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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61205a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약신학]-하나님 나라의 비밀(1) 녹취자유게시판요한복음

20061205a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약신학]-하나님 나라의 비밀(1) 녹취

이름 : 한윤범(IP:61.73.49.204)

20061205a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약신학]-하나님 나라의 비밀(1)

(강의:이근호 목사)

시작합시다.

6과에 보면 [그 나라의 하나님] 지난 시간에 6과에 보면, 죄송합니다. 5과에 보면, 옛날 책에 111페이지로 되어 있는데 [구원의 새 시대]란 과에 '의의 은사'라는 제목이 있는데 찾았습니까? 찾았으면 찾았다고 이야기해 주세요.

-6과 찾았습니다.

5과 [구원의 새 시대] 5과 거의 끝부분에 '의의 은사'라는 단락이 있어요. 찾았습니까?

-‘의의 선물’ 있습니다.

의의 선물 있지요. 거기에 보면, 네 번째 줄에 이렇게 되어 있어요.

[랍비들은 의로움이란 율법에 대한 순종과 자비로운 행위를 이루는 인간들의 활동이라고 가르쳤다. 예수는 의를 하나님의 명령인 동시에 하나님의 은사라고 가르쳤다.]

이렇게 아주 저자가 제대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구분하고 있어요. 랍비들은 유대교는 뭐냐? 의로움이란 의는 율법에 대한 순종과 그 다음에 하나님의 자비로운 행위를 해서 의가 나온다. 이렇게 본 겁니다. 의가 어떻게 나오는가? 여기 하나님의 자비로운 행위라는 것은 무엇을 도와주는 자비로운 행위가 될까요? 율법을 순종할 수 있도록 뭐가 나온다? 의가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랍비들이 주장하는 것은 율법을 순종하든 하나님의 자비로 행위를 도와주던 간에 순종하는 주인공은 누굽니까? 어디까지나 ‘나’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래드가 잘 지적했듯이 그 다음에 예수는 뭐냐? 예수님은, 의는 하나님의 명령인 동시에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 하나님의 은사로 가르쳐서 율법 순종으로 완전히 빠져버리죠. 지금 의로움, 또 5과에 보면 죄 사함 나오는데, 죄 사함 나오는데 죄 사함 되면 나오는 게 뭘까요? 의죠.

쉽게 합시다. 랍비들은 말씀을 내가 지켜야 의가 나오고, 예수님 생각은 죄를 사해주면 그게 뭐다? 의가 되고. 다르잖아요. 다르지요. 용서하는 분의 용서에 의해서 의가 나오는 이 의로움이냐, 아니면 니가 말씀 순종해서 뭐 자비로운 행위로 도와주든 뭐든지 간에 하여튼 말씀에 순종해서 의로움이 나오느냐 둘 중에 어느 거 할래? 어느 게 믿어지느냐 이 말입니다.

이것은 노선이 달라요. 노선이 다르다는 말은 제가 강의할 때 늘 주의해요. 노선이 다르다는 말은 니 갈 길 니 가고 내 갈 길 내 가고 그런 말이 아니고, 이쪽이 예수님을 죽여 버리게 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칼 바르트가 굉장히 좋아하는 구절인데. 이 구절은 굉장히 중요한 구절입니다. 칼 바르트가 이 구절을 통해서 칼빈의 유대교적인 것을 박살을 내버려요. 루터 말고 칼빈. 칼빈의 유대교 개혁주의 신학하는 것을 박살을 내버리는데 뭐냐? 요한복음 5장에 나옵니다. 5장 21절인데,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칼빈 개혁주의 쪽에서 뭐냐 하면, 기어이 자아라는 것을 포기 안 해요. 자아가 중심이 돼요. 모든 중심에는 인간이라는 중심이 들어있습니다. 나중에 칼 바르트도 약간 문제가 있습니다만 모든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확정된다. 이렇게 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하시는가?

우리 인간들이 자기 주인공이 돼버리면, 인간들은 열나게 일하고 주님께선 그냥 팔 돌리고 지켜보는 양으로 생각합니다. 안 그러면 뒤에서 밀어주는 정도. 주님께서 열심히 일한다는 생각이 잘 안 들어요. 왜냐하면 자기가 열심히 일하면 남이 나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 잘 느껴지지 않아요. 인식이 안 돼요. 자기가 열심히 일하니까. 자기가 열심히 일 안 하면 일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여기서 예수님께서 이런 이야기하게 되면 참 이런 게 말이 어려운데요. 유대인들이 율법 순종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자기가 순종해서 의가 이루어진다. 라는 것이 하나의 취미활동이나 그런 게 아니고, 이것을 중심으로 했다는 말은 결국은 예수님께서 일방적으로 은사로 명령하심으로써 죄 용서가 이루어지고 죄 용서로 말미암아 의가 나온다는 이것을 핍박하게 되어 있습니다. 핍박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한복음 7장 한번 봅시다. 이런 걸 생각 안 하니까 요한복음 7장에. 7장 19절 다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20절에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율법 순종이라는 주인공을 자기가 지켜야 된다고 주장하니까 결국 그렇게 생각하는 그것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나, 예수를 반드시 죽이도록 되어 있다. 하니까 유대인들이 기가 차서, 당신 미쳤구나! 귀신들렸다는 미쳤다는 거예요. 미쳤구나. 우리 중에 누가 당신 죽이려고 하느냐? 라고 한 거예요. 그런데 결국 어떻게 됩니까? 결국은 예수님을 죽이잖아요.

이걸 두 가지 양상을 한꺼번에 말로 줄이면 결국 뭐가 되느냐 하면, 예수님의 뜻에 의해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일 수밖에 없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하나님이나 예수님은 그걸 의도하신 거예요. 마귀가 없으면 일이 안 된다니까요.

요한복음 6장 끝에 보면, 열두 제자를 뽑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누구였지요? 내가 열두 제자를 뽑았지만 그 하나는 마귀라 했지요. 그런데 여러분, 십자가에 열두 제자 가운데 십자가에 관여한 사람은 누굽니까? 열두 명 가운데 관여한 사람은 누구에요?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몇 년 만이고.

자,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열두 제자를 했는데 그들은 다같이 병고치고 귀신 쫓아냈잖아요. 그런데 십자가에 관여한 사람은 열두 제자 가운데 누구 밖에 없습니까? 놀랍게도 가룟 유다 밖에 없어요. 다른 사람은 십자가 질 때 다 도망쳤거든요.

결국 십자가에 관여한 사람은 우리가 알기로는 예수님 혼자 십자가 다 이루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분석해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 지도록 협조한 분이 계신데 중요한 분이 있는데 누굽니까? 마귀에요. 이것은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 처리한 거예요.

