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일과 육체적 일
예수님의 일과 육체적 일
자기 육체를 신뢰하는 자들에게 있어 예수님의 일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로 통한다. 자신이 육신적으로 해내지도 않는 일의 결과로 인해 자신이 전혀 다른 신분으로 살아가게 되었다는 점을 이들은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육신에 머물러 있는 신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바가 바로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구원론과 천국론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종교적 성향으로 읽어 낸 필연적 열매이다. 그들은 말하기를, "이미 구원받은 것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들어간 세계 내부에서 나름대로 새로 시작해야 하고 마무리 지을 일은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기어이 우기기를, 자신들이 결코 아직 구원받지 않은 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지만…"이라는 여운을 남긴다. 현상적으로 봐서나 성경상으로 봐서나 "하지만…"이라는 부분은 엄연히 현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사고 방식이 '아직' 구원받지 못한 타잎인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은 안다면 이 '아직'이라는 발상이 결코 나올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말하는 '아직'이라는 의미와 하나님이 보시는 '아직'은 전혀 견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 입장만 생각한다. 자신들이 온전히 죄 짓지 않아야 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온전히 심판받아 불타지 않는 이상 '아직'이라는 요소를 구원론이나 하나님의 일 가운데 상주하고 있어야 합리적이지 않는가 하고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아직'이란 인간들의 육신적 가치에 있어 의로울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경우에만 아직 이라는 것을 허용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지게 됨으로 인간들의 육신적 가치성이란 손톱만큼도 남아 있지 않음이 온 우주에 증명되고 말았다. 바로 이러한 사태에 직면해서 아직도 '아직'을 주장할 그 어떤 근거도 남아 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리 시간을 끌어 봐야, 그리고 아무리 악마가 활개쳐 봐야 이미 이 세상에 대한 정죄성은 변동이 없다. 하나님은 인간과 그 세계와 역사를 평가할 때, 존재에 의미를 두시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에 의미를 두신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최우선적 타당성으로 삼기 때문에 외부에서 자신들을 평가할 때, 일단 이러한 자기 존재성을 긍정하는 데서부터 논리를 풀어 나가고자 한다. 이런 정신이 바로 아직 구원되지 못한 본성에서 나온 열매이다. 자기에게 더 이상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할 것을 가지고 자꾸만 자기 문제를 거기에 집어넣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증거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의미를 부가하는 방향으로 예수님의 구원을 적용시키려 한다. 이것이 바로 보편적인 종교적 속성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건을 가지고 정죄하려는 것이 인간들의 이러한 종교성이다. 정말 구원받은 자라면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의 죄악에 대해서 스스로 부정해 나가는 생활을 하게 된다. 이것은 결코 구원이 아직 남아 있기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도리어 이미 구원이 완성되었기에 자꾸만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 미완성적으로 인식하는 그 육신적 차원을 공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가지고 구원이 미완성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성도가 이 지상에 살 동안에 항상 악에 노출되어 있고 또한 자신의 죄악된 야심과 탐욕으로 인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게 되어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가지고 구원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 할 수는 없다. 구원의 그 영광성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구원의 때가 아직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원이 못된 상태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이란, 인간의 육신적 과업과는 관계는 종결되고 예수님의 육신적 일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만이 단독으로 해내신 일에 대해서 마치 구원이 아직 미진한 것처럼 간주하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성도가 하게 되는 각가지 일은 예수님의 하신 일 중에 미진한 부분이 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도리어 전혀 없음을 증거 하는 일에 국한된다. 그래도 아직 구원이 못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