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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7 고대 신학 6성경신학-

07 고대 신학 6
이근호 2004-02-29 18:20:14, 조회 : 368, 추천 : 71
이런 초월 사상은 곧 잠시 왔다가 사라져 갈 이 세계로부터 향해 가야 할 목적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는 곧 더 나아가서 그로부터 감각적 삼라만상이 비롯되었다는 시원성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따라서 '시원이면서 종국'인 초월성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감각적 경험계를 그런 시원적 초월로부터의 타락으로 간주하게 했고 여기서 '영혼의 타락'이라는 개념이 도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초월 사상이 기독교 신학에 영향을 주었던 가장 주요한 요소는 무엇보다도 '초월적 힘의 섭리'라는 사상이라고 할 것이다. 고대라는 시대에 인간의 운명과 죽음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당연히 초월적 힘의 계획과 경륜에 의한 것이라는 희구적 투사로 이어졌으며 이로써 운명의 도전에 견뎌 낼 수 있는 용기의 원천으로서 섭리라는 개념이 신화로부터 유래를 거쳐 철학적으로 정립되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스토아 학파요. 다른 하나는 에피쿠로스 학파이다.
선배 형이상학적 토대 위에 그들은 인생과 윤리학으로 포장된 처세술을 전개했다.
먼저 스토아 학파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공유한 보편적 본질이라는 위상을 거부하고 삼라만상의 개별성을 파고들었다. 이들에 의하면 세계는 개별자들의 군상일 뿐이다. 이런 지론을 위해 이들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와 아낙사고라스의 종자 개념으로 거슬러올라갔는데 이를 결합하여 '종자(種子)적 로고스'라는 개별성의 원리를 설정했다.
삼라만상은 철저히 개별적인데 그렇게 개별적이게 하면서도 동시에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종자적 로고스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삼라만상이 원동자에 의해 위계적으로 존재하거나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로고스에 의해 개개의 사물들이 서로간에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학파에서는 모든 것이 모든 것에 대해 원인이 되고 결과된 것이라 하여 이를 '원인의 무한한 연쇄'라 했는데 이는 이 세계 안에는 앞선 원인에 의해 결과되도록 결정적이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스토아 학파의 이런 운명주의적 형이상학은 자기원인이기도 한 최초의 원동자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공유하는 유심론의 전통에 항거하는 유물론적 차원을 지닌다. 이것은 곧 범신론적 차원을 지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말하자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공유하는 일신론 전통의 '있음 자체'가 삼라만상으로 분산된다는 것으로 새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스토아 학파의 이런 유물론적 범신론에 의하면 삼라만상은 이미 상호 간에 원인과 결과로 관계로 얽혀져 있고, 따라서 그런 인관적 이성질서라는 형태의 우주적 구조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인간의 삶도 그런 만큼이나 운명적이어서 이 스토아 학파의 일원인 세네카의 저 유명한 격언은 다음과 같다. "운명은 이에 동하는 자를 인도하고 동의하지 않는 자에게는 강제한다"고 말이다.
말하자면 이미 주어진 물질체계의 형성질서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며 이미 결정된 이성적 궤도를 이탈하거나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려는 개인의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는 무감정주의가 난세를 통과하는 지혜라는 것이다.
조용히 살고, 마음을 낮추며 살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삶이 최고의 행복한 삶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감정의 요체가 욕망이라면 이런 무감정주의는 당연히 금욕주의에 귀결될 수 밖에 없다.
다른 한편 에피쿠르스 학파는 스토아 학파와 외견상 매우 대조적인 입장에 있다. 우선 형이상학에서도 스토아 학파의 인과적 결정주의와 달리 에피쿠르스 학파는 삼라만상의 임의성과 우연성에 주목했다.
이들은 일찍이 등장했던 원자론자들 중 데모크리토스의 기계적 유물론을 전격적으로 변형시켜 비결정주의적 형이상학을 꾸몄다. '원자는 갑자기, 저절로, 언제, 어디서인지 모르게 예측 불허의 사선 낙하운동을 하기' 때문에 세계의 근원은 본질적으로 우연하다고 이들은 갈파한다.
그들이 설파한 근원의 우연성은 애써 '있음 자체'를 설정해야 할 이유를 부정하므로서 스스로 무신론의 입장에 놓여 있다.
물론 스토아 학파의 결정론적 운명주의를 벗어나려는 에피쿠르스 학파의 이런 자유주의적 시도는 육체의 고통과 영혼의 혼란으로부터 해방을 향하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이들은 인간의 삶에서 이루어내는 성취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데 이 학파가 표방하는 처세술로서의 쾌락주의는 바로 여기에 뿌리를 둔다.
즉 욕망과 성취 사이에 반비례 관계에 대한 통찰에서 욕망을 억제할수록 상대적으로 성취의 비중이 커짐으로써 쾌락이 증대된다는 공식에 도달했다.
