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 무한이 유한자에 머무르는 양상성경신학창세기

2. 무한이 유한자에 머무르는 양상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2. 무한이 유한자에 머무르는 양상

인간이 어쩌면 본질적으로 이 지상에서 살아가야만 하고, 따라서 영혼이란 그 육체가 관계하는 지상적인 삶에 봉사하는 무엇이다. 이로써 육체는 일찍이 인간 본연의 삶에 제약적이고 짐스러운 무엇이라고 여겼던 생각에서 벗어나, 성경적 창조론에 따라 모든 것이 선하게 창조되었다는 믿음에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 그로 인해 그 육체를 조정하는 불멸하는 정신영혼의 힘입어 선(善)에로 나아갈 수 있는 성향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정신이 원하는 곳에 함께 하도록 해야 할 것이요, 정신은 오로지 정신만을 위하거나 오로지 몸만을 위하여 안일한 곳에 머무르려고 하지 않는다. 신적인 원천은 -끝이 없는 끝에서- '몸을 통해서'가 아니라 '몸 안'에서 보여질 것이다. 이 말이 의도하는 바는, 모든 감각적인 것이 모조리 타락하고 무의미한 것이 아니요, 또한 인간의 자아실현을 위하여 장애요소로 작용 하지만은 않고, 단지 정신적인 의미에서의 근거가 '아직' 확정되지 않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이 개념을 두 은총 개념으로 분류해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창세기 1:29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형상과 다른 하나는 신약성경에 분산해 있는 참여 개념이다. 이 형상개념은 곧 모상(模像) 개념으로서 인간이 하나님을 철저하게 닮아가고 있다는 사상이며, 참여 개념은 수동적 태도, 즉 하나님께서 당신 생명에 참여시킨다는 사상이다. 인간 영혼이 육체의 실체적 형상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 자립적 형상이다. 영혼의 그 자체 자립성은 인간 영혼의 질료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며. 따라서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신에 의해 직접적으로 창조된 것이고, 불멸하고 영속적이다. 인간 영혼이 곧 인간이고 인간은 곧 자신의 영혼이다. 육체는 영혼을 위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영혼과 육체의 결합은 영혼을 위한 것도 아니며 이들의 복합을 위한 것도 아니다.

영혼은 육체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며, 영혼이 육체와 결합하는 것은 사실상 영혼의 충만한 삶에 있어서 하나의 방해에 불과하다. 영혼은 육체를 '움직이는 자'일 뿐이다. 영혼과 육체의 관계는 선장과 배의 관계에 비유될 수 있다. 인간의 영혼이 단순히 육체의 실체적 형상만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지적 작용의 영성이다. 그 결과 인간 영혼은 식물의 영혼이나 동물의 영혼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육체의 실체적 형상이다. 모든 것은 존재인 만큼 현실성을 지니며 또한 행위 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행위 한다는 것이고 또한 행위를 위한 것이다. 행위는 존재를 따르며, 작용은 본질을 따른다. 그러므로 작용의 양태는 존재 양태에 상응한다. 그 자체로서 자립적인 존재는 그 자체로서 존재하며 그 자체로서 행위 한다. 지적 작용은 본질적으로 질료에 의존하지 않는 작용이며, 영-육 복합의 작용이 아니라 영혼에서 유래되는 작용이다. 그러므로 지적 작용의 주체인 인간 영혼은 본질적으로 비물질적이며 자립적이다. 인간 영혼은 그 자체로서 자립적 형상 혹은 자립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 영혼은 육체의 형상임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그 자체로서 자립적인 형상 혹은 자립적인 존재이다.
인간의 단일성은 가장 우선적이자 근본적인 진리로서, 의문시되거나 상대화될 어떤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진리는 실체 이론과 실체적 형상 이론에 의해 굳건하게 확립된다. 인간의 단일성은 실체적 단일성이다. 그런데 인간 영혼의 자립성 또한 주장된다. 이와 같이 인간 영혼의 자립성이 주장된다면, 이 두 가지가 서로 화해될 수 있는 것인가? 이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자립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자세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영혼에 관한 세 가지 문제가 고려된다. 이 세 물음이란 인간이 영혼이 온전한 실체인가 하는 것과 온전히 자립적인 존재인가 하는 것, 그리고 개별적 실체인가 하는 것이다.

