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초기 관념론 2
18 초기 관념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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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초기 관념론 2
이근호 2004-02-29 18:35:59, 조회 : 378, 추천 : 75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바로 아들의 성육신을 통해서 인간의 피조적 현실성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론의 철학적 해명이나 기독교 신학이나 모두 헤겔의 이런 사상을 외면할 수는 없다.
헤겔의 다른 한 중심 명제는 질적인 무한자의 참된 본성에 대한 이런 통찰보다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이 명제는 다음과 같은 한 경구로 압축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서 헤겔은 자기 철학을 스피노자의 그것과 구별하였다.
즉 절대는 단지 실체일 뿐만 아니라 주체이기도 하다. 스피노자는 무한한 사물의 자명성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존재의 완전한 독립성이라는 의미에서 오직 단 하나의 실체만이 있을 뿐이며, 이것은 무한하며 하나님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헤겔은 절대를 주관으로 생각했다. 이 주관은 초기 피히테의 경우처럼 타자와 맞섬으로써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 의식의 구조에 대한 피히테의 서술과 상응하는데, 이 자기 의식은 자아의 사행(事行)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즉 자아는 자신으로서의 자기와 마주보고 있는데, 이 자신과 자아는 동일하다. 이런 모델에 따라서 헤겔은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을 해석했다.
아버지는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알고 있는 아들 안에서 자신의 타자로서 등장한다. 참된 무한자는 자기 자신의 타자이기도 하며, 그리고 타자 안에서 자신과 일치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무한자 사상은 삼위일체론의 토대를 놓았다.
자기를 포기하고, 또한 이렇게 포기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되는 주체로서의 절대 사상은 형태를 내용적으로 채우는데, 이 형태 안에서 헤겔은 실제적인 무한자 사상이 요구하는 바가 실행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자신을 정립하는, 또한 자신의 타자 안에서 자기 자신과 동일시 되는 주권사상은, 참된 무한자 사상과 달리 철학자으로, 신학적으로 문제의 여지가 있다. 문제는 철학적으로 고수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미 피히테가 후기에 시도한 지식학의 자리매김에서 분명히 통찰한 바 있듯이, 정립하는 자아와 정립된 자아는 상호간에 결코 동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우리의 의식에 있는 우리를 우리 자신과 동일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자 자아가 자아로부터 발생하는 자기 자신의 토대를 통해서 정립된 것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면 이런 신적인 근원은 다시금 엄밀한 의미에서 자아나 주관으로 생각될 수는 없다. 헤겔은 피히테의 사상적 전개를 자신의 결론적 입장을 뛰어넘어서 계곡속 실행해 나가지 않았으며, 본질적인 의미에서 절대의 주관성을 자아의 자기 정립이라는 의미로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절대 주관과 자신과의 동일성은 절대 주관에 의해서 야기된 자기 자신의 타자를 통해서 중재된다고 생각했다. 이 경우에 절대 주관은 이 절대 주관에 이해서 야기된, 곧 자기 자신과 내적으로 상대해 있는 것에 제한되어 있는 것만이 아니다.
유일한 사물이 세계를 야기하는 것은 바로 그 절대 주관의 본성에 속하는 것이다. 정신에 대한 자연의 발전 단계에서 자기 자신을 파악하기 위해, 즉 인간 안에서 자기를 파악하기 위해서 일자에 대한 타자의 차이가 유한한 사물의 세계 안에서 절대 주관과 날카롭게 대치한다.
자신을 자신의 타자에게 정합한다는 의미에서 절대를 주관으로 생각하는 것은 철학적으로 불충분하다. 이 경우에 이 불충분성은 절대적 주관의 자기 연관이 통과되는 점일 뿐인데, 이것은 절대 개념이 기독교 신학의 본질적인 관심과 갈등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던 문제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
절대가 자기를 포기함으로써 자신을 정립한다는 이러한 기초 구상은 신학적으로 문제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서 삼위일체의 순수한 의미가 빗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로부터 아들과 영의 출현에 상관없이 삼위일체적 인격들의 동일한 등급이, 또한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아들과 영의 인격적인 독립성이 빗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는 말이다.