다시 말하면, 에피쿠르스 학파의 쾌락주의란 욕망의 억제를 통한 쾌락의 증대라는 소극적 방식의 처세술로서 여기서 쾌락의 증대란 고통의 부재로서 영혼의 평정을 의미했다. 따라서 에피쿠르스 학파의 쾌락주의란 불교에서 가르치는 욕망과 고통의 정비례성과 같은 맥락으로서 사실상 금욕주의의 자유주의적 변형일 뿐이다.
이런 금욕주의에 신비주의적 요소가 가세하므로서 '절대 순수'를 추구하게 되었다. 소위 '신의 마음'을 소유하고 싶은 것이다. 누메니우스라는 자는 위계적 삼신론을 정립하므로서 플라톤에서 공시된 삼신론의 신비주의화 과정이 본격화 시켰다.
누메니우스의 위계적 삼신론은 이 세계를 초월하는 존재의 원리인 제 1신, 그리고 이 세계를 형성시키는 발생의 원리이며 데미우르고스(Demiurgos)라고도 불리는 제 2신,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세계 자체가 제 3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각각 아버지, 제조자. 피조물로 규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피조적 세계가 삼신적 구성의 한 요소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 삼신론의 발전의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다.
기원전 1세기경, 알렉산드리아의 에우도로스는, 신과의 합일이야말로 철학의 목표라고 설파하고, 위계적 삼신론을 따르면서도 신과 피조세계와의 원활한 구성을 위해 '중재자'라는 존재에 대한 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즉 삼신론이 단순히 분리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인 실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삼중적 일자'라는 형식으로 신론의 진전을 이루어내었다.
바로 정교한 삼신론의 이론은 알비누스에 이르러서이다. 그는 에우도로스의 삼중적 일체성과 플루타르코스의 중재자론을 종합하여 제 1신, 지성, 영혼의 삼신론을 정립했다. 먼저 제 1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원동자에서 부동성을 취하지만 절대적 초월자이기 때문에 원동자는 아니다.
다음으로 제2신에 해당하는 지성은 누메니우스를 따라 신의 관념으로 간주된 플라톤의 형상론에 따라 사물들의 원형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계 영혼을 제 3의 신으로 설정했다.
기원전 1세기부터 1세기 중엽에 걸쳐 필론Philo(B.C 20 경 사람)이라는 자가 등장해서 헬라철학과 유대교라는 양대사상을 연결하려 했다.
즉 헬라철학과 유대교 사상은 동일한 진리의 다른 표현들일 뿐이며 이를 밝히기 위해서는 진리명제의 문자적 의미와 우화적 해석을 내세웠다. 여기서 그는 신은 인격적이면서도 동시에 절대적으로 초월하시기에, 제 2신에 해당하는 중재자 개념을 제시했다.
필론은 그런 중재자로서 '로고스'를 말하는데 이는 지성과 같은 것이었다. 물론 신에 의해 창조된 것들 중에서는 '로고스'가 가장 고귀하고 서열상 최상이지만 여전히 신보다는 열등하게 위치되어진다.
이처럼 플라톤과 그의 후배들에 의해서 신론이 이런 식으로 흘러오는 상황에서 기독교의 성육신 교리가 철학적으로 딜레마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스토아 학파의 경우. 로고스 사상을 더욱 증폭시킴으로서 신학 초기의 핵심적 주제였던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의 사상을 뼈대를 제공하는 가교로 간주된다. 헤라클레이토스에서 '실재의 보편적 법칙'을 의미하던 로고스가 스토아 학파에서는 '만유에 내재하는 신적 힘'을 뜻하는데 까지 확장되므로서 신관 구성의 핵심 개념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물론 인간론이나 구원론에 있어 분명한 차이점은 있다. 스토아주의에서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주목하므로서 구원이란 지혜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본 반면에, 기독교는 인간의 죄에 관심하므로서 신의 은총을 통한 구원을 강조하게 된다.
그러나 보편적 로고스에 의한 참여 사상에 신론을 통해서 주입이 되어버리면 스토아주의 만인평등사상은 자연스럽게 모든 인간은 신의 자녀라는 기독교의 인간관과 혼합이 되어 버린다.
뿐만아니라 스토아 학파의 운명주의적 신의 섭리론은 나중에 예정론의 내용을 가득 채우게 되는 정신적 토양이 된다. 이런 신관이 초대교회에 흘러 들어오면서 환영도 받지만 동시에 문제를 야기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신에서의 완전성과 부동성의 일치는 초대교회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형성되어가면서 하나의 신학적 딜레마로 등장하게 된다. 지고의 신인 성부는 완전-부동하시되, 성자는 고통과 죽음까지 당했으니 성부와 성자의 일체성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었다.
