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교
1 설교
이름 : 관리자(IP:220.81.176.151)
1 설교
이근호 2003-04-10 15:58:55, 조회 : 137, 추천 : 8
설교자 본인의 회개 설교로서 진행되는 설교가 아닌 설교는 가증된 일이다. 강단이 우리를 본문으로 몰고가서는 아니되고 오히려 본문이 우리를 강단으로 몰고가야 한다. 케리그마(KERYX)는 곧 왕의 사자가 전하는 메시지이다 설교를 통해서 자신이 주에게 불복종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놀라야 한다. 이것이 설교의 목적이다 모든 설교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영광을 즐거워하는 것이다(고후 3:10-11)
설교자는 자기 설교에 매료될 때까지는 설교해서는 아니된다 설교자는 청중들이 자기의 말과 인품을 우습게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설교해야 한다 설교해야 하는 이유는 청중이 들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설교란 인간의 언어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다 설교자는 십자가에 달린 강도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옆에 계신 분을 드러낼 수 있다 설교자에게 있어 비복음적 행동 같은 것은 흘리고 다녀서는 안된다. 설교의 진행 방식은 성도를 성도와 비교시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와 예수님과 비교시키는데 있다 설교에 한계를 느낄 때, 설교자는 은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목사에게는 설교 이외의 은사는 필요없다. 만약 다른 은사로서 보충하려 들면 성도들은 말씀 아닌 것을 통해 하나님께 데려가려는 사기꾼을 갖는 것이다. 설교자는, 자신의 죄를 가지고 설교해야 한다. 설교자는, 청중 속에 주님도 함께 섞여 계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설교해야 한다.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설교라면, 청중들의 야유와 상관없이 위대한 설교이다. 계속해서 설교할 수 있는 자격자는 아무도 없다. 설교자는, 내일의 설교거리를 남겨두어서는 안된다. 설교 기회 제공권자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설교와 설교자는 별개의 문제이다. 설교자의 가치는 설교의 능력이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평소 믿음과 행실과 관련있다.
예수님에 대해서 설교하지 않는 설교자는, 반드시 자기 직위의 정당성을 교인들에게 설득하려 든다.
참된 설교의 적(원수)은, 교회를 위하여 설교하는 자들이다. 설교자는, 청중들의 반응을 두려워 하기 보다는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이 진리 그대로라는 점 때문에 늘 공포에 사로 잡혀야 한다. 진리는 큰 무서움이다.
이 악한 세대에서는, 목회를 하면서 망하는 것이 목회 성공이다. 그러나 목회자가 망하는 것이 두려워서 목회를 안하는 것이 바로 목회 실패이다. 살고자 하면서 풀어내는 성경 해석은 몽땅 다 거짓말이다. 설교자는 늘 자기를 향하여 설교해야 한다. 교회 경영에 관심 쏟는 자는 천국과 무관한 자이다. 참된 목회란 인간에 관한 것 뿐이다. 그 외는 목회가 아니다.
목사의 최후의 은사는 '죽음' 이다. 목사의 권위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말씀의 권위만 있을 뿐이다. 설교자에게는, 복음만 전할 수 있을 수 있는 것 이외에 다른 소원은 남아 있지 않아야 한다. 목회의 목적은 교인들로 하여금 아무 것도 믿지 않도록(의지하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 설교자의 위험성은 끼를 발산하는 것과 하나님의 일을 혼동하는데 있다. 예수님의 피만 증거하다면 목회 실패란 성립되지 않는다.
목회를 잘하고 못하고가 문제가 아니라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목회 성공을 해야하겠다는 의식이 심각한 문제이다. 목사의 목회지 이동은 또다른 창녀촌에 찾아 들어가는 것이다. 어디를 가든지 돈 때문에 몸까지 버려야하는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언제라도 단순한 신앙인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세상이 악하다보니 교회 규모를 확장시키지 못하는 목회자들은 도태되게 되어 있다. 복음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 하나님께서 무한 감사해야 한다. 인간을 저주하지 아니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 사람들이 자기 좋아라고 예수믿지 예수 좋아서 예수 믿고자하는 자가 어디 있는가. 목회자도 마찬가지이다.
설교자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그 자체의 기쁨만으로 늘 가득해야 한다. 그래야 마귀의 시험에 빠지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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