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고대 신학 7
08 고대 신학 7
이근호 2004-02-29 18:21:40, 조회 : 315, 추천 : 66
그런데 이런 군주론은 그 귀속의 유형에 따라 역동적 군주론과 양태적 군주론으로 나뉜다. 먼저 역동적 군주론은 로마의 테오도투스로 대표되는데 인간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신의 힘이 임재하여 메시아가 되었다는 입장을 취한다.
예수님은 본디 인간이었는데 신격과의 점진적 발전과정을 통해 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입장은 곧 예수님의 인간성을 강조한 안디옥 학파로 이어지고 중세의 그리스도론에서 양자설로 나타난다.
다른 한편, 신은 본질적으로 하나(homo-ousios)인데 단지 그 나타나는 모습이 셋으로 구별될 뿐이라는 입장이 등장했다. 양태적 군주론이라고 불리는 이 입장은 사벨리우스로 대표되는데 신의 군주적 힘이 계기적으로 성부·성자·성령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 자신이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인간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함으로써 신 자체를 직접 보기 원하는 종교적 욕망을 지닌 많은 사람들의 강한 호응을 받았다. 어쨌든 육적 욕망에 의해 더욱 증폭된 신의 유일성 추구 성향은 후에 어거스틴을 통해 서방교회의 삼위일체론에도 적지 않는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이런 군주신론은 삼위의 동질성에 바탕하여 신의 유일성을 강조했으므로 삼위의 유사성에 토대를 둔 계층성을 주장한 로고스 기독론과 대립하게 되었다.
전자가 서방교회에 영향을 주었다면 후자는 동방교회에서 상대적으로 더 환영을 받았다. 말하자면 삼위일체론에서 서방이 일체성에 기울었다면 동방은 삼위성에 기울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대립이 이후 기독론 논쟁에서 여전히 기본구도가 되었다.
이론의 체계적 수립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기독론의 문제가 제기되고 삼위일체론이 그 대답으로 연관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삼위일체론 논쟁이 먼저 나타났고 이어서 기독론 논쟁이 등장했다,
니케아 신조의 삼위일체론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추인되면서 무한한 신이 유한한 인간이 될 가능성에 대한 논란으로 기독론이 집중적인 초점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서방교회로 연결되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동방교회로 연결되는 안디옥 학파가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초세기의 교부신학은 우선 영(靈)과 육(肉)의 기독론을 반복하고 이를 구원론적 측면에서 더욱 전개시켰다. 이것은 어쩌면 가장 오래된 기독교로의 도식일 것이다. 이 이원성(二元性) 안에서의 일치를 가장 박력있고 인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곳은 안디옥의 이그나시오스가 에베소 교우들에게 보낸 다음의 유명한 구절이다.
"한분만이 의사(醫師)이시니 그 분은 육적이시고 동시에 영적이시며 출생되신 분이요 동시에 출생되지 않으신 분이며 사람이 되셨고 동시에 하나님이시며 죽음 한가운데 참 생명이시며 마리아에게도 나셨고 하나님에게서도 나셨으며 처음에는 고통을 당하실 수 있었으나 지금은 고통을 당하실 수 없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그나시오스는 아주 극적으로 하나님의 피라든가, 하나님의 고통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주체 안의 일치를 얼마나 현실적으로 이해하였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이 일치의 구원론적 의미는, 인간이 예수의 영과 그 불멸성에 참여하는 데 있다.
영과 육의 기독론은 비교적 일찍부터 오해받은 소지가 있었던 것 같다. 이 기독교론은 쉽게 성자입양설로 그릇 해석될 수 있었다. 실상 그것은 자칫하면 성령이 그리스도 안에서 마치 특별히 은혜를 받은 어떤 다른 사람 안에서와 마찬가지로 작용하고 그 안에 살아 마침내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삼은 것이라는 인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당대의 스토아철학에서는 영(Pneuma)이라는 개념이 물질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사실도 아울러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기독교가 당대의 사고(思考)와 마주치게 되면서부터 이 개념은 예수님의 신적 존재를 아무런 혼동 없이 표현하는 데 적당치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영·육'의 도식보다 좀더 도움이 되는 또 다른 도식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 도식은 나중에 오해를 사게 된 모형이지만 그 전신(前身)은 이미 성경에 그 꼴을 갖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말씀-살'의 도식이다.
이 말씀과 살의 기독론에 뒷받침 되었던 성경의 가장 고전적인 구절은 요한복음서의 서문에 있는 구절이다. "그리고 '말씀'(λογοs)은 '사람'(살, σαρξ)이 되셨습니다."이다. 여기서 '되셨다'는 동사는 어떤 변신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로고스'와 '살'에서 어떤 제 3의 존재가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여전히 '로고스'이다. 요한 일서와 마찬가지로 요한복음서의 가장 중요했던 것은,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해두자는 데 있었다. 첫째, 이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로고스' 자신이라는 것과, 둘째, 이 '로고스'가 정말로 살이 되어 왔다는 것, 다시 말해 정말로 사람이 되어 우리 역사 안에 나타났다는 것, 그분이 우리 가운데 살으셨다는 것, 아니, 그분이 몸소 살(肉)이 '되셨다'는 사실이다. (요한복음 1:14)
그러니까 하나이요 동일한 주체(主體)에 대하여 신적인 것고 인간적인 것을 동시에 언명하고 있는 것이다. 신약성경의 기독론에 어떤 중요한 기본 특징이 있다면, 하나이요, 동일한 주체에 대하여 신적인 언명과 인간적인 언명을 동시에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요한에게서 완전히 틀이 잡힌 이른바 '이본성(二本性) 교리'를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짓일 것이다.
요한에게 중요했던 것은 어떤 단일의 주체에 신성과 인성이라는 두 가지 본성이 있다는 것을 언명하자는 것이 아니라 구속사에 있어서의 어떤 사건을 추이에 있었다.
그것은 역사에 있어서의 위대한 전환에 있었다. '로고스'가 육체를 찾아 내려왔다가 육체를 거쳐 영광을 향해 걸어 올라간 길이,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새롭고도 궁극적인 구원 가능성, 진리와 생명에 이르는 어떤 길을 열어준 것이다.
