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교회에게 주신 계명이 지향하는 것
광야교회에게 주신 계명이 지향하는 것저번주에 원망에 대해 공부 하면서 원망 하지 말자가 아니라 원망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려준 은혜에 대해 공부 했습니다. 즉 나의 실패 없는 신앙 요구가 아니라 주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만 바라보는 것이 광야교회라는 겁니다.오늘은 이 광야교회에 주어진 계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계명을 주시면서 영원히 지켜야할 약속으로 언약을 맺습니다. 즉 이스라엘에게만 언약하지 이스라엘이 아니면 언약을 맺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백성임을 주님이 선포하심과 같습니다. 주님이 거룩한 분이기에 거룩한 계명을 주어서 거룩한 백성 삼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는 지키느냐 못지키느냐 라는 문제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그러나 한결 같이 그 계명들은 육체가 지킬수 없는 것들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도 육을 종말에 몰도록 물없는 곳, 양식 없는 곳으로 인도하듯, 하나님의 계명 또한 육이 할수 있는 것들이 못되는 아예 어림도 없는 계명들을 모아 놓은 것 같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자녀를 위한 십계명, 남편을 위한 십계명, 부부 십계명 이라는 가짜 계명들이 오히려 교회가 앞장서서 공공연히 퍼트리고 있으니 개탄할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다른 백성이 아닌 이스라엘에게 계명을 줬다는 말은 야곱(하나님과 원수된 육)에게 준 것이 아니라, 땅에서 나지 않았고, 사람의 뜻으로 정으로 혈통으로 나지 않은, 없는데서 생긴 그 이스라엘(광야교회)에게 주어진 계명이기에 오직 영으로만 이행될 계명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결국 육체된 우리의 지키고 안지키고의 문제가 아니라, 계명 자체가 약속 자체가 언약 자체가 우리를 거룩의 자리에 올려 놓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에게만 있는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 공로입니다.이 계명을 받는 그 순간에 육체가 한 일은 꼭 계명의 반대를 동시적으로 하게 됩니다. 금송아지를 여호와로 섬기면서 자기를 위하여 여호와를 금송아지 형상으로 만듭니다. 예수님이 새계명을 주시니까(요 13:34-35) 동시에 자기를 위한 자기가 원하는 하나님을 요구하며 육의 한계를 나타냅니다. 베드로는 주를 위해 목숨 바치는 자기 믿음을 장담했고(요 13:36-38), 또 도마는 우리가 신도 아닌데 우찌 주님 가시는 길을 알겠냐고 말하고(요 14:5) 또 빌립은 하나님을 우리의 눈에 보이도록 해달라고 예수님께 요청합니다.(요 14:8)예수님의 말씀은 한결 같이 육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씀만 하시면서 처소(성령)를 예비하면 주님이 가신 길을 우리도 가도록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요 14:1-14)이 말은 하나님의 계명은 육이 지키는게 아니라 오히려 육의 한계성을 들추어 낸다는 겁니다. 육이 못 지킬것만 간추려서 내었다는 겁니다. 육이 못 지킬것이 10가지 뿐이겠습니까? 아니지요. 그럼 100계명을 만들지요? 어차피 못 지킬꺼 꿈도 못꾸게끔 천계명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오히려 반대로 10도 추려서 2가지로 만듭니다. 즉 육이 거부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기 싫어서? 아닙니다. 인간이 곧 신이기에 하나님을 주(主)로 인정할 수 조차 없는 겁니다. 천계명 만들어도 지킬려고 달려드는게 인간입니다.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은지 몇 년, 몇 십년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여지껏 1계명 조차도 지킨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자기 자신 외에는 다른 신을 믿을수 조차도 없는 육(흙)이 된자들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위하여 얼마든지 예수님(하나님)도 이용할려고 달려든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이 그런 인간의 육의 한계를 잘 보여줍니다. 나는 예수님을 절대 이용 안할꺼야 그런 장담 하지 마세요 곧 바로 이용할려는 마음을 마귀가 심습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주님을 원망하지 않을꺼야 그런 장담 소용없습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자기도 놀랄 정도로 주님을 원망하는 사건이 터지기도 합니다. 1 계명 뿐이겠습니까? 다른 계명 다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사람 제일 장담하는 5 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 하라 이 계명을 착각하는 자 많습니다. 이거는 나도 할 줄 알어 라고 말이지요. 자기 자신에게 철저히 속도록 하십니다.그럼 우리보고 아 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현실을 아 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눈을 뗄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계명을 주시느냐 라는 겁니다. 내 몸을 내 몸과 같이 내(나)를 사랑하지 이웃을 어떻게 사랑할수 있다는 말입니까? 내가 최고이고 내가 곧 신(초인, 영웅, 주인= 신이란 피조물이 아니다 라는 뜻)인데 (창 3:5) 어떻게 예수님(여호와)이라는 신을 사랑할 수 있느냐 라는 겁니다. 못지킬꺼 뻔히 알면서 지키라고 계명을 주시는 이유가 뭐냐는 겁니까?그래서 신이 된 인간의 허상을 철저히 그 한계에 부딧히게 하여서 의가 없는 가짜 신 자기에게 기대 걸지 말고 오실 의를 기다리고 긍휼을 바라라는 겁니다. 그 의를 기다리라는 겁니다. 의가 오셔야 그 의로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겁니다. 그럼 이제 내게서 눈을 돌려서 그 의가 어떻게 일하시는 가를 봐야 합니다. 그 의가 어떻게 내가 못지키는 이 계명을 하나 하나 이루어 가시는지를 바라보면 됩니다. 인간의 어떠한 불의가 주님의 약속을 방해하더라도 그 의는 한치 오차 없이 진행 된다는 겁니다.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이 긍휼로써 불쌍히 여김으로써 일하시지 않으시면 어떤 누구도 낮의 해와 밤의 달을 통과 할 자 없습니다.(시 121:6) 애굽 군사에게 임한 불과 물은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것은 오로지 긍휼함 이었습니다.결국 계명이 지향하는 것은 의(거룩)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 의는 앞으로 오실 예수님으로 성취됨을 알려줍니다. 계명 또한 이분이 너의 주인이다고 알려주는 화살표 역할을 하는 겁니다. 몽학선생(가이드)(갈 3:24-25) 율법을 완성 할자는 이분이야 라고 가리키는 화살표 역할.(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율법을 이루시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십자가의 사랑)만이 우리를 의롭게 한다는 겁니다.(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거룩치 않은 자를 반드시 거룩의 자리(그리스도의 형상)에 올려 놓겠다는 그 의도는 긍휼로 다가오시는 낮아지심으로 다가 오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알때만(십자가의 영이 찾아 올때만이) 그 비밀을 알게 되며, 예수님의 긍휼만이 용서만이 그 사람의 최대의 행복일 것입니다.주님! 주님이 대신 율법의 요구인 의를 이루지 않으셨다면 누가 이룰자 있겠습니까? 주님이 대신 이루어 주심으로 율법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롬 7:6). 이제는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며 용서받은데로 용서를 베풀며 살도록 주님이 간섭하여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