물론 헤겔은 삼위일체론이 정신 개념에서 (자기 의식이라는 의미에서 파생된다는 점에서) 어거스틴에게까지 소급되는 서구 기독교의 오래된 신학적 전통에 자리하고 있었다. 인간 마음에 있는 단일성과 상이성의 연결을 통해서 삼위일체론을 설명하는 어거스틴의 입장은 안셀무스 이후로 자기 의식의 구조로부터 삼위일체적 진술이 파생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사유형식은 이미 레싱에 의해서 갱신되었고, 헤겔에 의해서 다시 한번 더 이런 사상적 발전의 정점으로 부각되었다. 삼위일체론의 이러한 설명 형식이 불충분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이런 판단은 헤겔만이 아니라 헤겔이 그 끝자리에 서 있는 전체 신학 전통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더구나 헤겔이 주관으로서 절대 명제를 삼위일체론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그것이 기독교 삼위일체론의 역사와 연관되었기 때문에 그의 철학은 19세기 신학에서 칼 바르트에 이르기까지, 또한 이후 시대까지 삼위일체론에 대한 관심을 갱신시켰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학을 위한 헤겔의 가장 중요한 공헌이다. 헤겔 철학은 분명히 기독교의 중심 교의를, 그 무엇보다도 삼위일체론과 그것에 토대를 둔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론을 다시금 신학의 중심이 되게 했다.
헤겔과 달리 그 시대의 거의 모든 신학자들은 이 문제를 등한히 다루고 있었다. 그렇지만 헤겔의 사변적 삼위일체론은 신학적으로 비판받을만하다. 왜냐하면 신학은 삼위일체론적 진술을 주관으로서의 하나님 개념에서 끌어내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이 계시에서 아버지, 아들, 영이 한 짝을 이룬다는 것에 대한 진술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헤겔에 따르면 자기를 계시하는 것은 정신으로서, 혹은 주관으로서 하나님의 본질에 속한다. 이런 주제는 헤겔의 사변적 삼위일체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자기계시는 타자에게서 자기를 인식하는 조건인 포기와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포기된 것과의 일치는 계시를 통해서 재생산된다. 이런 의미에서 헤겔은 이미 창조를 하나님의 계시로 이해했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와 달리 이미 삼위일체론에 대한 슐라이어마허와의 논의에서 성경-주석적 근거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계시사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使信)과, 또한 그의 역사와 연관시켰다.
그렇지만 헤겔의 사상은 신학자들과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의 역사에 나타난 아들과 아버지의 결합에 집중한 채 삼위일체론을 계시 사건의 신학적 해설로 이해하도록 도왔다. 그래서 지난 20세기의 신학에서 칼 바르트는 계시론과 삼위일체론의 연관을 회복시켰다.
그리고 그에 의해 닦여진 길에서 많은 논의들이 발전되었는데, 이 일은 계시 개념과 역사적 주제와의 연계가 바르트에 의해서 손상되어 버린 것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졌다.
일정한 부분의 비판이 있었지만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계시는 곧 자기 계시라는 사상의 논의가 하나님과 삼위일체론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계시개념은 근원적으로 셸링에 의해서 계시를 기적적인 역사적 사실의 활동이나 성경 영감론으로 이해하는 것의 대안으로 그 토대가 잡혔는데, 이런 계시 개념은 신학에서 헤겔에 의해서 아들이 아버지에 대해서 갖는 관계와 기독론적으로 연계됨으로써 관철되었다.