자립적인 영혼은 분명히 그 자체로서 하나의 실체이다. 왜냐하면 자립성은 온전한 실체성을 전제하며, 실존에 대해 질서 지워짐을 명백히 표현하기 때문이다. 자립성은 실존의 현실성으로부터는 추상되되, 모든 속성들을 지닌 온전한 실체를 의미하는 추상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영혼은 육체의 실체적 형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 하나의 온전한 실체가 아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인간 본질의 한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만약 영혼이 하나의 온전한 실체라면 인간의 실체적 단일성은 파괴될 것이다. 이 경우 영혼 자체만으로 인간이거나 아니면 영혼은 천사와 같이 하나의 영적 존재일 것이다. 그 자체로서 자립적인 영혼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존재이며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실존 덕분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 자체로서 자립적인 영혼이 개별적 실체인 것은 아니다. 실존하는 개별적 실체인 것은 바로 인간이다. 만약 영혼이 개별적 실체라면, 인간의 실체적 단일성에 대한 문제는 제기되지도 않을 것이다. 이러한 난국에도 불구하고 인간 영혼이 그 자체로서 자립적 형상이라는 전제가 더 이상 음미도 되지 않는 않은 채 폐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가지는 명백하다. 인간 영혼이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그 종적 완전성을 모두 끌어안는 온전한 자립적 형상은 아니다. 인간의 영혼이 그 자체로서 자립적 형상이며 그 자신의 실존에 의해 존재한다는 것은 참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육체의 실체적 형상이라는 것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참이다. 영혼의 이중적 역할의 문제에 있어서, 영혼은 하나의 동일한 영혼이라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진리를 간과하는 것은 곧 신체에 대한 형상의 부여자라는 영혼의 본질을 부인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인간에게 영혼은 육체의 실체적 형상으로서 그 자체로서 자립적이다. 가능성은 항상 현실성을 위해 있으며, 물질은 형상을, 그리고 육체는 영혼을 위한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지적 능력과 감각적 능력을 지닌다. 이 능력들을 수행하기 위해 영혼은 육체와의 결합을 요구한다. 영혼은 지적작용을 수행하며, 바로 그 때문에 오직 인간의 감각적 능력들이 수행될 수 있을 때에만 그 자체로서 자립적인 존재라고 말해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영혼은 오직 지적인 능력이 작용할 경우에만 지성성과 자립성을 얻게 되는데, 이러한 지적 작용은 오직 감각능력이 작용될 때에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미 자립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지적 영혼이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이미 자신의 지적 능력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러한 자신의 지적 능력에 더해 감각적 능력을 지니는 영혼 따위를 생각할 수는 없다. 만약 그럴 경우 영혼은 아무런 손상이나 손실도 입지 않은 채 육체로부터 쉽사리 분리될 수 있을 것이다.

육체에 형상을 줌으로써 육체를 활성화하는 것이 바로 영혼의 존재이유다. 그 자체로서 자립적인 인간의 영혼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하나의 존재에 그것의 존재성과 단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그것의 실체적 형상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경우, 육체에 존재성과 단일성을 주는 것은 그 자체로서 자립적인 인간 영혼이다. 그 자체로서 자립적인 인간 영혼의 형상 부여행위가 있기 이전의 육체는 순수 가능적인 물질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물질의 가능성에 그 자체로서 자립적인 영혼이 형상을 부여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의 육체는 인간의 육체가 되며, 인간이 되고 또 인간적 존재방식을 지니게 된다. 육체와 인간의 형상성과 실존 전체가 바로 영혼의 형상부여 행위 덕분이다. 인간이 살아 있을 때, 인간의 자립적 영혼은 인간을 하나의 온전한 실체이자 개별적 실체이게 만드는 것이지, 그 자체가 하나의 온전한 실체이거나 개별적 실체는 아니다. 실체이자 존재의 주체인 것은 인간이지 영혼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서 살아남은 영혼은 하나의 실체이자 온전한 실체이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결코 존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 영혼은 인간 본질의 한 부분이며, 영혼의 역할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아니라 육체를 활성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영혼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온전한 실체는 아니다.