플라톤에 의하면, 있음과 선함의 정비례 관계에서의 정점인 신은 있음 자체이며 그런 한에서 지고의 완전자이며 동시의 지고의 신이다. 그런데 지고의 완전성이 전능성을 의미한다면 지고의 선(善)성과 함께 신의 주요한 속성일진대, 이 세계에서 엄연히 실제로 경험되는 악의 현실과 관련하여 그 양대 속성이 어떻게 엮여야 할 것인가하는 소위 신정론(神正論) 문제가 바로 여기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신이 전능한 동시에 지선(至善)하다면 이 세계에 도무지 악이란 있을 수 없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신의 두 속성이 양립하는 것은 모순이므로 하나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신이 전능함에도 악을 허용할 만큼 지선하지 않거나 반대로 지고의 선이기는 하지만 악을 폐기할 만큼의 능력을 지니지 못하는, 그야말로 신의 권위가 결정적으로 도전 받는 상황을 상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문제와 연관하여 초대 교부철학과 신학의 집대성자인 어거스틴을 비롯한 플라톤의 기독교 후예들은 기꺼이 플라톤에 의해 제시된 '있음 자체'라는 신 개념에 호소한다. 즉 없음이 전혀 없이 있기만 한 있음이라는 의미에서 있음 자체인 신은 바로 그 있음 자체라는 본성에 의해 전능하고 동시에 지선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동일화의 바탕에서 더욱 있을수록 더욱 선한 것이어서 완전히 있기만 하는 한 있음은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지선이라는 정비레 관계가 깔려 있다. 그런데 있음과 선함의 이런 정비례 관계는 거꾸로 더욱 없을수록 더욱 악한 것이어서 완전히 없음은 당연히 최악을 가리킨다.
따라서 있음은 선한 것이고 없음은 악한 것인데, 악한 것은 결국 없는 것이어서 기껏해야 '선의 결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빛과 어두움이 관계와도 같아서 선은 빛이요 악은 어두움일진데 어두움이란 그 자체로 있는 것이라기보다 빛이 없는 상태를 지칭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과 악의 관계도 그렇다는 것이다.
악은 실재성이 없음으로서 형이상학적 지위가 부여되지 않으니 신의 전능성과 지선성의 공존에 어떤 손상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초대 교부들 중에는 성부도 성자와 함께 고통을 받았다는 성부수난설과 신의 수난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대에 이들은 신의 완전-부동성에 위배된다는 이유도 여지없이 이단으로 찍히고 말았다.
그렇지만 사실상 신이 완전- 부동성은 헬라적 개념 결합일 분이며, 유대교에서도 고백되어 온 민족신으로의 여호와는 부동적이고 초월적이기만 하지 않고 지극히 내재적이고 역사개입적이어서 이 구도에서 신의 완전성은 고난받을 가능성까지 포함하는 역동성과 결합되어야 하는 개념이었다.
즉 인간과 함께 고난받을 수도 없는 부동성은 있음의 성질을 충족시키시는 하리언정 참된 뜻에서의 완전성이라는 기준에서 본다면 오히려 미흡한 것이었다.
고난받을 가능성을 거부하는 부동성보다 고난받을 가능성까지 내포하는 역동성이 완전성을 더욱 폭넓히는 것으로 이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상의 배경 속에서 신약성경의 선재언명(先在言明)을 해석하려 들면,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이 문제의 종교사적 측면을 검토해 보자.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신약성경이 하나님의 아들의 선재 및 그 분의 하강을 언급한다고 칠 때, 그 신약성경이 성경외적 신화적 표상들을 넘겨 받았으며, 또 넘겨 받았으면 오늘의 우리로서는 우리의 표상들을 비신화화(非神話化)시킬 수 있으며 시킬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선재와 육화(肉化)라는 표상들이 그야말로 하늘에서 떨어진 기상천외의 새로운 관념들이 아니라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신약성경는 이러한 관념들로 그전부터 미리 주어져 있는 도식들을 재기용(再起用)하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자기의 운명에 관심을 둔 영지주의적 해석은 신약성경에 말씀하시는 뜻과는 다르다. 영지주의적 관심은 구속주의 육화에 있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이 자기 본질의 기원을 깨달음(인식)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구속주가 되어 구원받는다는 데 있었다.
구속주 신화는 인간이 자기의 참된 본질을 자신에게 확보하기 위한, 말하자면 하나의 실물예시(實物例示)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그러니까 영지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그 본질에서 이미 소외되어 있고 그러기에 구원이 필요로 하는 인간의 일반적인 운명에 대한 해석이다.
여기에 비해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하고 특수한 운명에 대한 해석과 소개이다.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는 구원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원형이 아니다. 그노시스(영지 靈知)에 있어서와는 달리 그리스도는 구원받은 구세주도 아니요 구원이 필요한 구세주도 아니다.
영지주의와 기독교 사이의 근본적 차이에 유의한다면, 영지주의적 표상들은 기껏해야 신약성경에서 복음을 표현하려는 동원된 2차적인 표상을 함께 사용한다는 것 뿐이다.
그러기에 오늘날 신약성경의 기원을 구약성경과 유대교의 테두리에서 찾아야 한다. 영지주의와는 달리 이 테두리 안에는 하나의 역사적 사고(思考)가 확립되어 있다.
구약성경 및 유대교의 표상에 의하면 구속사상 중요한 인물들과 사건들은 관념적으로나 혹은 묵시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계획이 이 세계 안에서 실재해 있어온 바이다.
