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육신과 시간관
인간의 육신과 시간관
인간에게 있는 늘 붙어 있는 단지 육체뿐이다. 육체 없이는 인간도 없다. 그런데 삶이 귀하다느니 삶이 소중하다는 말들을 한다. 과연 인간에게 삶이란 있는 것일까? 시간이란 증기 기관차의 연기 같아서 지나가면서 공중으로 날라가 사라져 버린다. 과거란 현재에 없기에 과거라고 부르는 것이다. 비록 과거의 것이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있다 할지라도 어디까지 지금 육체의 관할 아래 있다. 현재 육신의 유지에 봉사를 다할 뿐이다. 삶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들은 모두 지나간 육체의 자국들을 시간적 틀 속으로 집어넣어 추상화시킨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시간이 허구라면 삶이라는 것도 허구임이 드러난다. 남아 있는 것은 자신이라고 불리우는 육신 덩이리 뿐이다. 그리고 이 육신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증거로 제시된 것이며 이 육신을 중심으로해서 비로소 시간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다. 하나님께서 7째 날에 쉬셨으므로 모든 피조 세계를 이 7이라는 시간적 순환 구조 안에 놓여지게 되었다. 따라서 시간이란 하나님께서 자기 세상을 관리하시는 환경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말았다. 정녕 죽으리라는 약속대로 인간의 몸은 후패하여 흙으로 변해 간다. 그러면서도 죄악의 본성으로 이 우주를 해석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창조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후패해 가는 자기 육신의 관점에서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의 창조성도 썩어 가는 육체 안에서 소멸되어 간다. 거룩한 7째날의 시간에서 자신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만을 위한 시간 감각을 형성하게 되었다. 모든 시간은 오직 자신 육신을 위해 의미 있는 시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과거에 대해서 일축한다. 잊어버리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 육체는 과거의 잔재로서의 육체이다. 여기서 현실의 육체는 비현실적 상상력으로 인해 상처받게 된다. 무엇을 위한 과거이며 무엇을 위한 미래인지 인간들은 그 가치를 잃었다. 막연하게 자기 육체만 신뢰하고 쳐다보고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백성 속에 거룩의 시간을 다시 주입시키신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5-7) 하나님은 창조의 원칙을 시간을 통해서 발휘하신다. 거룩한 시간과 다른 날을 철저하게 구별하기를 십계명을 통해 지시하셨다. 인간의 노동에 대하여 거룩한 날의 차원에서 고발하고 정죄하시는 것이다. 아무리 노동력을 투자해도 안식일을 거룩히 여기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간다. 안식일이라는 시간에 매인 육신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창조성을 드러내는 육체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며 기존의 자기 육신 중심의 시간관을 포기하는 것이다. 만약 안식일과 관련 있는 육신이 아니라면 창조에 대항하는 죄악의 시간관을 지닌 것이 된다. 신약에 와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만 드러내 보이는 육신만이 참된 시간관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낸다는 것은 스스로의 육신을 부정하는 것이 되고 후패해 가는 자기 육신적 시간관을 스스로 정죄하는 것을 뜻한다. 자기 삶이란 따로 존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죄악의 삶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육신이란 그리스도 몸뿐이다. 그 몸의 실체를 나타내기 위한 사건들이 예수님이 하신 일들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라는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이 바로 이런 예수님 시간관을 대변해 주고 있다. 자신의 육체 중심의 시간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시간관이다. 허무하게 살아져가는 육신을 보살피기 위한 미래지향적 삶이라든지, 화려한 자존심을 간직하기 위한 과거 지향적 삶 같은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을 배제한 채 나온 시간관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 사역을 한시라도 포기하신 적이 없다. 바로 이점을 증거 하는 육신이 성도의 육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