 걸 칩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성경말씀 어느 구절 지켰다고 하면 나는 그 지킨 구절을 칠 거예요. 제가 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치십니다.

나는 술 끊었다. 그러니까 술 먹지 말고 성령에 취하라를 지켰다. 라고 한다면 그건 잘못 된 거예요. 무슨 말씀을 술을 안 마시고 뭐든 그게 영광이 되지 못하고, 주께서 영광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예수를 믿을 때 비로소 그게 하나님 영광이지, 뭣을 끊었다, 사도 바울 시킨 대로 감사했다. 이런 게 영광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은 우리가 예수님 의지할 때만 영광이 돼요. 그걸 율법 외에 다른 방법입니다.

미리 이야기할게요. 율법으로 영광은 안 됩니다. 그건 이유가 뭐냐? 율법이 문제가 아니고, 율법을 지키겠다는 우리가 죄를 모르는 채 죄의 지배를 모르는 채 율법을 접근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율법이 영광이 안 되는 겁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어 영광 안 된다면, 율법 외라는 것은 또 우리가 등장하는 게 아니고, 이 자리에 누가 있느냐?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사랑으로써 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겁니다.

이건 연극을 해야 쉬운데. 말로 해서는 안 되니까. 말로 때린다는 말이 아니고. 우리 신직수 전도사님 나와 보세요. 지금 제 말에 어떤 오해가 있을 수 있으니까 한번 해 봅시다. 제가 율법이나 율법을 지켜서 영광 안 됩니다. 그것은 제가 어디에 갇혀 있는가를 인정 못하기 때문에 죄가 튀어나와 버리죠. 그러면 예수님을 믿어서 영광 되는 게 아니고, 신직수가 이렇게 와서 나를 쳐버리고 이 자리에 서버림으로써 이쪽으로 영광이 된다 이 말입니다.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제 말 잘못 들으면 아아, 율법을 지켜서 안 되니까 예수를 믿어서 영광 되는구나. 예수 믿어서 영광 되는 게 아니고, 예수님 때문에 영광 된다니까요. 그 차이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이해하라고 욕한다고 이해될 문제는 아니지만. 그러니까 제 말을 오해하니까 어떤 오해 되느냐 하면, 율법을 지켜서 영광 못 되니까 이제부터 율법 안 지키는 쪽으로 나가겠다는 거예요. 그래야 영광되겠다는 거예요.

제 뜻이 그런 뜻이 아닌데 우리가 율법을 안 지키는 쪽으로 산다고 영광이 아니고, 내 자리를 밀쳐버리고 주님께서 얘, 제가 데리고 온 애입니다. 하고 나설 때 영광이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래나 저래나 우리가 영광 돌릴 방법이 없어요.

그걸 뒤에 성령을 통해서 구체화되는 거죠. 그러니까 한 마디로 염려하지 마시라 이 말이죠. 염려하지 마세요. 주께서 알아서 목자가 알아서 처신하니까. 우리는 그냥 가만있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감사하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로마서 2장 끝에 보면,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사도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할 때 바리새인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당신은 무슨 근거에 의해서 우리가 받은 할례가 왜 할례가 아니라고 우기느냐? 당신 근거가 뭐냐? "오직 이면적(안 쪽에 있는)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이렇게 할 때

사도 바울, 이리와. 당신이 이런 엄청난 주장을 하는데 이 근거가 뭐냐? 라고 했을 때 사도 바울이 제시하는 것은 뭐냐? 십자가 밖에 없어요. 내가 그렇다가 아니라 십자가가 오게 되면, 십자가는 뭐냐 하면, 우리가 못하는 것을 주께서 대신 했습니다. 하는 걸로 근거를 대는 겁니다.

우리도 꼭 이렇게 해야 돼요. 당신이 이 사실을 어떻게 당신은 뭐 잘나서 믿게 되었느냐 하면,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주께 십자가의 능력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야 돼요. 그렇게 돼야 이게 모든 해석이 그리스도로부터 그리스도로 올라가는 겁니다. 이거는 내가 잘나서 믿을 수 있겠네. 이렇게 되면 참 곤란하죠.

