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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요 18장 1-9 (제자 사랑)강의요한복음

제자 사랑
2003년 4월 9일
본문 말씀: 요한복음 18:1-9

18: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 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18:2 거기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곳을 알더라
18:3 유다가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등과 홰와 병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18: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18: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가라사대 내로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저희와 함께 섰더라
18:6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저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18:7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저희가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18: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하시니
18: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기존의 교회 이미지 때문에 도리어 교인들이 신앙에 큰 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참된 신앙이란 십자가 달린 그 현장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분위기에 젖어들게 되면 소위 신앙 형태를 모방하게 되고 거기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한다면 이는 십자가 현장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밖에 안됩니다.

자기 신앙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모든 사람이 찾지 않는 십자가 앞에 자신을 세워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마주봐야 합니다. 나는 누구이며 저분은 왜 저 곳에 매달려 피를 줄줄 흘려야 하는 지를 말입니다. 이런 십자가 현장에서 벗어나자 마자 우리는 담박 우리 자신의 문제로 되돌아와 버리고 맙니다.

그것은 타인들 속의 나를 어떻게 계속 생존케 하는 문제입니다. 산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제일 절박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나머지 문제들은 다 부차적인 것으로 뒤로 돌려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어떤 식으로 이 세상을 떠나느냐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같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할 일이 있어서 방문하셨고, 그 할 일을 마무리해야 될 시점에 왔다는 것도 잘 아십니다.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할 일을 위하여 동원된 자들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도 일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제일 절박한 문제입니다. 나머지 문제들은 다 뒤로 돌려 세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그런 식으로 살아가도록 방치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오늘날 이 시대에 있어 예수님의 일에 동원된 자들이요,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서 세상을 향해 증거해야 될 사명이 얹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즉 제자들은 혼자 살아가는 몸이 아닙니다. 홀로 살라고 제자된 것이 아니기에 제자의 앞으로 처신도 제자들 임의대로 결정하거나 해결할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계획에 맞추어서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6:22에서, 예수님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베드로가 나서서 자기 의견을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그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여기에 보면 '사단'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사단의 일이란 곧 사람들의 일상적으로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일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단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있는 경우는 어떤 경우란 말입니까? 그것은 곧 예수님이 시행하시는 일만이 사람의 일, 곧 악마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24-25절에 보면, 이 하나님의 일에 제자들이 어떤 식으로 개입시키고 있는 가를 말씀하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즉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라오는 것이 제자로서의 도리라는 겁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곧 '제 목숨울 구원코자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예수님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잃겠다고 나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앞 길을 먼저 막아선 것은, 예수님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베드로가 예수님으로 인해서 자신의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한 자기 나름대로의 방안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생각이 곧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악마의 일이요 흔히 보통 사람들의 벌리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체포되는 현장을 제자들이 보여주시는 이유는, 이 인간 세상을 가볍게 보고, 심각하지 않게 보는 제자들에게 죄악의 깊이와 짙음을 적절하게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이 세상은 악마에 의해서 공포로서 짜여져 있습니다. 어느 순간, 어느 공간에서도 공포가 말끔하게 사라지는 순간은 없습니다. 온 식구가 한 자리에 모여서 '하하호호' 웃음보를 떠트리는 그 순간에도 그 웃음조차 일시에 어두운 침묵의 자리로 만들어 버리는 공포는 찾아들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이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목청 높여 자유의지를 부르짖어도, 그 부르짖음 자체가 두려움에서 나온 비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악마의 무기는 오직 하나입니다. "그렇게 살면 너는 죽어!" 이것입니다. 이 점을 잘 간파하신 예수님께서 그래서 제자들에게 '자기 목숨을 얻고자 하는자는 도리어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설교 초두에 말씀드렸듯이, 보통 인간에게 있어 어쨌든 살아남아야 된다는 것이 제일 절박한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판국에 악마가 조성해 놓은 공포 분위기에 굴복 안 당할 위인이 없겠지요. 예수님께서 그 당시 권세자에게 체포되어 고난을 받고 죽는다는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두려움과 공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 따르는 것도 다 살자고 따랐는데 그것이 세상이 주는 검은 공포에 짓눌러 빛도 못보고 그냥 죽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생각할수록 암담하게 다가오는 미래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간청한 겁니다. "제발 죽지 마세요"하고 말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과 멀리 서 있는 자들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도 예수님과 가까이 모시고 사는 자들에게도 공포가 주는 무게는 한없이 무거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일부로 이런 실체가 폭로되는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자진해서 권세자에게 체포되어 죽어가심으로서 제자들로 하여금, 이 세상의 막강한 힘을 그들 눈으로 똑똑하게 보게 합니다.

어떻게 저항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악마의 위세는 대단합니다. 열왕기상 19:1-10에 보면, "아합이 엘리야의 무릇 행한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인 것을 이세벨에게 고하니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숱한 기적을 일으켰던 엘리야 선지자도 막상 자기 자신의 목숨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광야로 도피했고 또 산으로 피신했습니다. 그것도 즐겁게 간 것이 아니라 무거운 공포심을 홀로 짊어지고서 말입니다. 바로 인간의 이런 약점을 사단은 절대로 놓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차라리 이런 실정을 유감없이 다 까발려지는 현장을 유도하신 것입니다. 진정 이 세상의 정체가 다 나타나도록 말입니다. 알아야 될 것을 제대로 먼저 알리겠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 현장에서 자신이 의지해야만 했던 스승이 맥없이 권력에 의해 체포되는 것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조만간에 스승의 목숨은 그들 손에 의해 처형당한다는 것은 뻔한 사실입니다.

자, 이런 판국에 제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식으로 무겁게 짓누려는 악마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까? 해결점은 이것입니다. 왜, 무엇 때문에 예수님은 악의 권세에 자진해서 체포되어 죽임을 당했느냐 하는 점을 확실하게 알고 믿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18에 보면,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여기에 보면, 첫째 '안다'고 말씀하시고, 둘째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악의 세력에 굴복해서 어쩔 도리가 없어 막무가내로 당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태를 이미 다 알고 계시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요구하는대로 굴복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 모두가 '성경의 약속된 것'을 성취하시려는 방식이 이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봐도,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9절에 봐도,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행동은 성경 말씀을 응하기 위한 장상적인 실행 절차였던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자들을 놔두시고 오직 제자들에게만 이 내용 속으로 초대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 똑같은 입장에서 다루십니다. 악마는 우리들 귀에 대고 속삭이듯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는 힘이 없어 체포된 것 뿐이다. 다만 스승이라는 자존심이 있어 하나님을 빙자해서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는데 이런 망상에 너희들은 속아넘어가서는 아니된다. 어쨌든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돼. 살아남지 못한다면 너희 인생만 실패로 끝나!"라고 말입니다.

거기에 비해 성령님은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만이 현실이야. 정말 그 분은 자신의 자녀들의 사정을 다 꿰뚫고 계셔. 자기 자녀들로 하여금 죽음이 주는 공포에서 벗어나라고 일부로 그런 일들을 유발시키는 것야.

따라서 성도는 그 어떤 공포스러운 상황에서도 그 분의 주장을 인정해야만 해. 그 분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요, 또 그것은 성경 말씀대로 택한 자만 건져내기 위한 조치야. 예수님이야말로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악마의 세계에서 건져주시려고 보내신 메시야야"라고 말입니다.

정말이지 이 믿음 싸움은 평생을 갑니다. 한 순간에서도 멈추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직접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마태복음 17:5에 나오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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