형이상학과 그 해명의 역사는 딜타이Wihelm Dilthey(1833-1911)가 정신과학의 기초를 닦음으로써 매우 넓은 공간을 획득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딜타이의 판단에 따르면 이러한 기초 닦기의 기능은 2000년 보다 훨씬 전부터 형이상학을 통해서 지각되었으며, 역사 의식이 발생함으로써 첨예화된 근대가 형이상학의 종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진리에 대한 인간의 형이상학적 자리를 해명하는 일은 17세기 자연과학에서 시작되었으며 그래서 그 이후로 사회는 인간적 본성으로부터 이해되었다. 이러한 관찰 방식은 18세기에 그 핵심이 발전사상에 있는 보편사적 통찰을 통해서 명예를 얻었다.
딜타이에 따르면 인간의 역사성이 발견됨으로써 형이상학이 끝장났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신관(神觀)에 기초한 논리적 세계 연관을 형이상학적으로 구성하는 관념이 끝장났다는 것인데, 딜타이는 이 세계연관의 원리가 기초 명제를 통해서 라이프니츠에게서 형성되었다고 보았으며, 또한 그것이 헤겔의 사상 체계에서 마지막으로 실행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논리주의에는 자유와 생명의 역사성이 대립해 있다. 딜타이는 헤겔과 결별함으로써 곧 헤겔 체계의 논리주의에서 첨예화되는 형이상학의 전체 역사와 결별하게 되었다. 형이상학의 끝장은 콩트의 주장처럼 단순히 근대의 자연과학이 등장함으로써 대두된 게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역사성이 발견됨으로써 결정적으로 대두되었다.
그래서 이와 동시에 모든 역사적 현상의 유한성과 상대성에 대한 통찰이 주어졌다. 모든 역사적 현상의 유한성은 일종의 종교이며 관념이며, 혹은 철학적 체계다. 따라서 사물의 연관에 대한 인간적 이해의 여러 가지 상대성은 역사적 세계관의 마지막 언어다.
모든 것은 과정 중에 있으며, 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게 없다는 말이다. 딜타이는 이런 결과로 인해 상대주의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증명의 무정부 상태에 대한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이런 탈출로를 경험에 현재 하는 생명 전체성을 숙고함으로써 모색해 보았다. 그는 이 생명의 전체성을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보았는데, 이 형이상학적인 것은 형이상학적 설명이 논리주의에 의해서 끝장이 난 후에도 남아 있다는 것이다.
생철학은 19세기 말의 철학자들, 니체, 딜타이, 베르그송 등과 연관된다. 생(生)이란 단어는 관습적인 규정에 대한 투쟁적 언어이며 합리적 이해에 대항해서 감정과 정열의 비합리적인 내적 능력을 감지한데서 나온 표현방식이다.
생철학은 인간 의식의 살아있음에 대한 표현이며, 살아 있는 경험의 충만함을 묘사하는 것이 목표이다. 기술문명의 현실적이고, 기계론적, 추상적 경향에 대항하는 것을 총칭하여 생철학의 경향으로 언급할 수 있다.
쉘러적 의미의 '정신', 또는 피히테적인 의미의 '존재'가 아니라 '생'의 능력이 역동적이며, 모든 의미와 창조성에 없는 활력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내적인 삶과 인간의 경험을 이해하는 과제가 딜타이Wihelm Diltheyl(1833-1911)의 해석학의 중심 과제가 된다.
딜타이는 정신과학과 자연과학을 구분한다. 꽁트의 사회학의 체계에서는 정신적, 심리적인 것은 자연적인 것에 의존하므로 정신 과학의 구성은 자연과학의 발달에 의존하다. 콩트의 체계에서는 정신과학의 독립성이 부정된다.
그러나 딜타이는 정신의 자율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정신과학은 자연과학에 의존되지 않으며, 정신과학은 독자적인 연구방법론이나 인식론에 의해 그 토대가 정초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사회 속에서 실존하고 있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역사적인 존재이며, 이런 관점에서 정신과학의 체계적인 기초를 위해 구체적, 역사적 경험이 학문의 출발이며 종착역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딜타이는 자신의 인식론을 한마디로, '자기 성찰'로 명명한다. 자기 성찰이란 모든 외적 구성요소와 그것들의 연관에 대한 분석을 말한다.
