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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마 8:14-17 (대신 담당하심)우리교회마태복음

Re..마 8:14-17 (대신 담당하심)

이름 : 이근호(IP:)

대신 담당하심
2003년 5월 25일
마태복음 8:14-17

8: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8: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8: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습니까? 무엇보다는 자신의 영광에다 신경을 쓰면서 살아가는 것이 요즈음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본래의 성도의 가치를 잃어버리기 싶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영광이란 딴 게 아니라 자신을 잊어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만이 전부라 여기고 그 사랑을 고맙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그것입니다.

사실 사랑이란 사람들이 최고로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이 무엇일까요? 왜 사람들은 사랑을 최고로 여길까요? 사람은 사랑을 받을 때 비로소 자신의 소중함과 가치를 확인하게 됩니다. 오죽했으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라는 노래가 다 나오겠습니까.

그런데 왜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유지하려고 합니까? 생각할수록 참으로 건방지다고 여겨지지 않습니까? 엄연히 하나님이 계신데 왜 하나님의 가치를 생각할 줄 모르고 최종적으로 자신의 가치만을 남기려 합니까?

어릴 때, 집안의 어른이 되시는 할아버지 밥상에 맛있는 고기 반찬이 올라가게 되고, 어린 손자의 밥상에는 아무렇게나 차려진 것을 보게 됩니다. 할아버지의 밥상을 흘깃보게 되는 어린 손자의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왜 자신의 가치가 할아버지 가치보다 못하단 말인가? 라는 의심이 들 것입니다.

가치의 크고 작고의 차이는 곧 사랑을 받는 자와 못받는 자로 이어지기 때문에 어린 마음에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가치란 이처럼 비교하는데서 파악됩니다. 사람들은 자꾸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왜 그렇까요? 그것은 자신이 과연 사랑받을 만한 가치있는 인간인 가를 알고 싶어서 그러합니다.

같은 업종으로 영업을 하는 두 가게가 나란히 있다고 칩시다. 예를 들면, 감자탕 가게가 나란히 있습니다. 그런데 두 가게 주인 모두 자기 옆집 가게에 손님이 얼마나 들어가느냐를 신경씁니다. 손님의 숫자에 의해 자신의 가게의 가치를 알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손님들로부터 사랑받는 가게가 될 때 그 감자탕 주인은 살맛이 나는 것입니다.

모든 사회 내에서 인간들의 살아가는 것이 다 이런 모습입니다. 갓 시집 온 새댁이 시집으로부터 미움받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이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것입니다. 갓 입사한 직원이 회사 동료로부터 미움받을 때, 아마 죽고 싶을 것입니다. 매사가 이렇게 돌아가는대로 불구하고 누구 하나 왜 이런 식으로 인간들이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 나는 맹목적으로 사랑받아야 되고 왜 나는 맹목적으로 가치있는 사람으로 군림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베드로 제자의 장모집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의 손을 만져서 그 열병이 떠나가게 하십니다.

흔히 우리들이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갑니다. 그래서 의사의 진찰을 받고 치료를 받으면 다시 건강을 회복합니다. 그렇게되면 과연 우리가 왜 가치있는 인간이며 왜 사랑받아야만 살아갈 재미가 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됩니까? 여전히 미궁에 빠진채 맹목적으로 사랑찾아 해맬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무도 우리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칩시다. 그리고 모든 이에게 무가치하다고 평가받았다고 간주해 봅시다. 그러면 우리에게 찾아드는 것은 살아있는 느낌이 아니라 죽음의 느낌일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어떤 소경이 지나가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저 사람이 소경된 것은 자신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이 소경된 것은 순전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고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은 개인적인 신체적, 정신적 완벽함과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병이 들게 되면 드디어 죽음이 자신을 덮어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병이 들면 사람들은 우선 부끄러워합니다. 수치를 느낍니다. 남들을 향하여 자신만만하게 사랑해 달라고 요구할 권리나 그런 입장이 못된다는 것을 감지하게 됩니다.

