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고대 신학 2
03 고대 신학 2
이근호 2004-02-29 18:14:50, 조회 : 571, 추천 : 70
더 나아가 한편, '하나'가 가리키는 일원론 안에서도 그 하나인 주재적 원리가 삼라만상 너머에서 독야청청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삼라만상 안에서 그 힘을 발휘하고 있을 것인가 하는 방식으로 내분되었다.
전자가 플라톤을 원조로 모시는 초월구도라면 후자는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내재구도에 해당한다. 물론 이런 대비는 어디까지나 주재적 원리가 '하나'라는 일원론 안에서의 구분일 뿐이어서 그 차이 못지 않고 공통성이 중요하다. 그리고 다른 한편, 그런 하나인 원리가 삼라만상을 주재한다면 이 세계는 당연하게도 질서와 조화에 의한 평화를 누려야 하는데 실제로 살아가야 하는 세계는 이보다는 전쟁과 고통 등 어려움을 겪어야만 한다면 일원론적 세계관 또한 일신론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지 않은가라는 물음이 대두되면서, '여럿'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주재적 원리가 '여럿'이라고 주장하는 다원론은 결국 신들 사이의 갈등을 함축하는 다신론과 이의 소극적-염세적 변형이라고 할 수 있는 무신론으로 대별되었다. 구체적으로 스토아 학파가 다신론을 표방한다면 에피쿠르스Epikur 학파는 무신론에 속한다고 하겠다.
상대주의 공격과 회의주의의 비판을 넘어 절대적인 동시에 확실한 '참'을 향하려는 형이상학적 탐구의 가능성을 새롭게 일구려는 노력은 이제 '신'으로 그려지는 '하나'를 모시면서 시작된다. 이 과정의 본격적 전개에서 한 형이상학적 영웅이 탄생했으니 그가 바로 플라톤이다.
그는 선배들의 우주론과 존재론의 종합을 바탕으로 그 위에 신론이라는 우산을 덮어씌웠다. 이제 그에 의해 절대적 하나인 신 아래 삼라만상의 본질들은 우주론-존재론적 위계질서를 부여받는다.
우선 우주론적으로 보면 물질적 극점에서 정신적 극점에 이르는 우주론적 위계질서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플라톤은 선배들 중 피타고라스와 파르메니데스의 지론을 엮어 더정신적일수록 고 고정적이고 더 불변적이라는 유심론적 정비례성의 구도를 설정한다.
말하자면 우주론에서의 정신과 존재론d에서의 존재 사이에 평행적 정비례관계를 전제한다. 이런 양축의 관계에서 살펴보면 물질적 극점은 전혀 존재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며 이와 반대로 정신적 극점은 존재성의 완전함에 이르는 것으로 곧 '존재 자체'라 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절대적이면서도 확실한 하나로서의 신이다.
이로써 우주론과 존재론 및 신론 사이의 입체적 얽힘을 위한 기본구도가 설정되었다. 물질극과 정신극을 잇는 우주론의 축은 하나로 귀결될 같음의 형상계와 여럿일 수밖에 없는 다름의 현상계를 나누는 경계선이 되고, 형상계의 같음이 존재의 영역에 해당한다면 현상계의 다름이 생성의 영역에 속한다.
우주론의 축은 현상과 형상 사이의 '넘을 수 없는 요단 강'을 상징한다면 그 선의 형상계는 참으로 있는 것에 해당되고, 반면에 형상계는 있기는 있으되 없음에 의해 둘러싸인 있음이어서 참으로 있기만 한 있음을 상기하여 모방하는 그림자일 뿐이다.
말하자면 현상계의 감각물들은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대책 없이 서로 다르기만 하다면, 현상계의 경계 너머로 형상계를 설정하는 것은 애당초 꿈도 꿀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현상계의 다름이 마구 다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 무엇인가 더 크게 묶어 낼 수 있는 같음이 상정될 수 있을 만큼 다름들 사이의 다름이 읽혀졌던 것이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같음으로 묶어내는 근거는 공통성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공통성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다름이라 해서 모두 동일한 다름이 아니어서 다름들 사이도 서로 다르다. 마찬가지로 같음이라 해서 모두 같은 것이 아니고 같음에도 방식과 층위에 따라 매우 다르다. 그런데 '다름의 다름'과 '같음의 다름' 중 어느 것이 우선하는가?