로마서 3장입니다. 3장 4절에.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라고 되어 있는데,

참 사도 바울이 보면 약간은 얄궂은 게 있는데 뭐냐 하면, 쉽게 하신다고 해서 거론된 그 성경구절이 더 어려워요. 이것은 우리 보고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말씀이 알아서 지키는데 왜 우리가 고민하느냐? 라는 투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시편 51편에 나오는 이 말씀은 누가 지키는 거예요? 이것은 하나님이 알아서 지켜서 우리에게 적용된 거기 때문에 우리가 새삼스럽게 뭘 지키라는 그런 것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그렇다면 이 말씀은 무슨 뜻이냐? 주님께서 말씀을 지켜서 의롭다고 할 경우에 그걸 어떤 인간도 그걸 거부하거나 취소할 수 없는 그런 입장이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을 반대하는 사람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그러면 니 말대로 한다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가 더욱더 나쁜 짓에 열중하면 우리가 나쁜 짓에 열중하면 할수록 그에 비례해서 그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께 더 기쁨이 되겠네. 따라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더욱더 열심히 죄를 짓자하는 그런 논리가 타당하지 않느냐? 라고 이렇게 반격이 들어왔습니다.

우리 십자가마을에 있는 사람들, 그런 반격 많이 들었지요. 특히 목사님들, 교인들 많이 들었지요. 그럼 당신 말대로 하면, 소극적인 게 뭐냐? 그럼 아무것도 안 해도 되겠네. 이건 소극적이고. 적극적으로 대드는 사람은 뭐냐? 이제는 더욱더 방종하고 나쁜 짓 많이 하게 되면 많이 나쁜 짓 했으니까 많이 영광 돌렸다. 이렇게 되는 논리다 말이죠. 당신들의 주장하는 논리가 그 논리 아니냐? 라고 우리한테 얼마나 반격 해댔습니까?

그럴 때 여러분들은 그 답변 어떻게 했습니까? 난 일년 차 밖에 안 되서 답변 준비 안 했다. 이렇게 됩니까? 그거는 목사님 돼야 답변한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까?

사도 바울이 뭐라고 답변합니까? 이렇게 답변하지요. 앞에 있는 시편 51편, 그리고 앞에 있는 로마서 3장 4절에 나오는 그 말씀.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그 말을 그 사람들이 부인한 거예요.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은 참되다, 인간은 거짓되다. 라고 했을 때 이 거짓되다 속에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 것도 거짓되다. 라는 것. 그런 질문하는 것도 거짓되다 자기 자신을 인간 속에 포함시키지 않은 게 문제에요. 이게 예수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는다 해놓고 예수 믿는 나는 괜찮고, 예수 안 믿는 모든 나쁜 사람은 거짓되다. 라는 이런 쪽으로 나오는 것은 바로 유대인들의 실수와 또 동일한 실수를 되풀이하는 겁니다.

한국교회는 이단이다. 하니까 그쪽에서 대번에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십자가마을은 이단 아니네. 라고 나오죠. 그 말 할 줄 알고 십자가마을도 이단이다. 하니까 거기서 하는 게 십자가마을도 이단이래.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 말 하려면, 십자가마을도 이단이고, 우리 교회도 이단이라고 하려면 그 뒤에 뭘 추가해야 됩니까? 그렇게 하는 나도 이단이라는 말해야 될 텐데 그 말 안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들은 뭐냐 하면, 인간은 거짓된 적은 있었다. 언제? 자기가 예수 믿기 이전에. 예수 믿고 난 뒤에는 이제는 거짓이 아니다. 이렇게 우기고 싶은 거예요. 그런 사고방식이 뭐냐? 유대인들이 똑같은 사고방식을 벌렸기 때문에 지금 사도 바울은 시편 51편을 가지고 들이대는 겁니다. 지금.

