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모든 것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제대로 된 신앙 생활이란 항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는 생활이다. 그분의 낮아지심은 곧 영광을 포기하는 생활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영웅이 되어서 남에게 주목받으면서 멋있게 보내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으셨다. 도리어 이러한 영광성을 기피한 생활이었다. 이것은 인간 내부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자기 영광성과의 양보 할 수 없는 투쟁을 벌려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인간들이 소위 '잘되어 가는' 인생이기를 소원한다. 전형적인 자기 중심적 생활의 특징이다. 자기 잘됨이 남들에게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태도가 곧 십자가의 원수가 된다.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 3:18-21) 성도의 기대치와 영광성이란 이 땅에서 말하는 영광과 전혀 무관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신 이유는, 오직 하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만약 땅의 일과 그 영광과 자기 배를 채우는 일에 생의 목적을 거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사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려 나오게 한 십자가의 원수들이다.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지내면서 흘리는 눈물과 한숨의 마음의 아픔은 다 무엇 때문에 주어지는가? 과연 십자가만을 생각하고 있다면 생각지 않을 걱정과 공포와 염려와 불안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믿는 거라고는 이 땅에서의 자기 장래성뿐이다. 마음가짐이 이토록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이 다르니 한숨과 눈물이 떨어질 날이 없게 된다. 생이 주는 두려움과 공포에 떨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기 영광은 영광대로 포기하지 않고 세상은 순전히 자기편이 되어 주지 않는다는 현실은 현실대로 수용하자니 모든 것이 힘겹고 괴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을 사는 식으로 살아 주기를 당부하시는 것이다. 자기 영광을 포기하시되 죽기까지 포기하는 것만이 세상을 짐없이 사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짐이란, 자기 영광을 끝까지 고수하는 자에게는 떨어질 새가 없게 된다. 예수님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생활 태도를 버리라고 하셨다.(마 6:1-18) 예수님만큼 남들부터 정당치 않은 평가를 그토록 심하게 받은 분이 또 있을까!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 취급받아 결국에는 십자가에 달려 죽어 버렸다. 만약 누구도 예수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이러한 상황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생각하고 살기에 필연적 주어지는 결과이다. 이런 결과가 두려워서 주님을 기피한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세상을 향한 자기 영광성에 매여 사는 사람이다. 이런 자에게 있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거추장스러운 거침돌이라서 언젠가를 걷어찰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자들과 전혀 다른 인생을 사셨다. 같은 세상을 두고 사는 방식이 이토록 차이나는 것이다. 진리를 찾고자 하면서도 한편으로 참된 진리를 걷어차 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 인간들이다. 자기 영광도 채우는 식의 진리란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서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음이 확연하게 되었다. 광야의 시험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세상 영광 고수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양립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영광에 매달려 사는 자는 결국 악마에 매여 사는 자라고 볼 수밖에 없다. 즉 그 사람의 머리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담겨 있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