근대의 인식론과는 달리 이 자기 성찰은 의식 사실의 연관 속에서 사유를 위한 토대를 이루며, 행위와 실천을 위한 토대를 추구한다. 딜타이는 모든 외부적인 요인들, 즉 사람과 사물은 인식론적으로 볼 때, 의식에 주어진 사실, 즉 의식 사실로 본다. 그러므로 현실은 의식의 제약 하에 놓여 있게 된다. 이것은 그는 '현상성의 원리'로 불렀다.
현상성의 원리에 따라 의식사실의 모든 구성요소와 그것들의 연관을 분석한다는 점에서 딜타이는 근대 인식론과 동일한 입장에 서 있지만 그러나 근대 인식론은 의식사실의 연관의 분석에서 사유를 위한 토대만 추구했다.
다시 말해 경험론이나 칸트의 인식론에는 실재의 피가 아니라 단순히 사유활동만 하는 이성의 묽은 즙만이 흐를 뿐이다 고 보았다. 딜타이는 자신의 과제를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역사적으로 전개하는 역사이성비판으로 이해한다.
근대의 인식론은 자연과학에 대한 인식론이었으며, 자연인식의 가능성의 근거를 구명하기 때문에, 주객 분리를 넘어설 수 없다.
정신과학의 대상인 역사 사회세계는 주체로서의 인간에 의해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이 세계는 정신의 실천적인 활동에 의해 성립된 삶의 세계이다. 데카르트의 고기토나 칸트의 선험적 비판이성에서 자아의 자기의식은 단지 '사유하는 나'로만 파악되지만, 딜타이에게서 자기 의식은 '행위라는 나'에 있다.
칸트의 비판적 시도는 역사이성비판에서, 즉 자기이해의 범주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칸트의 비판의 인간 인식의 심층부에까지 충분히 파고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초월과 내재의 대립은 가능한 인식의 한계선을 특징지어주지 못한다.
현실 그 자체는 결코 논리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며 오직 이해될 뿐이다. 물론 딜타이에게서 생에로의 귀환은 삶의 신비한 요소나 또는 신적 원천으로 되돌아가는 신비주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생의 의미를 통해 이해된다. 생의 범주들은 선험적 실재가 아니라 삶의 경험의 실제에 근거한다. 딜타이는 생이 역사적이라는데서 헤겔을 좇아가지만, 그러나 역사는 절대정신의 자기 표현이 아니라 생 자체의 표현이다.
생은 상대적일 수 밖에 없고, 인간의 경험 속에 표현되기 때문에 결코 헤겔적인 의미에서 절대적일 수 없다.
딜타이는 인간의 문제는 역사성의 지평에서 파악된다. 그는 말하기를, '모든 인간은 의미를 추구한다. 사람들은 이전의 세계로부터 삶을 파악하려고 했다. 그러나 삶의 해석에서 세계로 향하는 길만이 있을 뿐이다.
삶은 오직 체험, 이해, 역사적 파악 속에서만 존재한다. 우리는 세계에 대한 어떤 의미도 밖에서 속으로 끌고 들어가지 않는다.
1894년 딜타이의 기술적 심리학의 구조 개념에서 규정된 생명의 단일성은 외부로부터의 관찰 범주만이 아니라 경험 가운데서도 경험하는 자에게 직접 현재 한다. 의미와 함축은 경험 개념과 연결되었다. 즉 개체의 경험은 전체의 한 부분으로서 의미가 있다.
생명 전체와 연관됨으로써 말이다. 생명 전체에 대한 개인적 경험의 가치는 생명에 이르는 시간으로 인해서 밀려난다. 따라서 우리는 기억 속에서 생명의 길과 연결시키는 그 의미가 변화한다. 따라서 생명의 진행에서 개별적 사건이 갖는 의미는 최종적인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이르러야만 최종적으로 규정된다.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기의 의미에 대한 평가가 내려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의미는 생명의 마지막에 정말 순간적으로 등장할 수 있다. 혹은 추후로 이 생명을 체험함으로써 등장 할 수 있다.
