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냐 그리스도냐?
교회냐 그리스도냐?
신앙의 첫 단추는 죄이지 결코 용기나 결단력이 아니다. 그런데 교회를 통해서 규정될 수 있는 죄관이 있는 반면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으로 규정될 수 있는 죄관이 따로 있다. 왜 교회나 기독교라는 종교를 최종적인 가치로 삼을 수 없을까?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죄를 알게하고 자기를 부인하게 만드는 궁극적인 것이 절대 기준은 교회 쪽이 아니라 그리스도 쪽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아무리 완벽하고 이상적인 요소로 가득 채워 놓았다 할지라도 어디까지나 문화적 차이나 환경에 따라 조성된 산물이기 때문에 종교 문화를 통해서 자아 실현을 꿈꾸는 자의 죄악을 발췌하는데 적절치 못하다. 즉 교회 안에서 소위 인간들의 용기나 결단력이나 순발력이나 단결력이 강력한 동기로 작용되어 버린다. 반면에 그리스도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요 모든 진리의 출처이기 때문에 모든 이는 필히 그 분 앞에서 자기 영광의 꼬리를 내려야 한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한다면 그 사람은 그 순간부터 필히 자기의 이름을 부인해야 한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대신' 죽으셨다는 표현이 나온다. 따라서 정말 구속함을 받은 자라면 이제부터 자기 '대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야만 한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5:15) 그러나 교회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라면 '대신'의 삶이기보다는 본격적인 자아의 터전으로 확대시키는 장으로 교회를 앞장 세우게 된다. 여전히 자아는 죽지 않고 또한 자아를 대신 하는 것도 없이 자아는 신사나 영웅이 되어 버린다. 과연 십자가의 도가 실제로 이런 것일까? 교회라는 문화적 영역에 변화를 주어 그 변화된 상황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정신을 구현할 수 있을까?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있는 인물이나 인격자가 아니라 하나의 추상적인 사상이나 관념에 불과하다면 얼마든지 문화적 센터로서 교회를 활용하여 이 추상적 관념을 널리 전파하는데는 교회 조직력과 행정력이 크게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구약 선지자들이나 신약의 사도들은 결코 교회 조직력이나 문화적인 변형에 의존해서 전도하지를 않았다. 그들에게는 오직 약속과 바른 계시와 그것을 확신하게 증거 하게 하시는 증거의 영이신 성령님이 함께 할 뿐이다. 마치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사역하실 때와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방식 또한 구약에 이미 예언된 대로이다.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사 11:2/61:1-2) 성경에서 말하는 참 전도자에 대해서 성령을 대체할 그 어떤 문화적이며 종교적인 조직체를 거론한 적이 없다. 전도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개인을 지목해서 맡기신 일이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4-15) 이 본문 안에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라는 말이 분명히 들어 있다. 교회의 봉사란 딴 게 아니라 바로 이런 참 전도자를 후원하고 협조하고 도와주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니까 교회가 가장 신경쓰야 하는 것이 전도자의 전도 자세나 의식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느냐를 늘 점검하는 일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빌미로 교회의 부흥이나 성장의 가치를 도모하겠다는 자가 있다면 그런 자를 이단으로 축출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고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교회는, 교회를 전도하는 것을 늘 차단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도만 전해야 한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는 교회 자체를 교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의 산물처럼 이해하거나 혹은 교회를 예수님으로 통하는 중간 과정으로서 삼는 것을 항상 걱정해야 한다. 교회는 오직 예수님의 대신 죽은 몸으로 인해 생겨난 결과이기에 교회보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전부를 걸고 살가야 한다. 그리고 이 사실 외에 그 어떤 문화적 성과에 기대를 건다면 이단은 멀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