육적인 아무리 평소에 귀신을 쫓아내고 귀신이 하늘에서 떨어졌나이다 뭐 기뻐합니다. 병들 고친 열심히 활동한 나머지 열한 제자가 아무리 병고치고 기적을 행해도 십자가에 관해서는 마귀가 관여하지 다른 사람은 관여 안 해요. 이것은 바로 예수님, 그 마귀까지 결국 예수님 홀로 다 이루었다는 겁니다. 십자가로 홀로 이루었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홀로 이룬 것을 부활하시고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말은 결국은 뭐냐? 다가온다는 말은 아까 이야기한 우리의 의로움은 유대인들은 율법 순종해서 의가 생기고, 예수님은 죄 용서함으로 의가 생긴다 했잖아요. 결국은 이러한 십자가가 다가온다는 것은 우리로써 하나님의 의로움을 이룰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가오시는 이유가 예수님 혼자서 십자가를 다 이루었다는 것을 더욱 뚜렷하기 위해서 다가오죠. 다가오실 때마다. 다가오실 때마다 아하, 주께서 다 이루셨구나. 나는 한 게 없구나. 다가오실 때마다 그런 거죠.

그럼 다가오실 때마다 그렇다면 그럼 우리는 우리 자체가 생생하게 살아있지 않습니까? 죽기 전에는 우리가 살아 있잖아요. 그러면 홀로 다 이루었다는 거 맞은편에 우리는 뭘 느끼게 돼요? 나는 그동안 뭐 했느냐? 열심히 설교하고 성경공부하고 했는데, 도대체 그럼 설교하고 성경공부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이게 도대체 뭐냐 말이죠. 도대체. 나는 이게 중요하다고 봤는데 왜 홀로 다가오심으로 왔을 때 이건 뭐가 됩니까? 결국 그것이 너의 의로움에 일말의 보탬도 되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소위 칼빈의 후예라고 하면서 칼빈주의들 개혁주의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예수 믿고 난 뒤에 의를 자체적으로 이룰 수 있다고 본 거예요. 지금 문제가 그겁니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이룬 의를 왜 의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느냐? 이 나쁜 놈들아. 십자가마을에 있는 놈들아. 우리가 자체적으로 의를 이룰 수 있는데 왜 아니라고 죄라고 이야기하느냐? 지금 그게 문제인 거예요.

사도행전 3장에 앉은뱅이 일어날 때에 베드로와 요한이, 내게 금과 은 줄 돈은 없지만 예수 이름으로 일어난다고 했다고 해서 귀에다가 확성기 대고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 천 번 외치면 일어납니까? 앉은뱅이가. 나중에 알고 보니까 예수님이 주신 믿음이 그 사람에게 임할 때 바깥에서 천 번, 만 번 외쳐도 안 일어나지만 그 사람에게 예수의 믿음이 그 사람에게 주님의 믿음이 그 사람에게 임하면 단 한번 듣고 앉은뱅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럴 때 다른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했구나. 할 때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우리의 경건과 능력으로 한 게 아니고, 예수님이 직접 그 사람에게 주신 믿음으로 그 사람을 낫게 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것은 뭐냐 하면, 십자가가 오늘날 십자가가 어떤 식으로 이 땅에서 자체적인 의를 남기느냐를 대변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십자가는 철저하게 그 십자가의 일을 하는 사람의 의로움마저 제쳐버립니다. 그걸 제외시키고 예수님이 직접 주신 모든 것을 예수님이 직접 일하시는 거예요.

한번 적읍시다. 중요하니까. 십자가로 말미암아 완성되었고 십자가가 증거 된다는 말은 이렇게 단출한 문장으로 한다면, ‘예수님께서 직접 일하신다.’ 직접 일해요. 직접 일하신다고. 그건 왜 그러냐 하면, 죄 용서의 권세는 우리에겐 없습니다.

오늘날 주님께서 그 십자가 일을 하는데 우릴 참여시키죠. 그래서 너희들이 용서하면 용서가 갈 것이고, 너희들이 용서하지 않으면, 이런 모든 교회의 말씀도 우리를 거기에 참여시키긴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처럼 참여시키긴 하지만 결국은 참여된 그 사람마저 그냥 목격자로 남게 만들고, 실제로 모든 일은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직접 일을 하십니다. 그 사람에게. 그렇게 해서 본격적으로 예수님의 공생애의 일이 적용되는 그런 시대에 들어오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만드는 의는 없습니다. 왜 그러느냐? 의는 죄 용서함만이 의가 되지, 다른 뭐 말씀 지켜서 의로운 경우는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죄 용서만이 의롭게 되는 것은 화목제물이라는 걸 가지고 이미 아버지와 이야기가 끝난 상태에요. 화목제물로 통해서 죄 용서가 되면 의가 되게 하리라. 이미 두 분 간에 언약이 끝났기 때문에 그 사이에 우리 인간이 추가적인 행위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 예수님께서는 ‘명령’이라는 참 중요한 말을 썼는데, 명령이라 하는 것은 명령이 도중에 실시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명령은 은사를 통해서 반드시 이 땅에 실현되기 마련이죠.

여러분한테 잠깐 제가 문제를 하나 던질 테니까 답해 보세요. 구약 때 사람의 죄를 끄집어내기 위해서 율법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문제를 여러분한테 제시합니다. 그런데 신약에는 율법이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우리의 죄를 지적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게 문제입니다. 답변해 보세요. 누가? 죄를 지적했던 것이 율법인데, 죄를 지적한 율법이 이젠 없어져 폐지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죄를 지적하는 게 뭡니까?

그걸 성경전체에서 보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사랑’이라 합니다. 아무리 뭐 돈을 사랑 안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분을 품되 해지도록 분을 품지 않고 하더라도 그게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요. 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율법 조항이 되는 게 아니라서 내 측정 능력을 초월하는 겁니다.

사랑으로 했느냐 안 했느냐 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기준 밖에 없어요. 그거는 시편 50편에 행사하는 본인이 사랑으로 될 때 비로소 그게 사랑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자기가 죄인으로 들어날 때만 그게 사랑이에요. 신약시대에는. 주께서 자기 백성을 가지고 사랑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럴 때 그 자기 백성은 그 사랑이 임함과 동시에 상한 심령이 돼버려요. 내가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상한 심령이 돼버립니다.

그 사랑이 오게 되면 그 어떤 것 앞에서도 내가 내 힘으로 잘했습니다. 말을 하질 못해요. 사랑 앞에서는. 부끄럽습니다. 이렇게 용서해 주시다니. 눈물을 흘리면서 머리털로 발로 씻는 것처럼. 지금은 사랑으로써 우리의 죄를 지적해내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없어져도 괜찮지요.