묵시문학 계통의 표상에 의하면, 이 사실은 무엇보다도 '인자(人子)'라는 인물과 그의 할 일과 연결되어 있다.
지혜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의인화되어 나타나는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러난 것이며 그분의 반영이며 모상(模像)이다. 이 지혜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조언자로서의 구실을 했다. 그러기에 그는 '만물의 어미'라고 일컬어질 수 있다.
기독교의 교부신학은, 경전화와 교리화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의 제도화와 함께 전개된 교부학과 그리고 교회 밖 이교도들의 공격에서 교회를 방어하기 위하 호교론으로 구별될 수 있다.
먼저 사도 교부들의 경우를 살펴보자, 초대교회의 열광적 환상들이 다소 가라앉으면서 소위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일정한 규범이나 권위가 필요하게 되었고 이런 필요성에 의거하여 경전화 과정이 시작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는 교리와 신조의 정립도 포함되었는데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나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100년 경 사람) 등이 당시 이를 주도한 대표적 교부들이었다.
이그나티우스는 신과과 기독론의 정립에 힘을 쏟았는데 당시 이교도들과의 관계에서 신의 유일성 개념 확립을 주요한 과제로 삼았고 그 유일성 안에 절대성, 창조성, 그리고 전능성이 개념들을 포함시켰다.
특히 기독론에서는 영적 존재로서의 그리스도가 그의 구원활동을 위해서 역사의 예수님을 도구로 사용했다는 입장을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피력했다. "그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보여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침묵 가운데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이다"
이로써 일찍이 초대 교부시대부터 한 존재가 신(神)인 동시에 인간이라는 이중성의 선포를 위한 기틀이 마련되었다.
그런데 클레멘트가 지적하듯이, 그리스도를 신격화하게 되면 두 가지 방식의 기독론이 등장하게 되었다. 즉 로고스가 육체를 입었는가 아니면 아예 육체로 변하여 나타났는가? 이다.
나이 어린 기독교가 유대교의 범위를 넘어 헬라니즘 세계의 통속철학적 사상과 마주치게 되었을 때 이 두 정신은 충돌을 빚지 않을 수 없었다.
기원후 2-3 세기에 벌어졌던 이른 바 '단원설(單元說), 또는 유주론(唯主論)'과의 대결은 이 충돌의 첫 조짐이었다.
단원설이란 예수님의 신성을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과 결합하려던 신학적 노력들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단원설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되, 그가 하나님의 특별한 힘을 갖추고 있었으며 이 힘은 비위격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는가 하면 (여기에 속하는 것이 테오도투스Theodotus of Byzantium(190년 경 사람)의 이른바 동력적 단원설이다),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아버지 하나님이 특별한 출현양식으로 이해하려 했다.(여기에 속하는 것이 노에투스 Noetus, 사벨리우스Sabellius, 프락세아스Praxeas의 이른바 의태적 단원설이다.)
터툴리안은 이 마지막 양태적 단원설에 '성부수난설'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왜냐하면 이 이론에 따르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의 탈을 쓰고 수난을 하였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대결에 이르기는 기원 후 4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사제 아리우스Arius와의 논쟁과 더불어서였다.
아리우스는 기원후 260년경 리비아에서 출생했고, 오리겐의 신학적 후배인 안디옥의 루키아누스의 제자였다. 아리우스의 가르침 내지 주장은 이른바 중도(中道) 플라토니즘에 해당된다. 이 철학의 특징은 일종의 노골적인 부정신학(否定神學)에 있었다.
신은 말로 형용할 수 없고, 출산되지 않으며, 생성하지도 않고, 기원도 없으며, 불변적이다. 그러므로 아리우스에 기본적 문제는 생성하지도 않고 분여(分與)될 수도 없는 이 존재, 곧 신을 생성과 다양이 이 세상과 어떻게 연결시키고 매개하느냐에 있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아리우스에게 도움을 준 것은 '로고스'개념이었다. 여기서 로고스는 일종의 제2급 신으로서 피조물 중에 첫째요, 가장 탁월한 피조물인 동시에 창조사업의 중개자로 파악되어 있다.
따라서 로고스는 시간에서 무(無)로부터 지음을 받았으며 가변적으로 그르칠 수 있는 존재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여진 것은 순전히 시련을 극복한 그의 도덕적 자질과 그 실적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성경의 로고스론은 구원론적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이 로고스론이 하나의 우주론적 사별과 하나의 도덕으로 변모한 셈이다. 이처럼 그의 신학은 기독교의 헬라화를 의미하며 이 헬레니즘화는 사실 심각했다.
2세기 중엽에 순교자로 널리 알려진 유스티누스Flavius lustinus, Justin Martyr(100-165) 는 호교론자였다. 기독교의 사상을 당대의 마술적이거나 미신적인 풍조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운 정신적 사고를 제공해 주는 로고스 철학으로 보았다.
그는 기독교 사상은 삶에 의미에 관한 포괄적 진리를 가르칠 만큼 보편적인 것이어서 비록 무신론자로 분류된다 할지라도 이성에 따라 산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까지 갈파했다.