죽음 이전과 이후의 영혼의 위상과 관련해서, 존재의 이중 주체와 그에 상응하는 존재양태의 이중성은 매우 당혹스러운 형국을 띠고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당혹감은 죽음 이전과 이후에 존재하는 영혼의 동일한 영혼이라는 진리에 의해, 다시 말해서 영혼은 죽음 이전이나 이후 모두에서 동일한 본성을 유지한다는 진리에 의해, 그리고 또한 죽음 자체가 존재론적으로 비자연적인 사태이며, 따라서 죽음 이후에 영혼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로 비자연적으로 진리에 의해 어느 정도 설명될 수 있다. 영혼의 자립성은 인간 영혼이 신에 의해 직접 창조된 것이며, 불가멸적이고 불멸·영속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한다. 물질적 존재들이 다른 실체적 형상들은 질료에서 이끌어져 나온 것이다. 이들은 물질의 가능성에서 유래된 것이므로 이들의 현실성은 가능하였던 것에서 현실로 된 것의 현실성이다. 그런데 인간의 영혼은 그 자체로서 신체로부터 독립적이므로, 물질에서 유래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인간 영혼은 부모에게서 전해질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인간 영혼은 다른 영적 존재들에게서 유래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러기 위해서는 그 영적 존재들 안에 형상의 전이가 전제되기 때문이다. 인간 영혼은 창조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그에 앞서 존재하는 아무런 가능성도 없이 오직 신에 의해 존재하게 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오직 완전자이며 무한자인 신만이 창조할 수 있다.

사실상 신은 오직 자기 자신과 피조물들을 창조함으로써 존재하고 행위 한다. 따라서 인간 영혼은 2차적 원인의 매개 없이 신에 의해 직접 창조된다. 인간 영혼은 육체의 실체적 형상이기 때문에 육체와 결합되지 않는 한, 자신의 본성적 완전성을 지닐 수 없다. 따라서 인간 영혼은 인간에 앞서 창조될 수 없다. 정확하게 어느 순간에 그것이 창조되는가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이다. 물질과 형상의 복합으로 이루어진 물질의 존재는 그 자체로서 소멸하며, 이와 함께 형상 우연적으로 소멸한다. 하지만 자립적 형상인 인간 영혼은 우연적으로도 소멸할 수 없다. 자립적인 형상에게는 실존이 그 자체로서 속하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 볼 때에는 비존재에 대한 가능성를 지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그 자체로서 소멸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의 입장에서는 다른 모든 피조물들과 마찬가지로 자립적 형상 역시 절멸될 수 있다. 신이 사물을 절멸한다는 것은 곧 그것에 대해 신이 아무런 관여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신에 의한 절멸은 이 세상 전체의 완전성과의 관련성 속에서 뿐 아니라 신의 무한한 지혜 및 섭리와의 연관성 속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모든 존재는 본성적으로 존재하기를 욕구하며, 지적 존재들은 영원히 존재하기를 욕구 한다. 그런데 자연적 욕구는 허위일 수 없다. 죽음으로 인해 분리된 영혼의 존재성은 정확하게 어떠한 것인가? 유한자들의 존재성은 본질과 실존 그리고 작용에 있다. 모든 유한자들에게 있어서 본질과 실존은 구별되며 이들의 본질은 그들의 작용을 통해서 알려진다. 분리된 영혼의 경우, 우리는 그 작용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을 지니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유한자들의 경우 지식을 지니기 위해서는 생득적이든 아니면 획득한 것이든 간에 가지상(可知象)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또한 영혼의 지적 작용은 오직 감각상으로의 회귀에 의해서만 수행된다는 것을, 다시 말해서 추상 작용을 위해서는 감각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분리된 영혼은 새로운 지식을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리된 영혼은 새로운 감각상으로부터의 추상을 요구하는 지식 이외의 모든 지식을 지닌다. 분리된 영혼은 자기 자신에 대한 습관적 지식을 지니며, 그의 수동지성 안에는 가지상들이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에 대한 기억을 유지하며 이미 소유한 학적 지식을 부분적으로 보유한다. 이에 더해서 분리된 영혼은 신과 영적 존재들의 영향 덕분에 지식을 지닐 수도 있다. 이들이 영향 하에 혼동된 방식으로나마 물질적 사물들을, 그리고 불완전한 방식으로나마 개별자들을 알 수도 있는 것이다.

