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곳에서 세워진 교회
18. 없는 곳에서 세워진 교회스데반 집사님은 출애굽으로 인해 광야 교회에 대한 언급을 행 7장에 말씀 하십니다. 즉 광야 교회는 없음을 지향하는 교회다는 겁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기념하는 교회 그것이 바로 광야 교회라는 겁니다. 그 교회는 실질 적으로 없는 곳으로 지향합니다. 물없는 곳으로, 양식 없는 곳으로, 힘(정력, 고기)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는 것이 광야 교회죠. 오늘날 교회도 바로 없음을 추구하는 교회입니다. 없음을 추구한다고 불교처럼 무소유 사상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를 지향하는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빌 3:14)(골 3:2) 을 향하여 세움을 받은 교회입니다.오늘 공부할 이스라엘이 그러합니다. 이제 육으로 나거나 혈통으로나 사람의 뜻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난 뜻을 향하여 육의 싸움이 아닌 영의 싸움꾼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영의 소욕을 채우기 위해 육의 소욕을 버리도록 자꾸 물 없는 곳으로 인도하시고, 양식 없는 곳으로, 즉 육의 종말(죽음)을 향하여 이스라엘을 인도 하십니다. (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롬 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자 이제 육의 몸부림이 튀어 나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거부하고 원망을 합니다. 없는 곳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인도에 태클을 겁니다. 그 원망이 10번 이상이 됩니다.(민 14:22) 왜 꼭 그렇게 없는 곳으로 인도 하셔야만 합니까? 그러면 당연히 원망할꺼 뻔하고 원망할꺼 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도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그것은 원망 보다 더 중요한 우리를 살리기 위함입니다. 그 생명을 주시기 위한 일관된 하나님의 일은 우리는 오히려 우리를 죽일려고 달려드는 하나님처럼 보입니다. 반대로 악한 영들은 우리에게 온갖 것을 주고자(마 4:1-11)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습니다. 애굽의 노예로 있었던 그 때를 기억나게 하고, 다시금 그 애굽의 종으로 되돌아가겠끔(민 14:3) 지금의 하나님의 인도는 너무나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어 보입니다.미리 그 길을 딱아 놓은 넓은 길이 아니라, 꼭 극적인 상황을 만드시고 우리 원망이 어쩔수 없이 튀어 나오게끔 하시고, 꼭 그 원망이 나온 후에는 후회 되게끔 생명의 길을 틔여 주시니 너무해도 너무한 사람을 너무 실험쥐처럼 다루는 것이 아닌가 하는 좁아도 너무 좁은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구지 이런 상황을 꼭 만드셔야만 하느냐 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자기 백성 구원하고 믿을자 안 믿을자 갈라놓고 자기 백성 구원하면 되지, 왜 구차히 십자가를 져야 하느니 마느니 왜 너희는 날 버릴 것이다 라고 하고 왜 3번 부인 할 것이다 라고 하고 왜 이런 복잡한 과정이 있어야 하느냐 라는 겁니까. 그냥 단순하게 간단하게 쉽게 구원을 이루면 되는뎅 왜 우리의 원망이 나오게끔 유도하는 듯 하고, 꼭 그 원망을 들으시면 그때서야 살길을 열어주시느냐 하는 겁니까.그것은 하나님은 인간 구원을 목적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광야교회도 구원을 목적으로 세워진 교회가 아니다는 겁니다. 인간 구원의 목적은 모든 종교이고 인간의 손에 만들어진 종교가 인간 구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일은 뭡니까? 광야 교회는 왜 세워 진 겁니까? 그것은 사도행전(성령행전)의 결론과 같습니다. (행 28:23-28)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철저하게 가려내기 위한 작업과 동시에 자기 자녀에게 미리 약속을 앞당겨 누리게 함입니다. 바울이 수많은 도시와 많은 날을 통하여 복음을 증거한 결과는 바로 믿는자와 믿지 않는 자가 있다는 예언을 바울 조차도 믿어야 한다는 그렇게 성령님이 바울을 인도한 겁니다.마찬가지로 예정된 바를 확인해 가는 과정이 바로 광야교회라는 겁니다. 즉 주님의 약속은 어떤 방해가 있어도 반드시 이루어진다 라는 겁니다. 아무리 인간이 방해를 하고 안 믿는 다고 때를 써도 약속 성취에는 변함없이 흔들림 없이 진행 되고 성취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창조의 능력이었고 없는 데서 세워진 광야교회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광야교회는 무엇만 바라 봐야합니까? 약속이 성취 되는 과정 속에서 어떤 무수한 방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능히 극복하면서 다 이루어지느냐 라는 것만 보면 되는 겁니다. 그것에 예면 예고 아니오면 아니오 라고만 하면 됩니다.(고후 1:17-20) 약속 성취 중심이지 구원 중심이 아니다는 겁니다. 즉 참성전 된 어린양 중심입니다.(계 21:22) (계 21:22)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우리는 없는 곳에서 세워진 교회가 아니라, 있는 곳에서 세워진 교회를 꿈꿉니다. 이미 예정된 교회를 세우신 그 주님의 일하심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교회를 꿈꿉니다. 그러나 그런 교회는 주님이 세운 적이 없습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입니다. 이미 예정 된 교회요 완성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교회는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귀신을 쫓아 내며 귀신이 항복하는 권능을 행하는 교회를 꿈꾸고 있으나, 주님이 세우신 교회는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며 열매(약속 성취-어린양)를 확인하는 교회다 라는 겁니다. (마 7:13-29)(눅 10:16-20) 20『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주님 스데반 집사님은 사람이 지은 성전을 거부하고 참성전된 어린양을 증거하다 죽었습니다. 우리도 참성전된 예수님만 바라보고 약속만 바라보고 사람이 지은 교회에 속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