말하지만 유스티누스와 같은 호교론자들은 기독교만을 옳고 다른 종교들은 거짓이라는 배타주의적 방식을 취한 것이 아니라, 예를 들면 로고스가 궁극적 기준일진대 그 로고스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육화했다고 선언하다 다소 포괄적인 방식을 취했다.
신론으로 말하지만, 일찍이 플라톤의 신개념의 원형이 되었던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라는 개념이 하나의 축을 이루고 구약성경에서 유래한 창조성과 전능성을 포함하는 인격성을 지닌 유일신 사상이 또 다른 축을 이룬다.
그런데 문제는 고정·영원·불변·부동·필연 등의 속성을 지닌 존재와 인격적으로 행동하는 신 사이의 긴장이다. 로고스의 보편성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전자의 요소, 즉 플라톤의 신개념의 요소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구약성경에서 이어지는 인격신 사상은 그것 없이 기독교가 성립조차 될 수 없는 절대적 요소이기 때문에 보편성을 대가로 지불해서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과연 이런 상황은 당대 현자들이 공격거리였고 호교론자들이 엄청난 수고를 요구하고 중대한 과제였다.
그렇다면 당시 유스티누스를 포함한 호교론자들이 해결책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사변적 논증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존적 경험에 호소함으로써 이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로고스는 신의 자기계시의 원리로서, 한편 자신에 대해 자신을 나타내는 신이기도 하며, 다른 한편 신의 말씀으로서 신과 동일하지는 않으나 결코 분리될 수는 없는 것으로 그려진다.
바로 여기는 헬라철학의 존재개념과 기독교의 인격신 사상 사이의 적극적 조합이 구축된다. 즉 예수님의 정체를 설명하기 위해 신의 영이 인간 예수님과 결합했다는 양자론으로써가 아니라 로고스가 친히 인간화했다는 변화론을 택하으로서 보편성과 인격성 사이의 긴장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모색했다.
교회 밖의 공격이 당대의 철학사상이나 이교적 교리에 의한 것이었다면 사실상 교회 안에서의 도전이 더 크고 위험했다는 점을 다소 주목을 요한다.
특히 영지주의의 문제에서 이런 점이 더욱 절실하다. 영지주의란 지식, 신비적 합일, 성적 결합 등을 뜻하다는 그노시스를 중시하는 일종의 혼합주의적 운동이다.
그런데 이 혼합주의 파급효과가 지대해서 헬라철학의 종교화나 유대교 사상과의 혼합을 초래했음은 물론 로마법 사상과 기독교 신학에도 스며들어갔다.
당시의 대표적 영지주의자인 마르키온은 선악이 두 영역을 철저히 구별하는 이원론을 따라 구역의 신과 신약의 신을 구별하고 이 피조세계는 악하므로 세계로부터의 초월을 뜻하는 금욕을 통해서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이유로 영지주의는 영과 육 사이를 분리를 토대로 에온이라는 천상의 구원자가 육화한다는 것은 가상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곧 예수님이 그리스도의 정체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인지라 기독교인들은 영지주의를 그토록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교부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를 거부했는가?
1세기에 교회 밖 이교도들의 공격에 대한 호교론이 로고스 개념의 즉극적 수용과 변형을 통해서라면 2세기의 교회 안에서 일어난 이단인 영지주의의 혼란에 대해 교부들은 그런 호교론을 더욱 체계화적으로 사용하여 신학 사상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제 로고스론의 뿌리였던 헬라의 삼신론과 같은 다신교 사상은 헬레니즘의 신비주의가 강조하는 신의 초월성에 힘입어 기독교 신학 안으로 온전히 채택될 만큼 일신론으로 변형되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이레네우스와 이에 쌍벽을 이루는 터툴리안은 위대한 신학적 공헌을 이룩한 인물들로 기록될 수 있었다. 그런데 영지주의의 혼란에 대해 교부들은 사도들의 권위에 의존하게 되었고 여기서 정경채택의 필요성이 절실히 대두되었다.
정통파가 '한 하나님'을 옹호한 제 2세기 후반에 이르러 교부들은 일제히 '한 감독'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 교회의 정치 제도를 합법화하였다. 그리고 나서 일신론의 영지파적 수정론을 그 교회제도에 대한 공격이라고 자의적인 해석을 하였다.
그러므로 영지파와 정통파 크리스챤들이 하나님의 본성을 변론할 때에 그들은 그때마다 영적 권위에 관한 문제점을 거론하였다.
로마교회로부터 내려온 바 가장 오랜 문헌 중 하나인 로마의 감독 클레멘트(약 90-100)의 서신은 이 문제를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다. 로마교회를 대변하는 위치에서 클레멘트는 위기를 맞은 고린도의 크리스챤 공동체에 서신을 보낸 것이다.
