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모방하기
신앙 모방하기
인간은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습득하여 자기 지식으로 삼는다. 그런데 이 정보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리게 되는데 이것이 모방하는 작업이다. 인간 세계의 과학이나 학문이나 예술 행위 같은 모든 활동들이 전부 다 자연물과 타인에 대한 모방 작업에서부터 시작된다. 창작이라든지 창조라든지 하는 것도 엄밀하게 말해서 모방 작업으로부터 거리 멀리 있는 동떨어진 새로운 작업이 아니다. 약간 덜 모방스럽게 보일 뿐이다. 성경 전도서에 보면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 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전도서 1:5-10) 해가 되었든, 바람이 되었든, 강물이 되었든, 인간이 되었든 간에 모든 존재는 이 지상에서는 그저 돌고 도는 그런 순환의 과정만 있을 뿐이다 는 것이다. 마치 트랙을 달리는 자전거 경주처럼 이미 왔었던 자리를 그저 모방하면서 또 다시 돌고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젊은 청년들에게는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새로운 것같지만 기성 세대가 보면, 이미 자기네들이 모방하고 그리고 실수하고 저질러 놓은 그 욕망과 환상의 덫에 그들 젊은이들이 또 다시 빠져들어 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모방이야 인간에게 있어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단정해 줄 수는 있지만 문제는 신앙까지 모방하려든다는데 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예수님의 신앙에서 나온 신앙이 아니라 인간들이 체험했다는 신비함을 가지고 대중 정리 정돈해서 신앙이라고 갖고 다니는 것이 문제이다. 성경에서의 신앙이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지향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이 제조해 낸 신앙은, 신앙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자기 자신을 계시하게 되어 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체험한 사실에 대해서 증거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모방 작업으로서 성경에 나와 있는 여러 가지 경우를 자기 소유로 삼기 위해 새로운 체험 얻기에 나선다. 이것은 예수님 신앙을 모방하기 위한 인위적인 작업이지 성령의 사역이 아니다. 성령의 사역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만을 제자들에게 알려 줄 뿐이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3) 인간의 모방 작업을 결코 긍정해 주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인간이 저지른 놓은 종교적인 작업에 대해서 조금도 수용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성령께서는 전혀 다른 기준으로 인간에게 다가서신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의인이라고 주장할 자가 누구 있느냐는 것이다. 누가 예수님과 견줄 만한 업적을 남겼느냐는 것이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기껏해야 새로운 것이라고는 없고 모두 모방뿐임을 성령께서는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다. 그런 인간들의 모방성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움에 도전한다든지 감히 섞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인 양 간주될 수 없는 법이다. 이런 차원에서 인간은 날마다 자기 것을 폐기 처분해야 한다. 타인의 신앙과 예수님의 신앙을 보고 모방하는 버릇을 한평생 살면서 중지되는 예는 없다. 죄인의 지닌 한계성 때문이다. 그러나 이점에 대해서 자신을 미워하고 스스로를 부정해야 한다.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오직 십자가만을 바라 봐야 한다. 나 같은 죄인에게 십자가를 알게 하신 것이 자신의 모방 행위와 열성에 근거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성경을 통해서 파악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모든 종교적 모방 행위를 부정해 버리는 은혜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