병이라든지 죽음이라는 것은 생명과는 점차 멀어진 모습을 보여주는 흔적들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뭔가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구분할 때 그 기준처럼 연상되는 것이 "얼마나 건강하냐?"입니다. 병든 자는 어쨌든 비정상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외면하기 시작합니다. 환자는 점차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을 느슨하게 놓게 됩니다. 정말 내 몸이 내것이라고는 주장할 만큼 자기 자신이 귀하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생명이 넘치는 몸은 갖고 싶지만 죽어 시체가 된 몸은 본인도 싫어합니다. 나의 대한 권리를 서서히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차라리 내 몸에서 빨리 떠나고 싶을 지경입니다. 욥기 3:11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었던가 어찌하여 내 어미가 낳을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그러다가 19:26에는 다음과 같이 희망을 가집니다.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거의 죽음 직전에 와 있는 욥의 입장에서 신앙이란 이런 희망의 내용에다 모든 것을 걸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육체 밖에서, 즉 죽음 뒤에 욥이 만나게 된 그 분이 육체의 몸으로 미리 이 세상에서 들어오고야 말았습니다.

이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따라서 욥처럼 죽음 직전에 놓여 있는 몸이 아니라 죽음은 한참 멀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있어 예수님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으로 이해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별로 소중하지도 않고 귀중하지도 않고 그 분의 사랑이나 그분의 도움도 별로 바라고 싶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몸이 너무나도 건강하고 탱탱하고 탐스럽기만 하니 이 몸을 가지고 어디를 가도 원하는 사랑과 가치를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죽음 뒤의 상황을 미리 앞당겨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근거에서 마땅히 죽어야 될 우리가 생명을 얻는지 그 내막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도 우리마저 포기한 것이 죽어가는 우리 몸입니다. 죽음의 세계에서 더 이상 '나의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몽땅 다 빼앗긴 셈이요 압수당한 형편입니다.

따라서 이미 우리가 시신이 되어 있다고 한다면 어린 아이들이 우리들의 시신 위 흙더미에서 마음놓고 까불거리면서 놀고 있어도 벌떡 일어나 항의할 수 없습니다. "나를 어떻게 보고 이렇게 나의 시신 위에서 함부로 뛰노느냐?"하고 나무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베드로 장모는 생명의 능력으로 건강이 회복되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육체와 남아 있는 모든 생명은 더 이상 그 사람의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님의 것이 됩니다. 그녀는 왜 고침받았습니까?

여기서 구약 성경 이사야 53:4-6의 말씀이 등장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즉 예수님의 병고침은 단지 베드로 장모의 건강만을 고려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정체를 이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즉 병이 들었던 것이 죽음의 흔적이라면 병 나음은 그 반대로 생명의 흔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명의 흔적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서 나와야지만 주어지는 현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생명 그 자체인 것은 모르는 자들은 이런 행위가 단순한 의료행위에 불과하겠지만 예수님께서 생명인 것을 아는 자는, 어떻게 예수님의 자신의 생명이 죄인인 인간의 몫으로 이전되는지를 알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동원한 것이 이사야 53:4-6를 인용한 17절 말씀입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친히 담당'이라는 말은 그냥 치료를 하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것인 환자의 죽음을 의사이신 예수님 자신이 것으로 이전시키겠다는 뜻입니다. 즉 죽으실 이유도, 아프실 이유도, 연약해 질 이유도 없으신 분이 도리어 마땅히 죽어야 될 자를 살리시기 위하여 그 지독한 죽음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간주해서 자신이 대신 감당하시겠다는 겁니다.

이것은 베드로 장모에게 무슨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사야 53장을 달성해야만 하는 예수님 자신에게 무한한 가치가 있기에 예수님 본인의 가치성을 위하여 그런 일을 실행에 나서시는 것입니다. 어느 의사가 아픈 환자의 병을 자신이 대신 짊어지고 환자가 깨끗해지는 경우가 있겠습니까?

사스같은 것은 진료하는 의사도 걸리지만 의사가 대신 걸린다는 그 이유로 환자가 깨끗해지는 일은 아예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약속이 그러하기 때문에 분명합니다. '친히 담당'에 대한 효력은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겁니다. 그 분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는 겁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바로 이런 방식으로만 진행될 뿐입니다. 절대로 인간의 가치나 존엄성이나, '사랑받을 만해서 사랑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원래 인간이 이러함을 아시고 하나님과의 약속 성취를 위하여 성령님께서 성도에게 찾도록 배후에서 조치하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신 일을 알려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베드로 장모의 병나음은 나중에 십자가에서 일어날 일을 미리 보여준 것이 됩니다. 아무런 죄도 없으신 분이 왜 난데없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피흘림으로 일생을 마쳤는지는 이사야 53장을 통해서 그 내막을 알아야 합니다. 순전히 예수님의 이러한 일의 열매로서 우리 성도들이 영생을 얻게 된 것은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모든 것이 나 중심으로 생각한 것을 용서해 주옵소서. 모든 것이 예수님 중심으로 이루어짐을 감사하게 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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