유대인들은 자기가 어떤 특권의식을 갖고 있어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존재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뭐라고 합니까? 모든 인간은 다 헛되다. 왜냐하면 인간이 율법을 생각하는 것은 진짜 율법을 지키는 분을 따로 생각 안 하고 내가 지킨다고 우기니까 율법 자체에 대한 해석이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는 거예요. 잘못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율법을 지킨다고 해보면, 마치 노끈만 가져왔는데 뒤에 소 따라온 것과 마찬가지고, 사자의 코털 뽑았는데 사자 전체 잡은 것과 똑같다 이 말이죠.

한 율법 속에 모든 율법이 다 들어있다는 것을 그 사람은 생각 못하는 거예요.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거예요. 이것은 예수 믿어도 마찬가지다 말이죠. 진짜 주님 주신 믿음이 아니라 자기가 믿고자 하는 신앙 따라 믿다보니까 예수 믿고 그 다음에 뭘 하고 자꾸 이런 순서가 있는데 이런 가짜 신앙을 소유한 사람들이 바로 그걸 들춰내는 방법은 바로 복음을 전하면 그들이 이러한 반격과 똑같은 반격을 또다시 되풀이해요.

참, 성경 로마서 3장은 토정비결 같아. 다 나와요. 인간이 복음으로 쑤시면 어떤 반응이 나온다까지 다 튀어나옵니다. 그럴 때 사도 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여기 3장 8절에 보면,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뭐 된다?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뭡니까? "옳으니라"

얼마나 사도 바울이 반격을 잘 합니까? 너희가 고따위 식으로 하니까 지옥가지. 이런 뜻이에요. 달리 지옥 가는 게 아니야. 복음을 전했더니만 복음에 대해서 그런 의문점을 갖고 있다는 자체가 나는 지옥 가는 인간입니다. 라는 뜻을 그대로 노출했다는 겁니다. 지옥 폼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그와 같은 너희들을 위해서 지옥가야 하는 거다 말이죠.

그러면 왜 우리가 지옥 가야 되는데? 의문점이 있어서 물었는데 왜 지옥 가야 되는데? 바로 하나님만 참되고, 우리는 어떻게 해도 거짓되다는 사실을 본인이 수용을 안 했기 때문에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옥 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지금 하나님과 인간은 거짓되다. 중간에 사도 바울이 뭔가 생략한 게 있어요. 뭐가 생략됐습니까? 하나님과 인간은 거짓되다 이 사이에 뭐가 생략됐습니까? 예수님의 능력으로 영광 된다 하는 것이 지금 생략되었지요. 사도 바울은 지금 이걸 이야기 안 했지요. 생략되었지요.

나의 믿음은 참 되냐, 거짓되냐는 질문이 나오지요. 매인교회의 게시판에 들어가면 희한한 사람이 또 등장해서 박윤진 씨하고 한바탕 벌이고 했어요. 뭐냐 하면, 그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무 탈이 없어요. 내 믿음도 거짓되지만 윤진 씨 믿음도 거짓됩니다. 이러면 아무 문제없는데. 박윤진 씨 믿음은 거짓되고 내 믿음은 참되다 이렇게 나오니까 문제되는 거예요.

예수님을 쳐다 볼 때 예수님을 딱 쳐다보게 되면, 예수님이 갖고 있는 믿음과 내 믿음과 비교가 되면서 다른 사람이 네 믿음이 옳아, 예수님 믿음이 옳아? 그거야 예수님 믿음이 옳지요. 나는 날마다 죽어야 되고, 주님의 믿음이 내 속에 스며들어 주의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라는 말을 할 수 있는데,

예수님은 빼버리고 하나님은 참되시다, 인간은 거짓되다. 라고 해놓고 니 믿음이 거짓되나, 거짓 안 되나? 내 믿음이 거짓되다는 말도 맞고, 내 믿음은 거짓 안 된다는 말도 맞는 거예요. 왜냐하면 내 믿음이 거짓 안 될 때는 뭘 넘겨줍니까? 이야기는 안 했지만 뭘 넘겨줘요? 뭘 생략한 거예요? 십자가 지신 예수님께서 주신 이름은 이게 포함되어 있는데 그 인간은 그걸 예수님을 생각 안 하니까 거봐, 니 믿음만 옳고 나머지는 거짓되다. 이렇게 된다 말이죠.