그럼 율법의 완성을 뭐라고 합니까? 두 자로? 사랑이잖아요. 율법의 완성이 사랑이고, 율법의 완성이 십자가잖아요. 십자가가 곧 사랑이니까. 율법의 완성이 사랑이니까 사랑은 봐주는 게 아니고, 오히려 더 철저하게 왜 내가 용서해야만 네가 구원받느냐 더 철저하게 우리에 있는 밑바닥까지 다 들추어내는 그러한 사랑. 그러니까 그 사랑이 무슨 사랑이냐 하면, 죄를 지적해주는 고마움이죠.

건방떨지 않게 하고, 촐랑대지 않게 하고,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백케 하는 그 사랑. 그 사랑 앞에서는 우리는 항상 나는 있어도 없는 자가 되고 살아도 죽은 자가 되는 겁니다. 남는 것은 뭐가 남아요? 사랑만 남는 거죠.

이것이 바로 아까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명령은 뭐로 본다? 하나님 명령은 뭐로 봅니까? 은사인데 앞에 무슨 은사? 사랑의 은사.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진리와 함께 참으며, 온유하며, 자비하며. 자기 유익을 구치 않고. 구하지 아니하고. 야,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인간의 경우는 불가능하죠. 그러니까 이거는 선물로 봐야 되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언제 스데반 집사가 자기 유익을 구했습니까? 그냥 죽을 때도 그들을 용서할 뿐이죠.

지난 5장에서 그런 중요한 것이 있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오늘 진도 나갑시다. [그 나라의 신비] 7장입니다. 6장에서는 뭐냐 하면, 찾아주시는 건데. 6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여기 6장에는 그게 없던데. 성경 한번 찾아봅시다. 마태복음 9장 6절.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지요? 사하는 권세. 일방적인 권력, 그러니까 권세지요. 그러니까 사하는 권세가 되면, 그게 의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뒤에 나오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지만 병든 자에게는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그 뒤에 나중에 하나 붙으면 뭐가 됩니까? ‘나는 죄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불러서 의인되게 했다.’ 이게 붙겠지요.

근데 이게 새 시대에요. 옛날 시대는 내가 주인공이지만, 새 시대는 예수님이 주인공이 되어서 일방적으로 독자적으로 처리해 버리지요. 독자적으로 처리했다는 흔적을 남길 때 그 흔적을 믿음이라고 하지요.

요한복음 9장에서 실로암 물가에 씻은 눈이 낫던 사람이, 누가 그렇게 했던가? 할 때 예수님이 그렇게 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쉽습니까? 본인이 믿잖아? 아니, 내가 믿는 게 아니고,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그걸 믿음이라고 합니다. 본인이 믿습니까? 본인이 믿는 게 아니고, 주께서 하셨다니까요. 그걸 믿음이라고 하는 거예요.

믿음이라는 게 추상도 없어요. 행위의 주체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믿음이냐, 아니냐가 되는 겁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에요. 그 바라는 것이 울산에서 그 이야기했는데 바라는 것, 이것 자체가 믿음이고, 실상은 그 바라는 것이 꽂히는 그분이고 예수님을 바라기 때문에 이것 전체가 관계가 믿음이라는 거예요. 믿음이 생길 때는 뭔가 바라게 되는데 그 누굴 바라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바란다. 이게 믿음이다 이 말이죠.

그래서 아브라함은 믿기에 자기 아들을 죽이려 했고, 기생 라합은 믿기에 거짓말해서라도 정탐꾼을 살려줬잖아요. 이게 전부다 그것이 뭐냐 하면, 믿음에 대한 행함이란 말이죠. 행함으로써 믿음을 이야기한다 이 말이죠.

권세, 죄를 사하는 권세가 우리에겐 없습니다. 예수님에게만 있습니다.

자, 7장에 [그 나라의 신비]라고 되어 있는데 이 대목은 무슨 대목이냐 하면, 조지 래드가 제일 신경 많이 쓰면서도 여전히 글을 보면 여러분 읽어 보셨겠지만, 이장우 목사님은 잘 읽어보셨는데 다른 분들은 읽어보셨는지, 이걸 보면서 뭔가 제일 신경 많이 쓰면서도 결국 이 사람이 저자가 해답을 포기했어요. 도대체 모르겠다. 도대체 예수님의 비유의 뜻을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뭐라고 보느냐 하면, 그 나라의 신비라고 되어 있는데 번역도 나중에 나온 책도 신비라고 되어 있습니까? 번역을.

-‘비밀’로 되어 있어요.

비밀이 맞네. 비밀은 풀리지만 신비는 안 풀리거든요. 여기서 신비란 도대체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더라. 결국은 내가 보기에 잘 모르겠다. 예수님의 비유를 설명을 잘 모르겠다고 그냥 그런 쪽으로 뉘앙스 굉장히 강합니다. 이 7장의 이야기는 마태복음 13장의 해석문제입니다. 흔히 비유장이라고 하는데, 비유에 관해서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 하는 그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20세기 중반에 들어와서 신약신학자들 간에 대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비유를 어떻게 풀 것이냐? 비유를 못 풀면 예수님 모르는 게 되고, 예수님 말씀이 뭔 뜻인지 모르는 게 되고, 만약에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풀려고 한다면 예수님의 비유를 그냥 푸는 게 아니고, 풀 수 있는 열쇠를 나름대로 신학을 정립해서 다가서기 때문에 푸는 게 문제가 아니고 결과가 문제가 아니라 처음에 열쇠, 니 열쇠에 문제 있다, 안 있다, 그 논쟁이 심하게 일어나요.