이미 죽은 자들의 영혼은 다른 영혼들보다 더 많고 탁월한 지식을 소유할 수도 있다. 이러한 논의 안에서 분리된 영혼이 본성적인 상태가 아니라 비본성적인 상태, 즉 본성 이외의 상태라는 것을 분명하다. 이와 동시에 그는 인간 영혼에게 본성적으로 적절한 앎의 방식은 육체와의 결합 안에서 추상 작용에 의한 것이라는 점 역시 명백하게 긍정하고 있다. 분리된 영혼은 자신의 실존의 행위를 이전과 똑같이 수행하고 있다. 영혼은 자신의 존재성을 살아 있는 인간에게 부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직하고 있다. 죽음에서 인간 영혼은 인간에게 부여했던 존재성을, 즉 인간의 존재성을 되돌려 받는다. 죽음은 다름 아닌 바로 이 영혼 자신의 존재성을 회수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분리된 영혼은 인간에게서 자신의 존재성을 회수하기 이전의 존재성을 갖지 않았거나 그것을 인간에게서 되돌려 받음으로써만 갖는 것은 아니다. 인간 영혼은 죽음 이전이나 이후에 자신의 존재성을 항상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가지고 있다. 인간 영혼과 인간은 같은 존재성을 공유하는 것인데, 다만 그것이 동시에 인간의 것이며 그 영혼에서 유래되는 것이다. 따라서 분리된 영혼의 존재성과 실존의 원리는 자신의 고유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 영혼은 자신의 자립성 혹은 영성을 인간의 지적 기능을 바탕으로 획득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그 영혼의 영성에서 유래되며, 그것의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영혼 본래의 그 자체 자립성은 인간의 영혼으로서 수행하기 위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 영혼의 그 자체 자립성 혹은 영성의 등급은 인간이라는 종의 모든 완전성을 현실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 영혼은 항상 하나의 영혼일 뿐 인간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인간 영혼은 그 자체로서 자립적인 영혼이며 동시에 하나의 실체적 형상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간의 모든 존재성은 그 자체 자립적인 인간 영혼의 존재성에서 유래된다. 육체의 모든 존재성 역시 마찬가지이다. 엄밀히 말해서 인간의 육체와 영혼의 결합이 아니다. 자기 육체를 지닌 전체적인 인간은, 영적인 인간 영혼에 의해 신체적 가능성의 현실화로 인한 것이다. 영적인 인간 영혼은 인간을 현실화함에 있어 자신의 전체적인 존재성을 소모하지 않는다. 인간 영혼의 자립성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인격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것의 궁극적 목적인 인간을 영적 존재로 만드는데 있다. 그리고 영적 존재인 인간이 절대적 선(善)과 만남으로써만 자기 충족을 이룰 수 있다.

의지가 없는 지성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지성이 있다면 당연히 의지도 있는 게 틀림없다고 말이다. 이 의지는 우선적으로 하나님이 자신의 지성을 통해서 자신을 인식하는 것처럼 하나님 자신의 긍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자신의 긍정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필연적인 게 아니라 자유로운 결정에서 나온다. 신적인 의지가 필연적으로 신적인 지성과 연결된다는 교리가 형성됨으로써 이 교리를 확정 시켜 하나님을 세계의 창조자로 표상할 수 있는 공간이 허락된다. 그렇다면 개별적이고 독자적인 개인은 무엇인가? 모든 개인은 신에게만 있는 속성과의 연결을 통해서 다른 모든 것들과 구별된다.

인간을 개인으로 보려는 사상의 출발점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 동기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은 영원한 사랑이 하나님이 잃어버린 개별 인간을 찾아오시어 하나님과의 일치에서 제공하는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하신다고 선포했다. 이렇게 잃어버린 자를 찾아 나선다는 것은 구원에 대한 희망의 종말론적인 전망 안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이 구원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일치에서 주어지는 무상하지 않는 생명을 가리킨다. 예수님의 구원 소식은 이 땅에서 유일회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현존으로 하여금 영생에 참여 할 수 있는 희망을 품게 한다. 그 인간은 몸과 영혼으로 창조된 인간의 구성 요소로 파악했으며, 이렇게 규정된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사상을 몸의 부활과 연결시켰다. 그러나 몸으로 창조되고, 한편으로는 영혼으로도 창조된 자가 인간이라면, 몸 되시는 분이 몸의 구원에 개입해야 하고, 영혼 되시는 분이 영혼 구원에 개입해야만 한다. 이로써 이제 영원에 참여함으로써 영혼이 죽지 않는다는 표상이 개인화 된 것이다. 요컨대 출생과 죽음 사이에서 이 땅에서 유일회적으로 현존하는 개인과 관련된 것이다. 이 지상적 현존은 이제 영원에 참여해야만 한다. 비록 그 현존이 영원으로 변화되어야 하겠지만, 그것은 지금 여전히 구체적인 몸이다.

