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문에 대하여
명령문에 대하여
이름 : 참빛(IP:124.46.178.69)
이전 '십자가 마을'에 올린 글입니다. 아직은 좀 혼동이 되는 두 마을입니다. 참과 거짓을 판단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만 있을 뿐입니다. '명령문'에 대해서는 예전날 고민했던 부분입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감사합니다...
첫인사를 드립니다. 익산에 사는 박동성입니다. 십자가의 중요성에 대해서 늘 생각해 오던 터에 '십자가 마을' 이라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좀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니 약간의 다툼이 있군요...만일 우리가 절대자(GOD)께서 인정하시는 '예수'라고 불리는 그리스도께로만 접붙임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면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이 될 줄 믿으니 이러한 다툼도 유익할 것입니다.
'명령문.'
수년전 같이 모임을 가졌던 형제들에게 많이 강조했던 부분이 바로 성경속의 '명령문'이었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성경을 읽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지켜 행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님을 강조하였습니다. 성경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이미 규정하고 있고, 결국 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율법을 집행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 율법의 의미를 모를 뿐만 아니라 설령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하더라도 그 율법을 집행할 수 있는 본질상의 힘이 인간에는 없습니다. 이는 인간사회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죽은 자에게는 교통위반이라는 용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교통위반이라는 법규가 적용이 되려면 우선 차를 운전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지킬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내가 다리가 불구가 된 자에게 문을 열 것을 명령한다면 나의 명령이 잘못되었거나, 아니면 나는 그를 놀리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속의 모든 '명령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얻은 자의 몫입니다. 그 명령의 의미를 알 뿐만 아니라 그 명령을 집행할 힘이 나에게 생긴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옛 자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하나님의 속사람으로 말미암아 지켜 행하게 하는 것이 성경속의 명령문입니다. 이 명령문은 망령된 옛사람의 입장에서만 보면 매우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신이 하면 될 것을 '그분이 행하게 하신다'고 우기는 것 같습니다.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켜 행하게 하신다..'하지만 이 행위는 완전한 적극적 행위입니다. 행위가 본능처럼 됩니다. 의지에 따라 지키기도 하고 의지에 따라 거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우리가 숨을 쉬는 것 처럼 하나님의 명령이 우리에게 본능이 됩니다. 찬양하라는 명령때문에 찬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찬양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도하라는 명령때문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도가 되어버렸습니다.사랑하라는 명령때문에 사랑을 하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이 되어버렸습니다. 성경속의 명령은 일회성이 아닙니다. '예배'의 명령이 나에게 임하면 나는 영원히 그를 예배할수 있게되는 것이 이 명령문의 위력입니다.
마귀와 결탁한 옛사람은 바로 이 명령문을 육체에 적용시키려합니다. 죽은 자인 자신의 몸으로 '거룩'을 흉내내어 자신도 '산 자'임을 주장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성도에게 옛사람을 주신 까닭을 잊으면 안됩니다. 옛사람의 역할은 십자가의 형틀입니다. 죽음의 말씀인 구약(물세례)의 명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옛사람을 십자가의 형틀에 못박을때야 비로서 생명의 말씀인 신약(성령세례)의 명령이 우리의 죽을 몸에 집행이 될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명령은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게 집행되는 명령임을 다시한번 기억합시다. 익산 참빛