비유에 들어갈 때는 그냥 들어가는 게 아니고, 예수님은 이런 분일거야. 라고 다짐을 하고 들어가는데. 비유의 특징은 네가 이 비유를 볼 때 어떤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 가를 들통 내게 하는데 그 존재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게 정답이에요. 그것까지는 신학자들이 알아냈어요. 뭐냐 하면, 비유라는 것은,

다시 정리하면, 비유라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이냐가 아니라 너, 전에부터 어떤 생각을 나에게 나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어? 라는 것을 노출시키고 그걸 폭로시키는 역할이 비유라 이 말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여기 지금 혼합곡물차, 하늘보리라는 게 있는데, 이게 뭐냐? 하늘보리라는 차다. 아무 문제없어요. 차 맞다. 어떤 인간도 나는 이걸 보니까 내 죄가 생각나는구나. 이런 인간은 없습니다. 어떤 사물을 볼 때 저건 시계다. 그럼 시계지 저 시계 볼 때마다 자꾸 죄가 생각나.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 이런 사물은 없어요.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한 중에 하나가 예수님을 시계나 차처럼 하나의 대상으로 보는 거예요. 예수님, 좋은 말 스승이여, 좋은 말 해주세요. 우리가 듣고 순종하겠나이다. 하나의 대상으로 보는 거예요. 그분이 현재 그렇게 바라보는 나의 허점을 완전히 폭로시키는 분으로 보지 않고 나는 나고, 저분은 내 앞에 서 있고. 그러니까 나는 저분의 말을 들으면 된다는 겁니다. 물론 그분이 야, 니 죄를 알아야지 하면, 예. 알겠습니다. 라고 하고. 너는 이렇게 나쁜 점이야. 맞습니다. 제가 이렇게 나쁩니다. 반성하겠습니다. 라고 반성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뭡니까? 나는 나고, 그분은 그분이죠. 이게 좀 어려운데.

뭐냐 하면, 아들한테 부모님이 있을 때 아들은 부모님 앞에 아주 공손하게 있습니다. 너, 성적이 이게 뭐야? 앞으로 성적 올려야지. 예. 잘하겠습니다. 이런 것 나쁘지. 예. 나쁩니다. 이렇게 고분고분 순종하고 앞으로 반성해. 반성하겠습니다. 이러면 부모하고 자식 사이는 그 정도면 원만하다 이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우리 사이는 성도는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고분고분 순종이고 뭐고 간에 그 고분고분 순종하겠다는 그 버르장머리까지 다 부셔버리는 거예요. 도무지 해석 자체를 거부해 버리는 겁니다. 적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해석 자체를 용납을 안 해요. 용납 안 하심. 해석 자체를 용납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무가치하게 보기 때문에 있으나마나 하게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이 뭔가 반성을 해도 일단 잘 할게요. 그러니까 저를 인간으로 대우해 주세요. 라는 희망이 있을 때는 잘 할게요. 잘못했습니다.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앞으로 훌륭하게 살겠습니다. 라는 게 되는데, 아예 나를 인간 가치로 보질 않는다 하면 주께서 그런 소리, 나는 죄인입니다. 라는 말도 안 듣지요. 그런 것은 듣지도 않지요. 뭐고? 저리가라. 앞으로 잘 할게요. 저리가라니까. 잘하겠습니다. 상종을 안 하죠. 상대를 안 한다니까.

예수님의 비유는 우리로 하여금 왜 주님의 일에 우리를 넣어주질 않는가? 그 이유를 보여주는 내용이 주님의 비유입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그겁니다. 주님의 비유라는 것은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일에 끼어 넣어주질 않는가? 그 정도로 우리가 무가치한가? 정말 안 끼워주면 저는 방종할 겁니다. 방종을 하던 방귀를 뀌든 니 마음대로 해라. 그러면 제가 살인하고 간음할 겁니다. 살인을 하던 열, 천명을 죽이든 나 몰라. 아예 상종을 안 해 줘요. 기도하겠습니다. 전도하겠습니다. 그것도 상종을 안 해 줄 뿐더러 죄 짓겠습니다. 해도 상종을 안 해 준다니까.

이게 비유의 첫 번째에 나오는데. 마태복음 13장 비유를 봅시다. 이 비유 이야기할 때 아직도 기억납니다. 총신 2학년 다닐 때 신성종 목사님한테 비유할 때 이 대목에 이런 논쟁이 있다 하는 것을 그때 했고, 또 도서관에 가서 거기에 비유, 유명한 사람 있잖아요. 예레미아스, 이런 사람들의 [예수의 비유]라 하는 분도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이 있거든요. 최고로 쳐주는. 그런 책들 다 보고 그리고 비유에 대해서 다른 우리나라 학자들 비유를 봤어요. 봤는데 이 책도 여기 베끼고, 요 책도 여기 베끼고, 베끼고 해서 한 권만 보면 나머지 다 아는 그런 식이던데.

마태복음 13장에서 14절에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라는 대목.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일단 이 말씀에서 예수님의 제자와 성도들을 제외해야 됩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제자와 오늘날 성도를 제자들과 성도들을 포함시키면 안 돼요. 왜냐하면, 성도 제자 됨이라 하는 것은 주님께서 죄 용서함으로 만들어내는 거기 때문에 지금은 죄 용서함의 의미를 아는 대목이기 때문에 나, 이미 죄 용서받았다고 까불면 안 돼요. 그러니까 그쪽은 포함시키면 안 되고,

왜 인간은 죄 용서함을 받아야 되느냐? 하는 그 문제에 들어가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되는 것은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모든 인간을 다 이야기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든 성도든 마찬가지 다 포함시키는 겁니다. 왜냐하면 성도와 제자라 하는 것은 일단 죄 용서함을 거쳐야 되기 때문에. 죄 용서함 안 거치고 그냥 와버리면 니, 뭘 받았노? 죄용서. 무슨 죄? 몰라. 죄 용서함 받았다고 이야기해놓고 무슨 죄? 하니까 무슨 죄인지 모르는기라.

무슨 뜻이냐 하면,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하잖아요. 그런데 십자가가 뭐냐 하면, 갈라디아서 1장 4절에 보니까 이 악한 세대에서 자기 아들을 죽임으로써 이것이 복음이라 했잖아요.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받는다 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다른 복음 전하면 저주받는다 하는데, 진짜 복음이 뭐냐 하면, 이 악한 세대에서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이게 복음이에요.

그러면 여기서 뭐가 나와요? 악한 세대가 나오잖아요. 그러면 정말 구원받은 사람 같으면 어디 관심 있습니까? 왜 악한 세대가 어떻게 해서 악한 세대이기에 예수님이 자기 몸을 드려야 되는가? 이렇게 돼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악한 세대는 잊어버리고 예수님이 몸 바쳐 구원했다. 이것만 달랑 나와 버리면 자기가 어떤 것에서 악한 세대인 줄 모르잖아요. 기껏 악한 세대라 하는 것은 뭐 마음속으로 음욕 품고, 이 정도라.

그게 악한 세대가 아니고, 뭐가 악한 세대냐 하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데 자꾸 내가 끼어들어서 내가 거기다 삽입시켜서 내가 개입해서 나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게 악한 세대에요. 이미 창세전에 성부, 성자 이야기 끝났는데 자기가 자꾸 끼어드는 거예요. 아주 못된 버릇이에요. 가인이 제사 드리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울산 공부할 때 그 이야기하면서 저도 신났는데. 뭐냐 하면, 가인이 제사드릴 때 하나님께서 가인 제사만 보는 게 아니고, 동생 아벨의 제사까지 해서 가인을 약 올리게 만들었어요. 누가 그렇게 만들었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약을 올렸습니다. 황 전도사님, 그날 들었지요? 다 잊어버렸지, 뭘. 의도적으로 약을 올렸단 말이죠.