이처럼 구원 소식은 지상에서 개인적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 현존에게 영원한 의미를 제공했다. 당연히 이 지상적 삶에서 개개의 모든 인간들이 영원한 구원에 들어가는가 아니면 멸망당하는가가 결정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지상에서 유일회적으로 살아가는 개인들이 영원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부여받게 된 새로운 삶은 보다 인간이 보다 인간다워지는 그 품격에 대하여 생각하게 했다. 인간의 품격을 동물로부터 인간을 구별하는 이성에 참여하는 것으로 본다면, 기독교 교리는 인간의 품격을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서 개개인들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그 토대를 둔다. 창세기 9장 6절에 따르면 개개인들의 생명은 신성불가침이다. 기독교는 유대교의 신앙적 동기를 이어가면서 하나님과의 일치로 인해서 주어지는 생명과 자유라는 시각에서 인간의 품격을 개인에게 속한 신성불가침이라고 여긴다. 개인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인격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분여될 표준적인 인격 개념이 선행된다. 인격적 개념은 극장의 세계에서 수행되는 배우들이 가면을 쓰고 연기해야 할 역할을 가리킨다. 여기서부터 이제 이 낱말은 어떤 사람이 연기하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역할'로 전가되었다. 그런데 이 모든 곳에서 바로 그 개인이 이러한 특징으로 일컬어지지 않고, 오히려 완성되어야 할 사회적, 혹은 정치적 기능이 특징화된다.

인격을 '이성적 개체 본질'이라면 예수 그리스는 두 본성에서 하나의 인격이 되는데, 그 예수님의 인간적 본성이 인격의 단일성에 내재한 신성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질문이 곧 제기된다. 그리스도의 인간적 본성이 로고스의 인격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기독교에서는 설명한다. 로고스의 인격이 그 입장에서 삼위일체론적 관계로 규정되었기 때문에,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근원적으로 아버지와 아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로고스의 인격 안에 있는 인간 예수님의 '엔휘포스타지(그리스도의 인성이 그의 신적인 인격 내에 존재한다 뜻)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참여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즉 두 본성 안에 있는 인격의 단일성이라는 기독론 교의가 삼위일체적 인격 개념으로 소급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엔퓌포스타지적 인격 개념만이 아니라 인간 일반의 인격 존재에 따른 규정도 피조물로서의 인간 현존을 위해서 하나님과의 구성적 관계에 의해서 '이성적인 개체 본질'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삼위일체론은 첫 번째로, 다른 인격과의 관계를 통해서 인격적 존재를 구성적인 존재로 규정했다. 이처럼 아버지와 아들은 상호적인 관계를 통해서 인격으로 규정되었다. 이런 관계를 통해서 아버지와 아들은 구별된다. 즉 아버지는 아들과의 관계에서만 아버지이며, 역으로 아들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만 아들이다. 인간론적으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너와의 관계에서만 나이다. 즉 신적인 너와의 관계에서 우선적으로 피조물의 속성을 갖지만 또한 동료적인 너와의 관계에서 존재한다'는 말이다.