요한복음서가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의 일치에 관해서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경우의 일치는,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과 로고스 사이의 일치가 아니라 예수님과 그 아버지 사이의 일치이다.
아들로서의 예수님과 그 아버지 사이의 일치는 구원론적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전개된다. 아들을 따르는 사람은, 자기가 아버지의 손 안에 감싸여 있다는 사실을 믿어도 좋다.(요 10:28)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일치는 믿는 자들로서도 도달해야 할 저 일치의 원형과 전형(典型)이 될 수 있다.
아버지와 예수님의 일치는 아버지께 이르는 길이요,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의 중보자인 예수님의 신원을 명시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협의의 기독론적 문제, 에수님의 내적 구성에 관한 질문은 나중에서 비로소 포괄적으로 다루게 되었다. 실상 사람들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일치를 가능하게 하는 내적 조건들을 반성하고 예수님 특유의 개별유적(個別有的) 실존(實存) 영위(營爲)를 존재론적으로 해석해보려고 했던 것이다.
신약성경에서는 아직 제기되지 않았던 이 질문에 눈길을 돌리게 되면서부터 사람들은 아버지께 대한 예수님의 헌신은 예수님에 대한 아버지의 자기 수교(修交)를 전제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자기 수교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일치를 구성해주고 이 양자 사이의 구별을 계속적으로 유지시켜 준다. 전통에서는 이 자기 수교를 '로고스,' 하나님의 제2위라고 이름한다.
예수님은 철두철미 이 아버지의 사랑으로 살고 있으며 자기 자의로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예수님은 다름 아닌 바로 사람이 된 아버지의 사랑이며, 사람이 된 순종의 응답 그 자체이다.
'로고스'와 인간 예수님의 일치는 아버지의 예수님 사이의 일치의 내적 근거가 된다. 다만 신약 성경에는 이 사실이 간접적으로 표현되어 나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예수님과 아버지 사이의 인격 공동성을 본질 공동성으로, 그러나 본질 공동성을 동시에 인격 교환의 수행(遂行)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본질 공동성의 특수성을 바로 그것이 상호 인격적이요 관계적이라는데 있다.
신학사적으로 봐서, 기독론의 첫 위대한 구상은 리용의 이레네우스로부터 시작된다. 영지주의 계통의 이원론과 마주 싸우면서 그가 내세운 대명제는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이다. 예수과 그리스를 구별하고 심지어 이 양자를 서로 찢어놓고 있었던 그리스도 가현설에 대적하면서 이레네우스는 예수와 그리스도가 사실은 하나요 동일한 분이라는 것을 역설하였다.
이로써 후대의 기독론적 논쟁에서 근본적인 중요성을 획득하게 될 하나의 정식(定式)이 발굴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레네우스에게서는 기독교적 질문 제기가 신학적인 문제 제기가 신학적인 문제 전반(全般)에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지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일치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창조와 구속, 하나님과 세계의 일치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어떤 위대한 예외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파악된다. 이레네우스에게 있어 기독론적 문제가 구원론적 관점에서 전개되어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즉 그리스도는 우리를 당신과 같은 존재로 완성하시기 위하여 우리와 같은 존재가 되셨다'는 것이다.
로고스가 사람이 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인자(人子)가 되신 것은 인간이 로고스를 받아모시고 자연 지위를 얻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불멸성과 불사성에 결합되지 않고서는 달리 불멸성과 불사성을 얻을 길이 없다고 그가 본 것이다.
그러나 이 불멸성과 불사성이 먼저 우리와 같은 존재가 되지 않았었다면 어떻게 우리가 불멸성과 불사성에 결합될 수 있겠는가 실제로 인간이 하나남의 자녀로서 지위를 얻을 수 있으려면 패멸(敗滅)해야 할 것은 불멸의 것에, 죽어야 할 것은 불사(不死)의 것에 흡수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레네우스의 기독론적 사상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가 문제를 '개념상'으로 처리하지 못한 데 있다. 이 개념상의 처리를 해낸 것이 바로 터툴리안의 천재적 솜씨였다. 너무나 천재적이었기 때문에 그의 개념의 성격을 사유적(思惟的)으로 뒤미쳐 따라가는 데만도 다시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의태설자(擬態說者)인 프락세아스에게는, 아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한가지 출현방식에 지니지 않았으며 그러기에 아들 안에서 고난을 받은 분은 바로 아버지라고 말할 수조차 있었다. 터툴리안은 이 프락세아스를 반대하기 위해 그의 저서에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구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구별과 아울러 그 상호 간의 일치를 밝혀야 했다.
그리고하여 그는 spiritus-caro(영과 육)라는 전통적인 한 쌍의 개념을 두 가지 'status(지위 地位)'와 두 가지 'substantia'(실체)에 관한 언급으로 보충한다.
신인(神人)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는 이 두가지 지위와 두 가지 실체가 있는데 이들은 서로 혼동되지 않으면서도 서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칼케돈 공의회가 사용한 것과 같은 성격의 개념을 앞질러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적인 정확성은 이레네우스의 보편적인 신학적 전망을 희망시킨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또한 교환에 관한 사상도 터툴리안에게서는 탈락하고 만다. 그렇게하여 기독론 자체가 하나의 특수 문제로 축소되고 만다. 육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섬세하게 정의하다 보면, 거기에 현혹된 나머지 그 구원의미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교리가 본래, 이 인간이 바로 우리에게 준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신앙의 확신을 발전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후대 라틴 신학은 이 함정에 너무나 자주 빠졌다.
서방의 터툴리안과 거의 같은 시대에 동방의 오리겐은 그뒤를 이어 올 기독론의 발전을 위해 궤도를 바로 잡아주는 자로 등장된다. 서방에서와는 달리 동방교회에서는 오랜 투쟁을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개념을 규명하는데 성공한다.
개념사 연구는 προσωπον과 υποστασιs라는 두 개념에 관련된다. προσωπον이라는 개념은 본래 얼굴, 용모를 의미하지만 연극 배우의 탈(가면)과, 그가 연극에서 떠맡는 배격도 의미한다.