약을 올리니까 하나님께서 장난이 심해서? 인간이 제사하는 것 좀 받아줘도 괜찮은데. 그리고 안 받더라도 니 제사 안 받는다 하고 그냥 안 받으시면 되는데, 꼭 맞은 편에 해서 동생 제사해서 그건 달랑 받아버리네. 누구 속 뒤집어놓을라고. 부아 나게 만들라고 아주 환장하게 만들어요.

예를 들어서 목사님이 우리 교인 가운데 어디 누구는 안수 안 해 줍니다. 절대로 난 안수 안 해 줍니다. 해놓고 말 떨어지자마자 아이고, 김 집사, 안수 받으세요. 이러면 다른 최 집사, 황 집사, 이 집사, 박 집사 얼마나 성질나겠습니까?

하나님은 일을 꼭 그런 식으로 해요. 달라 하는 사람에게 안 주고, 안 줘도 됩니다. 하는 사람에게 줘버려요. 그리고 그걸 사랑이라 하고 그 사랑으로만 은혜로 구원받고. 따지고 보면 굉장히 쉽네요. 쉬운데 안 믿는 사람은 천불나요. 속 뒤비진다. 경상도 말로 속 뒤집어지는 거죠.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말은 아까 래드 이야기한 것처럼 명령입니다. 이사야의 명령이고, 그거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되는데 어떻게? 은사는 이루어져야 되는 겁니다. 주님한테 성령이 임해서 이 말씀을 이루는 겁니다.

예수님도 자유로울 수 없어요. 이 말씀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 위에 언약이 있습니다. 남들한테 또또또 달려든다. 예수님은 언약 밖의 일을 못하십니다. 언약만 하시는 겁니다. 제 멱살 쥐고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여호와는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처음부터 구약 언약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거예요. 하나님, 신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신은 건 다 마귀가 조작된 거고, 진짜 하나님은 역사, 국가, 택한 백성, 이스라엘에 나타나는 하나님만 하나님인데 그분은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자기 맹세와 자기 약속만 이루지 딴 것은 하지를 못해요.

마귀를 천국 보낸다든지 못합니다. 그런 재주가 없어요. 마귀를 천국 보낼 수가 없어요. 주님은. 왜? 언약에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왜? 미워하기로 작정되어 있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 천국 보내기로 했으면 그 인간이 무슨 짓을 해도 지옥을 보낼 수가 없어요. 성질 같으면 지옥 보내서, 아, 정말. 성질 같으면 지옥 천 번 보내겠는데. 참, 약속이. 가라! 천당으로. 실컷 축복이나 누려라! 이게 믿어져야 됩니다. 이게 내 머리로 내 고통으로 믿어지는 게 아니에요. 성령이 임해야 되는 겁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라는 것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 보고 하는 이야기에요.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완악해져야 돼요. 완악해져야 됩니다. 벌써부터 완약해졌을 뿐더러 계속 완악해져야 돼요. 예수님 말씀 들어도 계속 완악해져야 돼요.

지금 제가 우리교회에서 주일날 요한계시록 하는데 앞으로 흥미로울 겁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벌을 내리면 벌을 내릴수록 더욱더 그들은 방어체제가 굳혀집니다. 단단해져요. 안 믿는 사람 구제하고 봉사해봐야 그 완악한 마음은 콘크리트처럼 더 단단해져요. 도와 달라, 도와 달라, 더 도와줘보세요. 더 완악해져요. 뭐 구제하고 도와주면 마음이 돌아선다고요? 천만의 말씀. 그런 식으로 구제해서 구원받은 적이 없습니다. 아무도 천당 못갑니다.

최고의 사랑은 너, 죄인이야. 이야기 밖에 없어요. 너도 죄인이고, 나도 죄인이야.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는다.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젊은 새댁들이 안 믿는 시아버지 어떻게 개과천선시켜서 교회 편하게 가려고 하는데 다 헛짓, 소용없는 짓이에요. 간만 키워줘요. 귀만 세워지지. 일부러 나쁜 짓 하라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마음이 완악하여지고 그 귀로 듣고 둔하고 눈으로 감겼으니"

그러니까 우리의 귀와 눈은 이미 고장 난 상태인 것을 우리가 인정 안 하고 있으니까 너의 귀와 눈은 하나님 아는 데는 고장 난 것을 그걸 발각시키는 방식으로 비유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비밀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주님께서 소경이라고 이야기할 때 비로소 우리는 소경인 줄 처음 알았어요. 안 그러면 우리는 똑똑하다고요. 똑똑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똑똑합니까? 홍해 건너온 것을 은혜로 알지요, 여호와 언약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도 알지요. 모르는 게 없어. 성경 달달 외워. 구약성경 다 외우고 있어요. 말씀은 우리의 내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하는 것도 다 알지요. 마음이 겸손한 것도 알지요. 얼마나 겸손합니까? 정기적으로 전 국민이 회개한다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고 있잖아요. 얼마나 겸손합니까? 주님께선 제자하고 술 먹으로 갔지만. 얼마나 겸손한지 그들은 가슴을 치고 회개하고 말이죠.

그들의 귀와 눈이 막혔다는 것은 철학을 공부하면 귀와 눈이 막혔으면 다 막힌 거예요. 철학가들은 말합니다. 사람이 오각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이 눈이라고 봐요. 이건 또 산상설교에 나오는 말씀 같은데. 제일 중요한 게 눈인데 눈이 왜 중요하냐 하면, 지금 과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어디까지 발견했느냐 하면, 빨강색을 본 적도 없는 맹인도 빨강색을 기억한다는 겁니다. 그거는 우리 눈 뜬 사람은 이해 안 되지요. 그거 지금 완전히 밝혀졌어요. 전에부터 몇 십 년 전부터 그거 다 아는 상황이에요.

노랑색을 한번도 본 적도 없는 노랑색을 맹인이 노랑색을 감각을 갖고 있어요. 이것은 눈 감각이 아니고, 노랑색, 빨강색을 분류하는 다른 뇌의 작용 때문에 그런 거예요. 결국 이것은 뭐냐 하면, 사람들의 눈과 귀로 인하여 종합적으로 눈과 귀가 문제가 있다는 이 말은 눈과 귀, 그게 문제고 딴 건 괜찮다 이 말이 아니고, 눈과 귀가 망가졌다는 말은 종합적으로 뭉치는 이 모든 것도 다 망가지고, 제가 강의할 때 처음부터 그랬지요. 망가지는 정도가 아니고, 반드시 핍박을 하게 되어있다니까요. 반드시 두 번째를 놓치면 안돼요. 제가 여러 번 강의했다고요.