사실인즉 고린도교회의 모모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박탈당한 것이었다. 이에 관하여 클레멘트는 소수의 성급하고 독단적 인물들이 그들의 직위에서 축출했으며 아무 이름도 없는 사람들이 이름 있는 사람들과 어리석은 자들이 슬리로운 자들과 젊은 자들이 노인들과 대항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을 정치적 언어를 사용하여 '반란'이라고 규정하였으며 축출 당한 그 지도자들에게 본연의 권위를 회복해 줄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또한 그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존경하며 순종해야 된다고 경고하였다.
무슨 근거로 인하여 그런 말을 했는가? 클레멘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그 하나님이 홀로 만물을 다스리시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곧 모든 것들이 순종할 수밖에 없는 주님이시며 주인이시다.
그는 곧 법을 제정하시며 반역자들을 징벌하시며 공손한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재판장이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통치는 실제로 어떻게 집행되는가?
이에 관하여 클레멘트는 실천적인 신학을 논했다. 하나님은 자신의 통치적 권위를 세상에 있는 통치자들과 지도들에게 위임하신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면 그같은 지명 받은 통치자들은 누구인가?
클레멘트는 감독들과 사제들과 집사들이라고 대답한다. 어떤 사람이거나 머리를 숙여 교회의 지도자들을 순종하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주인이신 하나님 자신에게 불복종하는 죄를 짓는다.
그같은 이론에 말려들어 클레멘트는 어떤 사람이거나 하나님의 권위를 통하여 임명을 받은 교권자들을 불순종하는 자는 '사형을 받는다'고 경고하였다. 이 서신은 기독교의 역사상 극적인 순간을 표시한다는 뜻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처음으로 기독교 공동체를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두 계층으로 나누는 이론을 발견하게 된다. 이에 따라 교회는 윗 사람과 아랫 사람이라는 엄격한 질서에 따라 조직될 수 밖에 없었다.
성직자계층 안에서도 감독이나 사제이거나 집사이건 간의 각자의 위계 안에서도 각 사람의 서열을 정할 것을 클레멘트는 주장하였다. 각자는 반드시 자신의 지위에 해당되는 규칙과 계율을 언제난 준수해야 한다.
이 서신은 많은 역사학자들에게 당혹감을 주었다. 고린도에서 발생한 논쟁에 관한 근거가 무엇이냐고 그들은 질문을 제기하였다. 어떤 종교적 관심사가 문제점이었던가?
그 서신은 그 문제점을 똑바로 우리에게 말해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 서신의 저자가 그 문제점을 무시했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는 마치 고린도교회를 신적 권위의 본보기로 확립할 것을 뜻했다.
마치 하나님이 하늘에서 주인, 주님, 사령관 및 임금의 자리에서 통치하시듯이 그는 땅에서는 자기의 통치권을 교회 성직제도의 회원들에게 위임하시며 그들은 장군들이 되어 통솔하는 군대에 명령을 내린다.
또한 그가 세우신 임금들은 백성을 다스리며 법관들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의장의 역할을 한다. 클레멘트가 간단하게 말하고자 하는 점은 로마 이외에 있는 크리스챤들이 제2세기 초엽에 이르러 수렴하게 된 사실을 로마의 크리스챤들은 당연한 사실로 여겼다는 것이리라
놀랄만한 것은 아니지만 이같은 이론을 주장한 중요한 임무들은 바로 감독들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그후 일세대가 지나서 로마로부터 약 4000리 이상이나 떨어져 있는 수리아의 안디옥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 Ignatius of Antioch (70-107년 동안 안디옥 감독으로 있었던 사람)는 그것과 동일한 원칙을 열렬하게 옹호한 바 있다. 그러나 이그나티우스는 클레멘트Clement of Rome(1세기 말의 로마의 유력한 장로) 보다 한술 더 떴다.
그는 감독, 사제, 및 집사 등 세 직위가 하늘에 있는 신적 성직계층을 반영하는 교회 성직 계급의 질서라고 옹호하였다. 이그나티우스는 선언하기를 하늘에는 한 분의 하나님이 계심 같이 교회 안에는 한 감독이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한 하나님, 한 감독'이라는 표현은 정통파교회의 표어가 되었다. 이그나티우스는 '그가 하나님인 것 같이' 생각하며 평신도들은 감독을 존경하며, 존중하며 순종하라고 경고하였다.
감독은 교회의 성직제도의 정점을 차지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통할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밑에 서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의회'라고 이그나티우스는 대답한다.
순서를 뒤바꾸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의회는 사도들 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하여 지상에서는 사제들이 집사들을 다스리는 바 그 세 성직집단은 '평신도'를 다스린다.
이그나티우스는 정치와 종교는 불가분의 통일체를 구성한다고 보았다. 그는 교회를 통해서 인간은 하나님을 접근한다고 믿었으며 특히 교회를 관장하는 감독, 사제, 및 집사를 통하여 접근한다고 믿었다.
그들이 없으면 교회라고 부를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그는 믿었다. 백성은 자신들의 영원한 구원을 얻기 위하여 감독들과 사제들에게 복종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그나티우스와 클레멘트는 성직자의 구조를 다르게 묘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두 감독은 다같이 이같은 인간적 질서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권위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동감하였다.
