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9장1- 5절 제목 : 무저갱의 열쇠
계 9: 1- 5 (무저갱의 열쇠)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1)
http://222.231.1.74/~woorich1/성경강해/요한계시록-2006/040강-계9장,1-5,(무저갱의,열쇠)-rev061203.hwp
우리교회
06-12-07 17:31
이근호 06-12-03 13:23
무저갱의 열쇠
2006년 12월 3일 본문 말씀: 요한계시록 9:1-5
(계 9: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계 9:2) 『저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
(계 9:3)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저희가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계 9:4)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계 9:5)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흔히들 교회 나오면서 마음 속에서 목사에게 묻는 게 있습니다. 그 질문은 이런 겁니다. “어떻게 하면 죽어서 좋은데 갈 수 있습니까?” 여기에 대한 대답한 한결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으면 됩니다” 사람은 이 단촐한 답변에 만족합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교회에 안보이기 십상입니다. 왜냐하면 얻을 것 얻었으니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 겁니다.
즉 예수님 알고 십자가 알고 믿음을 알았으면 그것으로 족한데 왜 오늘 본문의 내용에 나오는 악마의 활동 사항까지 꼭 알아야 할까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상대 배우자를 남편이나 아내라고 인정한다고해서 그것으로 부부 생활을 마감하고 따로 각자의 집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좋든 싫은 한 집에서 한 방에서 얼굴 맞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예수님이라든지, 믿음이라든지, 십자가라는 내용이 진정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인간들의 짐작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일입니다. 악마를 알고 그 악마의 하는 일을 알게 되므로서, 진정 예수님 믿는다는데 무슨 의미이며, 십자가가 무슨 뜻인지를 알게 됩니다.
즉 “정말 나라는 인간이 이러하니까 오직 십자가 피만이 나를 구원하는 능력이 되구나”라고 다시금 재확인됩니다. 악마를 모르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을 악마와 무관한 자로 간주하여 완벽주의와 철두철미한 주의자로 변모됩니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완벽과 완전무결함을 유지하기 위해 늘 불안과 초조와 안절부절에 빠지게 됩니다. 공들였던 탑이 언제 어느 순간에 와르르 무너질까봐 자신을 철저하게 감시하게 되는 사태로 몰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감사가 없으면 그 무엇도 죄이며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 아닙니다. 감사는 자신의 우수함과 절대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외부의 공로에 대한 고마움으로 나오는 법입니다. 예수님께서 감사하기 위한 이유를 알게 위해서는 필히 악마가 어떤 일을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즉 악마가 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 인간은 저항할 능력조차 발휘하지 못하고 사로잡혀 있을 뿐이지만, 예수님께서 나서서 모든 일을 결국 다 이루어내심을 통해서, 우리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구원이라는 것이 우리의 성의 있고 정성이 깃든 자력적 노력의 결과가 아님을 알게 합니다.
하나님은 무저갱의 옥문이 열리게 하십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일에서 인간을 배제하기 위함입니다. 인간이 배제되지 않는 하나님의 일이란 없습니다. 일부러 악마와 그 하수인들을 이 인간이 사는 자연세계 안으로 풀어놓아서 점령케 합니다. 무저갱이란 밑바닥이 없는 지하감옥이라는 뜻입니다.
한 번 들어갔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고 부지런히 추락만 지속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거기서 악마와 그 쫄개들을 나오게 하신 것은, 악마가 없이는 본디 하나님의 일이 성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영이 자연세계에 합류합니다. 합류 정도가 아니라 주도권을 인간에게서 뺏아버리게 합니다. 전쟁이란 바로 이 자연세계에 대한 주도권이 진정 눈에 보이는 인간에게 있는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권세자에게 있는지 분명히 해두기 위함입니다. 물론 악마의 권세는 하나님깨서 정해주신 범주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을 보아서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조정하시는 일의 일부로 악마가 활동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모든 것을 육적으로만 최종 판단을 내립니다. 과학이 그러하고 기술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인간들의 이런 무지는 마치, 참된 태양을 연극무대 위에 설치할 수 없어 매직으로 붉게 그려낸 태양으로 대체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인위적인 연출로서 실제 상황들을 해명해보겠다는 것이 인간들의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구름타고 올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구약 다니엘서 7장에 그렇게 나와있으니 문자적으로 그렇게 해독한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메시야는 이미 와 버렸습니다. 그것도 초라한 몰골을 하면서 등장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오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기대한 위대한 자태를 지니고 오신 것이 아니라 누가봐도 무시할 만한 한 순간 해프닝 모양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시한 그를 악마에게 내어주었고. 사단의 종들은 그 분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이 그 십자가로 달성됩니다. 달리 성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어떤 인간의 협조로 불필요합니다. 악마는 자신이 장악한 세계에서 어떻게하든지 십자가 복음을 지워버리게 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지만 희한하게도 그러한 악마의 애씀이 도리어 더욱더 십자가 복음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결과를 낳게 합니다.
그 예가 여기에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8:13에 보면, 독수리가 “화, 화, 화가 있을지어다”라고 세 번의 ‘화’를 예언합니다. 그 첫 번째 ‘화’에 해당되는 구절이 오늘 본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악마를 석방시켜 인간 세계 위에 군림토록합니다.
두 번째 화가 요한계시록 11:14 이전에 나옵니다.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둘째 화는, 십자가를 증거하는 자에 대한 악마 세력의 승리를 말합니다. 그로인해 세상은 화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1:8에 보면,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 화는 그 이후, 이 순교자를 발생시킨 죄에 대한 마무리 집단적 저주를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악마의 집단은 어떻게 하든지 십자가 복음을 못전하게 하려고 애쓸 쓰지만 결과적으로 그 애를 씀으로 인해 십자가는 이 지상에서 발생되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인맞은 자들만이 이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들의 원조는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의 지혜나 힘으로 지탱하는 나라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이 주신 약속와 맹세의 성취과정에서 부산물로 등장되는 희한한 나라입니다. 즉 다른 이방 나라들은 자력으로 자신을 버티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전부 일임해야만 유지되는 나라입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께 이마에 도장을 맞은 자들이 오늘날 성도들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아무리 악마가 설치더라도 모두 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 설치고 있음을 느긋하게 받아드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