플라톤은 같음에 원초적 실재성을 부여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리고 결국 본질을 가리키는 이것을 '형상'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현상계 안에 있는 수많은 다름이 서로 다른 이유가 그 다름들을 묶어내는 같음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할 때, 그런 같음마저 여전히 다름을 겪어야 할 것이라면 결국 형상들 상호간의 개별성과 고립성은 불가피하게 된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애써 같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이유도 없으려니와 상대주의적 공격 앞에서 선 절대성과 회의주의의 비판 앞에 선 확실성은 여전히 오리무중이 되고 말 것이다. 신론은 바로 이런 동기에서 형성되었다.
플라톤은 우주-존재-신-론적 근원학을 구성하기 위해 먼저 형상의 불멸성을 확립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된다. '참된 있음'으로서의 실재성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감관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고 오로지 이성으로만 도달될 수 있는 불멸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곧 사물의 형상이라고 했다.
단적인 예로 이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아름다움의 형상에 의해 아름답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름답다는 감관적 판단도 이성으로 파악되는 아름다운의 형상에 근거하는 한에서만 올바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아름다움의 형상에 대한 이성적 판단력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특수한 사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가?
이에 대해 그가 답하기로는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영혼이 본질에 대해 알고 있었고 이제 육체를 입고 태어난 인간은 이를 회상함으로써 학습하게 된다고 했다.
인간에 대한 플라톤의 논의는 당연하게도 형상과 현상의 관계에 대한 그의 형이상학적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다. 즉 영혼이 형상에 해당한다면 육체는 현상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영혼은 육체와 완전히 다른 것이며, 한 사람은 진정한 뜻으로 그 사람이게 해 주는 것이 생명에 있어서는 영혼이며 그 이외는 아무것도 아니다. 죽은 뒤에 죽은 사람의 육체가 부질없는 것이라고 불리는 것이 옳은 것과 마찬가지로 육체는 우리들 각자에게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바로 영혼이라는 불리는 것으로 죽지 않는 존재로서 참된 인간이다 고 했다.
이런 설명과 함께 따라나오는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그런 형상이 다양한 현상들과 어떤 관계를 취하는가에 대한 물이다. 이런 물음이 중요한 것은 이것이 바로 플라톤과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구별짓는 기준이요, 더 나아가 중세 보편논쟁의 결정적 분기점이기도 하다.
이 중요한 형상의 지위에 대해 플라톤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독립적이고 항구적이어서 별도의 시공적 위치로 지정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초월적 형상들은 서로 어떤 관계가 있으며, 개별적 사물들에 대해 형상은 어떤 관계를 지니는가?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승을 비판한 준거의 출발점이기도 한 이 물음은 플라톤 자신에게서도 사실상 난제였다. 플라톤에 의하면 보편적 형상과 개별적 현상은 후자가 전자에 참여하고 이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양자의 관계가 엮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여전히 개별적 현상들이 형상의 전체에 참여하는가 아니면 부분에만 참여하는가라는 세밀한 문제에 부딪치면서 단일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다수성을 파멸시키지는 않을 원리를 요구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요구는 그런 원리와 관련된 삼라만상의 생기에 대한 다음과 같은 문제에 의해 더욱 추동되었다. '비록 일자가 위계적으로 형상들을 관장함으로써 실재적이고 절대적이라 하더라도 개별적 현상들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도대체 보편적 본질의 세계인 형상계에서 다양한 모습을 지닌 현상들이 어떻게 나왔는가?
이런 질문을 피할 수 없는 것은 형상의 같음이 그 자체로 현상의 다름의 기원일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기독교 창조론, 그리고 결국에는 삼위일체론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게 된 플라톤의 우주기원설로 우리의 관심을 끌게 된다.
참으로 있는 보편적 형상은 항구적이고 영원한 것이어서 불변하고 부동하니 이에서 변화무쌍한 삼라만상이 갑작스레 도출될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형상만큼이나 실재적이고 독립적인 '영혼'이라는 활동성의 원리가 생성소멸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다.
즉 영원한 실재인 형상을 설계모형으로 하는 제작자로서의 영혼이-플라톤에게는 데미우르고스Demiurgos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우주를 가능한 한 이 모형에 닮게 만든다. 그러나 제작자가 설계도만 가지고는 어떤 것도 만들어낼 수 없다.