기독교 사상에서 인격성은 인격을 규정하는 상관개념이 손상 받지 않고 늘 자유라고 생각되었다. 타자와 특히 고유한 인격의 신적인 근원과 자유롭게 맞서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자유 사상과의 이러한 연결은 기독교 사상에서 이성적 본질이 자유와 다르지 않은 것으로 생각될 수 있었다는 사실로 소급된다. 왜냐하면 자유로운 행위로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도 역시 자유롭게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가리켜 '자유로운 의지로 인간을 자신과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묘사했다. 신학의 과제란 무한한 실체인 신에 의해 만들어진 만물에 어떤 흔적이 남아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초자연적인 빛의 도움으로 신을 관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조 행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한 인격의 구성이 손상 받지 않고 인간은 자기의 현존을 구성하는 사태에서 자유롭게 이런 혹은 저런 입장을 취할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을 향하도록 규정되었으며, 이 하나님 안에서 아버지와 예수님의 아들 관계에 참여함으로써 확고해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근대 사상에서는 이 주관성이 인격적 자립에 속한다. 이를 통해서 인간은 주변 세계에서 창조적으로 행동한다. 근대의 존재 개념 중에서 극단적이라 할 이런 인간 이해를, 그것은 최초로 인간의 본질을 야기하고 있는데, 고대의 인간 이해에 대한 연구도 없이 전제되면 안 된다. 근대의 주관성 사상이 말하는 자명성에 우선적으로 대립하고 있었던 것은 교만에 가지 이르려하는 본능적인 태도를 간과한 채 인식의 의지가 종속적 위치로 떨어졌다는 점인데, 이 인식이라는 것은 인간 주관성의 창조적 행위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진리를 수용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인식이 이루어질 때 자기 자신의 참된 것을 가능한 최선으로 순수하고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분명히 인간이 창조적으로 인식의 과정에 참여하는 일은 그 내용이 변조시키는 원천으로 간주되고 말 것이다. 이런 앎은 외적인 인상의 동기를 통해서, 그리고 신적인 진리를 통해서 활동하는 것이다. 그것이 실제 활동은 여기서 신의 조명을 통해서 발생한다. 만물은 영원한 신적 이데아를 통해 창조되기 때문에 창조물 속에는 신의 모습이 피조물의 특성을 따라 더 강하게, 혹은 덜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만물이 창조주의 반영이요, 표현이요, 그림자요, 길이요, 발자취라고 한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만물이 어떤 식이든지 영원히 변치 않는 신의 이데아를 분유(分喩)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물은 창조의 목적대로, 즉 창조주 안에서 완성되게끔, 모두 신께로 돌아갈 운명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창조는 완성에 도달한다.

◁ 이전글

다음글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687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3,992 성경 요 19장 17-22 (유대인의 왕)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6-12-04
3,991 강의 요19:23-30(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6-12-04
3,990 성경 요19:23-30(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6-12-04
3,989 강의 요 19장 31-37 (십자가에 대한 예언)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6-12-04
3,988 성경 요 19장 31-37 (십자가에 대한 예언)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6-12-04
3,987 강의 요19:38-42(예수님의 장례)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6-12-04
3,986 성경 요19:38-42(예수님의 장례)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6-12-04
3,985 강의 요 20장 1-10 (부활)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6-12-04
3,984 성경 요 20장 1-10 (부활)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6-12-04
3,983 강의 요20:11-18(너희의 하나님)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6-12-04
3,982 성경 요20:11-18(너희의 하나님)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6-12-04
3,981 강의 요20:19-23(부활과 성령님)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6-12-04
3,980 성경 요20:19-23(부활과 성령님)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6-12-04
3,979 강의 요 20:24-29(도마의 믿음)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6-12-04
3,978 성경 요 20:24-29(도마의 믿음)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6-12-04
3,977 성경신학 I. 결국 자기에게로 귀환 - 최고관리자 06-12-04
3,976 성경신학 I. 결국 자기에게로 귀환 [신학] 최고관리자 06-12-04
3,975 성경신학 Ⅱ. 무한을 향한 인간들의 자기 확장 - 1. 무한이 유한자에 이르게 되는 과정 - 최고관리자 06-12-04
3,974 성경신학 Ⅱ. 무한을 향한 인간들의 자기 확장 - 1. 무한이 유한자에 이르게 되는 과정 - 최고관리자 06-12-04
3,973 성경신학 2. 무한이 유한자에 머무르는 양상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2-04
열람 ➜ 성경신학 2. 무한이 유한자에 머무르는 양상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2-04
3,971 성경신학 3. 유한자에서 방출되는 무한 - 최고관리자 06-12-04
3,970 성경신학 Ⅲ. 인간을 위한 신학의 한계- 1. 죽음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법 - 최고관리자 06-12-04
3,969 성경신학 Ⅲ. 인간을 위한 신학의 한계- 1. 죽음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법 미가 최고관리자 06-12-04
3,968 성경신학 2. 시간의식 조작을 통한 구원 시도 - 최고관리자 06-12-04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