제가 참 답답한 게 강의할 때마다 이 자리에 있는 분들에게 혹시 이런 소리하면 나중에 딴 소리해서 아닙니다. 할 사람 있습니다. 수십 번 내가 이야기 전에도 그런 게 있었는데. 다시 또 이야기합니다. 뭐냐 하면, 사람은 자기가 망가졌다. 이게 아니고, 망가진 게 가만히 있는 망가짐이 아니고, 반드시 십자가를 훼파하고 훼방하고 방해하는 쪽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니까. 이게.

이근호 목사님, 귀신 들렸구나. 언제 당신을 반대했습니까? 라고 말을 한 것이 아까 요한복음 7장에서 예수님 보고 이야기했잖아요. 그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을 죽일 사람인 줄을 본인도 모르는 거예요. 인간은 자기가 망가졌기 때문에 자기가 망가진 것도 모르고 예수님을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사실도 몰라요.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 유대인들이. 모른다고. 그러나 누구는 압니까? 주님은 아시지요.

예를 들어서 예수 믿고 난 뒤에 새사람 되었으니까 말씀을 지키겠다는 사람, 그 사람이 그렇게 지키다가 십년 후, 십오 년 후에는 반드시 이제 십자가 필요 없다. 쪽으로 나올 것이다. 라는 사실을 처음 십자가 믿을 때 그 사람 몰라요. 그 사람 알지를 못합니다. 알지를 못하지만 주께서 그쪽 노선으로 가게 만들어요.

가게 만들어서 아무리 그쪽 노선이, 노선이 아니다. 그거는 아니다. 라고 이야기해도 동의한다. 믿는다. 당신과 다를 것 없습니다. 라고 하면서 계속 가고 있는 거예요. 다 압니다. 나도 십자가 믿습니다. 하고 계속 가고 있는 거예요. 그래도 우리 성도는 의를 행할 수 있습니다. 이런 쪽으로 계속 가고 있는 거예요.

처음부터 악한 세대가 왜 악한 세대라는 것을 십자가 앞에서 규정하는 게 아니고, 자기가 평소에 양심적으로 볼 때에 나쁜 짓 한 것부터 출발하니까 이제는 예수 믿고 난 뒤에 반복적으로 두 번 다시 그런 죄는 안 짓는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두 번 다시. 아이고! 반복적으로 두 번 다시 안 짓는데.

제가 울산 강의할 때 했잖아요. 백화점에 쇼윈도우에 고급 원피스 걸려 있으면 한 번 지나갈 때마다 싸워요. 내가 저 시험에 빠지지 않아야지. 사탄아, 물러가라! 나는 저걸 안 산다. 한 번 지나갔습니다. 그 다음날 출근하면서 또 봤습니다. 또 싸웁니다. 사탄아, 니가 날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또 싸웁니다. 열두 번 했습니다. 열세 번째 사버립니다. 반복해서 안 짓는다고요?

과거에 결혼하기 전에 헤어진 애인을 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아니, 주몽이 소서노를 잊어요? 못 잊습니다. 기억이라는 것은 잊지를 못하는 겁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잊는다고? 세상에 사기를 쳐도 어디 이런 사기를. 자기 선한 행위를 잊어요? 곱빼기로 추가적으로 합니다. 나는 선한 행위를 했지만 나는 이거 선한 행위로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라는 것이 이게 뭉쳐져서 그 자체가 선한 행위가 되는 거예요. 그거 잊지를 못합니다.

나는 열두 번 착한 일했지만 열두 번 착한 일 할 때마다 나는 내 자랑 안 했다는 그거 열세 번째 뭉쳐져 들어가는 거예요. 지붕 위에 눈 굴리면 눈이 점점 뭉쳐지잖아요. 어떤 인간이 자기 의를 포기할 놈이 누가 있습니까? 이건 놈이라고 해도 괜찮아요. 어떤 인간이 자기 의를 포기합니까? 세상에, 귀신을 속여라! 어떤 거짓말을 그렇게 함부로 해요.

교인들이 예배 참석 한번 참석 할 때마다 마일리지 쌓이는데. 마음속에. 목사님이 집사님, 요새 잘 안보이던데? 지난달에 한 번 왔잖아요. 아니, 성령으로 행한 것은 잊으라고 했는데 어느 놈이 그렇게 합니까? 난 못 잊겠던데. 난 안 잊습니다. 지난달에 한 번 온 거 절대 안 잊습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이게 인간이에요.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절대로 그 귀, 눈 안 고쳐집니다. 고쳐져서 돌아오는 법은 없습니다. 절대로 안 고쳐집니다. 왜 주님께서 이렇게 합니까? 자, 한번 보세요. 여기 참, 이 대목이 어려워요. 그래서 어느 철학자 책을 봐도 이 대목을 설명한 책이 없어요. 내가 총신 때 2학년 때 아무리 책을 열 몇 권 보고 비유에 대해서 봐도 결국은 설명하지를 않아 사람들이. 왜? 신학을 하는 신학 자체의 자기 자신의 의로움을 포기 안하기 때문에.

지금 개혁주의의 문제가 개혁주의 자체를 포기 못하는 게 문제에요. 그게 어디서 나오느냐? 그거 한번 따져보세요. 그거 왜 따집니까? 개혁주의가 최고인데 왜 따집니까? 칼빈이 많이 따졌고 다른 유명한 신학자들이 따졌는데 내가 왜 따집니까? 따져보니 괜찮데요? 철학책 들여다봤습니까?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 왜 철학을 합니까? 참. 신학 중에 최고의 신학은 철학이에요. 헤겔 철학입니다. 그거는 신학까지 포함해서 모든 종교를 포함해서 신학을 해야 돼요.

여기 보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안 되는 이유가, 하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하고 계약하기를 못 돌아오도록 막는 계약을 했기 때문에 그래요.

이걸 제가 [지옥의 하나님]에서 저지하는 하나님이에요. 구원받고자 하는 자를 기어이 저지하는 거예요. 서울 영등포 기동대에요. 시위대들이 자꾸 국회에 들이대는 걸 방패를 가지고 자꾸 저지해요. 좀 아저씨들 나가세요. 해산하세요. 구원, 구원! 나가세요, 나가세요. 천국, 천국! 지옥에나 가라, 지옥에나 가라고 밀어내는 거예요. 계속해서, 그것도 강력하게.