따라서 물적 재료가 필요한데 이는 지극히 비물질적인 형상이나 영혼에서 나올 수 없으니 자체적으로는 아무런 형태가 없지만 분명히 이들과는 별도로 독립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해서 기독교의 창조론에 해당할 만한 플라톤의 교리인 우주기원설에서 원형적 형상, 제작자로서의 영혼(데미우르고스), 그리고 물적 재료라는 세 요소로 이루어진 삼신론이 등장하게 된다.
이처럼 삼신론으로 나타나는 플라톤의 신론은 피타고라스와 파르메니데스로부터 물려받은 유심론·일신론적 위계질서를 뼈대로 한다. 말하자면 더욱 정신적일수록 더욱 고정되고 더욱 영원불변하며 따라서 더욱 참되며, 또한 더욱 선하다는 일련의 정비례 관계가 설정된다.
여기서 당연히 그런 위계질서의 최고봉으로서 순수형상은 그보다 아래 단계의 모든 형상들로 하여금 그렇게 있게 하는 '있음 자체'라는 일차적 규정을 받으면서 '신'이라는 종교적 은유를 덧입게 된다. 여기서 '있음 자체'가 회의주의의 문제인 확실성을 만족시킨다면, '신'은 상대주의가 공격한 절대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런 '있음 자체-즉 -신'은 완전성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예찬의 발원이요 구절인지라, '지고의 완전자', 그리고 나아가 '지고의 신'이라는 극찬을 부여받게 된다.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주의 창조자이자 아버지를 발견하기란 어려우며, 그를 발견한 다음에도 그에 대해 만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가치통합적 절대자로서의 플라톤에서도 여전히 '일자(一者)'인데 이 일자는 인간들의 서술을 넘어선다고 함으로써 후대 신플라톤주의에서 예시되는 신비주의에로의 흐름을 예고한다. 그러나 가치통합적 절대자라는 개념이 가리키는 바 순수한 지성에 의해 절대적 선에 이른다는 주장에서는 여전히 합리주의적 궤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플라톤의 형이상학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이 '참된 있음'이란 같음이요 궁극적으로 하나를 향하는 보편적 본질이라고 한정한 데 대해 엄연히 경험되는 다름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참된 있음 안에 자리잡아야 한다는 통찰에 입각함으로써 괘 구별되는 입장을 취했다.
즉 참된 있음이란 플라톤이 말한 보편적 형상이 개별적 질료를 취하여 존재하게 되는 구체적 개체물로서의 실체라고 함으로써 시공간 한계 안의 다름이 같음에 대해 지니는 의미를 구현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다음과 같은 한마디는 이를 요약한다. "운동과 변화를 낳는 내재적 힘이 없다면, 영원한 실체를 가정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따라서 플라톤이 그렇게도 모신 보편적 본질이라는 것이 경험적 사물의 원인이요 원리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참된 있음'이라 할 수는 없으며 개별적 사물에 내재함으로써 있을 따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입장은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를 종합하려는 일련의 애달픈 시도과정을 종결짓는 집대성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그의 스승인 플라톤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던 문제, 즉 '불변하는 형상의 같음에서 어떻게 가변적 현상의 다름이 나올 수 있는가?'라는 미결의 문제를 다루려는 과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과업을 어떻게 수행했는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그가 실체라는 개념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사실상 탈레스에게서 시작된 고대 형이상학이 사물의 궁극적 기체(基體)를 찾으려는 과정이었다는 점은 새삼 지적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태동기의 우주론과 보완기의 존재론에 참여했던 자연철학자들은 그런 노력의 결과로 질료적 원인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고 질료인에서 생성소멸을 주관하는 운동의 원에 대한 물음으로 거슬러올라간 것은 그 다음의 종합단계에 속하는 엠페도클레스(사랑과 미움이라는 활성적인 힘을 주창한 사람)와 아낙사고라스(이성적 정신을 품은 '씨앗론'을 주창한 사람)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아낙사고라스가 물질계 안에서의 정신의 활동을 주장했음에도 그는 정신을 단지 이 물질계의 형성을 설명하기 위한 작업가설적 장치로만 사용했을 뿐이다. 물론 그는 본질을 바로 그런 본질을 지니는 사물에서 분리시켰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눈에는 여전히 흡족하지 못한 설명으로 비쳐졌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플라톤은 여전히 '본질의 원인과 질료인'이라는 두 원인만을 상정했다. 게다가 플라톤이 서로 분리될 수 밖에 없다는 형상과 현상의 관계를 기껏해야 '참여'와 '모방'이라는 방식으로 설명한 데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상들은 범형일 뿐이고 다른 현상들이 이를 분유한다는 것은 공허한 은유일 뿐'이라고 논박한다.