생명 과정의 마지막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이 전체를 전망할 수 있다. 이 전체로부터 확인될 수 있는 것은 한 부분으로서의 자신에게 출현하는 것이다. 역사의 마지막을 기다려야만 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 역사의 의미를 규정하기 위해서 완전한 질료를 차지해야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과거의 의미를 규정하는 것은 우리가 미래의 목표로 삼은 게 무엇이냐에 따라서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시간 개념은 '시간의 누적은 발전'이라고 하는 '진화'의 개념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다윈은 자연도태의 시간적 누적과 축적을 통해 진화가 이루어졌다고 함으로써, 진화의 개념과 수학적인 시간개념 간의 연관성을 생물학적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이런 관점은 라마르크의 진화개념에서도 마찬가지다. 진화론이 19세기 과학의 꽃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새로운 종합과 전환이 근대적 지반 위에서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생물학적 목적 개념을 역사적·시간적 목적개념으로 전환시킨 자는 헤겔이다.
그런데 이 관점을 다음과 같이 검토할 수 있다. 동질적·수학적 시간의 전제 위에 성립한 진화론은 기독교적 시간이 아니라 근대적 시간성을 전제한다. 묵시론적 예언이 시간을 종말에 고착함으로써 시간을 파괴하는 반면, 예측은 그 직조로서 시간을 도리어 생산한다.
또한 목적론과 관련된 종말론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는데 종교적 종말론을 '계산'의 문제로 변환될 수 있는 것이다. 종말의 예감이 약화됨에 따라 신성로마제국은 종말론적 기능을 상실했다. 그리고 베스트팔리아 조약 이후 평화의 유지 문제가 유럽 국가체계의 최대 현안이었다.
그 후 세계의 문제는 우주 안에서 자료화되었고, 종말론은 특수하게 고안된 자연사가 되었다. 이는 교회의 예언에 대한 정치의 승리였다.
따라서 성경은 역사에 목표 설정에 대해 다른 식의 해석을 내놓아야 했는데 그것은 생명 전체에서 여전히 벗어나 있는 한 부분과 또한 이렇게 전체 자체와 연관을 맺어보는 설정이었다. 이는 모든 것을 역사적으로 기억하는 개인의 경험은 늘 새로운 해석의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즉, 개인들에게 해당되는 부분의 의미에 대한 규정이 생명의 흐름 가운데서 변화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생명의 진행 안에서 완료될 수 없는데, 이런 사실로부터 극단적인 상대주의가 파생되는 게 아닐까?
딜타이는 이러한 문제에 주목했다. 그리고 전체가 부분으로부터 이해될 수 있는 일이라면 전체도 역시 우리를 위해서만 그렇게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런 문제에 해당된다고 생각했다. 부분의 의미는 전체에 의존적이기 때문에 이 답변이 충분하다고 볼 수는 없다.
아무리 부분에 대해서 집중하고, 이를 통해서 전체의 확실성이 확보된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말하는 전체는 이런 부분에서 끌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상대주의에 따라 올 수밖에 없는 그런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열려진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전체와의 관계가 부분에게 부여되어야만 한다.
이 딜타이의 영향을 받은 본회퍼Dietrich Bonhoeffer(1906-1945)는 근대의 계몽적 발전을 단죄하고 중세기의 타율성으로 되돌아가는 퇴행적 사고를 허락하지 않는다.
세속의 성숙함을 신앙적으로 받아들이고 십자가 신학을 통해서 새로운 해석을 주려고 한다. 세계의 삶 속에서 기독교인의 삶은 신의 고난에 참여하며, 자기 자신의 구원에만 치중하지 않는다.