지금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결국은 예수님을 가미시키지 않고 하나님-나, 나-하나님, 하나님-나, 나-하나님, 자꾸 이걸 억지로 관계를 엮으려고 하니까 이게 진짜 정죄 받을 놈이다 말이죠. 예수님 생각하지 않는 것은 무조건 정죄되는 거예요.

그건 뭐냐? 예수 안에서는 정죄함이 없고, 예수 밖에서는 이유 없이 무조건 정죄함을 받는 이유가 바로 이런데서 있는 거예요. 예수님을 집어넣지 않고 무조건 생각하니까 하나님을 믿는 나는 참되잖아. 이런 유대교적 그걸로 자꾸 되돌아갑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말씀을 이루었다하면 될 건데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 빼놓고 이야기하면, 그러면 하나님 영광 돌리기 위해서 죄지면 되겠네. 왜? 하나님은 죄 용서하시는 분이니까. 당신이 하나님은 참되다며? 우리는 거짓되다며? 그러면 우리는 더욱더 거짓되면 참되겠네. 예수님을 넣지 않고 빼니까 결국은 이런 비방의 소리가 들려오는 겁니다.

사도 바울, 당신이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내가 잘못된 게 아니고, 바로 뭔가 빠져 있는 네가 지옥 가야 될 합당한 사람인 줄 드디어 스스로 고백하는구나. 라고 이야기한다 말이죠. 이래서 더 어렵다 정말.

로마서 3장 10절에 봅시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제가 여러분, 질문하겠습니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시편 143(?)편 말씀 같은데. 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이것을 십자가를 부인하는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해석할까요? 시편 14?편 말씀인데.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이 말씀을 예수님을 비방하는 유대인들은 어떻게 해석할까요? 이걸. 그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안 집어넣고 빼고 지금 그런 것 생각 안하고 해석합니다.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도 한때는 이랬던 사람인데 이제 여호와 은혜를 알고 이제 우리는 달라졌다. 이렇게 하겠지요. 그러니까 누구 생각만 합니까? 지금 나는 괜찮은 사람 되고 지금 나는 여기 해당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이 말씀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은 이거는 불신자한테만 해당되고 지금 신자 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한테는 해당이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 자기 구원을 위해서 성경을 이해하는 거예요.

그 같은 오류는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 주장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나타나. 이런 현상들이. 바리새인 이야기하면 우리가 바리새인 아닌 줄 알고 있습니다. 우리 바리새인 못지않습니다. 마태복음에 먹는 것, 입는 것, 염려하지 말라. 그런 것은 누가 구하는 것이다?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료에 대해서 얼마나 걱정합니까? 사료값 없어서 고생하잖아요. 양식값 없어서. 아무리 교회고 뭐고 간에 밥 굶어 보세요. 이거는 욕이 나오지.

그런데 그것은 마치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하니까 자기가 평소에 안 구하는 것처럼 이렇게 자기를 자꾸 연기하고 가장을 하는데 따지고 보면, 하나님 믿는 척하고 말씀대로 인내한다는 것은 이 인내하면 돈 푼이나 더 생길까 싶어서 그 인내하는 것 아닙니까? 주의 말씀대로 이렇게 베풀면 내가 은밀하게 사실은 원했던 돈다발이 들어올까 싶어서.

