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27 : 1 (용을 죽이다)
사 27 : 1 (용을 죽이다)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1)
본문 : 이사야 27장 1절
제목 : 용을 죽이다
일시 : 2006년 12월 20일
http://222.231.1.74/~woorich1/성경강해/이사야-2005/067강-사27장,1,(용을,죽이다)-isa061220.hwp
이근호
06-12-20 20:56
용을 치시다
2006년 12월 20일 본문 말씀: 이사야 27:1
(사 27:1)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성경에서 얼른 납득이 안 되는 용어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뱀이라든지, 독수리 날개로 업었다든지, 혹은 빛의 자녀라든지, 이 세상이 어둡다든지 하는 용어들입니다. 이런 용어들이 중요한 개념을 품고 있다는 것은 성경이 인간들의 해석을 저지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즉 인간들의 문자적 해석을 거부하고 오로지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은총을 입은 자에게는 성경 해석을 허락한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에 보면, 마음에 샛별이 떠올라야 성경 말씀을 제대로 해석이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샛별이란 긴긴 어두움 밤을 지나고 새벽녘에 최초로 동쪽 하늘에 빛나는 별입니다.
이 말씀은 곧 인간의 해석 시도는 그저 어두움 그냥 묻힐 해석이요, 샛별처럼 떠오르는 주님의 은총에 의한 해석은 참된 진리를 나타내어준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용이라든지 뱀이라는 용어는 성경에서 무시해버릴 그런 용어나 개념들이 아닙니다. 성경을 관통하는 척추의 철심지 같은 역할을 하는 용어입니다.
뱀이라는 용어는 창세기 3장에 나오고, 그리고 요한계시록 12장에도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뱀이나 용어 우주 처음의 이야기와 마지막의 사태에서 깊숙이 관여하는 존재임을 말해주는 바가 됩니다. 즉 뱀을 언급하지 않고 용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성경의 진수를 말할 수 없다는 게 됩니다.
흔히들 뱀이나 용을 악마를 지칭하는 상징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막상 이 악마를 해석하는데 참으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성경을 접급할 때, 자신의 선입견을 가지고 접근한다는 사실입니다.
즉 ‘악마는 나쁘다. 따라서 막상 나에게 나쁜 일이 닥치면 악마가 저질러놓은 일이다.’라는 식으로 해석하기 쉬운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교회 올 때는 마음 속에 꼭 이루고 싶은 소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소원을 방해하는 경우도 고려하게 됩니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낭패의 경우를 염두에 두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낭패의 경우를 당하게 되면 악마가 저질러놓은 일이라고 단정하기 십상입니다.
이처럼 자기 신상에 좋은 일이 생기면 축복이라고 단정하고 나쁜 일이 생기면 악마가 시험이라고 말하기 싶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 중심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거부하십니다. 예를 들어, 믿음에 관한 사항을 봅시다. 야고보서 4장 끝에 보면,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장사를 해서 이득을 보겠다는 계획에 대해서 ‘악한 생각’이라고 단정 짓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누구나 품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자연스러운 마음가짐까지 하나님께서는 악하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참 믿음입니까? ‘주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는 마음가짐이 곧 참 믿음이라는 겁니다. 즉 내가 주체자가 되어서 무엇을 해내겠다는 것은 불신앙이 되고, 주님이 하시는 것을 믿기만 하는 것은 옳은 일이 됩니다.
주님이 하시는 것을 믿게 되면 그 때부터 주님께서 친히 이루신 모든 것이 우리 안으로 밀어들어오게 됩니다. 그 때부터 내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으로 사는 것입니다. 목자가 과연 따로 계신다면 양이 목자 노릇까지 다 할 필요는 없는 겁니다. 목자가 갖고 게신 포부와 맹세와 약속이 양 내부까지 밀어닥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세요. 자신들이 하나님께 뭘 요구하지 않더라도 주님께서 먹이살리시지 않습니까. 들에 핀 들풀을 보세요. 좋은 옷 입혀 달라도 하나님께서 기도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솔로몬보다 더 귀한 옷으로 입히시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비록 우리 인간들의 소망하는 바는 들어주지 않더라도 참으로 중요하고 소중하고 귀한 것을 자기 성도들에게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그 나라와 의’입니다.
바로 뱀이나 악마는 이런 점에 주시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악마의 지배 하에 있기에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귀중한 것인 줄을 알지 못하지만 악마는 압니다. 참으로 자신의 제국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일이 무엇인가를 말입니다. 오늘 본문 뒷부분에 보면 포도원 이야기가 나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 땅에 친히 하나님이 포도원 주인이 되는 그런 나라를 만들고자 하십니다. 그런 포도원이 등장하므로서 앞으로 세상은, 포도원 안과 포도원 밖이라는 두 가지 영역으로 확정지어집니다. 요한복음 15장의 말씀처럼, 포도나무에 붙어 과실이 맺히는 사람과 그렇지 않고 포도나무와 전혀 연관성이 없는 사람들로 구분지어집니다.
참으로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귀하게 보려면 자신이 저주받은 자임을 자인해야 합니다. 여러분 ‘저주가 풀렸다’는 의미가 얼마나 큰 축복이신 줄을 아십니까? 저주에서 풀렸다는 말은, 이 세상에 어디서 언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더 이상 저주가 날아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러한 축복을 받지 못하도록 뱀과 악마는 주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제거하므로서 성사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도 도리어 악마의 감추어진 진실과 본질이 들통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성경을 보는 샛별같은 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너무 사랑해서 자신조차 잊혀질 정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