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일은,어디까지나 하나님 소관이다.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 능력에 달려있다.만약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 말고 인간이 행해 낼 수 있다고 하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일이지 하나님의 일이 아니다.물론 하나님의 일을 사람들이 흉내내거나 모방은 할 수 있다.모세가 시내산에 40일간 올라간 이 후에 산 밑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여호와를 대신하려 했던 것도 이런 경우의 일종이다.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일의 일종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인류의 역사 속에서는,사람의 일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우기고 고집 부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늘 인간의 손에 의해서 재생산될 수 있는 일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신봉하라는 것이다.성경에 보면,하나님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신다.홍해가 갈라진 것도 한 번으로 족했고 요단강 건너는 일도 그러하다.십자가 지신 것도 한 번으로 끝났다.예수님의 재림도 어디까지나 한 번만 일어난다.5000명을 먹이신 일도 딱 한 번뿐이다.예수님께서 호수를 만난 때마다 물 위를 걸으신 게 아니다.예수님에게는 똑같은 일은 반복하지 않으신다.거기에 비해 인간들이 이 지구상에서 하는 일은,같은 물건의 대량 생산이다.똑같은 물건이 계속해서 출고되기 위해서는 같은 조건과 같은 법칙 하에 있어야 한다.절대 불변의 법칙을 인간들은 가지기를 원한다.간단히 말해서 인간은 도깨비 방망이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자동적으로,예외 없이,반드시,똑같은 결과가 반복해서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다.어떤 절대적인 불변의 기계가 발명되면 인간은 신에게 의지하는 부담을 들게 되기 때문이다.신에게 치사한 기도를 안해도 되기 때문이다.인간의,인간에 의한,인간을 위한 이상적 사회를 설립하기 위하여 쉼 없는 노고를 퍼붓는다.이러한 인간들에 의한 자립정신은 소위 종교계도 예외가 아니다.신도들을 자동적으로 구원할 수 있는 비결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강구하게 된다.자동적으로 은혜 받게 하고,자동적으로 거듭나게 하고,자동적으로 자기 종교 체제에 충성하는 봉사원으로 전환시킬 수 없을까에 골몰하고 있다.물론 이런 자동방식으로 도입되는 방법 하나가 소위 '기도 집회'이다.기도를 하면 반드시 응답을 받는다는 것이다.여기서 '반드시'라는 단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반드시'라는 단어 속에는,'이유 없이','예외 없이','필연적으로','기필코 성취'라는 소원감이 들어 있다.종교학적으로 보면 이런 시도는 주술집회이다.주술이란,인간 쪽으로 어떤 행위를 하게 되면 신은,인간에게 일체의 반발이나 저항을 가해서는 안된다.그리고 고분 고분 지상에서 인간이 요구 조건대로 다 들어주어야 한다.즉 신의 능력은,그 능력을 이용하고자 하는 인간 고객들의 것이 된다.주술에 매료된 민중들과 종교집단은 바로 이점을 상품으로 하여 널리 사방에 선전하고 다닌다."신은 우리 편이다!"라고 선전한다.그러나 성경은 단호하고 말한다.하나님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편이다.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은 오직 하나님 자신을 위함이었다(시 135:4).모든 것이 주께로 돌아 갈 뿐이다(롬 11:36).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이다(롬 14:8).하나님을 붙들어 맬 그 어떤 비법과 교육 프로그램도 다 이방적이며 마술적이다.인간들은 고정된 신을 원한다.이점이 구약에서 우상을 제조케 했다.그러나 이 세상에 그 어느 것도 고정된 것은 없다.한국 교계가 주술적으로 치우친 가장 큰 원인은,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착각과 오해 때문이었다.하나님이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약속을 주었다고 착각한 것이다.패역한 홉니와 비니하스가 언약궤 옆에서 죽은 사건을 그대로 반복하는 셈이다.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탐욕을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욕망을 괴멸하기 위해서 있는 약속이다.하나님의 약속은,그 약속만이 남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따라서 인간 정신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예수님을 보내셨다.이 중심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다.인간이 자신을 죄인이라고 인정하게 된 것은 벌써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다.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대표적인 하나님의 일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