주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는 것을 일체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럼 인정하지 않으면 인간에게 남는 게 뭐냐? 인간은 무슨 짓을 해도 개떡이고 엉터리고 다 왜곡이고 실수고 오류고 그렇게 계속 남는 겁니다. 우리를 천국으로 보내 달라! 데모를 하면, 하늘나라에서는 니 주제를 알라! 우리가 반성하고 고치면 될 것 아니냐? 하나님은, 니가 반성하는 걸 원하는 것이 아니고, 니가 얼마나 엉터리냐를 보는 걸 원하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여기 요한계시록 18장 20절, 다같이 읽어봅시다. 상당히 어려운데. 시작.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즐거워하라’고 했다고. 뭐가 즐거워하는 거예요? 심판받는 걸 즐거워하라는 거예요. 이건 무슨 변태 같은 마음? 남이 심판받는 걸 저주받는 걸 즐거워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성령 받지 못한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구원을 저지한다, 구원받지 못하게 한다, 심판 받는 것을 즐거워한다.

그러니까 우리 보고 하는 소리가 심령이 처음부터 비뚤어지고 열두 번도 더 비뚤어져서 악한 마음에 이제는 그들이 뭐냐? 양심이 파손했다 이렇게 해요. 신앙도 파손하고 양심도 파손하고 다 파손했다. 여기 요한계시록 18장 20절은 다 파손한 사람들이에요.

가룟 유다 울면서 뉘우치고 자살할 때 구원하지 않는 하나님, 그거 파손한 겁니까? 애굽 군대가 따라왔을 때 그들이 홍해 물에 빠져죽을 때 그걸 보고 환호성을 올렸던 그 이스라엘 백성들, 히브리인들, 그 사람들 전부다 변태들이에요? 정신이 꼬부라져서 전부다 남 못되는 걸 즐겨하는 그런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까?

그들은 그런 악한 마음이 아니라, 악한 마음이던 선한 마음이던 주께서 지금 살아있다는 것에 지금 탄복하는 사람이에요. 주께서 일을 실제로 할 줄을 꿈에도 생각 못 한 거예요. 놀라운 일을 하신 것에 대해서 지금 기절초풍할 일인데 언제 자기가 악하다, 선하다 그걸 지금 탐색할 겨를도 없어요. 주께서 하는 일이 너무 오묘하고 너무 놀라워서.

주일날 아침에 그런 이야기했습니다만 태양을 가지고 연극을 할 때 태양을 매직으로 그리면 안 뜨거워요. 그런데 실제 태양이 오면 뜨거워서 연극 보다가 다 타죽습니다. 표면온도가 8000도가 되니까 다 타죽지요. 우리는 사람들은 눈과 귀가 지금 고장 났기 때문에 가상적인 예수, 가상적인 천국을 설치해서 연극을 하는 거예요.

그러나 실제로 실제 태양이 오면 타죽듯이 그 뜨거운 태양마저 만드신 실제 창조주께서 이 땅에 왔을 때 사람들은 너무 시시해서 안 믿는 거예요. 실제로 오시니까. 뜨거운 태양이 오면 죽잖아요. 그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나타나니까 사람들 벌벌 떨었습니다. 그런데 그 벌벌 떤 사람들에게 시내산 꼭대기가 아니고, 바로 옆에 오니까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 거예요.

당신 가짜지? 이렇게 하는 거예요. 당신 사기지? 요새 사기꾼 많더니만 당신도 사기꾼이지. 메시아라고 자칭 사기, 이러는 거예요. 심지어 귀때기까지 때리고 말이에요. 심지어 제자들도 예수님께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 그러면 안 됩니다. 이 사탄아 물러가라. 니가 나를 능멸하는 자로다. 베드로도 그렇게 했습니다. 못 알아 봐요.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 돼버렸어요. 가까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못 알아보는 거예요. 오히려 멀리 있을 때는 연극할 때는 마치 신앙인처럼 보이고, 멀리 있을 때는 찬양하는 자기의 손목아지가 예뻐 보이고, 노래하는 목소리가 테너, 앨토, 베이스가 아름다워 보이지만 실제로 막상 가까이 오니까 우리는 우리 본성상 예수님을 밀칠 수밖에 없고 핍박할 수밖에 없고 죽일 수밖에 없는 그런 본성을 지닌 겁니다.

단순히 고장 난 게 아니고, 악마가 활동을 하는 그런 도구로 사용될 수밖에 없는 것이 세대가 이 악한 세대란 말이죠. 이 악한 세대를 위해서 예수님이 몸을 드렸다고 했지만 악한 세대 입장에서는 예수님 몸을 뺏은 것이 되지요. 예수님은 자기 스스로 죽는 것이 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가 창으로 찔러 죽인 것이 되고, 못으로 박은 것이 돼요. 그런데 그것마저 하나님께선 스스로 자기가 누가 나를 죽일 권세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스스로 죽는다고 요한복음 10장에서 이야기했잖아요.

그러니까 이 범주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어야 돼요. 이쪽 범주의 차이를 동그라미로 그리면, 그림 그리면 우리 김대식 성도님, 상당히 싫어하는데, 왜냐하면 녹음을 하기 때문에 그림을 모르기 때문에 저보고 그림 그리라고 해서 다시 그림 그리고.

이 범주가 나라는 범주에 그대로 있잖아요. 나는 죽을 때까지 안 없어져요. 나가 없어지는 게 아니고, 나가 새로 자꾸 생기지요. 조립해요. 나라는 범주가 있고 이 나라는 범주를 덮어쓰는 예수님의 범주라는 게 있습니다. 모든 것은 그 위에는 하나님이라는 범주가 있고. 모든 것은 예수님이 자진해서 죽지만 이 세상 안에서는 뭐냐? 우리가 예수님을 죽인 것이 되는 거예요.

그럼 왜 범주를 두 개로 하느냐? 나라는 걸 없애지. 없애버리고 모든 것이 예수님이 하셨다 이렇게 하지 왜 나라는 범주를 따로 두느냐? 아, 이거 너무 어렵다. 쉽게 해봅시다. 예수 믿고 난 뒤에 의인되었지만 나라는 범주가 생기고, 내가 죄인이라는 범주가 그대로 유지하는 이유가 뭐냐?

뭐냐 하면, 이거는 아니란 말이죠. 예수 믿고 난 뒤에 나라는 것은 없어졌기 때문에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나는 죽었기 때문에 이제부터 나는 없어지고 모든 게 주의 일이다. 따라서 내가 오줌을 누던 무슨 짓을 하던 다 주께서 하신 것이다. 라는 말을 못하는 거예요. 왜 못하느냐 하면 나라는 범주가 그대로 이어져요. 이어지는 이유가 나라는 범주가 이게 죄로 드러나야 예수님의 범주가 이 땅에서 의미가 생긴다니까. 십자가 의미가 생겨요.

