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으로 즐기는 신학도들
오락으로 즐기는 신학도들
이름 : 이근호(IP:220.64.214.75)
귀한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으로 초점이 모아지면서 죄인을 구원하는 십자가의 능력으로만 작용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다른 복음, 즉 성경의 다른 해석을 저주받을 해석이라고 보았다(갈 1:8)
그런데 십자가 복음을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성경 말씀을 장난감 가지고 놀듯이 심심풀이 땅콩처럼 만지작 만지작 거리면서
소위 '성경 해석 놀이'에 열중하는 자들이 많다.
왜 이런 자들은 성경 말씀을 이런 식으로 장난 치는가?
그것은 일단 신학교에 가서 유학 갔다온 교수한테 배워놓은 것은 있고, 그 기술을 익혀서, 자신도 유식한 축에 들고는 싶고, 그 기술을 써먹어서 돈 푼이나 들어올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고, 그것을 대외적으로 선전하여 자기 성경 해석 놀이에 구경꾼들을 모아놓고 생계나 챙기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들의 말로는 얼마 안가서 기존 교회 목회자들로 되돌아 간다.
간단하다. 다음과 같은 것을 되풀이 하면 그만이다.
"바쳐야 복을 받지 이놈들아! 십일조 떼 먹는 자 저주받고, 주일성수 못하는 자 지옥가고, 목사에게 대드는 자 치고 이 땅에서 지지리도 벌 안받은 자가 없다!"로 되돌아간다.
왜 그런가 하면, 유식한 성경 풀이가 영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루터신학, 성경 신학, 언약신학, 칼빈신학, 청교도 신학, 개혁주의 신학이 영 장사 안되고 돈 안되고, 사람들의 관심사로 주목받지 못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다음과 같이 외친다.
"신이시여, 바르게 목회하려고 했지만, 사람들이 진리에 관심이 없기에 일단 사람들을 교회 끌어모이도록 조치하고 그 다음에 어느 정도 모아놓고서는 바른 목회 하겠나이다. 그 때까지 잠시 못 본척 해주소서! 주여 제 본심은 이게 아니라는 것 잘 아시지요"라고 타협안을 내어놓는다.
그래놓고 누가 뭐라하면, 유식하고 고상해 보이는 과거에 공부했던 신학적 자기 견해를 먼지 더미에서 내어놓는다. 여전히 자신은 정통이며 이단 아니라는 변명거리는 언제든지 준비해 놓은터다.
이런 자를 이단임을 들추어내기는 싶다.
십자가 복음만 전하면, 예민한 반응을 나타내기 마련이다.
양의 탈을 쓰고 복음을 반대하기 위한 강퍅의 사명을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난 자들이 이런 자들이다.
가롯 유다처럼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박동성(IP:61.♡.201.34)
07-01-12 19:09
사람이 사람을 심하게 내리치는 일은 결코 해서는 않될 일입니다. 이는 십중팔구 자신의 폭력적 근성을 나타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의도로 사람이 사람을 내리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사랑'을 알고 있는 자일 것입니다. 아직은 매를 들때라 하더라도 왜 그것이 자신안에서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인지를 절규하는 심정으로 가끔은 드러내줘야 할지도 모릅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9:3)
이근호(IP:220.♡.214.75)
07-01-12 21:35
복음 증거를 마치 인간 저주로 해석하는 이해하는 자는 평소에 정신을 엉뚱한 곳에 쏟고 있는 자입니다.
최고의 이웃 사랑은 복음 증거 뿐입니다. 이 복음을 막아서는 자는 '인간 사랑'을 빌미로 십자가를 흐릿하게 만들고자 하는 패역된 사고방식의 소유자입니다.
이근호(IP:220.♡.214.75)
07-01-12 21:42
인간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십자가는 악마가 좋아하는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좋게 하려거든 차라리 신자 행세를 그만두어야 할 것입니다.
박동성(IP:124.♡.178.69)
07-01-13 16:31
인간의 자존심을 살린들 죽인들 무엇이 얼마나 바뀔까요? 아니 그보다도 인간의 자존심이 정말 죽을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구원의 수준은 너무 높아서 혹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수준은 아닐까 조심스럽기만합니다. 마치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