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편하게 생각하고 편하게 살고 싶어한다. 이 버릇이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여전히 이어진다. 여러 가지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고 과학적 업적이 도출해 내지만 이런 것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인가를 생각 할 줄 모른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기쁘게 할 목적으로 행동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위는 본인을 기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늘 움직여진다.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한 일이기에 결말도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쪽으로 기우려 진다. 일단 자기부터 우선해서 기쁨을 찾고 난 뒤 그 후에 하나님의 기쁨과 주위 사람의 기쁨의 몫으로 분배한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진다.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을 드리는데 최종 목표를 지니고 있어야 될 교회가 여전히 회원들 기쁨을 안겨 주는데 급급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을 모르는 채, 성경과 관련없이 교회를 운영하려 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구성되려면 일단의 사람들이 움집해 주어야 한다. 인간이란 자신에게 기쁨을 주지 않는 회집에 시간과 성의를 보이지 않는 법이다. 따라서 교회를 성경 말씀 위에서 해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기쁨 위에 그 의미가 존재 가치를 두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오늘날 교회가 부지런히 성경을 이리 저리 뒤척이면서 성경과 무관하게 움직여 나가는가? 그것은 성경에서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본심을 모르기 때문이다. 왜 모르는가? 아예 하나님의 본심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나님만으로, 또는 주님만으로 교회가 이루어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주인공도 감독도 카메라맨도 빠진 채 엑스트라만 움집해 있다고 영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사람들 자신들의 즐거움과 유익과 행복을 위하여 예배당 안으로 움집해 있다. 그러나 그곳은 구원과 상관없는 사교 단체, 친목 단체에 불과하다. 거기에는 회원들의 평소의 소망과 기쁨과 기대치가 가득 차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주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전혀 관심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자기 즐거움들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뭉개지고 빼앗기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기쁨은,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어야 한다. 성경은 그저 참고서가 아니다. 성경 말씀을 모르고 살면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기쁨이 되지 못한다. 교회에 나가면서도 하나님의 기쁨을 도외시하고 사는 것은 옳지 않는 생활이다.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온 세상의 지혜와 학문을 익히고, 감탄할 만한 혜안과 통찰력과 윤리를 구비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면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성경에 대한 관심 속에서 오직 성경 말씀대로 교회에 생각해야 하는데, 설교하는 자나 듣는 자나 모두 다 교회의 존재함과 번영과 자신들의 희망 사항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다면 이것은 분명한 사교 집단임에 틀림없다. 교회에 나와 있는 순간이나 집에 있는 순간이나 쉴새없이 자기 기쁨만을 챙기면서 사는 것이 무슨 신상 생활인가! 예수님은 인간들의 자기 기쁨 때문에 목숨을 빼앗겼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인간들의 상투적인 기쁨이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영역이 날이 가면 갈수록 번창하여 남들 위에 우뚝 솟아 부러움과 영광을 받는 일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제일 미워하는 인간의 자기 영광성이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한복음 5:44)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움직이는 모든 활동들은 모두 다 제 잘되라고 하는 일들이지만 소위 성도라는 자의 모든 활동은 오로지 주의 이름만 높아지면 그만이다. 먹든지 마시든지, 죽든지 살든지, 어려움에 처하든지 풍부에 처하든지, 오직 주님이 주님으로서 살아 계심을 증거하는 것으로 기뻐해야 한다. 자기의 괴로움과 실패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해야 하고 항상 기뻐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은 여전히 하늘에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