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난 자는 죄짓지 아니한다?
거듭난 자는 죄짓지 아니한다?
이근호 2002-03-18 17:17:58
요한 일서 3:7-9에 이런 말씀이 있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여기에 나오는 '죄 짓지 아니한다'라는 말씀은, 마귀가 범죄한 죄악에 빠지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마귀의 범죄는 무엇인가? 윤리이나 도덕적 차원에서의 죄인가? 아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마귀는 인간에게 선악 지혜와 의식을 심어 주려고 했다. 즉 마귀의 죄는 선악과와 관련된 죄악이다. 마귀는 선악의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에게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 인간은 의와 상관없는 범죄인이 되었다. 아무리 율법에 달라붙어 완전하게 순종하려 해도 이미 죄가 그 율법을 가지고 왕노릇하고 있는 이상 의라는 것은 인간에게 도출될 수 없었던 것이다. 더나아가서 율법 앞에서의 인간의 모습은 도리어 주주의 대상에 불과함이 확연해졌다. 구약에서도 이미 밝혔듯이 오직 의는 주의 의 뿐이다.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 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시 71:2) 바로 이러한 구약의 예언이 신약에 와서 그대로 성취된다. '하나님께로 난 자'에 한해서 범죄치 아니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로 난 자'란 누구를 의미하는가? 그것은 자기로부터 난 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자기가 자기를 관리하거나 조절해서 거듭 태어나게 하는 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요한 일서 2:27-29) 이 본문 끝에 보면,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라고 되어 있다. 즉 예수님의 의로우심을 아는 자가 바로 예수님께로서 난 자들이다. 요한 일서 1:10에 보면,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모든 인간의 범죄성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이 문장의 뜻은, 만약 이후에 말씀이 들어간 자가 있다면 그는 더 이상 죄와 무관한 완전한 자가 되었다는 뜻에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죄악된 인간 속에서 어떤 작용을 작렬하는가 여기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즉 화목 제물에 의한 계속적인 용서함이다. 그런데 이 용서함을 완전함으로 곡해하면 진리 전체가 와해된다. 시편 71:15-16의 말씀에 나와 있는 거듭난 자의 모습과 어긋난다.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의 곧 주의 의만 진술하겠나이다" 하나님은 말씀만 던져 놓고서는 그 이후에 모든 것을 성도에게 일임하시지 않는다. 늘 성령께서 성도 안에서 작용토록 하신다. 주의 의가 작용한다고 말해야 될 것을, 성도는 이제 완전히 무죄한 행위를 한다는 선악적 차원에서 해석해 버리면 엄청난 오류이다. 이것은 성도와 주님과의 지속적인 사귐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우리가 보고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한 일서 1:3) 계속적인 사귐 안에서 주님의 계속적인 메시야 기능이 적용될 뿐이다. 그것이 바로 화목 제물에서 나오는 의이며 사랑이다. 더 이상 사랑이 불필요할 정도도 성도는 완전히 자립한 존재인가? 주님을 증거 하겠다고 나서다가 급기야 구원받은 자신의 완전함을 증거 하는 경우로 빠질까 늘 두려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