물론 플라톤은 그런 방식으로 물질적 사물들 안에 안정성을 담보하는 형상적 원리가 있음을 분명하게 함축했지만 그 원리의 내재성을 설정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 플라톤에게 '참된 있음'은 여전히 객관적 보편자이고 개별적 사물들은 부차적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개별자들이 '참된 있음'의 실제성을 만족시키는 진정한 실체에서 형이상학적 지위를 갖게 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공헌이다. 그에 의하면 플라톤에서 실재의 실재의 지위를 누리는 형상은 단지 이차적이고 파생적인 의미에서만 실체라고 불릴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혼동이나 모순을 범한다는 비판받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개별자의 실체성을 강조했을 때 보편자가 객관적 실재성을 지닌다는 것을 부정하려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개별자에서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거부하고자 할 따름이었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보편자는 초월적이지 않고 내재적이며 구체적이었다. 더욱이 그가 개별자를 제 1실체, 그리고 보편자를 제 2 실체라고 했을 때 이는 양자 사이의 시간적 선후나 존재론적 위상의 견지에서가 아니라 현상계에서 인간이 다름을 경험하는 데서의 차이를 의미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런 동기는 개별자를 통하지 않고는 보편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현실적 인식에 대한 통찰에 의해 더욱 정당화된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실체의 개별성은 어떻게 담보되는가? 바로 질료에 의해서다. 이로써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삼라만상의 다름을 근거 짓는 질료는 이제 형이상학적 위상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질료만으로는 어떤 사물도 있을 수 없고 알려질 수도 없다. 그 있음과 앎은 질료가 결합해야 하는 형상에서 비로소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질료와 형상은 어떻게 결합하는가? 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제인 동시에 플라톤이 만족스럽게 해결하지 못했던 현상과 형상의 관계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나름의 해결책이었다.
그는 어떤 방식을 제안했는가? 형상이나 이에 상응하는 질료 개념이 지닌 정태성 분위기를 불식하고 양자의 얽힘이 지니는 역동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질료는 형상에 대해 가능태요, 형상은 질료에 대해서 현실태라는 동태적·관계적 표현을 제시했다. 형상은 질료가 이루어내야 하는 목적인 동시에 이루어낼 수 있는 동력이기도 해서 이로써 만물의 동태적 존재성에 관한 4원인설, 또는 간명하게 질료형상설이 성립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할 것은 질료를 가능태로, 형상을 현실태로 본다는 것이 그의 양항의 동태성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는가 라는 문제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생성이란 바로 그것이 지닌 결여에서 기인한다는 데 착안해서 이를 설명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불완성성은 언제나 완전성을 향해 그것을 이루려고 움직임으로써 변화가 일어난다는 목적론적 운동의 낙관적 원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점은 가능태와 현실태의 구별이 존재단계설 또는 위계설로 연결된다는 그의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다시 말하면 어떤 형상도 전혀 덧입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은 순수가능태로서의 제 1질료로부터 개별화의 원로서의 질료를 완전히 벗고 모든 것이 다 일구워낸 순수현실태, 즉 순수형상에 이르기까지의 위계구조로 삼라만상이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우주론의 축에서는 물질의 극점에서 정신의 극점으로 향해 가면서 생성(질료)이 줄어들고 존재(형상)가 늘어나는 것인데 이것은 단적으로 플라톤과 공유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심론적 구도에 의한 것이다.
즉 더 정신적일수록 더 있고, 더 참되며, 더 선하다는 플라톤의 위계질서적 정비례 공식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도 여지없이 해당된다. 그럼에도 형상계에 해당하는 존재영역은 플라톤의 그것과 일치하지만 질료계에 해당하는, 즉 생성 영역의 모습은 판이하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결정적 차이인데,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는 다름을 이루는 질료가 참된 있음으로서의 실재를 구성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로 질료계와 형상계는 별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형상이 질료를 취하여 형상화, 즉 현실화하려는 방향으로 끌어당김으로써 질료를 줄이고 형상을 늘이는 상향운동의 연쇄구조로 삼라만상이 운행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형상계와 질료계는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구분될 뿐이다는 것이다. 이를 정의하면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실재란, '같음의 형상이 현상으로 드러나는 다름의 질료를 취하여 같음으로 이끌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서의 실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