성숙한 세계성 속에서 형이상학적 종교성, 예를 들어 개인주의, 내면성, 경건성은 극복된다. 성숙한 세계는 신이 없는 세계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비성숙한 세계보다 더 신에 가깝다. 본회퍼는 그로티우스의 유명한 표현-마치 신이 없는 것처럼-을 사용한다.
여기서 그는 하나님의 무능하심과 약함을 통해 자신의 강함과 전능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회적 영성과 신앙을 말하려고 한다. 미숙한 세계는 신을 작업가설이나 기복신앙의 대상으로 파악하며, 고난받는 세계의 한 가운데 현존하는 인격적이고 성경적인 하나님을 거부한다.
이 과제를 위해 본회퍼는 여타의 종교풍의 위선과 교활을 떠나, 성인이 된 세계의 요구를 그리스도를 통해 증거할 것을 주장한다. 본회퍼가 옥중에서 통찰한' 성경적 개념들에 대한 비종교적 해석'은 세상적 해석이며, 하나님과 세계에 관한 해석적 언급이다.
여기서 책임적 인간에 대한 신학적 발견과 해석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동시에 이것은 윤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옥중에 쓴 단편적인 본회퍼의 해석학적 통찰들은 그 제한성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해방의 실천이라는 그의 윤리학과 연관성을 갖는다.
바로 이 점이 본회퍼가 개인의 존재론적 자기 이해로 환원되는 불트만의 신화화론이나 바르트의 신칸트적인 초월적-때로는 실증주의적으로 보이는 것 같은- 계시주의를 넘어서서 사회와 역사라는 인간의 삶의 총체성을 진지하게 고려하면서 그리스도에 대한 사회학적, 비종교적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계속해서 종교는 기독교 신앙의 전제조건이 될 수 없다. 비종교적 선포에서 하나님은 전적인 타자일 수 없다. 오히려 성경의 하나님은 무신(無神)의 세계에서 밀려나와 십자가로 내몰려진 다시 말해 그의 무력함을 통해서 계속해서 그 힘과 영역을 갖는 그런 분이다.
타자를 위한 예수님의 존재는 신앙인의 초월경험이며,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한 가운데서 초월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과제는 이 세계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유보 없이 타자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본회퍼가 종교다원성을 향해 주는 통찰은 계시와 종교는 다르다는데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배타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의 성격은 사회 역사적 삶과의 연관구조, 더나아가 실천적 지평에서만 파악될 수 있음을 말한다.
종교다원주의 상황에서 거대담론인, '통전자로서의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라는 적은 이야기로 출발하는 것이 여전히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그의 현 세계의 '하나님이 없이도 존재하는' 성인성에 대한 평가는 막스 베버가 수행한 마법적 세계로부터 탈주술화를 통해 진행되는 근대의 합리적 분석에 병행되고 있다.
또한 역사- 사회적 연관 속에 서 있는 그의 구체적 기독론은 이후 미국에서 발전되었던 관념적인 자유주의적 '신죽음의 신학'과는 달리 사회 변혁을 위한 윤리적 실천과 교회의 설자리를 이 세속의 사회 속에 자리 매김해 준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1889-1976)는 잘 알려진 대로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의 역사성을 분석하면서 딜타이의 생각에 도움을 받은 바가 크다. 하이데거가 이 책에서 역사성이 현존의 특수한 존재방식을 구성한다고 보았다는 사실에서 '존재와 시간'의 전체 구상에서 기본적으로 중요한 점들은 딜타이의 사상과 연계되었다.
경험이 중요하다는 사실의 역사성으로 인해 상대주의가 갖게 되는 당혹에 대해서 하이데거는 딜타이의 진술을 뛰어넘는 해결책을 발전시켰다. 즉 생명의 역사가 종결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유한 죽음의 가능성으로 선발(先發)함으로써 전체 현존의 실존적 선취의 가능성을 획득한다. 이 전체 현존의 전체 존재능력으로 실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리킨다.