70인역 희랍어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면전을 가리키는 데 이 낱말을 자주 사용한다. 고대 교회에서 하나님께 있는 προσωπα에 관해서 말을 하게 된 데에는 이 신학적 언어 관습이 꽤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지만 바로 이러한 표현방식은 쉽게 의태설적(擬態設的)으로 잘못 해석될 수 있었다. 그전의 학계에서는 흔히 생각하기를, 법률가였던 터툴리안에 의해 이 개념 내지 이에 대등하는 라틴어 낱말 persona의 정확한 개념 규정이 처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다.
실상 προσωπον은 나중에 (물物에 대한 상대되는) 인人이라는 법률용어로 쓰였던 것이다. 그러나 터툴리안에게는 일종의 문학적인 예술양식으로서, 어떤 사건을 단순히 서술하는데사 그치지 않고, 이를 마치 하나의 극(劇)처럼 구성하여 여러 극중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그들에게 여러 가지 역(役)을 떠맡게 하는 개념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속사, 특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만나시는 그런 극적인 상황에서 그 특성과 방식을 개념적으로 파악해야 할 필요가 생겼을 때, 이 개념은 여기에 마치 안성맞춤처럼 부상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대에는 하나의 예술양식에 불과했던 것이 이제는 현실적인 내용을 담게 된 것이다.
이 현실적인 내용을 표현해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υποστασιs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본래 ουσια 혹은 φυσιs와 거의 같은 뜻이었고, '실재'(實在), '현실'을 의미했다.
이런 의미에서 니케아 공의회는, 성자와 성부는 '실재'(Hypostase) 혹은 '본질'이 다르다고 하던 아리우스 계통의 이설(異說)을 단죄하였던 것이다.
물론 키릴은 하나의 '히포스타스'라느 표현 외에 '로고스의 육화하신 한 본성'이라는 표현과 '자연적 실재적 결합'이라는 표현을 그때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히포스타시스는 실재와 현실 외에도 이미 스토아 학파에서는 실재화와 현실화를 의미했었다. 스토아 학파에서는 그것이 형상도 없고 성질도 없는 원질료가 구체적인 개별물로 현실화한다는 것을, 그리고 신플라톤주의에서는 일자가 그 때마다 보다 하위의 존재 단계로 실재화하고 출현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와같이 이 개념은 이미 신플라톤주의 철학에서 일자성과 다자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바지 했다. 오리겐만해도 실재(ουσια)와 그 현실화(υποστασιs)를 분명하게 구별하지는 않았다.
그에 비해서 아타나시오스는 362년 알렉산드리아의 지방 주교 회의에서 조심스럽게 방향을 전환하고 나서부터, 하나님의 단일한 본질(ουσια)만 보전되면, 하나님의 세 '히포스타시스)(외양적 특성)에 관한 말을 해도 무방하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신플라톤주의에 비해 아타나시오스의 사상에 새로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등급 사상을 지양(止揚)하였으며 세 히포스타시스를 종속화 시키지 않고 동렬로 취급했다는 데 있다.
이러한 해명으로 말미암아 존재 및 신을 역동적으로 이해하는 데 원칙적으로 진일보하게 되었다. 실상 υποστασιs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정체중(停滯中)인 존재가 아니라 생기(生起)중인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의 히포스타시스의 개념은 상호관계적 의미의 위격관을 잘 조응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동방교회에서는 바실리오가 그리고 서방교회에서는 어거스틴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위격들을 관계로 이해하는 데 이르기까지는 남은 길이 얼마 멀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의 위격은 어떤 물적 실재나 실체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순수한 호혜적(互惠的) 현실이요 서로간에 각자를 주고 받는 순수한 현실이요, 자립적 관계이다.
그러나 구체적 실재화라는 의미의 위격관은 그 뒤에 이어온 기독론 토론 전반에 결정적인 질문을 던져 주었다. 그것은 곧 이 구체화가 무엇으로 성립하느냐 라는 질문이었다.
이들에 의하면 히포스타시스는 일단(一團)의 '이디어마타' 즉 개별적이며 개별화적인 고유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이미오마타Imiomata(고유성)'는 우유적偶有的 속성들이 아니라 구체적 유(有)의 구성소이다.
이 의미에서도 히포스타시스라는 개념은 프로스폰 개념과 다시 한 번 밀착하게 되었고 사실상 같은 의미가 되었다. 이 위격 개념은 칼케돈 공의회 후에 보에시우스라는 평신도 신학자를 통해서 비로소 그 개념적 명확성에 이르게 되었다.
즉 '위격은 이성적 본성의 개별적 실체이다'는 것이다. 곧 '위격=실체'이다. 여기서 위격성은 아직도 개체성으로 이해되고 있다. 물론 이 개체성은 대치될 수 없는 불가역적인 유일회성을 지닌 최종 실체로서의 개체성이다.
보에시우스와 거의 같은 시대에 비잔틴의 레온티오스는 이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위격존재를 '자립존재', '자립 실존'으로 보았다. 이로서 개체성은 위격에 외부로부터 우유적(偶有的)으로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 위격 그 자체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격은 ,인간 본성을 자신 안에 받아들여 그와 지극히 내밀한 일치를 이룰 수 있으며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 인간 본성의 고유 존재를 고스란히 살려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레온티오스에 의해 개발된 '기체적 내재설(基體的 內在設)' 혹은 '기체화설'(基體化設)이다. 그러기에 인간 본성이 하나님으로서의 위격 안에 내재한다는 이 이론은 언제나 그 변증법적 성격과 함께 보아야 한다. 즉 일치와 구별은 정비례하지 반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부시태의 거의 마지막 고백자 막시모스는 이 변증법적 원칙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분명히 사물들의 일치는, 그 동일한 사물들의 본성적 구별이 보전되는 동안에만 존속된다'고 말이다.
이 변증법이 위격 개념에 의미하는 바를 표현에 옮긴 사람은 12세기 쌩 빅토르 리샤르가 처음이다. 오성을 갖춘 본성의 불가양적인 실존'라고 표현했다.
