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와 성경 해석
실제와 성경 해석
성경 해석은, 성경에 관해서 해석하는 것과 성경 내용에 대해서 해석하는 것, 둘 다를 포함한다.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보지 아니하고 단지 신앙인들의 체험담이나 의견 수렴으로 간주하는 경우에 성경 내용에 관한 해석도 거기에 준해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즉 성경 내용 안에서, 현 자기의 신앙 체험과 선배 신앙인들의 신앙 체험 사이에 일치성을 발견하고 또한 일치성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해석을 하게 된다. 한평생을 살아오면서 좌절했고 스스로 실패했다고 간주될 때마다 성경 안에 나오는 인물들의 삶과 신앙 세계에 초역사적으로 동참하게 되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신앙의 내용이나 복음이 현 자신의 삶을 통해서 현 시대를 향하여 울려 퍼지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물론 과거의 인류 문화와 오늘날의 현대 문화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있겠지만 신앙 안에서 동질성을 구현하는 특이한 세계가 보편적 영역으로 따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동질적 세계를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말씀 세계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의하면 하나님의 계시란 결국 인간이다. 스스로 신앙인이라고 자처하는 인간 군이다. 말로만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외치지만 실은 성경이란 여러 가지 신앙 참고서 중에 가장 대중화된 책일 뿐인 것이 되는 것이다. 성경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관한 관점이 이처럼 성경 내용에 대한 해석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만약 성경책 자체를 하나님의 계시로 보면, 일단 인간들의 모든 신앙적 체험이나 경험들은 하나님의 뜻에서 배제되어 버린다. 특정인이 아무리 감동적인 경건적 삶을 살았든지, 특정인이 아무리 많은 자를 기독교 교인으로 돌려놓았던 사태가 일어나든지 상관없이, 혹은 예수님이나 사도들이나 예언자들의 삶에 대한 고고학적으로 추가적인 정보가 입수되더라도 상관없이 거기에는 일체 하나님의 계시나 의미가 담겨 있지 않는다. 그저 우연적으로 사업이 잘되었을 뿐이며 과연 앞으로도 계속해서 종교 사업이 잘 될련지 보장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또한 한 수간의 경건이 계속 그 사람의 본질을 말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없는 법이다. 환경에 따라 인식의 급작스러운 전환에 따라 앞으로 무슨 소리를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과 활동 장면이 생방송 중계하듯이 비디오로 고스란히 재생되더라도 하나님 계시의 범주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은, 성경을 계시로 지정하신 성령의 감화가 현 성경 이외의 것을 계시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오직 현 성경만이 계시로 간주하시며 더 이상의 계시는 없도록 확정하셨다. 이런 계시관에 의한 성경 내용의 해석은 오직 성경 그 자체가 말씀하는 것에 집중된다. 해석이 교회 성장이나 발전이나 부흥이나 교회의 화목에 대해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이냐 하는 점은 전혀 해석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된다. 반대로 성경 해석으로 인해 교단이 분열되고 교인들이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가정이 파탄되고 하는 점도 해석에 있어 외압으로 전혀 고려의 대상이 못한다. 오직 성경이 말씀하는 바에만 고정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 스스로의 성취력으로만 세상을 운영하시고 관리하시고 진행시키시기 때문이다. 세상은 말씀 성취의 증거물일 뿐이다. 따라서 성경 내용 해석은 말씀 활동의 현 상황을 드러내는 것에 국한해야 한다. 자신을 포함해서 특정인의 신앙 수준을 변호하거나 증명하는 식의 성경 해석은 용인될 수 없다. 왜냐하면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인으로 죽는 존재인 인간들은 늘 자기 중심으로 우주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참된 신학이란 이와 같이 하나님 말씀 스스로의 활동만을 담아 내어야 하는데 그 중심은 바로 하나님의 일의 중심인 십자가에 관한 것이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하나님의 모든 일은 십자가에서 절정에 이른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십자가를 드러내지 않거나 최종적으로 십자가로 모아지지 않는 성경 해석은 결국 인간들의 종교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또한 거기로 수렴하려는 잘못된 신학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