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하나님
피해자 하나님
사람이 어떤 행동에 나설 때, 자기 행동이 남에게 어떤 피해를 주게 되냐를 먼저 고려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 편한데로 행동에 나서고 그 다음에 될 수 있는 대로 타인에 대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한다. 예를 들면, 시험에 합격하고 난 뒤 유별나게 좋아라 하더라도 주위에 시험에 떨어진 자가 있으면 잠시 행동에 자제를 하는 행동도 여기에 해당된다. 상대방 입장에 잠시 서 보는 것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고통이 안겨 주지 않으려고 배려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합격을 포기하고 상대방에게 합격을 넘겨주지는 않는다. 여전히 자기 존재 우선 이다. 이런 점이 인간의 조건이다. 인간이 인간 되게 된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고정적인 틀이 있었다. 코가 두 개가 된다든지, 눈이 뒤에도 달려 있다든지, 겨드랑에 날개가 있어 공중을 날려 다닌다든지, 아가미로 숨쉬면서 물 속에서 살 수 있다든지 하는 조건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파트 15층에서 그냥 뛰어내리면 죽도록 되어 있는 것이 인간의 신체적인 조건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는 이런 조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을 얻는 조건도 인간이 임의로 정해 놓은 것이 아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 임의로 정해 놓으신 약속에 의해서만 구원이 되는데, 이 약속 안에 인간들의 자기 소망이나 희망 사항을 첨가할 하등의 권리가 인간에게 부여되어 있지 않다. 인간과 선행과 종교적 기술이나 노력은 하나님의 복을 따내고 영생을 얻는 조건이 아니다. 이웃 사랑을 한다고 해서 구원받고 복 받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오로지 하나님 이외에 그 누구도 성취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법이란 항상, 그것도 전부다 온전히 행하지 아니하면 저주가 주어지게 되어 있다. 선행을 한만큼 복을 타내는 성과급 차원에서 설명되어지지 아니한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라디아서 3:10) 이러한 것이 하나님의 법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조건에 대해서 반기를 들고 제멋대로 구원의 조건을 만들어 가지고서는 하늘의 문을 통과하려고 열심이었다. 이러한 인간의 항거를 온 몸으로 가로막고 심판하신 분이 있었다.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부활이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다. 이점에 대해서 그 동안 하나님 법 지키기에 사력을 다했던 자들이 그만 있지 않았다. 예수님을 밀쳐 버렸다.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아 살해해 버렸다. 하나님이 인간에 의해 피해자가 된 것이다.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인간의 행동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힐 수가 있다. 하지만 타인의 피해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아니라 자기 존재성부터 먼저 챙기게 된다. 구원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구원에 우선하다 보니 그리스도께서 하실 구원까지 임의로 변개하여 구원의 조건을 만들어 놓고 있다. 즉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신앙 생활하는 것이다. "내가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 다 내 좋아라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영광,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뿐이다."라고 여긴다. 하나님을 돕고자 하는 갸륵한 심정에서 일을 하기에 하나님께서 누구보다도 자신을 더 사랑하고 구원하시리라고 스스로 장담한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는 이 사람은 예수님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는 자이다. 마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이다. 자기가 하는 일을 긍정하고 그로 통해서 자기 존재를 긍정하는 심보로 인해 일을 하니 예수님이 구원하시는 방식과 정반대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 앞에서는 그 어떤 순교자나 의인이 있을 수 없다. 모두 다 죄인들이기 자기 힘으로, 선행과 열심히 구원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엉뚱한 사고를 갖고 있는 자이다. 이들에 의해서 오늘날도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만 외치는 자들을 밀치게 된다. "교회 부흥에 하등의 도움이 안되는 자들"이라고 욕을 하면서 핍박을 하게 된다. 예수님을 욕보이면서도 천국에는 일등으로 들어가기를 꿈꾸는 이들은 가련한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