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9 : 12-16 (영적 국경선)
계 9 : 12-16 (영적 국경선)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1)
본문 : 요한계시록 9장 12-16절
제목 : 영적 국경선
일시 : 2006년12월17일
http://222.231.1.74/~woorich1/성경강해/요한계시록-2006/042강-계9장,12-16,(영적,국경선)-rev061217.hwp
이근호
06-12-17 13:34
영적 국경선
2006년 12월 17일 본문 말씀: 요한계시록 9:12-19
(계 9:12)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
(계 9:13)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계 9:14)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계 9:15)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
(계 9:16) 『마병대의 수는 이만 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계 9:17) 『이같이 이상한 가운데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주빛과 유황빛 흉갑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계 9:18) 『이 세 재앙 곧 저희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을 인하여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계 9:19) 『이 말들의 힘은 그 입과 그 꼬리에 있으니 그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
성경은 하나님께서 따로 딴 세계를 만들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 말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한다는 겁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믿음이란 자꾸만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볼 수 있는 안목이라고 말합니다. 기존의 눈에 보이는 세상말고 따로 하나님이 친히 건설하시는 세계까지 본다면 이는 기존의 세계에 대해서 큰 미련을 갖지 않는바가 됩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게 되면 이 사람은 이 세상에서 남들 못지 않는 엄청한 부를 소유한 자들입니다. 우리들 같으면 그 정도 되면 그냥 이 땅이 좋다고 눌러 앉을 만도 하는데 이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 ‘떠나야만 할 존재’, 즉 ‘나그네’라고 지칭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건설하시는 하늘의 도성이 자신을 기다린다는 겁니다.
이처럼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세상을 확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미련없이 이 세상에서 철수해 나가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이 세상을 포기해야만 할까요? 그 사실을 오늘 본문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세상의 상태를 침울하고 어둡고, 희망없는 곳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희귀한 괴물이 설치는 곳입니다. 꼬리에 머리가 있고, 입에서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온다는 것은 도저히 인간들이 상대하거나 대적할 그 이상의 존재가 활개치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이라는 겁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상대해서 이길 자신이 있을 때만, 전쟁 의지를 갖게 되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의 자기 의지로서 악마를 이기고 구원된다는 이야기를 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악마는 모든 면에서 인간보다 셉니다. 이미 인간의 조상인 아담이 악마에서 꺽인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그 자자손손 인간들의 가진 그 어떤 능력이라도 악마를 이겨낼 만한 능력이 나올 수 없다는 말입니다.
도리어 사람들은 조용한 것을 원합니다. 고요한 것을 원합니다. 그 누가 되었든지 나만 안건드리면 좋은 친구로 삼고 싶어하고, 그 누구라도 나를 건드리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나서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은 평화를 원합니다. 전쟁을 원치 않습니다. 그냥 이대로의 모습으로, 그냥 이런 형편에 조용히 살다가 죽어서 좋은 데 가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지만 전쟁을 하시고자 하는 쪽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가만 두지 않습니다. 자꾸만 우리를 전쟁 양상으로 몰아넣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평화롭게 이 세상에서 그냥 산천이나 즐기면서 살도록 방치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이 땅에서의 안식과 평화를 깨뜨리면서 다가오십니다.
왜 그렇게 하시느냐 하면, 우리는 이 땅에 우리의 둥지를 틀려고 자꾸만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왕국과 우리의 세계를 붕괴하시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속에 품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도려내고 드러내시고자 합니다. 마치 수산시장에서 고기 손질 하듯이 말입니다.
현재 우리는 우리 안에 많은 것을 품고 삽니다. 자식에 대한 소망, 가정에 대한 소망, 국가에 대한 소망, 교회에 대한 소망 같은 것을 품고 삽니다. 하지만 십자가가 다가오게 되면 그런 고기 내장 같은 것들은 다 도려내어져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로 인해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그냥 죽치고 주저 앉게 만드는 요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어떤 식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요? 흔히들 인간들이 악마를 이긴다고 합니다. 하지만 악마를 이기겠다고 나서는 그 마음씨가 악마가 좋아하는 마음들입니다. 왜냐하면 악마의 밥이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들이 사탄을 이기겠다고 나서겠다는 것 자체가 여전히 자신이 품고 있는 재주와 열심과 선행으로 자력 구원을 달성하겠다는 이야기가 되고,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따로 자기만의 영역과 왕국을 소지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가와서 십자가로 그 우리들만의 세계를 와해시키는 일을 하시는 겁니다. 사람이 고요한 가운데 대 자연을 바라보면 결국 궁극적으로 남는 것은 예수도 아니요 하나님도 아니요, 가정이나 국가도 아니요, 오로지 대자연의 웅대함 밖에 없급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처럼 결국 이 세상을 확실히 최후로 남는 것은 자기 자신 뿐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바로 이러한 생각으로 악마를 이기고 죽어서는 좋은데 가려고 합니다. 구약의 사울왕이 이런 오해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나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사울왕 앞에서 골리앗이라는 적이 나타나게 하니, 그는 자신의 왕국에 위기가 온 것을 알게 됩니다. 졸지에 소년 다윗이 나타나 그 골리앗을 쳐부수니, 그 때부터 나라의 주인공은 사울왕이 아니라 다윗와이 되고 맙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세계를 인정치 않는 겁니다.
다윗왕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나라요, 자신은 그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여겼지만 결국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죄인으로 들통나게 만들어버립니다. 즉 죄인으로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의 자리에 앉아있는 겁니다. 이런 일로 통해서 다윗이 알게 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행함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상한 심령을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시는 시온성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세워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즉 이스라엘은 다윗왕 본인의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건설하시는 하나님의 왕국임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홉니와 비느하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왕자는 언약궤가 자기 왕국에 승리를 안겨다 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자신이 그토록 신봉하던 그 언약궤 옆에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난 뒤 언약궤는 인간의 그 어떤 도움이나 협조나 후원도 받지 않은채 홀로 적들을 다 물리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새로 건설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가 성도에게 찾아들면 성도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거덜나야 합니다. 십자가의 능력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겁니다.
십자가의 피는, 성도가 세상을 차마 버리지 못해서 앙탈을 부린 흔적입니다. 되레 자신을 구원해주시는 분을 오히려 자기를 죽이려 한 분으로 간주해서 갖은 힘을 다하여 예수님을 핍박한 그 흔적이 바로 십자가 피로 드러난 겁니다. 이미 다 이루었다 하신 그 나라를 사모하는 신앙의 눈을 가집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지려는 모든 소망이 하나 같이 이루어지지 않게해주시고, 그런 응답이 안 이루어져도 이미 상관없이 구원된 자임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