말하자면 기독교는 결국 유대교의 율법주의 정신을 계승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미흡했기 때문에 교회의 전통이라는 것이, '신앙의 기준'으로 등장하게 되었고 이어서 이를 더욱 집약시킨 '신조'라는 것이 요구되었다. 이리하여 비교적 짧은 기간에 교회는 종교적 권위 수립을 위한 제도화의 기틀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의 원리가 가리키듯이, 반(反)영지주의적 교부들의 이런 제도화는 이네 경직화의 길로 치달음으로써 소위 영적 반동을 불러일으켰다. 2세기 중엽 몬타누스Montanus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한 것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초대교회의 사도들처럼 성령을 사모하면서 열정적으로 종말을 대망했다.
정결한 청교도적 분파 운동으로 알려진 이 운동은 156년경 소아시아의 프리기아Phrygia 출신인 몬타누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혼수상태에서 그 지방 기독교 신자들에게 이상한 언어로 말하며 자칭 예언자로 많은 추종자들을 갖게 되었다. 그는 역사를 성부의 구약 시대와 성자의 신약 시대, 그리고 성령의 시대 등 세 시대로 구분하였다.
그는 마지막 성령의 시대는 자신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믿고 성령은 자신을 통해 교회를 진리에로 이끌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칭 하나님에게 임명받은 선지자라 주장하고 추종자들은 영적인 그리스도인의 소수 정예를 불렀다.
그들은 고상한 기독교인들의 생활 기준과 엄격한 치리, 교회와 세상 사이의 보다 뚜렷한 구별을 요구했다. 또한 영적 부흥의 재현을 위해 보다 엄격한 삶으로 주님께 나가도록 촉구하고 세계의 조기 종말, 그리스도의 재림 및 새 예루살렘에 이상적 사회를 건설하려는 생생한 신앙을 주장했다. 그의 이 사상은 지나치게 초영성을 주장하여 역사적으로 율법주의적 금욕주의라 불리게 된다.
물론 실제로 예수님 자신도 그런 종말관을 가지고 있으시다. 말하자면 교부들에 의한 교회의 제도화는 임박한 종말에 대한 절박한 대비라는 '처음 마음'의 정서에서 멀어지는 것이었기에 몬타누스주의자들은 이처럼 교회의 설립조차 부정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 역시 종말의 도래가 성취되지 못했다는 사실로 인해 어차피 이 세계에서 대처할 채비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다만 한가지 덧붙인다면 이 운동은 성부와 성자의 시대에 이어 성령의 시대를 적극적으로 갈구하는 종파운동의 원형이 되었다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교부들이 주도하는 교회는 이런 몬타누스주의 운동을 거부했다. 1세기 변증론에서 로고스론의 전통을 이어받은 2세기의 반영지주의적 교부들은 당연하게도 그들 자신의 지성주의적·도덕주의적 성향으로 인해 이렇게 감정주의적 정서를 지닌 운동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교회의 정경은 '한번 채택은 영원한 확정'인 양 새로운 계시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자가당착에 봉착했고, 예언자적 통찰보다 교회의 계층적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사나운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또한 종말론은 어느덧 개체화 또는 추상화되어 그 절박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따라서 교회의 윤리도 그 절실함을 점차 잃어갔다. 이렇게 본다면 경전화와 교리화를 포함하여 교회의 제도화를 구실로 하는 합리주의적 조직이라는 것이 그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신비성을 말살할 만큼 자기모순적임을 역사를 통해 배우게 된다.
이레네우스와 터툴리안의 경우, 영지주의자들이 신 개념에서 선악 분리에 따라 창조의 신과 구원의 신을 분리한 것에 대해 이 교부들은 창조의 목적이 구원이고, 구원은 창조를 전제한다는 통찰에서 유일신 사상을 더욱 공고히 한다.
그렇다고 신의 유일성이 신의 자기 충족적 고정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신은 살아 있는 신이며 죽은 동일성을 고수하는 신이 아니다. 이것이 곧 삼위사상으로 나타났고 생명성과 활동성의 창조적 바탕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레네우스가 말하는 잠재력이나 터툴리안이 말하는 경륜이란 바로 이것을 가리켰다. 이제 신의 이런 경륜적 잠재력에 의해 자유로이 창조된 인간은 그 자체로 선한 것이었다.
창세기 1:26절에 의하면, 신은 우리 모습을 따라 우리를 닮은 인간'을 창조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이레네우스는 신의 형상과 신과의 유사성을 구별함으로써 오히려 창조와 구원 사이의 연관성을 확보하는 지혜를 보여주었다.
즉 인간은 자유로운 불순종으로 신과의 유사성, 즉 불사성을 잃어버렸지만 자연적 신의 형상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비록 죽을 수밖에 없지만 여전히 신과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서 죽음을 넘어서는 불사성은 신과의 유상성에 의한 선물인데, 아담에서 상실되었던 유사성이 그리스도에게서 회복되었다는 것이 곧 신약성경의 후반의 고백이라고 본다. 이처럼 이레네우스는 불사성을 향한 구원에의 신비적 참여를 강조했다.