딜타이가 죽음의 순간에 생명 전체와 부분의 의미를 인식하기 위해서 마지막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하이데거는 역사의 진행에서 아직 완성되지 못한 생명의 총계를 선취하는 것에 대해서 언급한 셈이다.
물론 가능성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선취는 뒷날의 경험을 통한 교정의 원리에서 벗어나 있다. 그렇지만 이 선취는 경험의 진행에서 증명되는 한 상대주의와 대립한다. 왜냐하면 선취는 역사적 경험의 흐름 한 가운데서 여전히 벗어나 있는 생명의 전체성과 최종적 진리를 미리 획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이데거가 물론 이런 생각을 개인적인 생명과의 관계에서만 발전시켰다. 반면에 딜타이는 이 의미 유보의 문제를 한편으로는 개인적 생명의 흐름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적 삶을 간섭하는 역사연관에서 병행하는 것으로 보았다.
개인의 생명이 더 큰 생명연관에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와 개인적 경험의 의미는 전체 생명으로부터 완전히 해체될 수 없다고 말해야만 한다. 역사의 전체성을 선취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하이데거가 말하는 죽음으로서의 선발에 상응한다.
그런데 이 가능성은 마지막으로부터 주어지는 게 틀림없다. 시간이 흘러가는 한 중심에서 개인과 그 개인적 경험의 최종적 의미를 얻을 수 있기만 하다면 말이다.
생명 전체에 대한 딜타이의 생각은 개인의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슐라이어마허의 우주에 상응하고 있지만, 그것은 곧 하나님 없는 우주다. 딜타이에 따르면 세계의 토대로서의 하나님을 철학에 개입시키는 것은 형이상학적 특징을 갖는다.
여기서 딜타이는 확실히 종교적 근원이 형이상학적 역사성에 속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형이상학은 근대에 들어와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모든 생명현상의 역사성이 발견됨으로써 그 사실이 더욱 확실해졌다.
다만 딜타이가 생각하는 생명 전체가 슐라이어마허의 우주처럼 항상 형이상학적 사상인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만이 남아 있다. 이로써 생명의 이러한 전체가 그 단일성의 토대가 없이도 생각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
전체를 향한 생명 순간의 단일성은 이러한 단일성에 연결된다. 슐라이어마허는 결국 이런 토대로부터 우주의 자기 충분성에 대한 표상을 다시금 포기했으며, 변증법이라는 저서에 '세계없이 하나님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 없이 세계도 없다'는 명제를 통해서 그런 표상을 대체했다.
딜타이의 경우에 생명 전체 개념이 개방시켜 놓은 질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생명현상에 타당한 역사성의 틀 안에서 형이상학의 역사성을 반성함으로써 철학적 통찰에서 중요한 일보를 내딛었다.
헤겔까지 뛰어넘어서 말이다. 생명 현상의 유한성이라는 특수한 형식의 통찰은 역사가 개방되어있다는 의식과 연결되었다. 이 생명현상의 유한성은 그것의 역사성에서 주어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철학의식으로부터 이 개방성을 제거해버린 형이상학의 논리주의에 대한 딜타이의 비판도 역시 타당하다.
딜타이의 해석학적 철학은 인간 상황을 유한성이라는 토대에서 새롭게 규정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데 이 인간 유한성을 딜타이의 경우에 역사성의 관점에서 주제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해석학은 인간을 의미부여하는 주체로 파악함으로써 사회적 실제로 문화적 텍스트에 주체로서의 인간을 위치시키며, 의미를 보존하려고 한다.
하이데거의 과제는 존재의 물음을 복권하고, 보편 해석학의 신칸트적인 틀인 주객도식의 이원론을 무너뜨리는 데 있었다.
칸트의 선험적 구상력의 철학에 대한 창조적 수용을 통해 하이데거는 이해를 존재를 방식으로 재정리한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주체성과 객관성에 앞서 '세계-내-존재'의 우위성을 확보한다. 이러한 존재론적 해석학은 슐라이어마허나 딜타이의 해석에 깔려있는 심리적인 한계를 극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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