위격이란 이처럼 부가역적이고 유일회적이며 불가양적(incommunicatiblis)이다. 그러나 위격이 제 속에 갇혀 있음으로해서 이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것으로부터 그리고 그 다른 것을 지향하는 데에 존립하는 것으로서의 위격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주로 보에시우스를 계승하는 것으로 그쳤지만, 여기에 비해 둔스 스토코투스는 리샤르의 관계적 위격 개념을 계속 발전시키고 심화시켰다.
이처럼 스콜라신학적 정의들은 고대에서 같은 계통의 개념이 계속 기용되고 있으면서도 여기에 언표(言表)되어 나오는 존재이해는 더 이상 고대의 것이 아닌 어떤 새로운 존재이해라는 것이다.
이 사실은 전통적인 여러 신학파에서 각자의 노선을 따라 그 나름대로의 존재론적 범주들을 이용하면서 내세운 학설을 살펴볼 때 분명해진다. 근본적인 질문은, 위격과 본성을 서로 구별할 수 있으며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느냐에 있었다.
토마스 아퀴나스 학파의 이론에 의하면, 위격은 본성으로부터 실재적으로 구별되는,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본성에 첨가되는 존재양식이다.
예수님의 인간 본성의 경우에 이 인간으로서의 존재양식은 삼위일체 중의 제 2위이신 분의 존재양식에 의해 대치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본질'과 '실존'을 실제로 구별하는 토마스 학파의 지론에 따라, 예수님의 인간 본성은 하나님으로서의 존재 행위에 참여한다.
인간적인 위격 존재뿐 아니라 인간적인 존재행위를 이렇게 감하고 제해버린다고 해서 인간 본성이 상실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이 학파의 견해이다.
인간 본성은 이로써 제 고유한 인격성과 실존을 소유하고 있을 경우보다도 오히려 더 높은 존엄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학설의 견해에 적극적인 측면이 있다면, 그것은 이 학설이 위격적 결합을 밀접한 존재론적 결합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소극적인 측면도 지적해야 한다. 그것은, 일치가 증대하면 증대할수록 일치를 이루는 한쪽에서 다른 한쪽의 그 고유한 자립성을 그만큼 더 고스란히 살려둔다는 것을 이 학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여기에 둔스 스코투스 학파의 견해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 견해에 의하면 예수님의 인성은 로고스와의 인격적 결합으로 말미암아 잃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인격성이란 어떤 적극적 규정이 아니라 소극적 규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현실적인 비종속성이요 종속불가능성이다. 위격적 결합에서는 하나님의 전능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의 순종능력이 오히려 그 완성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이 순종능력은, 인간이 하나님을 지향하고 그분과 나누는 관계로서 인격에 본질적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초월성과 인간 고유의 자립성이 고스란히 보전되는 셈이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일치는 인간에게 있는 어떤 범주적 영역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초월적 차원, 하나님을 지향하는 그의 본질 전체에 해당한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사살은 반드시 견지해야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이론에 흠이 있다면, 그것은 이 이론에서 위격의 개념이 내용상 상당히 공허해진다는 것과 전(全) 실재 중에서도 가장 완전한 것, 곧 위격이 소극적으로만 규정된다는 점이다.
사실 비종속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적극적인 것, 곧 자체존립의 이면(裏面)에 지나지 않는데 스코투스 학파의 이론은 이 사실을 도외시하고 있다.
토마스주의와 스코투스주의를 어느 정도 조정하려 나선 것이 예수회의 신학자 수아레즈이다. 그에게는 위격 존재가 무엇인가 적극적인 것이다. 그것은 본성의 실존양식이기는 하나 우유적(속성적)이 아니라 실체적 성격을 띠는 존재양식이다.
즉 그것은 본성의 본질필연적인 현현양식이기는 하나 그것은 어떤 새로운, 별개의 유(有)로서의 실재는 아니다. 자체에 의한 이 실존양식이 예수님의 인간 본성에는 없다. 그 대역을 맡아하는 것이 바로 신성과 인성을 한데 이어주는 피조적 결합양식이다.
이로써 토마스 학파의 감제(減除)설의 경우처럼 인성에 무엇인가가 모자라거나 빠져 있어서 그것이 하나님에 의해 직접적으로 대충(代充)된다는 인상이나 비판을 회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일치의 유대가 유(有)에 관련되는 어떤 적극적 규정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유대가 성격상 피조적이라면, 예수님의 인성의 신격화는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일치의 유대가 과연 성격상 피조적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이론에서 기용하는 있는 실체적 양식이라는 개념은 스콜라신학에서 그리 흔하게 쓰이지도 않았거니와 규명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수아레즈가 의도했던 관심사가 어디에 있었는지 문제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의도는, 인격이란 어떤 일정한 관계가 조성될 때만, 우유적으로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현실화한다는 말을 하려는데 있었다. 수아레즈의 이론에 이러한 해석이 허용된다면, 이 이론은 근세의 문제 제기에 어떤 의미에서 교량 역할을 떠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스코투스의 통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실상 그에 의하면, 인간 인격의 기본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예수님의 저 유일회적 관계야말로 그분 인격의 구체적 본질도 이루어 준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근세는 그 주체성(主體性)에로의 전환이라는 특징에 따라 위격 개념을 존재 개념이라는 포괄적 연관에서 따로 떼 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존 로크 이래 위격 내지 인격을 자의식을 기점으로하여 정의하려 했다.
이것은 우선 사물세계로부터 주체의 고립이라는 결과로 이끌어 갔다. 물론 주체성의 지평 안에서 어떤 존재론을 구상해 보려는 시도는 늘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존재와 의식, 실체와 주체, 행위와 존재 사이의 매개는 근세의 사유가 겨루어야 했던 가장 어려운 문제로 계속 남았고 마침내는 인격주의와 존재론을 대립시키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되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전통은 그렇지 않다. 존재론은 인격적으로, 그리고 인격은 존재론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격과 실재를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신성 및 인성의 양성에 한 위격이라는 기독론 교의가 좀 더 구체화된다.
이와는 달리 동방교회는 그리스도 사건의 내적 역동성을 좀더 잘 보존할 수 있었다. 과연 오리겐은 터툴리안과는 달리 자기의 기독론을 하강(下降) 및 상승(上昇)이러는 도식에 맞추어서 전개한다.
