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결 론
21 결 론
이근호 2004-02-29 20:37:39, 조회 : 541, 추천 : 77
Ⅳ. 결 론
하나님은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사람들을 살려주고 계신다. 인간들은 이 삶을 통해 자신이 욕망이 활동하는 장비요 장치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이 제시한 법을 통해서 없던 욕망을 쏟아낸다.
상호 간의 접촉의 현장에서 새 욕망을 경험하고 실습한다. 이런 어두움을 배경으로 하지 않으면 밝음은 흔적을 보여줄 수 없다. 죄가 모여야 비로소 그 안에서 선이 나온다.
인간은 몸으로 등장해서 몸으로 사라진다. 욕망의 덩어리로서의 몸이기에 오직 허무한 욕망의 잉여만 배태한다. 그리고 그 잉여 쾌락을 숭배한다. 너무나 허무하기에 달리 숭배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 교회는 껍데기이다. 신의 시대가 남기고 간 껍데기이다. 신을 붙잡기 위해 계속 달리다가 이제는 그만 탈진해 버린 자들이 신의 껍데기를 가지고 외로움을 달래는 권태로운 집단,이것이 하이퍼커뮤니케이션 시대에서 파국을 맞은 교회의 모습이다.
교회든 종교든 그 어느 것도 정보의 바다에서 달아나지 못한다. 심지어 시간의 위협마저 상투적이고 말았다. 때가 되면 찾아오는 죽음이란 그저 안식(案息) 일 뿐이다. 정보의 불빛이 꺼져버린 교차로에 불과하다. 따라서 죽음이란 파멸이 아니라 정보의 네트웍에서 퇴직한 것이다.
전자로 구성된 인간이 전자로 구성된 문화에서 살다가 전자(電子)의 알갱이로 뿔뿔히 흩어진 것이다. 처음도 전자이요 끝이 전자이다. 존재 의식이란 전자의 변화가 유도해 낸 관념이었고 허구였다. 따라서 존재에 바탕을 둔 신학도 환각에 불과하다.
하나님이라는 존재, 그리고 인간 존재를 명제로 삼고 거기에다 성경의 내용으로 가득 채워 놓아봤자, 남는 것은 무료함 뿐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들에 둘러싸여 있는 적막감, 이것이 신학이다.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태복음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