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문숙님의 글...밑에 글에 이어 올립니다
권문숙님의 글...밑에 글에 이어 올립니다
이름 : 이성근(IP:220.75.248.15)
글을 또 퍼왔습니다.
이분도 목사님인것 같습니다.
글에 표현력이나 이근호목사님의 해석에 대한 잘못도 잘 지적을 하는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아직 몰라서 그런가요? 권문숙님의 답변도 일리가 있는데요
이근호목사님의 해석이 100프로 정답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해석의 불충분한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이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칼빈도 제자들에게 자기의 잘못된 해석이 있다면 성경에 의거해 고치라고한 글을 본적이 있는데
이근호목사님의 해석은 완벽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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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을 이근호 목사 십자가마을에 어떤 분이 퍼서 옮기셨고 비판을 이목사에게 부탁했는데 이목사가 비판하였다.
그 독설은 여전하다. 하지만 퍼가신 분은 제 글을 다 퍼가지도 않고 제일 중요한 기독론적 해석이 있는 글은 빼놓았다. 그게 제 글의 핵심인데 ...
먼저 이근호목사의 답변을 보면서 어느 교회 권사님이 생각난다. 이 권사님은 쌀을 씻어 밥통에 담글 때에 손으로 십자가를 그 쌀물 위에 그린다. 그리고 밥이 다 된 후에 주걱을 가지고 밥을 그릇에 퍼서 담기 전에 또 십자가를 주걱으로 그린 다음 그릇에 밥을 담기 시작한다. 이렇듯 매사에 십자가를 그리며 일을 시작하신다.
이근호목사의 십자가마을은 매일 십자가복음을 그리고 시작하는가 보다. 그냥 신약성경에는 ‘복음’이라고만 해도 다 알아듣는데 ...
<이근호목사답변글>
성령받은 설교자는 설교를 통해서 복음만이 전파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복음만이 성도에게 구원하는 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정당성을 성경 말씀까지 동원해서 남들에게 전파하려고 합니다.
<반박>
이근호의 영을 받은 사람은 설교를 통하여 십자가복음만 외친다. 왜냐하면 십자가복음만이 이근호목사로부터 악마라고 심판받지 않는 구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근호의 영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정당성을 성경말씀을 동원하여 제 마음대로 토막내서 남들에게 전파하려고 합니다.
<이근호목사답변글>
전도서는 구약에 속한 겁니다. 즉 '옛 언약'에 속한 글입니다.
옛 언약이란 단지 '새언약'을 증거하는 그림자나 모형으로 국한되어야 합니다.
즉 왜 성도는 새언약인 '십자가' 만으로 구원될 수 밖에 없는 존재인가를 보여주는데 국한되어야 합니다.
달리 말해서 '옛언약'을 펴놓고 벌리고 시도하는 인간들의 해석이 왜 구원받을 지혜가 되지 못하느냐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비판>
이근호목사의 말을 쉽게 말하자면 옛 언약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은 구약 역사의 수천 년 동안 오직 한 가지 뿐이라는 것이다. ‘넌 인간이기에 알 수 없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모세도 다윗도 솔로몬도 오직 이 한 가지 목적 밖에는 없다. 새 언약 아닌 구약역사와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헛것이라는 것을 깨우치려고 그 많은 선지자들을 보냈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가복음 12장의 악한 포도원 농부들의 비유를 보라.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맡기고 타국으로 떠난 후 종들을 보낸 목적이 무엇인가? 여러 종들을 반복해서 보낸 목적이 무엇인가? 그리고 마지막에 아들을 보내신 목적은 무엇인가?
함흥차사가 될 것을 뻔히 아시고 여러 종들을 보내셨는가? 그렇다면 한 번만 보내시고 그 다음에 바로 아들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게 하시지 무엇 때문에 수 천년 동안 그리 종들을 보내셨는가? 과연 수 천년의 옛 언약 역사는 헛됨을 위함 뿐인가?
악한 농부들이 아들을 잡아 죽일 때 문자적인 해석만을 하여 몰라서 예수를 죽였다고 하는가? 찾아 읽어보라.
<이근호목사답변글>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옛언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데 전통적이고 문학적이고, 종교적으로 해석했던 바리새인들이나 사도개인들이 왜 예수님을 살해하는데 앞장 설 수 밖에 없는가를 보여주는 해석이 나와야 한다는 겁니다.
더 실감적으로 말해서,
신학교 교수들이나 그 밑에서 배웠던 목사들이 오늘날 왜 오늘날 복음에 대적하는 악마의 앞장이 노릇을 할 수 밖에 없는가를 보여주는 해석이 전도서에서 나와야 하는 겁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 복음을 가지고 전도서를 해석해야 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본디 '잘못된 신'을 창조하면서 기어이 신을 섬기는 자들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여기에는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신의 존재, 신의 선함과 거룩함과 사랑으로 도배를 해도 그것은 십자가 복음과 정면 배치는 주장들입니다.
잘못된 신에서 비롯된 신관으로서, 신의 말씀, 신의 언어를 다루니, 신 또한 우상일 뿐더러 그것은 가지고 신의 뜻을 파악할 수 있다는 여기는 그 설교자도 애초부터 잘못되어 있는 겁니다.
즉 지혜 밖의 인물이 십자가를 품고 있는 지혜를 오독하면서 해석하는 겁니다. 그렇게 나온 해석이 바로 예수님을 살해한 바리새인들과 사도개인들의 해석입니다.
이것은 사도는 '문자적 해석'이라고 말합니다. 즉 해석 불가능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죄를 인식못하는데서 나오는 해석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성경 해석을 거부하고 단절시킵니다.