그의 이런 분위기는 기독론에도 그대로 피력된다. '아버지는 아들의 비가시적 실재이고, 아들은 아버지의 가시적 실재다'라고 했다. 그런데 신과의 유사성이라는 고전적 표상은 유감스럽게도 얼마 가지 않아 상실되었고 후대에 영혼불멸이라는 통속적인 관념으로 대치되었다.
이레네우스가 신비적 참여를 역설한 데 비해 터툴리안은 율법에의 복종을 강조한다. 고전신학의 기틀인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의 형성에서 지대란 역할을 한 터툴리안은 로마법 사상에 힘입어 삼위일체의 공식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우리는 신적 경륜의 신비로운 뜻을 간직하자. 이 신비로운 뜻은 일성을 아버지, 아들 ,성령의 삼일성으로 전대한다. 이것은 본질상의 것이 아니라 발전단계상의 것이며, 실체상의 것이 아니라 형식상의 것이다.'
이를 보면, 본질이나 실체에서의 단일성을 강조함으로서 그 사상적 배경인 헬라철학의 삼신론과 구별하고자 했음이 분명하다. 아울러 그리스도에 대해서 같은 방식으로 정리되었다. '우리는 신이자 인간 예수라는 하나인 인격 안에서 혼합되지 않고 결합되어 있는 이중의 본질을 본다.'
혼합이 실체의 경계가 와해되는 상태를 가리킨다면, 결합이란 한 인격 안에 두 실체가 독립성을 잃지 않으면서 공존함을 일컫는다. 그런데 여기서 소위 성육신이 정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다.
과연 성육신이란 신이 인간으로 변하는 것을 말하는가 아니면 신이 인간적 본질을 받아들이는 것을 가리키는가?
여기서 터툴리안은 후자의 입을 취했으며 이는 후대 신학자들의 표본이 되었다. 그런데 이 입은 앞서 언급한 호교론자들의 로고스론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호교론자들은 로고스가 육의 모습을 입는다는 양자론보다 로고스가 스스로 육신으로 변한다는 변화론을 지지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미 교리신학 안에서도 합리주의와 신비주의와의 긴장과 대립과 갈등이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알렉산드리아에서 발달한 신플라톤주의가 개입된다. 클레멘트가 로고스를 삶의 실천적 원리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호교론자들을 넘어셨다고 오리겐은 이를 다시 이론적으로 체계화했다는 데서 공헌이 있다.
최초의 조직신학자로 불리기도 하는 오리겐은 성경에 대한 알레고리적 해석을 통해 신론과 기독론을 구축하는데 주력했다.
성경해석은, 몸과 혼과 영으로 구분하는 인간관의 기본구도에 따라서 문헌적해석, 도덕적해석, 그리고 신비적 해석으로 구분했다. 그런데 특히 자의적 해석이 의미를 상실했을 때, 신비적 해석이 절실히 요청되는데 바로 이를 위해 알레고리의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을 신약성경의 그리스도 증언의 징표로 읽는 것이 그 좋은 예다. 오리겐은 바로 이런 성경해석법의 필요에 주목하여 교리적 체계화에 박차를 가했다.
먼저 오리겐의 신론은 호교론자들이 채택한 로고스론을 수용하여 로고스의 영원을 근거로 성부 신과 성자 신이 영원성을 본질로 하는 신성을 공유한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 성자 신을 성부 신에게 났으니 이보다 낮은 단계이며 성령 신도 그렇다고 한다. 말하자면 본질적 실체에서는 동일하지만 기능적 실체에서는 위계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알렉산드리아 학파에서는 신플라톤주의의 유출성에 의한 위계적 구조가 삼위일체론에서 일체성보다는 삼위성에 더욱 초점을 맞추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점이 그의 기독론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신의 로고스와 인간의 육체가 혼에 의해 매개되는데, 예수님 안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두 본성이 결합되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일체성보다 삼위성에 주목하는 위계론적 관점에서는 로고스가 엄연한 상위의 자체로서 하위의 육체를 취한 것으로 모사됨으로써 양자성로 기울어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게 된다.
문제는 알렉산드리아의 종교적 정서가, '인간이 된'이라는 신비성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오리겐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에게는 예수님보다 로고스의 더 큰 범주이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오리겐은 삼위일체론에서 삼위성과 일체성 사이의 긴장을 삼위성에 무게를 둠으로써 해소하려 했다.
그런데 삼위성을 강조하는 로고스론의 삼신론적 분위기에 대항하여 단일지배체를 모형으로 신론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으니 이를 군주론적 신론이라고 한다. 도대체 본질이 하나라면서 그 기능이나 위상이 여럿이라 하니 납득되기 어려울뿐더러 결국 삼신론이 아닌가라는 의혹을 떨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래서 신의 단일성이 수립되어야겠는데 그러자면 성자와 성령은 성부에 귀속되어야 한다는 데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로써 삼위성과 일체성 사이의 긴장을 둘러싼 삼위일체 논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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