이 도식에는 이레네우스의 교환 사상을 위한 자리도 마련되어 있다. '로고스'는 아버지의 imago(모상)이요 예수님의 인간 육체는 '로고스'의 imago이다. 신인(神人), 이 표현은 오리겐에서 처음 나타나는데, 예수님은 그러기에 하나님이 직관(直觀)에 이르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준다.
다만 예수님의 인성은 이 길에서 말하자면 뒤쳐져 있는 셈이다. 이것을 만회하기 위한 매개작용을 수행하는 것이 예수님의 인간 영혼이다. 예수님의 영혼은 완전한 순종과 전폭적인 헌신을 그리는 가운데 '로고스'와 결합되어 있다.
오리겐으로부터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나타났다. 우선 '로고스'의 제사장직과 '로고스'의 주도역(主導役)이라는 관념을 확장하고, '육(肉)' 안으로 들어와 이 '육'을 온전히 당신 자신과 융합하신 로고스의 신화력에 온갖 역점을 둘 수도 있었다.
이 길을 채택한 것이 바로 알렉산드리아의 신학파, 그 중에서 특히 키릴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의 근거로서, 로고스와 도대체 일치 그 자체를 분명하게 제시할 수 었다.
그러나 인간적인 것의 고유 의미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지속적인 구별은 제대로 구별할 수 없었다. 따라서 키릴의 기독론은 아리우스와 아폴리나리스 때문에 그렇게도 오해받기 쉬웠던 '말씀과 살'의 도식을 탈피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거기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오리겐으로부터 나온 또 다른 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강조해 마지않았던 안디옥 학파의 신학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 학파는, '말씀과 실'의 도식을 '말씀과 인간'이라는 도식으로 대치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안디옥 신학파에서는 오리겐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 영혼의 의의(意義)를 역설해 오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 이 학파의 문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일치를 어떻게 보전하느냐에 있었다.
로고스가 인간 예수 안에 내주하며 이 양자(兩者)가 서로 친밀한 관계를 나눈다는 사실을 묘사하기 위하여 이들이 사용했던 상징적 표현들을 윤리적 의미 일변도로 이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사실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를 신성과 인성의 상호 융합과 교환이 결과로 파악한 것이다. 따라서 안디옥 학파 역시 어떤 구원론적 관점에서 움직였다는 점에 있어서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마찬가지였다.
이 두 신학파가 표방하는 기독론은 서방교회와는 달리 그 역점을 구원론적 관심에 두고 있는 일종의 역동적 기독론이었다. 키릴이, 로고스는 일치를 이룩하는 근거라는 로고스 관을 구축함으로써 위압적인 기독론 사상을 표방한 것이 비해, 신성과 인성의 구별을 끈질기게 강조하면 개념 규명을 계속 밀고 나간 것은 확실히 안디옥 학파의 공헌이다.
안디옥 학파 출신인 네스토리우스는 멀지 않아 전교회의 걸림돌로 등장하게 되지만, 칼케돈 공의회 이전에 벌써 본성과 위격의 구별을 알고 있었고, '두 본성 안의 단일의 위격'이라는 칼케돈 공의의의 정식을 앞지르고 있었다.
그는 교회사와 신학사에서 가장 고약한 유설(謬說)을 퍼뜨린 장본인으로 오랫동안 지탄을 받아왔고 에베소 공의회는 그를 새로운 가롯 유다라고 단죄 하였지만, 요즈음의 신학사 연구에서는 오히려 그를 복권시키려는 조짐이 있다.
그러나 그는 키릴의 사상적 주종이었던 로고스의 우위성을 끝내 깨닫지 못하였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의 단일성은 어디까지나 두 본성의 상호 융합의 결과였다.
알다시피 공의회의 교리 결정에 계기가 되었던 논쟁은 네스토리우스 때문에 벌어진 것이었다. 네스토리우스의 기독론적 배경을 생각할 때 충분히 이해되기는 하지만, 어떻든 그는 성모 마리아는 '하나님의 모친'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모친'이라는 칭호만이 인정하려 했다.
이것은 표면상 신학적 언어 규칙에 관한 하나의 실천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그 문제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 것이다. 질문은, 로고스는 단일(單一) 주체인가,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는 신성과 인성에서 생겨난 어떤 제3의 존재인가 하는 것이었다.
먼저 아폴리나리우스Apollinarius(310-390)로 대표되는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완전한 신과 완전한 인간의 결합이란 괴물일 뿐이라고 일축하면서 그리스도는 인간 본성을 흡수한 신적 본성의 존재라고 못박았다.
역시 이 학파에 속하는 키릴은 그리스도가 예배 받을 수 있는 신성과 그렇지 못한 인성을 동시에 지녔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일갈했다. 더 나아가 만일 그렇다면 인간을 위해 당한 그리스도의 수난이란 인간적 고통일 뿐이며 주의 만찬에서 인간의 살을 먹게 될 뿐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인간이 된 신-로고스라는 한 본성을 지닌다는 단성론을 옹립하였다. 초자연주의적·신비주의적 경향을 지닌 이 학파는 그리스도에서 오리겐의 전통에 속하면서 아리우스주의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는데 결국 삼위일체론에서 삼위성에 집중하여 위계성을 주장하고 기독론에서 변화설-단성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구도를 예시한다고 볼 수 있다.
삼위의 위계성을 토대로 함으로써 그리스도는 인간의 지위에서 신으로 격상되어 결국 신성의 존재가 된다고 주장하는 일관성을 읽을 수가 있다.
이에 비해 데오도레 Thedore로 대표되는 안디옥 학파는 그리스도 안에 완전한 인성과 완전한 신성이 결합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역시 이 학파의 후계자인 네스토리우스는 예수의 인성은 결코 신격화될 수 없으며 신성과 인성을 혼합되는 것이 아니라 결합되어 있다고 맞장구쳤다.
역사적·인격적·윤리적 차원을 강조하는 경향을 지닌 이 학파는 로고스가 살로 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형태를 취했다고 본다.