여기서 만약에 우리가 하는데 회비 칠만 원 내고 뭐 비싸다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만약에 어떤 분이 정신이 좀 나가서 제가 이번에 하는데 다음에 또 십자가마을 때 헌금을 한 천오백만 원 하겠습니다. 하면 우리는 기쁜 소식처럼 여기지 않느냐. 복음이 따로 있는 게 아니잖아요. 야, 다음엔 회비 안 내도 되겠다. 기쁜 소식으로 들린다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것을 기대해서 지금 더 열심히 성경공부하면 복을 받아서 혹시 그런 기부금이 들어올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그걸 노린다 이 말이죠. 목사들이 개척교회하면서 희망이 뭐냐 하면, 개척교회 열심히 했다고 큰 교회 스카웃된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잖아요. 이승엽도 스카웃되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사모들이 얼마나 고대하겠어요. 목사들은 아닌 척 하지만 사모들은 약간 노골적인 게 있거든요.

다시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십자가 피 아니면 구원 못 받습니다. 죽을 때까지라도. 지나간 경력, 업적, 그거 한번 지나가면 다 지나간 거예요. 날아가 버린 거예요. 없는 겁니다. 여전히 죽는 순간에도 십자가뿐입니다. 왜? 우리는 그 앞에서 죄인이기 때문에. 십자가로 구원받지.

이 말씀이 시편 14?편 말씀이 계속 지금도 적용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감사합니다. 이거는 나한테 해당되지 않고, 이거는 십자가 모일 때고 이게 아니라 지금도 이 말씀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하는 계속 적용된다는 말은 계속 우리는 십자가 사람이라는 뜻을 의미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자체에 이 말씀이 들어있으니까. 십자가가 들어온다는 말은 우리를 죄인 되게 하고 주님의 피로 구원받는다는 이 양쪽이 다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를 죄인 되게 하는 근거도 들어오고, 우리를 의롭다하는 근거도 같이 들어오기 때문에 양쪽 근거가 다 십자가라는 이름 하나에 다 우리 속에 들어오게 되어 있어요. 다 들어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편하게 이 말씀을 볼 수 있지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접니다. 저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편하게, 편하게 이 말씀을 해야 될 텐데 만약에 십자가를 모르는 사람 같으면 이 말씀하면 화를 막 내는 거예요. 지금 예수 믿고 새사람 되었는데 무슨 죄인이냐. 화를 낸다 이 말이죠.

그래서 그랬어요. 그것 아예 매직으로 지워버리지, 왜. 매직으로 지워버리지 놔뒀느냐? 하나하나씩 피자 한 토막 정복하듯이 그걸 지워버리고, 이젠 이건 떼었고, 다 뗐고 책걸이 하고 나가지, 왜 쥐고 있느냐 말이죠. 한 때 이랬는데 지금은 내 지켰다 그 자랑하려고? 사람은 자기가 지켰다고 한 그 말씀도 언젠가 다시 되돌아보면 다시 그 말씀 어기고 있던 자기 자신을 어느새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가 지켰다고 여기는 그 말씀도 한 오년, 육년 지나고 보게 되면 여러분들이 창세기부터 쭉 읽잖아요. 창세기 25장 읽을 때 그때는 각오를 합니다. 주여, 이 말씀 지키겠습니다. 에스겔 읽고, 디도서 쯤 읽게 되면 창세기 25장에 뭐가 있는지 다 잊어버려요. 그 다음에 다시 돌아가면 아이고, 아직도 이 말씀 내가 못 지키고. 알아요. 그러니까 성경 말씀이라 하는 것은 이 모든 말씀이 내가 바로 이 말씀이다 이 말이죠.

자, 19절. 중요한 대목에 안 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율법 아래, 성도도 율법 아래 있고 모든 인간이 율법 아래 있습니다. 불신자는 율법 아래만 있고, 성도도 율법 아래 있습니다. 말씀의 적용을 받아요. 하지만 한 층 더, 층이 또 있어요.

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아래 또 들어있습니다. 죄가 들어가는 곳에 이쪽은 죄가 들어가는 곳에 죄만 들어가지요. 이쪽은 신자는 죄가 들어가는 곳에 뭐가 넘친다? 십자가의 효력이 어느 정도로 대단한가를 보여주는 은혜가 더욱더 넘칩니다. 죄가 나를 유발하고 죄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주의 용서하시는 주님의 주특기, 주님의 은혜가 더 큽니다. 죄가 들어가는 곳에 은혜가 더 커지는 거예요. 이쪽은 갈수록 죄가 더 커지죠.