<반박>
ㅎㅎㅎ 예수의 나신 소식을 듣고 멀리서 동방박사들이 경배하러 예루살렘 도성에 이르러 헤롯 왕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하고 물으니 헤롯은 모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그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막힘이 없이 대답했다.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 하였음이니이다” 구약 미가서를 알고 있는 서기관들은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헤롯 왕에게 정확하게 답을 하였다. 아시는 바와 같이 후에 동방박사는 베들레헴으로 이 해석을 따라 갔고 경배하였다.
구약은 인간의 한계를 신과 대비시켜 알라고 주신 언약책들인가?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한참 잘못 알고 있다. 성경은 옛 언약의 성취를 신약에서 말씀하고 있다. 헛된 것을 무엇 때문에 성취하는가? 그냥 버리면 되지.
누가복음 24:25-27절을 보자.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성경은 도대체 무얼 가리키는가? 왜 마음에 더디 믿느냐고 책망하시는가? 알 수 없는 것, 해석할 수 없는 것을 주었다면, ‘너희는 어차피 모를 것이었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아야 하겠는가? 그런데 왜 ‘마음에 더디 믿느냐?’고 하시는가?
<이근호목사답변글>
만약에 인간적이 해석으로 풀어내려고 한다면, 거기에는
인간 긍정이 나오고, 인간 긍정이 나오면 인간이 파악 가능한 실체를 끄집어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신의 왕국 개념으로서 이스라엘입니다. 이 신의 왕국 개념을 구체화하기 위해 다윗과 솔로몬의 관계를 정치적 관계로 다루게 되지요.
이런 과오로 인해 인간들은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솔로몬이 다윗의 아들이 아니라 우리아의 아들인 줄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되어야 '14대-15데-14'대가 '14대 -14대 -14대 가 된다)
쉽게 말해서
수학이 전공인 대학교수가 수학을 영어 문자나 라틴어 문자로 표현하니, 초등학교 아동들이 말하기를, "저 교수님은 수학교수가 아니라 영어교수이다"고 오독하는 바가 되는 겁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의 장난용으로 성경 말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복음이 안나오고 인간들의 종교적 욕망만 거룩과 헌신과 겸손의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나오는 것은 악마의 전공 분야입니다.
<비판>
인간적인 해석과 이근호목사해석의 차이는 무엇인가? 객관적으로 제가 올린 기독론적해석과 이근호목사의 해석을 비교해보라. 문맥을 끊으며 매 설교마다 반복되는 ‘자기중심? 예수중심?’이 전도서 문맥에 따른 해석인가?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문맥을 토막내고 있는데 그것도 객관적으로 보이지 아니하는가?
뭔가 좀 이근호목사가 착각하고 있나보다. 우리야의 아들 솔로몬이라니? 이렇게 쓴 글을 읽고도 십자가마을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교정도 못한다. 악마로 몰릴까봐. 이처럼 십자가복음은 아주 멋진 해석을 가져왔다.
원래 역사의 기록이 저자 자신에게 달려있다. 저자가 원하는 것만 끌어오게 되어 있다. 성경은 해석된 역사이다. 왜냐하면 언약의 성취를 말하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3장에서는 왜 ‘그 이상은 나단이요 그 이상은 다윗이요’라고만 족보를 쓰고 있는가? 이근호목사의 논리대로라면 누가 옳은가? 마태가 옳은가? 누가가 옳은가?
왜 누가는 14대로 끊어서 말하지 않는가? 신약의 해석자인데.
아주 간단하다. 이명박이가 건설노동자들에게 가서는 자기를 '건설의 역군'이라고 소개하고, 교회에 가서는 '신실한 신자'라고 소개한다. 그러면 자신을 소개하는 이명박인 거짓말한 것인가?
구약은 구원역사 가운데 어린아이 시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논리적이기 보다는 거의 그림언어요 모세언어로 되어 있다. 어린 아이들이 그림책을 잘 보지만 글만 가득히 있는 책은 보지 못하는 경우와 같다. 그런데 아주 쉬운 그림책인 구약 성경을, 그것도 전도서를 보면서도 이근호목사는 문맥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십자가복음의 자기들 스스로 탁월하다고 하는 해석은 무슨 마약같다. 거기에 중독되면 그림책도 보이지 않고 환상만 보일 뿐이다. 마약에 취해서.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밥통을 열고 주걱으로 십자가를 그린 다음 그릇에 퍼 담는다.
그 십자가가 제대로 된 기독론적인 해석을 가져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하나님이 성경을 비디오로 찍어서 보여주시지 않고 문자로 기록해서 전해주셨다. 비디오 같은 것은 세트촬영인지, CG인지 알려고 하겠지만, 성경에는 그런 것이 없다. 문자기록이 언약이며 이 언약을 읽는 독자는 일차적으로 문자해석에 집중해야 하며 다음에 역사적, 기독론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옛 언약문서인 구약을 문자적인 해석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말시온이나 오리겐의 해석 오류에 다시 빠지게 된다.
권문숙
참고로 제가 갖고 있는 성경해석의 입장을 여기 밝힌다.
1.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 하나님과 자기 백성과의 언약이다.
2. 언약은 성취를 향하여 갱신되고 그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3. 성경의 언약은 구약과 신약이다. 구약이 신약에서 성취되었다. 신약은 구약과 연속성을 가지지만 전혀 새로운 언약이다.
4. 성경은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언약 역사이다.
5. 성경의 문자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는 오직 하나이다.
6. 성경은 성령의 언약문서로서 명료하며 기록된 문서를 해석한다.
이근호(IP:220.♡.214.75)
07-01-11 17:25
권문숙의 성경 문자 해석법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분이 이단이라는 점을 알려주는 겁니다.
십자가 복음에 이의거는 자는 이단 외에는 없습니다. 악마의 탈을 쓴 종들이 아니면 십자가 복음에 이의를 걸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