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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배부른 자의 하나님과 선지자의 하나님성경신학-

배부른 자의 하나님과 선지자의 하나님
구약에 보면, 같은 이스라옐 내부에서도 서로 판이한 하나님 관념을 가지고 대립되는 것을 보게 된다. 같은 '여호와' 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하나님이요 같은 과거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현재에 자기의 처지를 유지해보려는 식으로 그 하나님과 관련 맺으려 한다. 여기서 선지자들이 외치고 주장하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서 단순히 선지자들의 성장과정이나 삶의 분위기에서 엉글러진 사상이라고 몰아붙여서는 안된다. 선지자가 제시하는 하나님의 계시는 사견이 아니다. 개인적인 사견을 전 우주에 다같이 적용되는 보편적 계시로 간주될 정도로 선지자 개개인들이 위대한 업적이나 공적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선지자의 개인적 하나님이 참 하나님 상으로 고정시킬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들의 운명과 일생이 인간 세계에서 통하는 권력과 상관없는 하늘의 권세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통 가운데 있었다. 그들의 괴로운 일생을 보내는 자들이다. 그들은, 범죄한 국가 이스라엘의 체질 속에 놓여 있다. 여호와 하나님을 거명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과 무관한 채 인간들의 지혜와 이성과 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그런 자들로 둘러싸여져 있다. 융성하고 풍성한 복을 받은 그 대지 위에서 영원히 자기 하나님으로부터 복받고 구원받은 채로 살아 갈 것 같은 이스라엘이 실제로는 주위 국가들의 먹이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위축되어 있는 이 황당하고 납득이 안가는 현실 속에 선지자가 놓여 있다. 선지자들은 여기에서 새로운 계시를 선포하기 시작한다. 이상스러운 현실은, 이스라엘이 실제로는 하나님 말로 다른 악한 권세로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국가적 힘을 축적하기 위해서 재능 있고 능력이 뛰어난 자들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힘이 될만한 것은 모두 있는대로 한 데 모아 적들을 대치하고 다른 한편으로 적들과 우호적인 평화 관계를 맺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스라엘의 태도는 크게 신앙에서 벗어나 있다. 내부적으로 자기들의 힘을 결집해서 힘을 배양하려고 시도한 이러한 생각은, 주 여호와의 약속을 불신하는 태도였던 것이다. 여호와의 약속의 의와 거룩에 관한 약속임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아예 이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생존의 힘만 필요했고 그들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면 무슨 힘이든 마다하지 않았다. 이방 나라와 같은 행정 제도를 도입하여 그들과 힘의 균형을 맞춤으로서 나라를 이끌어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나라 발전과 보호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짐이 되는 힘없고, 가난하고, 재능없는 자들이 천덕구러기 취급을 받게 되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그리고 바른 선지자들이 자력으로 버티기에는 너무나 힘든 여건이 되고 말았다. 반면에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재력가와 인간들의 정신력을 쥐고 있는 종교인과 지식을 많이 갖고 있는 재판장과 권력 계통에서 일하고 있는 방백들이 더욱 더 재산을 늘리고 화려하고 사치하고 폭력을 행세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어 있다. 여기서 가난한 자들이 생각하고 여호와 하나님과 배부른 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이 상충된다. 과연 어느 편이 진정 참 하나님이신가? 예레미야는 성전 앞에 서서 민중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외친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히 준 이 땅에니라"(예레미야 7:4-7) 선지자는 두 개의 권력을 대치됨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참 권력은 어디서 나오며 그리고 무엇을 겨냥해서 공격하는가? 의와 거룩에서 나오는 권력이 더러운 우리 자신의 품성에서 나오는 악한 권력을 향해 공격하게 된다. 가진 자와 힘 있는 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계관은 그만큼 의와 거룩의 소중함을 누락시키게 된다. 이는 선지자와 예수님과 사도의 말씀을 파악할 수 없게 만든다. 옛날 선지자의 서러움이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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