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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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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 교수들의 '십자가 믿기'성경신학-

신학교 교수들의 '십자가 믿기'
이 세상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있는 것에 대한 속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형성하게 된다. 복음을 듣는 순간에도 인간의 마음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믿고 의지하는 내용물이 들어 있다. 그런데 복음에 접하기 전에 형성되어 있는 믿음의 대상은 모두다 인간 위주의 것들이기 때문에 자기 유리한 것으로 얼마든지 변개해서 축적시킬 수가 있다. '어떤 교육적 내용을 알게 되었다' 라는 말은, 곧 '그 내용을 이제부터 믿기로 하였다' 하는 말과 같다. 결국 마음의 형태로 모두 믿음으로 최종 고착된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습득해도 현재 자기 생존에 보탬이 되는 것으로 간주해서 얼마든지 그 '믿음'을 오히려 강화해 나갈 수가 있다. 날이 갈수록 더욱 더 자기 존재에 대한 미련과 집착은 강렬해진다. 그런데 어느 날 제대로 된 십자가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하자. 지금까지의 모든 정보는 자기를 긍정해 주고 생존에 더욱 공고히 하는 내용일 수가 있는데 거기에 반해 십자가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같이 죽기를 요청하는 주님의 공격성 사건이다. 지금 자기 생존에 몰두하려는 자들에게 너무나 큰 짐이요 난감한 요청이 아닐 수 없다. 살기 위해 복음을 듣고자 했는데 복음이 오히려 살려주기는커녕 같이 죽자고 나오는데는 정말 하나님께 원말 돌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들 앞에서 '믿음'이 있다고 말해 왔기에 주님이 요구하는 '십자가 믿기'를 형식적으로도 거절하기가 곤란하다. 그래서 십자가를 안믿어도 되는 '새로운 십자가관 형성'하기를 시도한다. 하지만 이러한 결심이 주위에 있는 교우들에게 들키는 날이며 두 얼굴의 위선자로 발각될 것이 뻔하니 신학교 교수들은, '십자가 믿기'를 대신 할 만한 것을 내놓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외국에서 학위 따면서 익히 놓았던 재롱들이다. 예를 들면, 중생된 자의 윤리관, 혹은 목회 상담학, 담화 구조 분해에 의한 성경 해석학, 예배 갱신에 관한 연구, 기독교 사회 운동에 대한 고찰, 신약 성경에 대한 사회학적 해석, 칼빈의 교회론, 루터의 교회사적 위상, 환경 문제와 창조 전승과의 연관성, 등등이다. 이들 교수들은 사실 이런 것들을 '믿는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로 자기와 가족의 배를 채울 수 있을까 하여 보따리 싸 들고 귀국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자기의 최종 눈짓이 머무는 그곳으로 인해 신자이냐 아니냐를 규정받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신자 아님을 들통나버리는 불상사를 대비해서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발언한다. 누가 혹시 "당신 기독교 신자 맞아요?"라고 물으면 얼른 품 속에 넣어두었던 십자가를 꺼내놓으면서 자기는 기본적으로 기독교 신자임을 자처한다. 즉 믿기보다는 '신자 증명서' 로 사용하기 위해서 그 내용에 관한 틈틈이 숙지해 놓고 있는 것이다. 신학 교수들이 성경을 원어적으로 깊이 파고드는 취향을 가졌다는 점을 인정하자. 그러나 그 일하고 기독교 신자됨 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들이 개혁 신학의 전문가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기독교 신자임을 보여주는 것이 증거가 아니다. 이들은 자기를 죽이는 그 어떤 것, 심지어 십자가의 복음이라도 항시 거부할 마음의 태세가 되어 있는 자들이다. 그들이 최종 믿는 것은 종교 시장에서 잘도 써먹을 수 있는 종교 지식, 종교 기술이다. 그들은 죽기 위해 멀리 외국까지 나간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해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자들이다. 처음 떠날 때부터 이들은 자기에게 신앙 없음을 인식하고 시간 벌기식으로 나간 것이다. 그래서 돌아 올 때는 믿음이 생겨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종교 시장의 생리에 파악하고 개선했다. 즉 "어차피 모두들 믿음 없기는 마찬가지 아니냐." 그리고 난 뒤 종교 시장에 돈 흐름에 몸을 실어보기 위해 동분서주 한다. 나갈 때보다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단지 사기술과 위장술이 보다 고급화되고 윤리로서 세련되게 포장하는 기술이 늘었다는 것뿐이다. 거기에다가 이력서를 광채 나게 장식하는 박사 학위가 최후의 속임수로 작용할 것을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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