이로써 삼위일체론에서 삼위성보다 일체성에 주목하는 이 전통이 기독론에서 양자론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결국 신성과 인성을 겸비한 양성론으로 귀결되는 것 역시 이론적 일관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어쨌든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대립과 긴장은 분열과 통일의 소용돌이를 거듭하다가 단성론 전통 내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태협이 제시되었다.
즉 그리스도의 인간성은 신성과 별개의 실체(hypostasis)가 아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체가 아닌 것(anhypostasis)은 아니며 신적 로고스 안에 포함되어 있는 실체(enhypstasis)라는 것이 그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신비주의적 연합을 모형으로 하는 동방의 비잔틴 레온티우스가 제시한 묘안이었다. 그럼에도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동방 안에서도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더욱이 서방에서는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문제란 크게 정리한다면, '전능한 실체가 고난을 받기도 하는가?', 그리고 '만일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의 고난이 인간의 구원에 대해 어떤 의미와 역할을 지니는가?' 라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에 대해 합리적인 사고를 다소 진전시킨 서방의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지 문제에서 찾고자 했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적 의지는 신적 의지를 따른다는 단일 의지론, 그리고 그리스도의 두 본성에 의한 이중의지론으로 나뉘었다.
단성론 논쟁 이후 다시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의 의지를 가지는가 아니면 양성에 따라 두 개의 의지를 가지는가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일의지설파는 두 본성에 대한 교훈을 받아들였으나 그리스도에게는 단 하나의 의지, 즉 신적 로고스의 의지만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성경적 그리스도 상의 특징인 정신적 통일성, 즉 의지의 통일 문제를 공정하게 다루고자 했다. 이들에 따르면 의지는 인격에 소속되며 그 본질이 가지는 한 단면을 형성한다.
일의설 논쟁은 그 동안의 신학 논쟁에서 보였던 순수한 형이상학적 사고에서 떠나 보다 구체적인 심리적 요소로 이동하였다.
한편 이의지설파는 일의지설파의 주장이 가현설에 매우 근접한다고 주장하고 하나의 가정을 설정하였다. 여기에 따르면, 만일 누가 그리스도께서 하나의 완전한 인간적 본성을 가지신 것으로 믿는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신적 본성이 하나의 신적 의지를 갖는 것과 같이 그의 인간적 본성도 순수하게 인간적인 하나의 의지를 지배하는 동시에 그것을 통해 일하기 때문에 두 의지 사이에는 간격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백자 막시무스에 의해 발전되어 680-681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제 6차 공의회에서 후자를 옹호하는 결정을 채택하면서 동방과 서방은 더욱 멀어졌다.
기독교의 신학은 신의 계시에 대한 신앙을 출발로 삼고 세계를 구원한다는 목적으로 태동하였다. 이 사실은 그 형성과 발전 배경에서 주요한 요소인 당대의 철학과 사상에 대해서 기독교가 매우 이질적이었다는 것을 뜻한다.
초기 호교론이 철학적 요소들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거기서 철학적 체계를 구축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앙우선주의는 무엇보다도 라틴계의 터툴리안에게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는 이성에 대한 신앙의 우선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 신앙우선주의는 이성의 한계 안에 가두어질 수 없는 신의 신비성에 주목했는데, 이런 성향은 어거스틴 이후 등장한 위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에서 소위 합리신학과 신비신학 사아의 본격적 갈래가 조성되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위(僞)디오니시우스의 저작은 신의 본성을 표현하는 방법을 뜻하는 '긍정의 길'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다. 즉 선·생명·예지·능력 등의 개념들이 어떻게 초월적으로 신에게 적용될 수 있는가에 관심을 두면서 피조물에서 발견되는 성질이 본래적으로 신에게 유래한 것임을 밝힌다.
'하나의 하나님 외에는 어떤 것도 선(善)이 아니다' 즉 신의 본성에 대한 인간의 어떤 개념적용도 인간의 경험 한계로 귀속될 수 없으며, 따라서 유비적으로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피조물에 녹아 있는 신의 완전성을 긍정적으로 읽어내고 이것이 신으로부터 주어졌음을 거슬러올라가는 방식이 곧 그의 '긍정의 길'이다. 바로 이런 방식이 서방교회의 합리신학으로 이어져 그 주요한 기틀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른 한편, 피조물의 불완전성을 창조자 신에게 제거함으로써 신에 대한 인식하거나 묘사하기보다는 예찬하는 길, 즉 '부정의 길', 또는 '제거의 길'이 제시되는데 '신비신학'은 바로 이를 다룬다.
인간은 신을 인간적 방식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어서 저마다의 우상을 만들게 되므로 이를 제거하는 것만이 신을 향하는 길이며 이런 과정에서 신에 대한 명확한 관념은 오히려 거부된다는 것이다.
즉 지성에 의한 모든 파악을 단념하고 온전히 닿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것에 휩싸여 온전히 알 수 없는 하나님과 결합된다는 것이다. 신비주의가 가리키는 신의 불가지성은 사실상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겸허한 수용에서 비롯된다.
호교론이 이질적 사상들의 비판과 이교도의 공격에서 기독교의 신앙을 방어하기 위해 전개된 대화적 방책이었다면 교회 하에서의 분파와 갈등을 조정하고 더 나아가 체계적 교리화를 요구하는 내부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 교부학이었다.
기독교의 역사에서 삼위일체론과 기독론 등 핵심적 교리들이 이 시대에 교부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논의되었으며, 이런 교부학도 역시 지리적·문화적 배경의 차이로 인해 헬라계와 라틴계로 분리되어 전개되었다.
그러나 다소간의 분위기 차이가 중세 철학 전반을 지배하는 중심구도인 신앙과 이성의 관계에서의 입장 차이로까지 이어진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교부들의 철학은 그 문화적 전통 사이의 차이를 넘어서 신앙을 전제하고 이성을 추구해 가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공통성을 지녔고 이런 이유로 어거스틴에서 전체적 집성이 가능했다.
헬라계 교부 중 가장 주목을 요하는 사람은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다.
신앙의 신비는 논리적 추론의 결과가 아니라면서 그는 철학적 사색에 대한 초자연적 신앙의 우위성을 강조한다.
