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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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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2:8-14(목자의 크리스마스)우리교회누가복음

눅2:8-14(목자의 크리스마스)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1)

본문 : 누가복음 2장 8-14절
제목 : 목자의 크리스마스
일시 : 2006년 12월 24일

http://222.231.1.74/~woorich1/성경강해/기타/눅2장,8-14,(목자의,크리스마스)-luk061224.hwp

이근호

06-12-24 13:32

목자의 크리스마스
2006년 12월 24일 본문 말씀: 누가복음 2:8-14

(눅 2:8)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눅 2: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눅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눅 2: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눅 2: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인류의 역사가 아무리 오해 진행되어도 최초의 사건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최초의 사건 안에는 이미 최후의 사건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최소의 사건이라는 것이 바로, 인간이 범죄하고 낙원에서 추방되어, 저주받은 땅에서 저주받은 몸으로 지내고 있어야 한다는 원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구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이 최초의 일을 잊고 삽니다. 최초의 일을 잊게 되면 당연히 최후의 일도 잊습니다. 최초와 최후를 잘라내면 남는 것은 지금의 일, 오늘의 나 밖에 남지 않습니다. 즉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데 기껏 자신이 인생 기간 속에서만 탐구하고 정의를 내립니다.

그러다보니, ‘그럭저럭 이러고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 뭐’라는 결론에 도달됩니다. 물론 세상이 진짜로 그렇게 돌아가면 그런 인생관도 나무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세요. 목자에게 천사가 찾아듭니다. 빛으로 빈들 전체를 환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인간들이 비록 자신에 대해서 더 이상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 인간 세계를 둘러싼 하나님은 결코 최초의 일을 포기하신 적이 없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목자는 혼자 정리하기를, ‘그럭저럭 이러고 사는 거지 뭐’라고 소박하게 인생을 마감하고 싶어도 하나님께서 그를 그만 두지 않고 찾아드는 겁니다. 이것은 곧 최초의 원리를 하나님께서 그대로 시행에 옮기시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부인해도 인간은 그 최초의 사건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최초의 사건에 의하면 인간은 이미 낙원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저주의 땅에 속했기에, 그는 고생과 고난이 평생을 떠나지 않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적실하게 느끼고 잘 알고 있다할지라도, 안다는 이유만으로 이 운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목자가, 밤에도 양을 쳐야 하는 신세라고해서 그 처지에서 벗어나 부유한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이 저주의 땅에서 벗어난 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즉 인생이 허무한 것을 알았다는 것으로 인간이 구원받을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아무리 성경을 읽고, 거기에 예수님의 용서가 있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접하고 예수님을 믿노라고 인정해도 그것으로서 자신의 저주가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죄의 삯 때문입니다. 이 저주는 마치 핏줄과 같아서 우리의 온 몸에 다 적용됩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에게 있어 근원적으로 이 저주가 풀리지 않는 한 ‘기쁜 소식’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난데없이 목자에게 천사가 ‘기쁜소식’을 가지고 왔다는 겁니다.

이 기쁜소식을 목자들이 믿었다고해서 목자의 운명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기쁜소식을 실행하는 쪽은 목자라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 기쁜소식에 내용대로 실제로 실행하시지 못하면, 그 어떤 인간도 구원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도 안되고, 무엇을 해도 안된다면, 결국 인간은 자신의 구원 소망을 접어야 합니다. 포기해야 합니다. 자기 쪽에서 뭘 해도 안된다는 것은 결국 ‘안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최초의 사건 안에는 기쁜 소식도 함께 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쁜 소식의 성취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최초의 사건으로 인해 인간은 극도로 이기주의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내부를 파보면, 손톱도 안들어가도록 단단한 게 들어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아입니다. 자아를 둘러싼 모든 것이 무너져도 결단코 흠집나지 않는 것도 역시 자아입니다. 단단한 쇠공 같습니다. 심지어 죽어도 그 자아를 껴안고 순교하는 식으로 죽습니다. 하나님마저 그 자아라는 쇠덩어리를 분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그 자아를 부수는 방식으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자아를 죽이는 방식을 채택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과 함께 그 ‘저주의 공’을 죽는 방식입니다. 혼자 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겁니다. 죽음이란 단순히 ‘숨끊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주받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여시므로서 인간의 그 자아의 성격을 확실히 해두십니다.

즉 ‘저주받을 자아’일 뿐이라는 겁니다. 이 저주의 자아는 성도라 할지라도 일생을 다가도록 변하지 않고 계속됩니다. 성도도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이기주의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기쁜 소식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하실 표적을 두고 말합니다.

표적이란, 성도와 함께 태어나서 함께 죽으시고 함께 부활하실 그 예수님의 일의 내용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첫 번째 표적이 일어났던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 어머니와 일가 친척들은 잔치의 주최자로서 포도주 떨어진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님보고 포도주를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포도주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즉 예수님은 이 땅에 포도주나 만들려고 오신 분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물을 가지고 포도주를 만들어내십니다. 이것이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표적이 되어야 되는 이유는, 여기서 예수님은 남들보기에 포도주로 보이는 물질을 만들었지만 실은 피를 만드신 것입니다.

포도주를 맛보고 만족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예수님이 만든 피를 마시고 영생을 얻을 자가 있다는 겁니다. 즉 예수님은 이 땅에 포도주 만들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피를 만들려고 오신 분이십니다. 이처럼 표적이란 현재 일어난 일과 장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일어날 일을 표현으로 연결 것을 의미합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가 표적이 되는 이유는, 그 아기가 자라나 성인이 되고, 그 성인이 된 분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령을 보내시는 장래 일을 지금 미리 ‘기쁜 소식’이라는 이름으로 한 아기의 탄생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원초적 사건 안에서 보십니다. 인간은 그 어떤 순간에도 그 밖으로 이탈됨이 없었습니다. 인간이 구원되는 것도 인간 자체가 달라져서가 아니라 최초의 사건 ‘안에서’ 구원되는 겁니다. 마치 지하 100m 안에 놓여 있는 쇠공을 지표까지 끌어올리는데 있어 쇠공은 쇠공대로 그대로이지만 그 쇠공을 한꺼번에 포용해서 주변의 흙까지 푹 파버리는 포크레인의 공로 안에서 쇠공은 지표면까지 올라올 수 있는 겁니다.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더욱 더 넘치게 마련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인간의 노동의 언어보다 하나님의 노동이 언어를 우선합니다. 찬양, 화목, 기쁜, 속량, 대속 이라는 용어들은 모두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바를 표현하는 용어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노동을 표현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이라는 표현도 하나님의 노동을 표현한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취소시킬 죄는 없습니다. 이미 구원받은 자가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 악랄한 죄를 실천한다할지라도 주님께서 ‘기뻐하신 자’ 속에 집어넣으신 그 사랑을 끊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 이유는 이미 성도는 늘 주님과 함께 죽고, 사는 자들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며. 이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참된 하늘의 선물을 우리가 저항 없음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뜻대로, ‘하늘에는 영광’이 될 것이고, 땅에서는 ‘사랑받은 자’가 구원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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