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것은 신의 것이 아니다
완전한 것은 신의 것이 아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다 보면 목표 잡은 대로 잘 안 될 때가 있다. 그럴 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님 같으면 벌써 했을 텐데…" 그러나 이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보다 높이, 보다 완벽하게' 라는 마치 올림픽 구호 같은 것이 사회의 모든 조직체 내에서 남발되고 있다. 아주 어려운 수학 문제를 바라보면서 수학 교수들은 저마다 생각한다. "하나님 같으면 이 골치 아픈 방정식이 손쉽게 풀었을 것이다"고 말이다. 또 바둑을 전문으로 두는 사람 같으면, "신과 바둑 둔다면 몇 점을 놓고 두어야 한 판이라도 건지겠나?" 또 잡히지 않는 범인을 수색하는 형사들은 "하나님 같으면 지금쯤 범인이 어디 숨어 있는지를 아시겠지"라고 늘 생각하기 마련이다. 또 공장을 운영하는 사업가나 기술자들에게는 보다 멋진 상품화가 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 진보를 염두에 두고 하나님의 지혜를 찾고자 한다. 예술 작품이 마음 먹은 대로 잘 표현되지 않는 예술가들은, 신의 영감이 순식간에 자기를 감싸서 환상적인 아름다움이 피어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 신을 궁극적인 최고의 예술가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 모든 예들이 기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크게 잘못된 생각을 하는 있는 경우이다. 전혀 엉뚱한 완전자를 상정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완전자라는 개념으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다. '궁극적인 사랑', '궁극적인 진리', '궁극적인 질서', '궁극적인 공의로움', '궁극적인 능력자'라는 내용물이 결코 참 하나님이 아니다. 이런 하나님 상은 모조리 인간들의 자체 내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학 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흔히 '조직신학'의 이름으로 내놓은 논문들 중에서 '궁극자'를 마치 신으로 간주해 놓고 논리를 전개시키는 그런 책자들이 참으로 많이 있다.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처사이다. 이러한 글들이 기대하는 바는, 혹시나 인간의 종교성에 호소하고 그 종교심을 잘 조작하면 행여나 신앙심이 거기서 도출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심보는, 성령의 거듭남을 사람의 손으로 흉내내려는 악마적인 성향에서 나왔다. 인간이 생각하는 '완전자' 개념은 오히려 죄의 결정판이다. 죄악의 극치를 배태한 마음가짐이다. 인간들 각자가 마음속으로 자신이 되고 싶은 상황을 신의 이름을 빌려서 세상 밖으로 슬쩍 내던져 보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요행스럽게 이루어지면 자신의 마치 신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탁월한 영웅으로 간주하고 인정받으려 한다. 인간들이 생각하는 '궁극적 존재자'로서의 신은 곧 '영웅으로서의 신 개념'이다. 영웅의 보편적 특성은 자기 부인을 할 수 없는 '스타 기질'을 지니고 있다. 즉 하늘과 땅 아래서 가장 귀한 것은 오직 자기 자신밖에 없다. 궁극적인 가치도 오직 자기뿐이다. 궁극적인 의미도 오직 자기뿐이다. 그러니깐 자기 자신은 영원해야 한다. 자기 자신은 늘 '스스로 있는 자'이어야 한다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합당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자아가 되기 위한 연장선의 최종 지점을 인간들은 '신' 또는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니깐 인간에게 신이란, 자아가 길게 늘어져서 확장된 상태에 도달된 경우를 말하게 된다. 자기가 '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의 대명사가 곧 신으로 통한다. 신처럼 되고 싶기에 신을 부르고 하나님을 애타게 찾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 참 하나님은 이런 죄인들의 욕구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하다. 너무나도 낯선 분으로 인간 속에 들어오셨다. 그 분은 예수님이시다. 인간들이 상상한 완전자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에 손에 의한 약한 몸으로 처참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다. 강도들과 같은 취급을 당하시면서….그 분의 부활되심은 인간들의 영혼 불멸 욕구를 만족시켜 주시기 위함이 아니다. 단지 그 분께서 따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신 것이다. 오직 성령이 아니고서야,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서야 들어 갈 수 없는 나라를 만드신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영웅이 아님을 알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영웅이 될 자격도, 권리도 없다는 사실에 눈이 열려야 한다. 우리는 단지 죄인일 뿐이다. 그 뿐이다. 구원되고 안되고는 주님의 고유 권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