그레고리우스의 이런 입장이 어거스틴을 거쳐 스콜라 철학의 안셀무스에까지 이른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흐름이 신앙의 신비에 대한 합리화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 신비성을 더욱 명료하게 하고자 함이었다.
다른 한편 그레고리우스의 사상에는 플라톤의 보편주의가 깔려있다. 그는 신성에 대해서도 일차적으로는 신의 본질에 입각한 보편적 유일성에 초점을 두어야 하며 이차적으로는 삼위성이 논의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삼위일체론을 심신론이라고 비판하는 반대의 움직임에 대한 변론을 제시한다.
그는 신적 위격들의 내적 단일성과 지속적인 협력에 관심을 기울렸다. 만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단일한 활동이 어느 경우에는 어떤 점에서든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관찰한다면, 활동의 동일성으로부터 본성의 단일성을 추론하지 않을 수 없다.
본성들의 차이는 그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활동들의 차이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활동이 하나이고 동일하다는 것을 지각하게 된다. 결코 차이나 변이를 보이지 않는다.
이 활동의 동일성(identity)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본성의 단일성(unity)를 추론해 낸다. 이러한 일체성은 우선 먼저 신적 게시의 행위에서 발견된다. 계시는 성부에게서 기원하며, 성자를 통하여 진전되며, 성령 안에서 완결된다.
그것은 세 행위들이 아니라, 삼위가 모두 관련되어 한 행위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에 의해 행해서지는 그 어떤 사역으로부터도 분리되지 않으신다. 이런 식으로 성령의 활동은 그리스도의 활동과 일치한다. 그리고 활동의 동일성은 불가피하게 본성의 동일성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성령의 활동들은 성령이 본성에서 아들과 동일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불가피하게 본성에 있어 성 삼위일체의 단일성에 대한 증거가 된다.
이 교부의 또 다른 중요한 공헌은 세 위격들의 '페리코레시스(περιχωρησισ, cp-inherence)에 대한 진술이다. 그는, 신격의 활동들이 시간의 표지나 분리된 행위의 구분없이 함께 행하면서 셋 모두다에 의해 행해진다고 설명한다.
'활동의 단일성'은 필연적으로 '페리코레시스' 원리에로 유도된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통하여 성령에로 전달되는 선한 의지의 한 운동과 성향이다. 이 페리코레시스는 고대신학에서 이해한 바 위격들이 서로 '영적 근사성'이라는 끝으로 묶여 있다는 정도의 단순한 이해와는 차원이 다르다.
'영적 근사성'이라는 개념이 비로 성자와 성령께서 모두 성부로부터 그들의 위격성을 도출해 냈다고 믿은 것 때문에 생겨난 개념이라고 하더라도, 페리코레시스는 단순한 '영적 근사성'의 개념이 아니라 세 위격이 서로를 완전하게 공유하며 교통하는 것이다.
이 이론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격'을 본성이라는 측면에서보다 오히려 '활동'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즉 신격이라는 용어는 활동에서 의미가 있는 본성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상호 상통'에 초점이 부여되어 있으며, 또 그만큼 활동의 단일성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고찰되는 측면이다. 인간들의 활동은 심지어 동일한 작업영역에 종사하는 자들의 활동이라도 분리적이고 개별적인데 반해, 신격의 활동은 항상 셋에 의해 함께 영향 받게 된다.
물론 셋 중 각각의 구분은 강조되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이 위격의 구분은 다른 위격들로부터 별개로 생각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한 신격이 항상 세 존재양식들 안에서, 또는 행위 영역 안에서, 또는 상호관계들 안에서 한 실체적 실재로(as one substantial entity) 존재하시기(exists)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상호 관련되신다. 아버지께서는 아들로부터 떨어져서 생각되실 수 없고, 아들께서도 성령으로부터 떨어져서 파악되실 수 없다. 아들께서는 항상 아버지 안에 계시고, 성령께서도 항상 아들과 함께 계신다.
삼위일체 문제의 논의에서 이 '페리코레시스' 이론, 또 'co-inherence' 이론은 '실체'(ουσια, essence)의 참된 의미를 회복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세 완전한 위격(υποστασεισ) 안에서 한 단일한 실체( a single, ousia), 신격, 능력, 의지, 에너지 등으로 말한다.
세 위격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로 혼동없이 연합되며, 또 분리없이 구분된다. 그 위력들은 한 동일한 초월적 존재의 완전한 현시로 규정된다. 하나니께서는 세 객관적인 (objective) 위격들 안에 계신다. 그러나 그는 명확히 하나님이시다.
이와 같이 페리코레시스 이론은 전체 신격의 존재(being)가 세 위격들의 각각의 실재 안에 포함되고 있다는 관념에 대한 설득력 있는 공식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또 실제적 동일성과 단일성이라는 결정적인 교리를 새로운 각도에서 재확증시켜 주었다.
그는 또한 인간에 대해서도 개별인간에 대한 보편인간의 우위에 입각해서 개별인간의 창조를 주장하는데, 이는 스콜라 철학의 에리우게나에게로 이어진다. 부언하자면, 그는 또 세계창조에서의 신의 자유를 옹호한다는 점에서는 이레네우스를 따랐지만 그런 자유가 인간에게 허락되어 악을 행하더라도 결국 신에게로 다시 돌아가 된다는 '만물 복귀설'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는 창조에서의 필연성을 주장했던 오리겐을 따랐다.
그리고 만물이 신에서 발원하여 신으로 되돌아간다는 주장 역시 에리우게나의 자연사본론으로 이어짐으로써 사상적 계보에서 그레고리의 위치를 다시금 확인해 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플로티노스에게서 강조된 무아경을 오리겐이 지성적으로 해석한 것과는 달리 그레고리는 '무아적 사랑'을 받아들임으로써 신의 절대적 초월성에 대한 고대의 신비주의적 강조를 기독교 신학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레고리우스가 말하는 영혼의 신비적 고양은 플로티노스의 그것과 유사하지만 그 고양의 지향점이 신과의 단독적 일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충만함의 재현이라는 점에서는 구별되었다.