만약에 율법 층을 제거해 버리면 십자가 층도 의미 없어요. 같이 날아가 버려요. 십자가라 하는 것은 죄가 있을 때 십자가지, 죄 없는데 무슨 십자가가 필요합니까? 예수님께서 지금 피를 질질 흘리면서 이렇게 나오면, 이 양반이 와이카노? 나 죄 없는데. 옛날에 죄 있지 지금 없는데. 십자가 피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의미가.

주여, 저를 찾아 왔군요. 하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써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 합시다. 연극하는데 예수님이 연극을 합니다. 난 채찍이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 하니까. 혼자, 혼자, 혼자 난리치네. 내가 뭐, 나는 이 정도해서 낫는데 지금 나은 입장인데 왜 때리느냐? 낫기 전에 때리지. 다 나은 입장인데 자꾸 의아해 한다 이 말이죠.

계속해서 십자가라면 계속해서 우리는 얻어맞을 채찍 맞을 이유를 계속 우리가 생산해내고 뱉어내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가 어느 정도 죄를 뽑아낼지 우리도 몰라요. 그건 주께서 알아서 끄집어내실 겁니다. 우리는 편하게 보시면 됩니다. 아, 내 속에 이거 하나 들어있구나. 보아나, 가수 비처럼 텅텅 하고 나오고, 뒤에 공작이 퍽퍽 CF에 나오듯이. 우리 안에 지금 카드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몰라요. 한번 튕길 때마다 텅텅 나오는 거예요.

그러한 예가 뭐냐 하면, 연속극에 자기가 좋아하는 호감 가는 사람 나왔을 때는 곱게 봅니다. 그리고 운전 처음 시작하면서 친절한 분들과 만나면 다 합니다. 그런데 연속극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진짜 욕하고 싶은 탤런트 왔을 때는 연속극은 그거는 뒷전이고 연속극 보면서 그 욕하는 재미로 빠져요. 이거는 자기가 미처 몰랐던 거예요. 니 왜 욕하나? 하면 왜 그 여자 왜 튀어나왔어? 그 핑계를 남한테 댑니다.

여성들 운전을 곱게 합니다. 곱게 할 때 여자가 밥이나 안 짓고 뭐 하는데 차 끌고 오느냐 하면 예, 밥 짓겠습니다. 하고 하면 되는데. 그것도 한두 번 하면 밥은 다 지었다! 맞짱 뜰까? 그 다음부터 거칠기 시작하는 거예요. 거칠기 시작해서 이제 남들이 함부로 말 댄다 말이죠. 그러니까 이것은 잠복돼 있는 겁니다. 앞으로 2탄, 3탄 뭐가 나올지 몰라요. 살아보세요. 아마 그거 다 들통 나면 주께서 데려가실 겁니다.

자, 조금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 놓쳤다. 이것만 하고. 몇 분? 하하 참, 큰 일 났네. 3분 남았어요?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이거 사실은 수련회하면서 대일밴드 사서 하나 실습해 봐야 돼. 입을 막아야 돼. 입을 막는 이유가 착하다고 막는 게 아니고, 우리는 심판 받아도 입 벌리지 마. 심판입니까? 우리는 착합니다. 뭐, 우리는 저주의 대상이 아닌데 왜 이러십니까? 혹 그런 말 할까봐. 에이, 입을 틀어막아 놓고 심판해 버려요.

그로 하여금 우리는 심판 받는 것만 억울해 하지 말고, 심판 받는 가운데서 우리 힘으로 심판을 이기지 못하는 대도 불구하고 천국에 간다는 말은 또 다른 요소가 우리를 덮치고 있다. 그 덮쳐있는 은혜의 층을 우리가 바라보는 기쁨, 그것이 바로 복음이 주는 기쁨입니다. 이게 믿는 자입니다.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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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67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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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