그러니까 죄가 들어가는 곳에 은혜가 들어가는 겁니다. 만약에 나라는 범주를 없애버리고 내가 뭘 해도 다 은혜다 해버리면 내가 죄인이라는 게 사라져버려요. 그러면 뭐가 됩니까? 무슨 짓을 해도 의가 돼버려요. 나라는 범주가 생기면 내가 죄인이라는 게 생기고, 나라는 범주를 없애버리면 내가 의인된다는 것도 없죠. 나가 없으니까.

주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말씀을 성경말씀, 그러면 그때는 성경말씀도 없어야 돼요. 성경말씀은 예수님 보라고 주신 책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보라고 준 책이잖아요. 그러니까 성경말씀 없애야 될 것 아닙니까?

성경말씀 주시는 것은, 나라는 범주가 아무리 넓은 범주 있고 이 범주에서 이 성경말씀에 대해서 나라는 범주에서 이해하는 것과 더 넓은 주님의 범주에서 이해하는 것과 이런 차이가 있다는 것을 계속 보여주기 위해서 그 범주를 유지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나는 죄인이며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7장 전체 이야기는 예수님 비유이야기니까 성경대로 하면 됩니다. 13장에 들어가는데. 16절에 보면,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새로운 눈, 새로운 봄, '너희'와 '저희'를 이제 구분하기 시작합니다. 너희와 저희를 구분하는데 이 구분에 대해서 이 저자는 8장에서 그걸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7장하기 전에 8장부터 먼저 잠시 해봅시다. 8장에서 래드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했습니다.

8장에서 뭐라고 했냐 하면,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는 거예요. 8장 찾았습니까? 교회가 하나님나라는 아니다. 번역 뭐라고 되어 있어요? 번역 이야기해보세요. 저 위에 단락에.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그 밑에 번역 보면, 성경말씀에서 교회를 하나님나라에 대체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 네 번째, 찾았습니까? 이러한 성경말씀에서, (행 8:12; 19:8; 20:25; 28:23; 31) 이렇게 되어 있는데. 그거 한번 읽어보세요. 다른 번역.

-이들 구절에서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대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거에요. 그게 굉장히 어려운 말이에요.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가 일치된다, 일치 안 된다? 일치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럼 뭐냐?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그때그때 생성하는 거예요. 만드는 거예요. 여기 만든다는 이야기 나옵니다. 뒤에. 여기 ‘창조한다.’ 되어 있어요. 그 뒤에 보면. 나만 씨, 욕 많이 얻어먹었어. 그동안.

어째서 그러냐 하면, 지금 래드는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유가 그동안 나왔던 많은 학자들의 견해가 하나님나라와 교회가 일치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바로 예수님 비유 가운데 그게 나오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것은 이 책에 흔히 이야기한 이 논리와는 어긋나죠. 뭐라고 하느냐 하면, 신학이라는 것은 교회봉사하기 위함이라 하는 말은 틀린 말이다. 신학은 교회봉사가 아니고, 누구 봉사에요? 예수님에 대해서 봉사하는 거예요. 이건 맞지요. 교회 봉사하는 건 아니에요. 왜 그러냐 하면, 주님이 있어야 교회가 있거든요. 교회 있고 주님을 붙드는 게 아니고, 교회 만들어놓고 그 안에 주님을 유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유지시키고 말고 하는 것은 누구 소관입니까? 우리 주님께 속한 거예요.

그걸 제가 지난 울산강의에서 약간 언급했는데 몸 이야기할 때 분명히 한 몸이었는데 아담이 처음 있을 때 한 몸이란 말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없었어요. 아담이 처음 있을 때는 한 몸이란 개념이 없어요. 그런데 하와가 갈비 뜯어 여자가 나올 때 육체가 몇 육체입니까? 원, 투. 육체가 두 개지요. 두 개인데 아담이 뭐라고 했습니까? 한 몸이라고 했지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거는 우리가 지금 섞어빠진 눈과 귀로 들음으로써 이해 안 돼요. 두 육체가 어떻게 한 몸이 됩니까?

그러면 여기 숫자를 늘입시다. 3000명. 3000명이 한 몸입니까, 한 몸 아닙니까? 한 몸 맞죠. 우리가 현재 신약성경 보면 한 몸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몸 중심으로 보면 육체 중심으로 보면, 어떻게 3000명이 생각이 하나일 수 있고 성격이 하나일 수 있고 성장과정이 하나일 수 있습니까? 맞추려고 애써도 안해지죠. 부부간에 맞추려고 수십 년 해도 안 맞잖아. 갈라서잖아요. 나중에 여자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내버려둬. 그렇게 뜯어고치려고 해도 안 고쳐지더란 말이죠. 한 30년 살아봐야 그걸 알죠. 남편은 아내하기 나름이 아니고, 남편은 지하기 나름이에요.

고쳐도, 고쳐도 안 되고 결국 남는 건 타협과 정치적 양보밖에 없지, 그게 뭐 고치고 안 고치고 아니잖아요. 그런데 한 몸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 몸 되는 원리가 따로 있어요. 그 원리로 동일하게 지배받으면 성격 따로 개성 다 찾아도 이걸 한 몸이라고 합니다.

어떤 교회에 3000명이라면 3000명이 한 몸 되는 이유는, 같은 몸의 원리가 지배받을 때는 한 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지배받는 원리가 뭐냐?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거예요. 그리스도 바라보는 능력은 우리한테 없잖아요. 성령을 마셔야 그리스도만 바라보게 되어 있으니까. 결국은 뭐냐 하면, 3000명 교회 다 교회일지는 모르지만 그리스도 몸은 될 수 없는 거예요. 누가 거기서 탈락시킬지, 누가 이제 그만 믿으라고 내 보낼지 알 수가 없잖아요. 처음부터 가짜인지, 아닌지 우리가 판단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인식 가지고 우리 인식으로써 신학을 하면 이런 오류에 빠진다 하니까. 말씀을 믿어야지 하나님 약속과 맹세를 믿어야지 우리가 믿어야 될 뿐이지, 내가 따지고 느껴야 될 문제는 아니다 이 말이죠. 느끼게 하실 문제지만 내가 느껴서 접근해서 그걸 내 손에 쥘 문제는 아니다 이 말입니다.

이거 한 시간 넘은 것 같은데 쉬었다 할까요, 좀 더 할까요?

-목사님, 좀 쉬시고 하시죠.

한 5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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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679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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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