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해서 알자
인간에 대해서 알자
사람에게 있어 행복이란,자기 죄를 깨닫는데 있다.자기 죄를 피해서 살아가노라면 마음에 늘 어두운 그림자가 끼게 된다.어떤 이들은 지은 죄가 없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지는 모르지만,사람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주위 사람에게 해가 된다.조그마한 나의 짜증이 가족 모두를 괴롭게 할 수가 있다.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 때문에 마음에 상처가 갖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입으로 연발적으로 토하는 사과의 말로도 부족하다.사람에게도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에게 우리 인간은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주었을까?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요일 1:10).사람이 일생을 보내는 것은,하나님의 말씀이 참으로 진실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다.하나님은 우리보고 전적으로 죄인이라고 알려주지만 우리 인간은 막무가내 아니라고만 한다.그 원인은,예수님이 주신 사랑과 우리 자신 속에서 영글어내는 자기애를 상호 대조시키려 하지 않고 자꾸만 주변인들이 보여주는 자기애와 견주어서 내린 결과에 집착하기 때문이다.타인과 대결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관대해야 하고 자신을 정중히 관리하려 하고 또 각가지 장점과 재주를 개발하려고 한다.그래서 힘을 기르기 위해 전력투구한다.자신의 주특기는 남들에게 널리 선전하여 부각시키고,자신의 약점과 결점에 대해서 궁색한 변명과 회피로 일관한다.그러니 자신보고 죄인이라고 나무라는 하나님의 소리에 정이 갈 리가 없다.로마서 1:28에 보면,"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라고 되어 있다.인간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는 것은 힘을 배양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됨됨이에 대해서 정확한 비판을 가지게 하는 기회로서 하나님을 두라는 것이다.왜 인생은 고생 없이 한 평생을 지나야 하는가? 인간의 왜 하나님으로부터이라는 벌을 받아야만 하는가? 더 나아가서 왜 인간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정결하심을 인정하면서 하나님 두기를 거부하는가? 그것은 인간이 이미 죄인이 되어버린 채 살아가기 때문이다.인간이라는 말은 확실히 부정적 표현이다. 매사에 하나님과 적대 관계를 이룬다. 게다가 하나님에게 덤벼들고 전쟁을 벌리는 존재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심령은 오직 상한 심령뿐이다(시 51:17). 살아있기에 자동적으로 정당함을 지닌 것이 인간이 아니다. 그러나 "살아있으니 어쩔 수 나를 사랑했노라"라는 주장은 일종의 자기 변명이다.맹목적으로 오래 살아가는 것이 과연 성공자인가? 시편 39:4-5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온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살고자 하는 자에게 있어 선이란,오직 자기 생존에 유리한 경우뿐이다.그리고 살고자 하는 자에게 있어 악이란 오직 자기 생존에 불리한 경우뿐이다.바로 이러한 삐뚤어진 선과 악의 개념 속에서 하나님은 인간과 대치 상태에 있다.진정으로 하나님을 좋아한다면,하나님의 평가까지라도 좋아해야 한다.그리고 그대로 수긍해야 한다.하나님께서는 아드님까지 하늘에서 이 지상으로 파견하셔서 기어이 '내어버리기'를 감행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롬 8:32).인간을 모르고 세상도 모르는 채,유사 종교와 같은 기독교가 한국 땅에 충만,충만하다.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뭘 하기를 원하시는 게 아니다.하나님은 우선 인간 자신의 죄부터 깊이 알기를 원하신다.이런 삶을 사는 사람에게 더불어 원하시는 것은 에베소서 3:18-19에 나온다."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기독교는,'해야하는' 종교가 아니라 그냥 그리스도만을 '보여 주는' 종교이다.이것이 사도 바울의 기도 제목이기 전에 먼저 성령의 탄식 어린 요구 사항이다.인생과 신앙의 연륜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피의 귀중함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 하나님께 유일한 영광이 되는 자세이다.분주하고 바쁜 선교성 사업이 오히려 그리스도의 피를 가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