그의 이런 그리스도교적 재구성은 위디오니시스와 보나벤투라를 거쳐 십자가의 성 요한에 이르는 중세 기독교 신비주의 효시를 이룬다.
라틴계 교부 중에서는 교부 철학 전체의 집성자인 어거스틴에로의 교두보 역할을 한 암부로시우스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교부 철학의 단계에서는 아직 헬라계와 라틴계의 전통적·문화적 차이가 뚜렷이 나타나지 않았거니와 바로 그래서 어거스틴의 집성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밀라노의 주교인 암브로시우스 Ambrosius(339-397)는 교부 철학의 일반적 분위기와는 달리 철학에 대해 형이상학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윤리적으며 실천적으로 다가갔다. 따라서 성경과 교리에 대한 접근도 헬라 교부들에 의존하여 대동소이하다. 그럼에도 암부로시우스를 굳이 거론하는 것은 라틴계 교부 철학이 헬라계 교부철학과 특별히 구별되지 않는다는 증거로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라틴계의 대표적 교부요 교부 철학의 집성인 어거스틴의 시대에 접어들어간다.
중세 철학에 '참'에 해당되는 형이상학적 실재가 '신'으로 표상되었다면 신과 세계의 관계로서 그 내막을 살펴 볼 수 있다.
그러나 어거스틴이 집성한 교부철학은 철학사에서 내용적으로는 고대 철학과 더 깊이 연관되어 있어서 사실상 고대 철학의 기독교 변형이라고 해도 좋은 것이다. 그에 앞선 호교론자들과 교부 철학자들은 거의 대부분 신플라톤주의를 주요 통로로 하여 플라톤의 철학을 사상적으로 의존하고 있었으며, 정도와 방향의 차이가 있을 뿐 그 영향권을 벗어난다는 것을 불가능했다.
이런 점에서 어거스틴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플로티노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의 사상적 맥락이 플라톤으로까지 거슬러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어거스틴이 형이상학적 '참'으로서의 실재를 가리키는 신에 대해 취한 태도는 이론적 결론을 향한 사변적 논증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종교적이고 영성적인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한 신이 세계를 창조하여 보존한다는 사실과 그 필연성에 대해 새삼스레 증명할 필요를 느끼기보다는 이미 그렇게 인정된 것으로 전제하고 그를 설파하려는 데 더욱 관심을 두었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이미 신앙우선주의의 입장을 취한 호교론에서부터 예견되었고 초대 교부들이 문화적 계보의 차이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지녔던 태도이다. 그런데 신이 이미 그렇게 존재했을 뿐 아니라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라는 '가장 크고 높은 존재'라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신이란 피조물의 영혼이 찾고 있는 행복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변화하는 가시적 세계의 아름다움은 불변하는 미에 의한 창조이고 반영임을 감각물들이 고백하고 있으며 인간의 영혼이 이를 엿듣는다고 설교하면서 불변하는 것을 찾아 나서는 인간의 영혼을 파고 들어간다.
이처럼 자연신학과 계시신학을 명확하게 구별하기보다 전자는 후자와의 관계에서 그리고 후자를 통해서 완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로써 그는 신앙과 이성의 구별을 무시했다기보다 신앙을 토대로 이성을 향함으로써 유기적 통일을 추구했다. 다만 신관의 그런 형성과정에 도사리고 있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되돌아볼 수 없던 중세의 사상적 상황은, '가장 크고 높은 존재'를 행복의 원천으로 삼고 싶어하는 인간의 종교적 욕망에 대해 재평가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지복(至福)으로서의 신은 어떤 성질을 지니는가? 어거스틴에서 묘사된 신성은 플라톤의 신론에서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하나님은 완전 자체이며, 영원성에 의해 시간을 초월하듯 무한성에 의해 공간을 초월한다. 이렇듯 완전성·영원성·무한성은 결국 신의 초월성을 귀결시킨다.
그렇다면 신의 이런 초월성은 세계에 대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어거스틴에게는 신의 예지와 은총을 강조하기 위한 초석으로서의 의미를 지녔다. 신은 세계 창조에서도 만물을 만들고 나서 그것들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창조 이전에 피조물의 형상을 자신의 이념 속에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이념들은 이제 창조의 범형으로 사용된다. 말하자면,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그에 따라 창조하는데 그런 앎이란, 하나님의 영원불변하는 형언하기 어려운 직관'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곧 플라톤의 초월적 신관이 기독교적으로 재구성된 사례를 접하게 된다. 즉 철학과 신학이 공유하고 있는 전제인 '본질의 선재성(先在性)'이 그 자체에서의 신의 '있음' 뿐만 아니라 세계 창조에서의 신의 '앎'에 대한 논의에서도 여지없이 확실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전제가 초기 스콜라 철학의 보편실재론과 존재론(본체론)적 신 존재 증명으로 이어졌음도 물론이다.
이토록 신의 초월성은 세계 창조와 연관하여 어떻게 나타나는가? 어거스틴에 의하면 그것은 신의 자유로운 행위에 의한 '무에서의 창조'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어거스틴은 그의 사상적 원조 중 하나인 플로티노스와 확실하게 결별한다.
그렇다면 플로티노스가 우려했던 자유에 의한 초월성 손상이라는 문제를 어거스틴은 어떻게 다루었는가? 그가 제시한 대한은 바로 '무에서'라는 조건이다. 그에 의하면 이 조건이 신에서 자체적 초월성과 관계적 자유의 보존을 가능케 하는 터전이라는 것이다.
즉 창조의 전제적 터전인 '없음'은 세계에 대한 신의 비의존성을 확인해 줄 뿐아니라 그런 신의 자유가 여타의 것에서 영향받지 않음을 가리킨다. 그런데 신의 초월성이 어거스틴 신론이 결론이라면 세계에 대한 그의 논의는 신에 대한 의존성을 근간으로 할 것임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런 의존성을 형이상학적 가변성을 가리키는 질료로 표현되었는데 여기서 질료란 '무에서의 창조'가 함의하듯이 창조의 전제라기 보다 창조의 대상이 된다. '세상이 만일 어떤 무형한 물질로부터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이 무형한 물질 역시 무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